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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소심히 원하고 원할 뿐이라고

작성자월영|작성시간12.01.02|조회수1,301 목록 댓글 25

부모님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아버지 탓이 컸다. 되바라지게 말하자면 아버지는 청각장애에 따른 성격장애도 있었다. 대학 들어와 심리학의 여러 분야를 배우며 아버지의 장애에 대해 인정하기 전까지는 속으로 가슴을 쳐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남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부모의 뜻에 의해 결혼했던 어머니는 결혼 생활 내내 웃음보다 한숨이 많아야 했다. 다행히 두 분은 자식에 대한 희생이 남달랐고 종교가 같았다. 그 덕에 우리 가정은 여러 위기를 넘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됐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를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 전쟁의 와중에 십대를 맞이하고 꿈 많은 이십대 청춘을 월남의 전장에서 저당 잡혀야 했던 한 남자를 나는 이해하려 노력했다. 비록 어머니는 그 남자의 세월에 대한 연민이 부족했을지라도. 나는 자식이고  같은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위기의 시기에 심정적으로 아버지를 외면하지 못했다. 게다가 의붓아버지에 의해 자라야 했던 아버지의 트라우마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해의 폭이 클수록 내면의 갈등과 모순에 따른 위악은 커지는 법. 그것을 감내해야하는 내 청춘의  몇몇 끓어올랐던 날은 내 젊음의 화상이고 타인에겐 칼날이었다. 그 자상을 입었던 가까운 지인들을 기억한다. 그저 그네들의  쓰라림이 깊지 않았기만을 이제 사 기원하고 기원할 뿐이다.

 

이렇게 사연을 늘여놓는 까닭은 새해 처음으로 받은 이메일 한 통 때문이다. 지난 연말 모처럼 연하장을 사서 아버지에게 몇 자 적었다. 직접 전해드리기 멋쩍어 정초 집에 들렀다가 아버지 책상 위에 몰래 놔두고 왔다. 그런데 그 연하장에 대한 답장이 이메일로 온 것이다. 자판이 익숙지 않은 아버지가 직접 한 자 한 자 보낸 그 짧은 문장들이 2012년 새해 나에게 온 첫 번째 개인적 안부였다. 그 원고지 한 매 남짓의 글을 보고 울었다. 서른 후반에 접어든 나이가 무색하게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아들을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은 보편적인 것이라 치부하며 덤덤하려 했다. 좋은 짝을 만나 평생 행복 하라는 당부 또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전하기 위해 일흔을 앞둔 노인네는 익숙치 않은 인터넷에 접속해 한 자 한 자 사연을 적어 아들의 이메일로 안부를 전한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흐린 눈으로 자판을 눌러야 했을 아버지의 손이 떠올라 울컥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이메일을 보고 울음이 끄억했던 이유는 그 이메일 주소에 적힌 숫자 때문이었다. 처음 본 아버지의 메일 주소는 본인의 영문 이름 이니셜과 함께 어머니의 생일을 합쳐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밖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 표현한 마음대로 온전히 아내를 위하지 못하는 못난 노년의 남자의 왜소한 모습에 망연했다. 한 때 나의 이메일 비밀번호가 어머니의 생일 숫자였던 것도 이유였다. 이 못난 남자들은 그렇게 밖에 아내의 희생을, 어머니의 희생을 면피했던 것이었다.

 

차마 아무것도 적지 못할 듯 떨렸던 마음이 어느새 안정이 되어 구구절절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런 청승이 그저 한 순간에 `울컥`으로 끝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가지는 있다. 살아도 살아도 끝내 이 삶의 깊음을 단 한 뼘이라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그 한 뼘의 백분의 일이라도 내가 감응할 수 있는 기회를. 바라고 또 바라 종내 그 바람이 행여 누군가가 읽을 글로 전환되기를 소심히 원하고 원할 뿐이라고. 설사 그게 평생 부모의 깊음을 헤아리지 봇하는 미흡한 자식의 실없는 소원으로 끝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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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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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월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1.24 마음 속 온기로 한 겨울 따뜻하게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에고...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월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1.24 ^^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기는 한해 되시길!
  • 작성자스스슥 | 작성시간 12.01.12 서로가 짊어지게 했던 삶의 무게가 한 번씩 내려놓이는 때가 오기는 하더라구요. 자식에게는 내가 살아왔던 길의 질곡을 강요하지 않아야 할텐데.. 좋은 글 잘봤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월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1.24 부모님께서 강요하신다기 보단..그저 안쓰러운 거겠죠..자식이니까..그 안쓰러움이 종종 가슴 먹먹한 거구요. 좋은 한 해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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