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을 다녀오면 참 배우는 게 많고, 생각나는 게 많아서, 조금 조금 얘기드리곤 했더니, 조합부에서 왕진일기를 써 보자고 하셨어요. 2019년에 왕진 날짜가 늘어나면서 가정 왕진도 조금씩 더 나가고 있는데, 뭔가 느끼는 게 있을 때 나누기 위해 게시판에 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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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왕진을 다녀왔습니다. 겨울이라도 날씨가 따뜻해서 따릉이를 타고 다닐 수 있어 다행입니다. 오늘은 구산동보건지소의 작업치료사 선생님도 자전거를 타고 오셨어요. 원래도 방문을 다니실 때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하시네요.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뭔가 묘한 동지의식이 생겼달까요.)
오늘 방문한 곳은 뇌출혈 이후 15년째 누워계시는 O선생님의 댁입니다. 따님이 간병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어머니를 살뜰히 돌보는 분이었습니다. O선생님은 뇌출혈로 인한 편마비로 왼쪽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계셔야 하는데, 댁이 엘리베이터 없는 높은 빌라라서 병원 한번 오는 것도 힘든 분이세요. 한번 움직이시려면 무조건 사설구급대를 불러야 해서 병원 한번 가는데 교통비만 2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잘 못 움직이신다는 얘기를 미리 들은 터라, 혈액검사를 하신 지 오래 되셨을 것 같아 오늘은 미리 혈액검사를 할 수 있게 주사기와 채혈세트를 챙겨갔어요. 피를 뽑으면서 색깔을 보니, 아, 빈혈이 있으신 것 같아요. 물론 혈액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하지만 혈색소가 조금 부족해보이는 색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좀 더 일찍 왕진을 받거나 병원을 좀 더 수월하게 다니실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면서요.
이제 살림의원에서 3개월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건강관리를 하고, 혹시 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왕진을 나가기로 따님과 계획을 세운 후, 안심이 되는 듯 해사하게 웃으시는 따님을 뒤로 하고 살림의원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왕진을 나가요'라고 하면 가끔 '뭐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물어보시는 조합원분들이 많으십니다. 의료인이 아니지만, 뭐라도 도움을 주시고 싶어 신실한 표정으로 물어보시지요. 혹시 도와주신다고 하는 조합원들이 계시면 뭘 부탁드리면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곧 콧줄을 뺄 수 있도록 연하재활훈련에 들어가시는데, 그런 재활과정에서 격려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휠체어에는 옮겨 앉을 수 있지만, 계단때문에 단 한번도 제대로 산책을 못 나가는 장애인분들을 위해 1층에 자리한 적당한 집을 수소문하는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집 근처를 휠체어로 산책하는 일이나 살림의원으로 모셔오는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지기능이 조금씩 떨어지는 분들을 위해 같이 공부하고 같이 놀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연결이 되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이웃들이 소개시켜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왕진을 다녀오면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어떨까' 자전거 바퀴처럼 상상을 굴려봅니다. 정말 왕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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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여행 작성시간 19.02.03 두툼한 가죽 가방! ... 제 어릴 적, 왕진오시는 의사선생님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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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혜경 작성시간 19.02.08 자전거 바퀴 100개쯤 달고 위용있게 나가는 모습. 상상만 해도 힘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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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달곰 작성시간 19.02.08 저션거 타고 왕진 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르네요. 보통 일이 아닐 텐데도 햇살 받으며 웃으며 가는 모습이요 ^^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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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혜영 작성시간 19.02.17 무영샘의 왕진 소식에 환자분의 상황과 진료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려집니다. 마을을 왕진 다니는 의사와 조력자를 자처하겠다는 조합원들, 안심하는 환자와 돌봄가족원. 생각만해도 마음이 푸근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