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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작성자초능력자|작성시간11.05.19|조회수1,971 목록 댓글 17

 

  학교를 가다가 길에 버려진 껌을 발견했다. 자일리톨 품종으로 보이는 껌은 말티즈처럼 온몸이 하얗고, 몸집이 작았다. 껌은 비를 맞고 아스팔트 위에 누워있었다. 몸에 난 치아 자국이 선명했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에게 길러진 것 같았다. 나는 1588-휘바휘바 유기껌 보호센터에 신고했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껌처럼 쭈그리고 앉아 땅바닥을 보았다. 비 맞은 아스팔트에서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이부자리도 없이 누워있는 껌이 가여워서 화장품 파우치에 든 기름종이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을 껌의 몸에 덮어주고, 나머지를 껌과 땅 사이에 슬며시 밀어 넣었다. 이불은 누워서도 덮을 수 있지만, 요는 눕기 전에 깔아야 한다. 아스팔트와 껌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의 공간도 없었다.

 

  전화 한 지 20분 만에 진돗개를 닮은 남성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구조대원은 플라스틱 판자로 껌을 들어 올려 가져온 철장에 넣었다. 껌은 놀랐는지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짝짝'하고 짖지도 않고, 창살 사이로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 안에 들어가야 할 것은 껌이 아니라 인간 같았다. 나도 진돗개와 함께 바퀴 달린 감옥에 탔다. 운전대가 보호센터까지 굴러갔다.

 

  그곳에는 사람에게서 버려진 많은 껌이 있었다. 풍산개처럼 목이 굵고, 귀가 조그만 풍선껌이 입구에서부터 "왕왕" 짖었다. 후추 색깔의 아카시아껌은 마치 슈나우저 같았는데, 몸에 빨간 상처가 있었다. 김치를 좋아하는 주인에게 고춧가루병을 옮아 그렇다고 소장님이 말씀하셨다.

 

  연간 8만 마리가 넘는 껌이 유기된다고 들었다. 몇몇 아이껌들은 귀여운 유아기를 지나 단물이 빠지자마자 길에 버려진다. 나머지 어른껌들은 듣기 시끄러워서, 턱이 빠질 것 같아서, 고춧가루 병에 걸려서 버려진다. 1991년에는 칠공주파 회원들이 면도칼로 스피아민트 품종의 개 7마리를 난도질 하다 버린 반인륜적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내 얼굴은 껌종이처럼 구겨졌다.

 

  버려진 껌이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를 생각하니 혀끝이 알알했다. 어떤 외국 사람들은 껌을 먹는 한국 사람들을 맹비난하지만, 삼키는 것보다 아무데나 뱉는 것이 훨씬 나빠 보였다. 껌을 씹을 때는 최소한 10년은 보살필 각오가 되었는지, 가족으로 여기고 아껴줄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 다짐해야 할 것이다. 사정이 생겨 더 이상 키울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다른 곳에 보내줘야 한다. 타인의 입으로 입양을 보내거나, 보호소로 이송하는 방법이 있다.

 

  유기껌은 보기보다 더럽지 않다. 재활용의 대가 초능력자(27세)는 지난 2010년에, 씹던 껌을 세척하고, 달큰하게 새 단장 시키는 리츄잉머신(RCM: Re Chewing Machine)을 개발했다. 그는 십년 전에 데려온 덴버 껌을 아직까지 씹고 있다. 혼자 외출 할 때는 공룡 판박이 위에 껌을 붙여둔다고 한다.

 

  오늘 보호소에 맡긴 자일리톨 껌은 초능력자의 리츄잉머신을 통해 깨끗하고, 달콤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20일 후에는 휴지에 쌓여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 껌은 아주 단단한 땅을 느껴봤기에 그 밑에 더 깊은 바닥이 있음을 알 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화장지와 함께 땅 속에 껴묻히면서도 하늘나라에 간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오늘도 새 껌이 사람들에게 '구매' 된다. 그리고 몇몇은 금세 길거리로 내보내어진다. 500원에 누군가의 인생을 산다는 건 씁쓸한 일이다. 아스팔트에 널려있는, 압사당한 껌의 사체가 땅처럼 단단하다. 밀착된 사이는 나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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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초능력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22 앗, 오백원이 아니었군요. 주말 잘 마무리 하세요.^ ^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초능력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22 아녜요. 반갑습니다ㅋㅋ
  • 작성자스스슥 | 작성시간 11.05.24 사진, 리츄잉 중인 모습이나 보군요. 후훗 / 돈에 길들여진 사람이란 동물의 감정선에 이상이 있는건 당연하다.. 라는 슬픈 진실도 엿보이네요. 조금은 옛스러워졌으면 하는..
  • 답댓글 작성자초능력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24 맞아요.ㅎㅎ 왠지 우울한 아침이예요. ㅠㅠ 댓글 감사합니다. 화사한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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