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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라도 길 외 / 한하운

작성자김미옥|작성시간10.08.08|조회수173 목록 댓글 5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에 /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손가락 한 마디 / 한하운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에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목숨 / 한하운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
밤을 새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37도의 체온이
한 마리 썩어가는 생선처럼 뭉클 쥐어진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어머니 / 한하운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신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신
말이 없는 어머니.

 

 

 

自畵像 / 한하운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이 굳어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飽滿症이냐.

한때 나의 푸른 이마 밑
검은 눈썹 언저리에 매워본 덧없음을 이어

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머리에
쩔룸쩔룸 다섯 자보다 좀더 큰 키로 나는 섰다.

어쩌면 나의 키가 끄으는 나의 그림자는
이렇게도 우득히 웬 땅을 덮는 것이냐.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
얼른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나 / 한하운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다만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목숨이올시다.

億劫을 두고 나눠도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罰이올시다 벌이올시다. 
 

 

 

 

봄 / 한하운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의 한 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민들레꽃 이른봄이 부끄러워.

새로는 돋을 수 없는 빨간 모가지
땅속에 움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요. 
 

 

 

 

何雲  / 한하운 

 

 

나 하나 어쩔 줄 몰라 서두르네
산도 언덕도 나뭇가지도.

여기라 뜬 세상
죽음에 주인이 없어 허락이 없어
이처럼 어쩔 줄 몰라 서두르는가.

매양 벌려둔 저 바다인들
풍덩실 내 자무러지면
수많은 魚族들의 원망이 넘칠 것 같다.


썩은 육체 언저리에
네 헒과 균과 悲와 哀와 愛을 엮어
뗏목처럼 창공으로 흘러 보고파진다.

아 구름 되고파
바람이 되고파

어이없는 창공에
섬이 되고파. 

 

 

********************************************************************

 

눈물이 흐릅니다...... (아, 나의 사치함이여,)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소록도 기행, 좋은 글을 첨부합니다

동산


녹동항에 불던 바람은 소록도에서도 불었다. 꽃샘바람이었다.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피는데 이렇듯 바람이 매섭게 분다면 만약 사람이 피어날 때쯤에는 얼마나 큰바람이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래, 피어나는 건 꽃으로 족하다. 꽃처럼 사람이 천지산간에

피어난다면 그 난리를 어찌 감당할까? 꽃들은 신호등이 없어도, 중앙선을 긋지 않아도

충돌하지 않지만 온갖 訟事로 날이 새는 사람들이 피어난다면 그 혼란을 어찌 이겨낼

수 있을까.


녹동항에서 소록도는 지척이었지만 '국립소록도병원'은 선착장에서 한참 거리였다.

아, 이 길을 걸어 들어간 천형(天刑)의 사람들…. 그네들을 생각하면 슬픔이 저며 온다.

하지만 그네들의 고통을 결코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네들 슬픔의 옷깃 정도나마 붙잡아

제 슬픔을 키울 뿐이다. 거기 그 길을 가다가 병사지대(病舍地帶)를 만났다.

여기서부터 차량통행 제한구역이다. 거기에 내렸을 때 눈에 띈 것은 솔숲이었다.

꽃샘바람과 바닷바람이 연대해 토해내는 바람은 몹시 차갑고 서러웠다.


                          

                                                                 ▲ 수탄장, 우측엔 한센병 어머니, 맞은편엔 자녀들이 서있다.


"솔숲이 아름답다"고 말했다가 바람에게 뺨을 맞았다. 소록도의 피 끓는 슬픔과 고통을 지켜본 바람은

외지인의 얼치기 감탄에 호통으로 나무랐다. 바람은 "이 솔숲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여기가 바로 천륜을 끊게 했던 수탄장(愁嘆場)"이라고 꾸짖었다.


<수탄장(愁嘆場)> 1950-1960년대 소록도에서는 섬을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누고 2km 정도

철조망을 쳤다. 병사지대에 사는 한센병 원생에게서 자녀가 태어날 경우에는 전염을 우려하여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 보육소'에 격리시켰다. 한센병 부모와 자녀들의 만남은 한 달에 한 번

면회뿐이었다.


부모와 아이들은 직원들의 통제하에 솔숲 양 옆으로 나뉘어져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봐야 했다.

서로를 만질 수도, 안아볼 수도 없는 만남이었다. 거기다 전염을 우려해 자녀들은 바람을 등지고

부모는 바람을 안고 만나야 했다. 자신의 아이를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만남... 천륜을 가르는

슬픔으로 인해 한센병 부모들의 탄식은 애간장 끊는 듯했다고 하여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혹하오, 인위라면 가증스럽소

누가 만든 죄이길래 사할 길 없어

눈물이 자욱자욱 맺어진 선을 두고

몇천번 울고 울어도 지울 수 없어

조상도 없는 이방인이 되어...


