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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칼럼

심경일(心耕日) 예찬

작성자가온 고재섭|작성시간05.03.21|조회수128 목록 댓글 2
심경일 예찬

지난 5월 저희 단체(팔당생명살림)에서 일하게 되면서, 7월에는 아들 바우를 데리고 남양주 송촌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수원의 삭막한 아파트 환경에다가 줄곧 공부만 강조하는 학교가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떨어져 이산 가족으로 지내야 하였지만 강과 푸른 들이 있는 이곳 송촌의 조그만 학교에 다니게 하면 바우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모험을 감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시골 학교가 더 공부를 중요시하더군요. 일에 바빠 아들의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바람에 담임선생님께 호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시골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 함께 놀 줄 알았는데 그것도 착각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대개 다 학원에 가버리니 같이 놀 친구도 없고…

그러던 중 방과후학교가 생겼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중학교를 시험쳐서 들어가야 했습니다. 당시는 전 과목 모두를 시험 보는데 전과목 중에서 3개만 틀려도 일류 중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과서를 전부 외웠습니다. 교과서를 두 권 사서는 그 중 한권의 교과서에 조사를 빼고는 모두 색연필로 새까맣게 지워서는 그 책을 틀리지 않고 다 읽어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음악 교과서 콩나물 대가리도 모두 외워 악보를 종이에 그대로 옮겨 그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 공부가 제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요? 솔직히 그 시간에 동화책이라도 몇 권 더 읽고 공도 차고 그림도 그렸더라면 하는 생각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은 감수성(느끼고 받아들이는 성향)이 매우 강할 때로서 인생의 그 어느 시기보다 행복하게 보내야 할 때입니다. 지적인 공부보다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시기에 저는 입시 제도에 몰려 그야말로 삭막한 시기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에게 방과후학교가 생기다니! 그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앞으로 이것 하나만은 떳떳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아빠가 네게 아무리 못해 주었다 치자. 그래도 너를 방과후학교에 다니게는 해주지 않았니?”라고.

송촌에 이사오면서 기타도 하나 들고 왔습니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 시골 문간방생활에서 시간이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거의 20년 전 결혼을 하면서 손을 놓게 된 기타를 다시 튕겨볼 생각을 한 것입니다.

클라식곡을 주로 연주하게 되는데 옛날처럼 악보를 보는 눈도 빠르지 못하고 손가락도 제대로 따라주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동안 계속적으로 쳐왔다면 나이가 들어도 무디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원숙해졌을텐데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서투른 연주지만 기타를 연주하다 보면 바쁜 일상에 쫓기던 마음은 어느새 평온을 되찾고 정화됨을 느낍니다. 조용한 클라식 기타곡에 빠져들면서 나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참으로 쫓기듯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기타를 치고 있으니 마치 포근한 고향에 돌아온 듯합니다. 그러면서 인생의 참 기쁨은 바로 이런 놀이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놀지 않는 인간…. 끊임없이 일하는 인간…. 이게 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와 창조는 놀이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오락을, 재창조를 뜻하는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클라식 기타 연주는 내 자신을 치유하면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송촌에 와서 제 삶은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꿈이 있는 단체, 좋은 친구들, 방과후학교, 기타, 푸른 자연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놀이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입니다. 놀이가 없다면 문화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놀이가 없는 공동체는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행복한 공동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게으름의 찬양”이란 책이 생각납니다. 저자인 러끌레르끄 신부는 이 책에서 ‘자네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무슨 일이든지 하는 척 하면서 ‘바쁘게 지낸다’고 답하지 않으면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느끼는 현대인들의 마음가짐을 꼬집는데 사실 저도 읽으면서 좀 찔리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우리 같이 소인배는 늘 바쁘게 살아야 그래도 하루를 잘 살았구나 하고 안심을 하면서 은연 중에 바쁜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자신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잃고 일에 매몰되기도 쉽습니다. 능률도 오르기 힘들죠. 어떤 젊은이와 늙은이가 나무를 하러 갔답니다. 젊은이가 쉬지 않고 일하면서 틈틈히 늙은이를 바라보니 그 때마다 늙은이는 놀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하루가 끝나고 산을 내려가기 위해 나뭇짐을 챙겨보니 늙은이가 해놓은 나무가 더 많더랍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아니 어르신, 언제 그렇게 나무를 많이 하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노인네 하시는 말씀 “자네가 열심히 나무를 하는 동안 나는 놀면서 도끼를 갈고 있었네.”라고.

뛰는 사람은 길가의 꽃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쉽습니다. 제가 대학 조교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저의 은사이신 안젤라 선생님(1956년 제가 태어나던 해에 이태리에서 한국으로 오셨습니다)과 교정을 함께 올라가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더니 제게 말했습니다. “라이문도(저의 영세명), 저기 저 길가의 꽃 좀 봐. 색깔이 너무 예쁘지 않아요?”라고. 저는 선생님의 말씀에 놀랐습니다. 매일 같이 지나다니는 길, 꽃도 그저 길가에 피어있는 흔하디 흔한 꽃. 선생님은 언제 그 꽃까지 살피고 계셨을까? 선생님은 길가의 꽃까지 살필 마음을 지니고 계셨는데 선생님보다 훨씬 젊은 저는 그런 마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팔당에 오니 안젤라 선생님의 그 말씀을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심경일(心耕日), 마음 밭을 가는 날-. 팔당생명살림에서 심경일을 만든다고 하여 저는 너무나 반가왔습니다. 그것도 생산자분들의 제안이었다니 더욱 놀라왔구요. 그 어떤 생명공동체가 이렇듯 심경일을 제창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행복은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나중에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누리는 것이라고요. 더불어사는 삶도 같은 맥락에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더불어살지 못한다면 나중에도 더불어살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지난해 송년회를 마치고 난 뒤 여성위원장님이 수고했다며 사무직원들을 댁으로 초대해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여성위원장님댁 안방에 앉아 벽을 바라보다가 저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오래된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는데, 거기 쓰여 있는 글이 바로 “심경낙원(心耕樂園)”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밭을 가는 것만큼 마음을 갈아라,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선인의 말씀이었습니다.

심경일. 저는 심경일을 제안하고 심경일을 시행하는 팔당생명살림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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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흐린뒤 맑음 | 작성시간 05.08.02 남편의 직장관계로 제 아이도 2년 전, 학생 수가 180명 남짓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학교죠.그런데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고 그나마 매년 학생 수가 줄고 있지요.나가 놀기는 커녕 학교,학원,그리고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 작성자흐린뒤 맑음 | 작성시간 05.08.02 그나마 학교에 있는 시간만이라도 좋은 공기 마시며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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