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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를 부치며

작성자한양숙|작성시간12.06.09|조회수40 목록 댓글 2

부침개를 부치며/한양숙

 

하루 종일 추적대며 내린 비는 좀체 그칠 줄 모른다. 이런 날은 고소한 기름 냄새 가득한 부침개 생각이 난다. 냉장고에 남은 부추를 이번만큼은 버리지 말고 다 먹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더욱 부침개 생각이 간절해진 줄도 모른다. 잘 되었다싶어 오후 늦게 부침개를 부쳤다. 양파와 묵은 김치, 빨간 고추, 청량고추, 조개, 부추를 다듬어 썰고 부침가루와 찹쌀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 반죽한다. 후라이팬을 뜨겁게 한 후 한 국자 떠서 둥글게 부침개 모양을 잡는다. 기름을 넉넉히 붓고 불을 적당히 조절해가며 앞 뒤판이 골고루 익을 때까지 군침을 참고 기다린다.

 

오늘 비오는 날, 때맞춰 부친 부침개 맛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반단 남아있던 부추를 기어이 다 먹었다는 다행스러움이다. 맞벌이한다는 핑계로, 식구들이 모두 모여 식사할 기회가 좀체 없다는 핑계로 요즘 갈수록 음식 만드는 시간이 줄어든다. 좋은 재료를 사두고도 제 때 음식을 장만하지 못하여 냉장고 안에서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 보관되었다가 결국 음식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채소를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찔리던지, 더욱이 잘 물러지는 부추는 다른 야채보다 더했다.

 

향긋한 향과 푸른 줄기에서 품어내는 싱그러움이 좋아 부추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야채다. 그러나 막상 집에 와서 부추로 반찬을 하려면 하나하나 다듬고 씻기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부추를 사온 첫날에는 대개 ‘아직 싱싱하니 다음에 하지 뭐’ 하며 슬쩍 넘어 간다. 다음 날 아침, 냉장고 문을 열다 부추가 보이면 ‘저녁에 시간 있을 때나 하지’ 하고 또 넘어 간다. 저녁 식사 준비하면서 조금 시든 부추가 눈에 띄면 ‘오늘, 하루 종일 피곤했다’ 는 핑계를 대며 다시 또 넘어 가게 된다. 그렇게 한 사흘 즈음 지나고 나면 부추는 어느새 수분을 잃어 볼품없이 되었거나 일부는 짓물러져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다. 주부로서 이런 게으름의 흔적은 자주 보인다. 그 중에서도 부추는 나의 게으름을 가장 잘 말해주는 바로 미터라고 할까.

 

오늘 부추전을 부치며 며칠 전 스캇팩의 <아직도 가지 않은 길>에서 읽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게으름은 죄다’  ‘게으름이 왜 죄인가?’ 고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게으름을 단지 밖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만 보고 조금 잘못되었다 판단하기 쉽지만 사실 게으름은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병이란다. 게으름은 잘못된 자기 사랑에서 시작되어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순간순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자꾸만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으름>의 저자 김남준 목사님 역시 게으름의 뿌리는 자기 사랑에서 시작하여 게으름이 더 발전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이 되고 더 나아가 의무를 저버리는 삶이 되어 결국은 정욕의 삶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한다.

 

아주 작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하여 큰 것을 잃게 되고, 아주 작은 친절 하나로 누군가 살아갈 이유를 갖게 한다면 오늘 부추전은 그동안 나의 게으름을 용서받을 작은 용기를 주었다고나 할까. 어찌되었거나 반단 남았던 부추에 대한 부담으로 여러 날 편치 않았던 차에 때마침 내린 비 덕분에 오늘 부침개를 잘 부쳐 먹었다. 창밖엔 아직 비가 내리지만 내 마음은 어느새 비 개인 쾌청한 오후다.

 

 

* 얼마전에 회원가입하고 좋은 글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미약하나마 나름 참여하고자하여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여기에 올려도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잘못되었다면 말씀해주세요. 삭제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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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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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희자 | 작성시간 12.06.09 감사합니다. 이 게시판은 자유게시판이라 올려도 됩니다.
    글을 읽으니 부침개가 먹고 싶어집니다. 저의 게으름도 꾸짖는 것 같고요... ^^
  • 작성자송재 이미경 | 작성시간 12.06.13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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