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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 그 냄새

작성자백동흠|작성시간16.11.01|조회수74 목록 댓글 5

그 소리 그 냄새

 

                         백동흠

 

온 종일 택시 운전을 하고서 퇴근하는 시간. 허기진 뱃속이 요동을 친다. 아침밥은 가볍게 먹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때운 뒷자리라 에너지원이 고갈된 상태다. 마치 택시 연료 게이지 바늘이 E(Empt)자에 배를 깔고 드러누운 형상이다. 당장 주유소에 들러 F(Full)자 눈금까지 연료를 채워야 하듯 몸도 에너지원을 채워달라고 아우성이다. 야구주자가 안간힘을 다해 홈 인하듯 집을 향해 슬라이딩한다.

 

홈인! 택시를 차고 안에 넣고 시동을 끄니 내 세상이다. 차고 문이 스르르 내려오며 닫힌다. 빈 도시락 통을 꺼내 들고 계단을 오르다 말고 가만 눈을 감는다.

 

“취취취~”

저녁 밥 뜸들이는 소리가 아래층으로 마중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코 끝에 스며드는 저 아늑한 소리… . 밥 뜸드는 냄새가 귀로 들어온다. 후각과 청각이 얽힌다. 옛 시절, 시골 부뚜막 앞에서 불을 지피시던 엄마. 까만 솥 단지 위에 얹힌 솥 뚜껑이 들썩거리며 밥 뜸 물을 하얗게 토해낼 때 엄마의 냄새와 정한이 서려있었다. 그 향수가 아스라하다. 가장 행복한 소리 중 하나가 밥 뜸 들이는 소리다. 아마 5, 60대 이상의 나이라면 바로 그 추억에 공감을 할 것이다.

 

 아들 딸 분가시키고 난 뒤, 아내와 둘이서 맞이하는 밥상은 단출하다. 된장국에 잡곡밥 그리고 반찬 두 세가지다. 물김치가 거르지 않고 올라와 그나마 구색이 맞다. 전자밥통에 지은 밥은 둘이 먹어서는 좀체 줄지가 않는다. 당연히 밥맛의 신선도가 떨어져서 그때그때 냄비 밥을 해먹는 편이다. 그 고소한 맛이 좋다. 캠핑 가서 버너로 코펠 밥을 지어먹는 기분이다.

 

 대학시절, 1박2일로 강가(청평, 파로 호 등지)에서 놀던 캠핑 정경이 떠오른다. 천렵하며 민물 매운탕을 해 먹은 추억. 강변에 텐트를 치고, 버너 코펠로 저녁 밥 짓던 향수가 물씬 느껴진다. 작은 조약돌 위에 매트를 깔고 앉아 밥 되기를 기다린 시간. 밥 뜸드는 소리에 가슴이 달그락대기도 했다.

 

 요즘은 밖에서 사먹는 음식보다 집 밥이 대세다. 보글보글하게 끊는 냄비 밥이면 더 구미가 당긴다. 찰 지고 보슬보슬한 냄비 밥을 지어먹고, 노릿하게 누른 밥에 물 붓고 끓여먹는 누룽지 탕은 후식으로 제격이다. 커피나 차 같은 다른 음료와는 또 다른 맛이다. 세월이 갈수록 우러나는 맛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식성도 옛 것으로 회귀하는 모양이다.

 

밥 지을 때 뭉근하게 열을 가하고서 한참 뚜껑을 덮어둔 채 가만히 둬 속속들이 잘 무르익도록 하는 뜸들이기 시간. 이때 불 조절을 제대로 못하면 도루묵이다. 다 된 밥이 설익거나 타고 만다. 밥 짓기의 끝 단계라 짧은 순간이지만 집중해야 한다. 쌀이 밥이 되는 것을 결정짓는 매우 중한 시간이니까.

 

11월이다. 달력이 달랑 두 장 남았다. 한해 마무리가 되는 계절, 11월 12월. 올해 첫 시작을 할 때가 엊그제 같다. 올 초 계획했던 일도 연말을 맞으며 뜸 들여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쌀을 씻어 안치고 열정의 불을 활활 지펴오지 않았던가? 그 수고의 터에 이제 뜸을 들이는 시간이다. 마지막 피치를 가하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때다. 밥은 살아갈 힘이다. 힘은 조절이 필요하다. 매일 먹는 밥처럼 하는 일도 살아갈 힘이 된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에너지 원이다. 이민 와서 먹고 사는 일도 밥짓듯 해오고 있다. 일이 곧 밥이 되어 함께 하고 있다. 올해, 여러 밥짓는 일을 마무리하며, 내년의 새로운 밥 짓기를 위한 준비도 서서히 구상하는 시간이다.

 

같은 지역에 살며 가끔 조언을 해주었던 정채봉 동화작가가 밥 뜸 이야기로 추임새를 넣는다. ‘제대로 된 사랑의 밥을 지으려면 무르익도록 뜸 들이는 시간을 잊지 마셔요. 설익은 풋사랑의 밥은 찰진 사랑의 밥맛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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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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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복희 | 작성시간 16.11.02 저도 밥 뜸 들이는 냄새를 아주 좋아합니다.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일도 뜸을 잘 들이면 밥맛처럼 좋아질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정채봉 동화작가가 돌아가신 것으로 아는데 같은 지역에 사셨나봐요. 그렇게 글이 맑은 분이 빨리 가신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 답댓글 작성자백동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11.02
    정채봉 선생님. 서울에 살때 같은 성당 다녔어요. 선생님은 구역장 봉사를 하셨고 전 구역식구로 총무일 같은 걸로 함께 했지요. 사모님이랑 저희 집에 오셔서 오세암책 사인해주셨지요
    청순한 어린애같던 분, 그분 부음을 뉴질랜드에서 듣고 황망했지요.왜 빨리 불러가실까? 고국에 다니러 갈 때마다 만나뵜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문학 이야기도 많이 들을 턴데요. ㅜㅜㅜ
  • 작성자이혜연 | 작성시간 16.11.02 요즘 저도 냄비밥을 해먹고 있습니다. 다만 밥이 아니라 죽에 가깝지만요.
    쌀이 제몸을 풀어 찰기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사람 사는게 이런 거지 싶습니다.
    뜸이 알맞게 들어 밥솥 뚜껑을 열었을 때 확 풍기는 냄새.
    어머니 냄새입니다. 그리움의 냄새겠지요.
    두 장 남은 달력처럼 얼마 남지 않은 삶, 뜸을 잘 들여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영혼이 맑은 작가 정채봉 선생이 그곳에 사셨었다니, 그 인연에 놀랐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백동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11.02
    이곳 뉴질랜드는 못 오셨어요. 오셔서 여행이라도 하면 그분 정서에 딱 맞았을 턴데요.자연...
  • 답댓글 작성자이혜연 | 작성시간 16.11.02 백동흠 아 그렇군요.
    서울에 사실 때였군요.
    그래요 그분은 청정지역과 같은 마음을 가지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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