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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김유정기억하기 산문 대상-밤이 조금만 잘럿드면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3.06.09|조회수116 목록 댓글 3

밤이 조금만 잘럿드면/서상희

 

 

어릴 적 우리 집은 정전이 잦았다. 서울인데도 그랬다. 툭하면 불이 나갔다. 어른들 말로는 이웃에 정치인이 살지 않아서라고 했다. 근방에 정치인이 살면 전기를 공급하는 곳에서 특별하게 신경을 많이 쓴단다. 하다못해 이웃에 신문기자 정도만 살아도 그렇단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무척이나 정전이 잦았다.

아무튼 그날도 갑자기 전깃불이 나갔다. 남동생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사방이 컴컴해졌다. 평소 같으면 그 시각에 TV 시청은 어림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친척집에 가셨는데 생각보다 귀가가 늦고 있었다.

전깃불이 나가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허둥댔다. 우린 초등학생이었다. 내가 삼학년, 동생이 일학년이었다. 나는 양초를 찾기 위해 장롱서랍을 더듬더듬 뒤졌다. 그런데 늘 상비된 양초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초가 없어.”

내 말에 남동생은 울먹이며 무섭다고 했다. 나도 무서웠다. 안 그래도 옆집에서 폭력사건이 난 터였다. 부인이 매를 맞다가 남편에게 흉기로 대항했다. 가정폭력에 대한 정당방위였다. 그러나 소문은 달랐다. 사람들은 미친 여자라고 손가락질했다. 나도 그 아줌마를 잘 알았다. 늘 시퍼렇게 멍든 눈,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자신을 속박하는 비사교성, 무엇보다 특유의 음울함…….

동생은 옆집 아줌마를 미워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 더러운 물을 뿌렸다며 부모님 앞에서 아줌마를 욕되게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었다. 마침 동생이 길목을 지나가고 있었고 아줌마가 실수로 대야의 물을 버린 것이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다른 아주머니들 같으면 동생에게 뭐라고 말이라도 했을 텐데 옆집 아줌마는 달랐다. 무심한 얼굴로 망연히 쳐다보니 동생이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 어서 양초 빌려 와.”

동생은 이웃에게 양초를 빌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지의 암흑까지 덧칠된 바깥세상으로 나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양초 없이 버티자고 동생을 설득했다. 남동생은 안 된다며 엉엉 울어댔다. 결국 그 울음소리에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런데 내가 어쩌자고 옆집의 문을 두드렸던 걸까. 지금 생각해봐도 모를 일이다.

한참 후에 아줌마가 나왔다. 아줌마 손에는 휴대용 랜턴이 들려있었다. 그것으로 나를 샅샅이 비추었다. 솔직히 말해 오히려 아줌마가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누구세요? 하고 묻는 가녀린 목소리가 매우 떨렸다. 아줌마는 내가 신분을 밝히자 그제야 안심했다.

“엄마 아빠가 없어서 그러는데요. 혹시 양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아줌마는 선뜻 양초를 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재빨리 집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더니 내게 양초 한 개와 웨하스 과자 한 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얼떨떨했다. 아줌마의 친절도 놀라웠지만 과자 때문이기도 했다. 그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과자였다. 평소 치아가 없는 아기들이나 먹는 것이라고 우습게 여겼었다. 그래서 나는 “아줌마 집은 애기도 없으면서 웨하스가 있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줌마가 조용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 이거 되게 좋아해. 이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훗훗.”

그때 아줌마는 이를 보이며 웃었다. 그런데 상처받은 사람의 미소여서 그랬는지 어딘지 처량한 데가 있었다. 지금도 나는 아줌마의 미소를 떠올리면 한쪽 가슴이 아려온다. 또 그런 식의 연민은 그녀가 내게 준 웨하스 과자처럼 언제나 감정의 한 귀퉁이가 축축해진다. 사실 그 과자는 푸석해야 제맛인데 습기를 먹었는지 조금은 축축했다. 마치 그녀의 눈물을 흡수한 것처럼.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줌마가 빌려준 양초를 밝혔다. 물론 남동생에겐 양초와 과자의 출처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기겁을 했을 녀석이다. 이웃에 사는 친구네서 가져왔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그런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동생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과자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지금은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서 나름 점잖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때는 참 얄미운 악동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인가 보다. 그런 변화는 다행스러우면서도 왠지 씁쓸한 데가 있다. 얄미운 악동이었지만 상당히 귀여운 구석도 있는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녀석이 처자식을 거느린 건실한 가장이 되었다. 나는 동생이 이따금 딱딱한 얼굴로 주식이나 부동산 얘기하는 걸 보면 마음이 씁쓸하다. 비슷한 의미에서 정전이 없는 요즘의 전력서비스 역시 다행스러우면서도 왠지 씁쓸하다.

다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전력서비스의 원활함이 왠지 인간의 교감을 끊는 것 같다. 더불어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감이 어쩐지 퇴색하는 것 같다. 솔직히 어릴 적 나는 잠깐씩의 정전이 좋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암흑이 찾아오면 평소 하지 않던 고상한 생각을 하곤 했다. 희한하게도 어둠 속에선 평소보다 사고의 수준이 높아지고 덩달아 감정까지 고양되었다. 아무래도 밤이 깊어지면 생각이 깊어지기 마련인 것이다.

칠흑 같은 암전 속에서 나는 사는 이유라든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희한하게도 밝은 상태에서는 그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일어나던 정전 속에서 불가항력적인 어둠을 한 번 겪고 나면 왠지 정신의 키가 조금 더 자란 느낌이었다.

