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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무스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2.05.13|조회수61 목록 댓글 4

아니무스/ 정여송

 


 내 안에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이병헌처럼 멋있지도 않고 전유성 같은 유머와 위트를 지니지도 못했다. 타이거우즈마냥 신의 기술을 훔친 남자는 더더욱 못된다. 약간 화통한 듯하지만 좁쌀뱅이 남자다.
 그래도 나는 그 남자가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물어볼 줄 아는 남자였으면 했다. 희끄무레하고 누리끼리하며 푸르뎅뎅하고 불그스름한 세상을 볼 줄 아는 남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름과 차이가 만들어가는 다양성이 내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남자이기를 소원했다. 사소한 일상이나 자연의 삼라만상에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줄 아이디어를 찾는 남자라면 대길이었다. 하지만 그 모두는 허황된 바람이었다. 
 그 남자는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면서 융통성 없이 따지기만 했다. 그런가 하면 과거로만 문을 열고 닫으려고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 나중에는 뒷전도 못되고 먼전이 되어 전전긍긍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까탈스럽지만 통제가 가능해 끌어안고 살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남자는 늘 기가 살아 있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점점 나의 기세에 눌려 존재감마저 확인하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그러나 그렇게 무시한다고 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리아리 멀기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영원히 헤쳐 나올 수 없는 무저갱 같은 곳에서 본능을 괄호하여 숨기며 사십 년을 아롱졌다. 그러니 그 누구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 남자와 더불어 살던 과거는 이미 오래된 미래였다.
 언제부터였는가는 확실치 않다. 그 남자의 움직임이 보였다. 도대체 먼지 같이 눈에 띄지 않던 그 남자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했던 그 남자가 아주 가끔 언뜻언뜻 비치는 듯 하더니 행보를 시작했다.
 한 그루의 나무처럼 푸른 그늘을 만들고, 나무의 곳곳에 부담 없는 깃을 드리울 수 있도록 가지를 펼쳤다. 때로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김수영의 ‘풀’처럼, 더러는 무서운 기색도 없이 쏟아지는 폭포와도 같이, 가끔은 스스로 도는 팽이라도 된 듯 과감하게 본색을 드러내었다. 어쩌면 서로 간에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는 심사였는지도 모른다. 신뢰를 높여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였지 않을까. 나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힘을 쏟아보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자고 나는 ‘하이고 가소로워라’하며 비아냥대고 싶은 유치한 욕망이 생기는 것일까.
 그 남자는 아니무스다. 내 안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남성성, 위기의 순간에 강인한 결단력을 분출하는 남성적 요소, 내 남은 삶에 힘이 되어 줄 남자. 그 남자가 세월을 뛰어넘어서 내게로 되돌아왔다. 내가 나를 버려도 나를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그 남자 덕분에 나는 많이 대범해졌다. 정의감이 생기고 올곧고 당당해졌다. 활발한 사회활동 면에서나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에서 젊었을 적에 남편이 보여주던 남자다움을 내가 하고 있다. 처음에는 같이 살아서 닮은 줄 알았다. 나중에는 배워서 습득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다. 아니무스가 장성하여 내 안에서 게이머처럼 키를 쥐고 조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남자는 일부러 숨죽여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과 할 수밖에 없는 일을 참고 또 참았다. 숨이 긴 힘을 누르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건장해진 그 남자는 혜성처럼 나타나 지천명이 넘은 아줌마가 아직도 영화 속의 여주인공을 꿈꾸며 사느냐고 코웃음을 쳤다. 무엇을 더 찾겠다고 여자이길 포기하지 않느냐며 거들먹거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이 주는 지혜가 백만 광주리도 넘을 터인데 순리를 따돌릴 거냐며 비웃었다. 
 그렇다.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약해지고 작아진다. 용케도 알아본 그 남자는 용감하게 나타나 나의 흑기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내 안의 또 다른 앗살하고 남자다운 나. 무언가가 못마땅해도 같은 맘이 되어주고, 말이 싫고 미워도 정으로 갈무리 해주며, 무기력하고 나태해지는 생각에 힘을 부어준다.
 어렵고 힘들어도 같이 걸어가야 할 관계임을 보여주듯 내 안의 그 남자는 내 어깨를 툭 친다. 나도 눈을 찡긋거린다. 그렇게 우리는 너와 나 구분 않고 어우렁더우렁 살아가야만 하는 관계다. 마치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처럼.

 

               ─『시에』 2011년 가을호

 

 

정여송
충북 영동 출생. 1995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 『힘쓰는 여자』, 『'마중물』, 『세상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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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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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동조 | 작성시간 12.05.13 뒷문장이 궁금해지는 글, 감칠 맛 나는 문장. 우야믄 이런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요?
    희자샘 덕분에 좋은 글을 자주 만나네요.
    오늘 머리를 자르고 퍼머를 했습니다.
    미장원 가는 걸 싫어하여 두 달을 벼르다 갔습니다.
    다른 지방은 초여름 날씨라는데 오늘도 울산은 선듯한 가을 날씨군요.
    에세이 울산으로 업어 갑니다.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희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5.13 1995년에 등단하신 분이니 경지에 이를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며 많이 써야겠지요.
    정여송 작가님은 마중물로 유명하시지요.

    미용실에 다녀오신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저도 어제 파마를 했습니다.
    자연스러워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그래도 머리를 손질하고 나면 생기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은 종일 집에서 가족들 수발들었습니다.
    세 끼 밥 챙겨 먹이고 오랜만에 대화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
  • 작성자엄옥례 | 작성시간 12.05.14 내 안의 아니무스를 새삼 확인해 보는 글입니다.
    저도 언젠가는 제 안의 아니무스에 대해 한번 써 보고
    싶네요.
  • 작성자김영희 | 작성시간 12.05.1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너와 나 구분않고 어우렁더우렁 살아가야 하는 관계...
    글의 말미가 압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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