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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동사리를 생각하며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2.03.21|조회수107 목록 댓글 10

얼룩동사리를 생각하며 /엄현옥

 

 

 잠시 여유로움을 즐기며 텔레비젼을 켠다. 심야시간이라지만 기대한 만큼 볼만한 화면도 없다. 졸음이 밀려와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는데, 다큐멘터리 〈북한강〉이란다. 눈이 번쩍 뜨인다. 정태춘의 노랫가락에서 연상되는 북한강의 서정과 정한이 스친다. 북한강이 아니면 또 어떠랴. 강은 언제 떠올려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서를 정화시켜 주는 것을…. 금강산 만폭동에서 발원하여 평화의 댐과 파로호를 거쳐 양수리까지의 한강 유람길에 오른다.

 한강의 상류인 파로호에서는 겨울 낚시가 한창이다. 낚시라기보다는 고기잡이라 함이 더 어울리겠다. 전동칼로 얼음장을 도려내니 찬 강물은 직사각 모양으로 울컥거리며 출렁인다. 낚시꾼은 그곳에 그물을 드리우고 한참 후 거두어들인다. 올라온 자잘한 고기들 무리가 촘촘한 망을 터트릴 것만 같다. 빙어다. 강 바닥은 투명한 수족관인양 훤히 모습을 드러낸다. 멸치처럼 날씬한 그것들은 빙어회를 처음 먹었던 칠년 전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장성호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두 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던, 말로만 듣던 복식학급이 운영될 정도로 소규모였던 분교의 교직원들은 한 달이 멀다하고 단합대회라는 미명하에 회식을 즐겼는데, 인근 학교에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장성호 상류를 찾곤 했다. 가없는 수면 위로 번지는 노을을 보며 황혼을 따라 마음도 물들어 갔다.

 그때 빙어를 처음 알았다. 맑은 유리그릇 안에서 촐싹거리며 유영하던 조그만 고기떼에 처음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빙어 특유의 맛을 익히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가끔 도시의 수족관에서 파는 빙어를 만나지만 다시 녀석들을 젓가락으로 낚을 생각은 없다. 같은 대상일지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것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파로호의 빙어 잡이에서 장성호의 빙어회를 즐겨 찾던 시간여행에서 빠져나오니, 다음 화면은 아침 안개가 드리운 푸른 숲이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아침이 열렸다. 나무에 새순이 돋고 푸르름이 더해가는 초봄의 한강변이었다. 물밑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물고기의 산란 장면이 펼쳐졌다. ‘얼룩동사리’라는 그다지 특이할 것도 볼품도 없는 민물고기가 수컷의 비호 하에 산란을 했다. 산란공에서 조그만 알이 거짓말처럼 펑펑 쏟아져 나왔다. 수컷의 수정으로 알의 색깔은 변해갔고 산란을 마친 암컷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물길을 헤쳐나갔다.

 그때부터 수컷의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수초더미에 낳은 알을 보살피며, 부화를 돕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부채질을 했다. 보호본능에 헌신하던 수컷이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기력이 쇠진하여 결국 생을 마감하는 부성애를 보였다.

 

 

 

 

 혼돈과 무질서가 위험 수위까지 차오른 인간 세상에도 소수의 희생과 무조건의 사랑이 있어 이나마 존속되어 간다던가. 강 속의 생태계에서도 사람보다 덜하지 않은 숭고한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 중 더러는 자신의 행로에 장애가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혈육을 외면하기도 한다. 얼룩동사리의 부성애가 단순한 종족보존 본능이었을지라도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드디어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하는 양수리에 이르렀다. 맑게만 보이던 물속을 들여다보니 바로 앞의 물체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부유물 속에서 생명의 기운은 느낄 수 없었다. 하류는 더 이상 강이 아니었다. 인간의 편리에 의해 강이 변하고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은 어디를 가나 인간의 발길로 북적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강을 유용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강줄기를 바꾸고 그들을 더럽히고 있다. 지금 많은 물고기들이 이곳저곳에서 생겨나는 댐으로 인해 터전을 잃고 있단다. 어로가 끊긴 강물을 돌아갈 곳 없는 생물들을 사라지게 하고, 하류일수록 오염도는 심각했다. 수 천 종의 생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온 우리의 강, 그것은 생명의 물이다. 생명이 숨 쉬는 그곳이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간의 손때로 인해 생물이 사라졌다. 천릿길을 달려온 한강에서는 발원지의 신비함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의 목마름과 영혼의 갈증을 적셔주었던 강물로서의 역할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저 손 때 묻은 강 하류를 보며 파로호의 얼룩동사리를 생각한다. 지친 삶의 한 가닥 위안인 가족애가 숨쉬고, 조건 없는 자식 사랑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는 얼룩동사리의 부성애가 흐르는 강물의 아름다운 질서는 어쩌면 시한부의 것이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오만과 욕망으로 강은 제 모습을 잃을 것이고, 우리는 삶의 터를 잃게 되지 않을까. 미꾸라지, 버들붕어가 사라진 곳에서 해오라기가 살 수 없듯이, 이렇듯 빠른 속도로 자연이 죽어간다면 불과 몇 년 후라도 수많은 생물들이 멸종할 것이다.

 모처럼 볼만한 수작(秀作)을 시청했다는 흐믓함도 사라지고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우리가 맞는 매일의 새벽이 늘 처음처럼 신선하듯 강물 또한 언제나 새롭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강물, 이제 그런 강을 무심히 바라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보이지 않은 강물 속의 질서가 더 이상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부화의 지난한 몸짓에 온 힘을 기울이다 숭고하게 숨을 거둔 얼룩동사리가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강을 만들기 위해서는….

 

 

 

*** 수필가 엄현옥님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수필집 '다시 우체국'에서 등 다수의 저서와 작품을 남겼다. 위 작품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엄현옥님은 현재 '에세이포레' 주간, '수필과 비평' 이사, '선수필'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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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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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동조 | 작성시간 12.03.21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으로도 강 한 줄기가 흘렀습니다.
    눈물이 도네요.
    인간이 기댈 곳은 자연뿐인데 그 어머니 같은 자연을 우리가 버려놓는군요.
  • 작성자안종문 | 작성시간 12.03.21 수고하여 주심에 부끄러운 댓글로 감사드립니다. 감동적이어서 집안 카페에 스크렙하여 갑니다. 좋은 나날 기원드리면서요.
  • 작성자정애선 | 작성시간 12.03.21 작품에 나오는 '북한강' 다큐를 저도 봤었습니다.
    기력이 다 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부채질을 하던 수컷의 부성애에 가슴이 짠하더군요.
  • 작성자박명순 | 작성시간 12.03.2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다큐 '북한강'을 보면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자연을 버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제 고향 강물에도 그 민물 고기가 많았는데 그 때는 이름을 잘 몰랐습니다.같은 프로를 시청했는데 엄현옥 선생님은 훌륭한 글을 쓰시고 누구는 겨우 물고기 이름 하나 알았다고 좋아하고... 참으로 부끄럽네요.
  • 작성자조현태 | 작성시간 12.03.22 소인도 환경다큐를 즐겨 봅니다.
    엄현옥 수필가님의 글을 보니 마치 다큐영상을 보는 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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