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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와 장자(莊子) / 마광수

작성자광마|작성시간13.09.05|조회수208 목록 댓글 1

< 돈키호테와 장자(莊子) > ................................................... 마광수

얼마 전 케이블 텔리비전을 통해서 본 미국영화 <돈키호테>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피터 오툴 과 소피아 로렌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음악도 좋았다. 이 영화는 원제가 <라 만차의 사나이>로 되어 있고, 동명의 뮤지컬 연극을 영화화한 것이다. <돈키호테>의 작가인 세르반테스가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종교재판소로 끌려가, 거기에 감금되어 있는 여러 죄수들과 함께 자신의 소설 <돈키호테>를 연극으로 꾸며 본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소피아 로렌은 극중극 (劇中劇)에서 돈키호테가 사랑하는 주막집 작부 둘시네아역으로 나온다. 인간형을 두 가지로 나눌 때, 흔히 <돈키호테 형(型)>과 <햄릿 형>으로 나누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 분류는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으로서, 꽤 일리가 있는 발상인 것 같다. 돈키호테형이란 말하자면 양성적(陽性的)이고 다혈질적인 인간, 그리고 행동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의 인간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햄릿 형의 인간은 음성적 우울질이면서 회의적 (懷疑的)이고 현실적인 성격이나 행동이 뒤따르지 못한다. <돈키호테>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유럽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그저 소극(笑劇)에 가까운 풍자극으로 보았다. 중세의 기사담(騎士譚)에 빠져 자기가 정의의 투사라고 착각한 돈키호테 의 과대망상증을 풍자한 작품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갈수록 <돈키호테>가 전해 주는 메시지는 한층 다양하고 심각한 형태의 것으로 되었다. 그래서 이상주의자인 돈키 호테를 용납하지 못하는 위선적 인간들로만 들끓는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했 다. 또 돈키호테의 과대망상적 행위를 과연 정말로 미친 사람의 행동으로 봐야 할 것인지, 아 니면 그의 상상적 행위는 올바른데도 불구하고 현실 자체가 미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는지 에 대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상징적 시사(示唆)만을 던져 주면서 그 해답을 유보하고 있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나는 <돈키호테>의 주제가 장자(莊子)의 인생관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된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고 보니 자기는 나비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래 서 장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인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원래 나비인 내 가 꿈속에서 인간이 된 것일까. 말하자면 꿈과 현실을 분리시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게 장자 의 생각이다. <돈키호테>는 사실 속편이 한 권 더 있다. 그 속편까지 읽어 봐야만 작자가 진정으로 의도한 주제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전편에서는 온갖 사물들이 돈키호테의 눈에는 환상으로 변해서 들 어온다. 평범한 풍차를 거대한 괴수(怪獸)로 착각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하인인 산초 판 자의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그냥 풍차일 뿐이다. 그러나 속편에 가면 이것이 거꾸로 된다. 돈키호테의 눈에는 확실히 풍차로만 보이는데 산초 판자가 일부러 그를 속여 풍차가 아니라 괴물이 틀림없다고 우겨댄다. 사람좋은 돈키호테는 그 말을 믿어 버리고 자기가 지금 환상 속에서 풍차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 로 전편과 속편을 통틀어 생각해 볼 때, 소설 <돈키호테>가 결국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은 <현실과 환상의 구별은 무의미하다>가 될 것이다. 말하자면 세르반테스는 장자와 유사한 생 각을 가졌던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이 소설을 쓴 것은 그의 나이 쉰여덟 살 때였다. 군인으로도 살아 보고, 전쟁 때 포로가 되어 비참한 노예생활을 해 보기도 하고, 공무원이 됐다가 횡령죄에 걸려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내고 난 끝에 얻어낸 인생관이 바로 <돈키호테>라 는 작품으로 응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인생관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코미디물 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을 풍자적인 수법으로 다루고 있는 심각한 내용의 소설이 된다. 돈키호테는 현실인지 환상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언제나 이상주의적 <뻥튀김> 을 해가며 대상을 바라본다. 천한 주막집 작부가 천하절색의 둘시네아 공주로 둔갑하기도 하 고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가 천리마로 둔갑하기도 한다. 찌그러져가는 주막집이 거대한 성채로 바뀌기도 하며 초라한 주막집 주인은 돈키호테에게 기사의 작위를 수여하는 성주가 된다. 싸 구려 놋대야는 황금의 투구요, 부엌의 행주는 비단 스카프다. 그래서 남이 뭐라고 하든 돈키 호테 자신은 지극히 행복했고 지극히 자유로웠다. 그의 이상주의적 모험에의 열정은 죽기 직 전까지 계속됐고 그래서 그는 행복한 상태로 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돈키호테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햄릿은 이 세상 고뇌를 혼자서 다 짐진 듯 <폼> 을 잡다가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냉정한 이성에 기초하는 현실주의자의 말로가 과대망상적 이상주의자의 말로보다 훨씬 더 비참했던 셈이다. 이 시대는 우리들에게 현실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거기에 맞는 이성적 전략을 구축해 나가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낭만적 치 기(稚氣)나 환상은 지성인의 태도가 아니라고도 가르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히려 역사 는 햄릿 형의 인간보다는 돈키호테 형의 인간들에 의해 발전해 온 것은 아닐까? (마광수 산문집 <마광쉬즘>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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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현기 | 작성시간 13.09.06 인간처럼 간사한 동물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돈키호테형 인간도, 햄릿형 인간도 없다고 봅니다. 오늘의 인생은 햄릿형으로 살고 내일은 돈키호테형으로 사는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은 도덕적인 척 살고 내일은 도도하게 사는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동물 중에 가장 많이 변화는 동물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겁니다. 종교를 갖는 이유가 달리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요,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나와 일대일 관계인 겁니다. 인간이 끼어들면 종교 믿기도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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