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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한 켤레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1.06.22|조회수60 목록 댓글 4

구두 한 켤레

 

 

 

A Pair of Shoes c.1886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Amsterdam (51 x 61cm)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는 삶의 여정을 흙이 묻은 구두에 비유한 그림 <구두 한 켤레>를 남겼다. 낡고 헤진 검은 구두에 진흙이 묻었다.
누가 방금 신발을 벗었던가. 구두끈은 느슨하게 풀려 있는 상태다. 노란색 배경에 지저분한 검정 가죽구두 한 켤레가 화면 한가운데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헌 구두를 표현했을 뿐인데도, 신발 주인이 겪었을 삶의 쓸쓸함과 고단함의 무게에 가슴이 아려온다.
흔히 사람들은 신발을 가리켜 육신의 껍데기라고 부른다. 인간에게 신발은 발을 보호하거나 치장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질병을 치료하고, 행운을 빌고, 신데렐라 동화에서 드러나듯 성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옛 풍속에는 정월 대보름날 신발을 감추는 풍습이 있었다. 사람들은 몽달귀신이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가는 일이 생기면 신발의 임자에게 불행이 닥친다고 믿었던 것이다.
고흐는 굽이 닳고 가죽이 헤진 헌 구두를 벼룩시장에서 구입해서 몇 번이나 그렸다고 전해진다. 화가는 왜 낡은 구두를 그림으로 그려야만 했을까? 비록 구두가 생명체는 아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 인간에 대해, 삶의 고달픔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해준다고 생각했었을까?

그림 속 구두는 감상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고흐가 그린 신발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신발 주인은 구두를 벗어놓고 어디로 갔을까? 혹 삶의 길을 헤매느라 지쳐서 신발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까? 지저분하지만 신성하게 보이는 고흐의 구두는 세계적인 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논쟁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였다. 하이데거는 1930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철학자는 1935년 발표한 <예술작품의 기원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예술작품의 의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흐의 구두를 소개했다.

낡은 신발 안쪽으로 보이는 어두운 신발주인의 고단한 발걸음이 응고되었다. 딱딱하게 주름진 구두에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은 밭고랑 사이를 힘들게 헤치고 나아가는 농부의 발걸음의 무게가 두껍게 채워져 있다. 구두 가죽에 대지의 축축함과 풍요로움이 스며 있고, 구두 밑창에는 해가 질 무렵의 정적이 묻어 있다.

하이데거는 신발주인은 농촌의 여자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1968년 미국의 미술사학자인 마이어 샤파르가 하이데거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져, 구두의 주인은 농촌아낙이 아닌 화가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샤피로는 "고흐의 시정, 네덜란드 농민들은 너무 가난해서 가죽구두를 신을 형편이 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림 속 구두는 고흐가 파리 몽마르트 거리를 밟고 다닐 때 신었던 신발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도 뒤늦게 구두 논쟁에 가담했다. 그는 저서 <회화의 진리>에서 구두는 한 켤레가 아닌 각각 다른 신발의 한 짝들을 모았고, 그것은 왼쪽 구두라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구두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면서 고흐의 낡은 구두는 더욱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이제 고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고흐는 평소 화가인 자신들 대지에 시를 뿌리고, 키우고, 수확하는 농부에 비유하곤 했다. 그렇다면 이런 추측이 가능해진다. 고흐는 예술 작업이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 예술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리기 위해 혹은 예술가의 식량이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흙 묻은 한 구두를 그림에 표현했던 것은 아닐까?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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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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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희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6.22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구두 한 켤레'.입니다.
    그림 속 허름한 구두는 그의 생을 닮은 듯 측은해보이지만 왠지 편안하고 친근해 보입니다.
    그는 가고 없지만 이 그림을 보면 화가의 삶이 엿보이고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어느 시인은 신발을 새장에 비유하기도 하고 출항하는 배, 부부로 비유하기도 했답니다. ^^
  • 작성자조현태 | 작성시간 11.06.22 그림이 미술가의 식량이라는 말에 한 표 던집니다.
    여전히 밥만 먹고 살면서 쌀만 식량인 줄 알았으니....
  • 작성자정애선 | 작성시간 11.06.23 고흐의 작품은 영혼의 고단함이 엿보이는 듯 합니다...
  • 작성자김잠복 | 작성시간 11.06.24 신발을 보면 주인의 삶이 보인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주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신발, 육신, 아니 영혼의 무게까지 담고있는 신발대신, 지금내가 쓰고 있는 글이 오랜시간이 흐른뒤에 이런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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