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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흰머리

작성자초능력자|작성시간11.06.29|조회수745 목록 댓글 14

아버지와 아들은 대화가 없다. 올해 예순인 이순재씨는 하나뿐인 자식에게 마음이 쓰인다. '이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기고?'

밤을 지새도록 고민 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흰머리 세 가닥을 스파이로 보낸다.

 

허연 머리카락 3개가 안방 문 사이로 삐져나온다. 거실의 눈치를 보더니 살금살금 걸어서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서른 살 이재수씨가 침대에 누워 있다. 자고 있는 아들의 머리에 아버지의 모발 몇 줄기가 심어진다.

 

"하이모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라."

순재씨의 명령에 첩보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흰머리는 이재수씨의 머릿속을 샅샅이 살핀다. 그러면서도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뒤통수에 남파된 백발 1호는 나흘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현재 좌뇌는 별다른 사고가 없습니다."

백발 2호는 아버지에게 무전을 보냈다. 그 순간 쭈뼛하게 새어 나온 백발 2호가 아들의 눈에 띄었다.

"끄아아악, 새치다!"

자신의 말소리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재수씨는 흰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휴지통에 던졌다. 백발 2호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아들은 그 날 오후 여자친구를 만나 함께 미용실에 갔다. 열댓 명의 젊은이들이 머리에 비닐하우스 같은 것을 이고 있었다. 최신 가요가 흘러나왔다. 미용사의 뒷모습에서 18등신 글래머 머리카락들이 춤을 췄다. 이발소만 다니던 백발 1호와 백발 3호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 둘은 잠시나마 21세기의 청춘남녀를 부러워했다.

 

재수씨가 흑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자 스파이들은 완벽히 위장 되었다. 칠한 색이 벗겨지기 전에 임무를 마쳐야 한다. 그들은 밤낮으로 서른 살 남자의 뇌를 연구했다.

 

새치가 발견된 이후 재수씨의 고민은 더 많아졌다. 그는 나이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별로 이뤄놓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흰머리는 늘어갈 것이다.

"어떻게 하노."

상상 속에서 그의 미래는 단백질처럼 하얘졌다.


"아드님의 머릿속에는 이러이러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백발 1호와 백발 3호는 충실하게 일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재수가 가여웠다.

"하나밖에 없는 내 새끼, 왜 이리 복잡하게 사노……."

 

밤 10시, 공작원들이 아들의 귀가를 알렸다. 아버지는 다시 거실에 나와 한 시간 전에 읽었던 신문을 또 읽었다. 삐비미릭번호♪ 보안키 소리와 동시에 재수씨가 들어온다. 이순재씨는 기사를 읽는 것처럼 신문에 시선을 두고 또박또박하게 말한다.

"아들아, 건강이 최고다. 밥 먹고 다녀라."

 

아들의 새치가 아버지의 정수리에 텔레파시를 보낸다.

"아버지, 사랑합니데이."

 

잠이 안와서 끼적거리고 있어요.

꿈나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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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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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초능력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6.30 히히 ^ ^ 고맙습니다. 1588-모발모발 ㅋㅋㅋ
  • 작성자스스슥 | 작성시간 11.07.04 요번엔 세치 발견하셔서 쓰신 글인가 했더니 다른 이유가 있었군요. 제 새치는 번식력이 탁월해서.. 저희 아버님은 절 감시를 넘어 철통 경호 하시는 걸까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초능력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04 ㅎㅎ 예쁜 생각만 하셔야겠어요 ^ ^ 첩보원들이 감시중이니까요ㅋ
  • 작성자나자몽 | 작성시간 11.07.13 글 정말 재미있네요. 이거보고 초능력자 님 글 다 찾아 읽어봤어요.
  • 답댓글 작성자초능력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13 고맙습니다. ^ ^ 열심히 써야겠어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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