물론 나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와 같은 감상적 기분을 아는가보다. 몇 년 전 서울광장에서 에너지의 날을 맞아 저녁 9시부터 5분간 전국적인 소등행사를 가졌었다. `불을 끄고 별을 켜다'라는 주제로 열린 소등행사였는데 9시 정각 플러그 뽑기 퍼포먼스가 개시된 직후 인근의 90여 개 빌딩이 순식간에 어두침침해졌다. 그러자 매끄럽고 부드러운 것을 선호하고 웬만해선 타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현대인의 눈앞에 작은 불편이 선사한 아름다운 광경, 즉 진짜 밤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전력공사에서 이따금 정전이라는 실수를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밤손님처럼 기습적인 정전이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2003년 8월 14일 북미 지역의 정전처럼 한나절이나 가면 곤란하다. 홈쇼핑에서 사들인 장어가 녹으면 곤란하니까. 내가 기대하는 정전은 작은 혼란을 야기하는 정도의 작은 정전이다. 서로 모르는 이웃, 또는 조금은 오해했던 이웃을 찾아가 양초를 빌릴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지는 정전. 그런 정전이 발생하면 나는 예전처럼 옆집에 찾아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 옆집에 사는데요. 혹시 양초 좀 빌릴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나의 감상적인 바람은 절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난 이십 년간의 경험만 떠올려도 알 수가 있다. 그동안 내가 사는 동네마다 내가 모르는 정치가와 신문기자가 사는지 단 한 번도 정전을 맞은 기억이 없다. 또한 솔직히 정전이 인간미를 나누는 기회를 줄지언정 이웃과의 인간미를 직접 제공할 리가 없다. 다시 말해 정전이 된다고 갑자기 모르던 이웃과 사귀게 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외부의 정전이 아니다. 만일 이웃과 별 이유 없이 서먹하게 지낸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 마음속의 불이 꺼졌기 때문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정전은 명백히 불편하고 냉장고의 음식을 상하게 할 뿐이다. 주부인 내가 정전이 가져다주는 불편을 모를 리가 없다. 다만 휘황한 조명에 가려진 밤의 깊은 측면이 그리울 뿐이다. 가끔은 정전을 통해 밤이 조금만 깊었으면 좋겠다.

마침 지금 새벽 한 시다. 그럼에도 세상은 너무나 시끄럽고 밝다. 냉장고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형광등은 내내 밝혀있다. 식구들이 잠든 지금 나는 집안의 불을 모두 끄기로 한다. `불을 끄고 별을 켜다'라는 주제로 열린 소등행사와 비슷하다. 집안의 불을 끄고 마음의 불을 켜는 것이다. 삽시간에 정전이 된 것처럼 사방이 어두워진다. 그러자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오른다.

옆집 아줌마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 나는 어둠을 차근히 더듬기 시작했다. 순간 내 마른 혀에 닿았던 축축한 과자의 감촉이 되살아난다. 만일 지금 이 순간 아줌마가 내 눈앞에 있다면 축축한 눈물을 머금은 채로 언제나 퍼렇게 물들어있던 그녀의 눈덩이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위로해줄 것이다.

“얼마나 아팠어요? 얼마나 외로웠어요? 얼마나 슬펐어요?”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아줌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었다. 나중에라도 인사를 전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런 정전처럼 그녀는 갑작스럽게 떠났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비록 늦었지만 마음으로나마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그때 참 고마웠어요, 아줌마. 잘 지내죠?”

 

 

 


 

[수상소감]

“김유정의 문학 더 사랑하겠다”

산문 대학·일반부 서상희

나에게 있어 문학은 일종의 정전(停電)현상과 같다. 책을 읽을 때나 글을 쓸 때 잠시 일상의 휘황한 불을 끄고 밤처럼 어두컴컴한 내면의 깊은 처소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문학이 인도해 준 고독의 처소에서 늘 양초를 빌려줄 인연을 기다려왔다. 그것은 내가 글쓰기를 하는 중대한 이유였다. 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공모를 주최해 준 강원일보와 김유정기념사업회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겠다. 더불어 내가 김유정의 문학을 기리며 써낸 `밤이 조금만 잘럿드면'에서 마주한, 오래된 기억 속에서 더듬더듬 찾아낸 아련한 옛 인연에게도 수줍은 안부를 전한다. 앞으로 김유정과 그의 문학을 더욱 사랑하겠다. 무엇보다 앞으로 내면의 풍경을 은은하게 밝혀줄 양초와 그 양초를 빌려준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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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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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동조 | 작성시간 13.06.09 희자샘!
    글쓰기에서는 열정이 실력이라 했던가요.
    희자샘의 열정에 늘 나는 부끄럽네요.

    오늘은 나도 정전에 대하여 기억을 더듬어봐야겠습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 작성자윤남석 | 작성시간 13.06.13 당선 소감이 괜찮습니다. "나에게 있어 문학은 일종의 정전(停電)현상과 같다", 라는.
    어쩌면 문학을 창조해내는 그 시간은 그렇게 정전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캄캄한 어둠의 시간속에서, 힘겹게 끌어낸 기억회로를 환하게 불 밝히면서 느끼는 희열, 같은 것 때문에
    문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작성자정애선 | 작성시간 13.06.14 당선 작가가 젊고 예쁜 분이시네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시니 부럽습니다.
    불을 끄고 별이 켜지는 시간을 저도 많이많이 좋아합니다. 김 선배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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