(1959년, 환자자치회 발간 성하(星河) 가을호)


인간사에 누군들 사연이 없을까? 하지만 그네들의 이야기는 사연이 아니라

구곡간장(九曲肝腸)을 끊는 천형(天刑) 같은 것이었다. 몇 천 번 울어도 지울

수 없는 천벌, 자식을 앞에 두고도 안을 수 없는 천벌. 그래서 그네들이 받는

고통을 천형(天刑)이라고 하였다. 하늘은 이렇게 무심한 것이다. 또 무심치

않으면 하루 한 날도 숨 쉬고 살지 못했을 생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부모도 모른 채 외국에 입양되거나 고아원으로 넘겨진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地域)에도 한 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문들레꽃 이른 봄이 부끄러워


돋울 수 없는 빨간 모가지

땅 속에서 움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季節)앞에서

겨웁도록 울다 가는 청춘(靑春)이요 눈물이오.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자살(自殺)을 아끼는 것이오.


(한하운 시인의 '봄' 전문)

 


정작 부끄러워 할 것은 하늘과 봄인데도 오히려 시인이 부끄러워 눈물겹게 울었다.

하늘과 봄은 죄 없는 목숨에 천형을 이어놓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마음대로

꽃을 피우며 시인을 울게 했다. 시인은 견딜 수 없는 육신의 고통과 세상사 천대에도

한 번밖에 없는 목숨을 아꼈다. 꽃이었으면 자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하늘이 준 목숨, 하늘이 버린 목숨이지만 스스로 버리지 않으려고

울부짖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리리.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 전문)


시인에게 한센병 초기 증세가 나타난 것은 보통학교 5학년 때였다.

이리농림학교에 진학한 그는 5학년 졸업반 당시 일본 의사로부터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시인은 소록도에 가서 치료하면 낫는다는 의사의 통보에 뇌성벽력

같은 선고였다며 앞이 캄캄하였다고 자신의 '나의 슬픈 반생기'에서

밝혔다. 그래서 시인은 보리피리 불던 고향의 봄, 병도 없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고 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천대의 세상사, 시인은

눈물의 언덕을 지나며 피-ㄹ닐리리 보리피리를 불었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다만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목숨이올시다.


억겁(億劫)을 두고 나눠도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벌(罰)이올시다 벌이올시다.


(한하운 시인의 시 '나' 전문)

 


시인은 자신이 사람도, 짐승도 아니었다고 울부짖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라고 했다. 그 벌이 어찌나 컸으면 억겁(億劫)에 나누어도

남을 벌이라고 토했다. 세상에 낫지 못할 병이 없는 세상이 됐다.

문둥병에서 나병, 나병에서 한센병으로 병명이 바뀌었고 의학의 발달에 의해

치료가 가능한 병으로 규명됐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는

병은 인간사 박약하게 하는 천대와 무지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한센병이라고

부르기보다 문둥병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아이의 간을 빼먹은 게 문둥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罰)이올시다.


아무 법문(法文)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한하운의 시 '벌(罰)' 전문)


꽃에게, 하늘에게, 바람에게 물어야겠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이며 가장 무서운 벌이

무엇이냐고…. 그게 '문둥병'이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꽃은, 하늘은, 바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가장 큰 죄는 고통 받는 이웃을 보고도 외면하는 무정

(無情)한 죄가 가장 큰 죄이며 무관심(無關心) 당하는

게 가장 큰 벌이다.

누가 고통으로 쓰러지면 들쳐 엎고 병원으로 가기보다,

누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함께 싸우려하기보다 오라 가라

할까봐 비루먹은 개처럼 꽁무니를 뺀다.

잘려나간 것은 한 결 같이 슬프고 고통스럽다. 머리를 굵다가

땅 위에 떨어진 시인의 손가락도, 프레스에 잘린 노동자의

손가락도 슬프고 고통스럽다. 이 슬픔, 이 고통, 이 외로움을

어디에 묻어야 할 것인가. 그래 날이 따스해지면 이 산 저 산

어느 양지에 묻어주어야겠다. 손, 발가락, 슬픔, 가난, 차별,

병고, 천대…. 죄도 없이 잘려나가 한데서 우는 것들의 저 울음소리를 이제 햇볕 따스한 땅에 묻어

주어야 겠다. 그래야 귀가 아프지 않다. 그래야 평등하게 잠들 수 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한하운의 시 '파랑새' 전문)


서정홍 시인은 '차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넉넉한 사람들은/

죽기가 두려워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기가 두려워

기도한다"고 정리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 슬픔에도 슬픔의 차이가 있고,

기쁨에도 기쁨의 차이가 있다.

하물며 죽음의 차이야 말해 무엇하랴. 손가락, 발가락 사라진

시인은, 천형의 고통으로 인간사에 버려진 한센병의 그네들은

죽어서 만은 파랑새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죽거들랑 천대도 병고도 이별도 없는 푸른 하늘 푸른 들을 날아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우는 파랑새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룻밤이라도 섬에서 잠들고 싶었다. 이고 지고 가는 삶의 짐이

무거워서, 왜 사는 게 이 모양이냐고 한심스러워 소록도의 기도

듣고 싶었다. 천형의 고통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저네들

앞에 무릎 끓어, 큰 어른 앞에 세상 이치 배우는 아이가 돼 뉘우치고 싶었다.

 

소록도(小鹿島), 작은 사슴 같은 아름다운 섬의 주인인 그네들 곁에서 세상 이야기 나누며, 어림짐작도

할 수 없는 그네들의 슬픔 앞에서 허깨비 같은 슬픔을 꺼냈다가 "어이 이 사람아! 그게 어디 아픔의 축에나

끼는 줄 아는가"라고 핀잔 받으며 혼쭐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감히 그네들에게 하루 밤을

요청하지 못했다. 성성한 손도 마음도 그 모두도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파랑새가 되고 싶었던 천형의 시인


1919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한종규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한하운의

집안은 3대가 과거에 급제한 선비 집안이자 지방의 지주였다.

그의 본명은 태영(泰英), 한센병에 걸린 뒤 하운(何雲)이라 고쳤다.


그는 보통학교 5학년 때 한센병 초기증세가 나타났고 이리농림학교 5학년에

일본인 의사 기다무라(北村淸一)로부터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병세가 다소 낫자 일본 동경의 성계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다시 병세가 악화돼

2년 만에 귀국했다. 병이 나아지자 중국 북경대학 농축학부에 입학, 졸업한 뒤

함남도청 축산과 취직했다. 이때까지 그의 병세는 환부로 나타나지 않았다.


병세가 완연해 진 것은 1945년 봄, 경기도 용인군에 근무하던 그는 직장의 상사마저

병을 눈치 챌 정도로 악화되자 고향 함흥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때부터 남쪽으로 내려온 48년까지 가장 처절한 투병생활을 했다.

그에게는 R이라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아우가 북한 정권 전복을 꾀하다

발각돼 함께 체포돼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월남(越南)한 까닭은 북한 정권으로부터 가산을 빼앗긴 것과 함께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남한의 나환자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거나 약을

구한 뒤 다시 월북했다가 감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재차 월남했다.

병이 완연해진 그는 각지를 떠돌며 유리걸식을 했다. 쓰레기통 옆에 잠자기 일쑤이던

그는 곁에 자던 거지가 죽은 모습에 삶의 의욕을 더 갖기도 했다.


그는 1949년 <신천지> 4월 호에 13편의 시를 실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대표시인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에'가 큰 반응을 일으켰고 시집 출판을

제의 받은 뒤 명동성당 방공호에서 원고를 정리했다.

그의 26편의 시가 수록된 첫 시집 <한하운시초>는 이렇게 세상에 선보였다.

또 1955년, 17편의 시가 수록된 두 번째 시집 <보리피리>을 '인간사'라는 출판사에서

펴냈다.


그는 나환자 수용소인 경기도 부평의 '성계원' 회장과 미감아동을 수용한 '신명보육원'

원장, '대한한센총연맹'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어 59년 나병이 음성으로 진단받으면서 사회에 복귀해 '한미제역회사'를 설립해

회장을 취임하고 다음 해 명동에 출판사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전개했다.

시인은 1975년 지병인 간경화로 숨을 거두면서 경기도 김포 장릉공원 묘지에 묻혔다.

시인의 56세 일기는 천형의 일기였다.


2003-03-1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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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형구 | 작성시간 10.08.08 몸뚱아리를 던져 시를 쓴 시인 --가슴 메지도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 --
    무서운건 신체의 병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이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인

    젊어 너무 가슴아프고 무서워 외면했던 시, 그리고 시인입니다----감사합니다
  • 작성자김경애 | 작성시간 10.08.08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사치군요. <파랑새>를 읽으며 마음이 더욱 슬퍼집니다. 남의 고통을 보면서 나의 행복을 생각하는 이 잔인함이라니~~~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한준수 준빠 | 작성시간 10.08.08 까마득히 잊고 있던 시인, 오랜만에 다시금 아음에 슬픔의 가시가 박히네요. 차라리 읽지나 말것을...
  • 작성자심주희 | 작성시간 10.08.09 "넉넉한 사람은 죽기가 두려워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은 살기가 두려워 기도한다".. 에구, 가슴 아프네요.
  • 작성자지석 | 작성시간 10.08.26 중학교 2.3학년 때 읽으며 눈물 짖던 시인 한하운. 죄 없이 떠는 촛불이었습니다.아니 하늘에 따지는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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