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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농촌을 사랑한 본드걸

작성자가온 고재섭|작성시간17.07.08|조회수1,348 목록 댓글 6

본드걸에서 '정상적인 삶'으로

 



뉴욕타임즈 2017 3 3






작년, 일본의 집에서의 하마 미에.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숀 코너리의 상대역으로 등장했다.사진 : 코 사사키


(일본, 하코네) 1967, 하마 미에(Hama Mie)는 할리우드에서 신예 섹스 심볼이었다. 그 해 23 일본 영화 배우였던 하마는 제임스 본드 영화 <007 두 번 산다 You Only Live Twice>에서 007의 비키니 입은 신부 키시 스즈키 (Kissy Suzuki)역을 연기하면서 숀 코너리(Sean Connery)와 함께 등장했다. 그녀는 또한 "플레이보이"지에 "일본의 브리짓 바르도 (Brigitte Bardot of Japan)"란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마는 그 외의 할리우드 영화에 결코 출연하지 않았다. 몇 년 후, 그녀는 일본의 영화사 토호 (Toho)와 계약을 고 영화계를 나와서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키웠다. 눈이 휘둥그래진 토호의 경영진에게 그녀는 "평범한 삶"을 원한다고 말했다. 하마는 일본에서 여전히 유명 인사지만 자신의 대중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텔레비전과 라디오 호스트, 오래된 농가와 농업기술 보존 옹호자, 민속 예술 감정가로, 그리고 자녀 양육, 매너와 자기 발견에 관한 14권의 책을 쓴 작가로 여성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수십 년 동안, 하마 007영화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시아 최초의 본드걸 중의 한 명 이라는 것도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 "007 두 번 산다"가 나온 지 50년이 된 지금, 그녀는 글로벌 스타덤에 올랐던 가장 씁쓸했던 순간에 대해, 그리고 더욱 개인적이고 진정한 생활을 찾아 떠나게 된 자신의 결정에 대해 이제는 기꺼이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본드걸은 영광이었지만 한 번으로서 충분했습니다" 올해 73세의 하마는 조용한 산악 리조트 타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는 그 이미지가 와 얽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 는 실제로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인데, 통제력을 벗어난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마 미에'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하마는 예전 영화 배우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우아한 베이지그린 색 기모노를 입고 머리카락은 보이쉬한 스타일로 귀가 보일 정도로 짧게 잘랐다.  1960년대 초반. 일본 영화 황금기 때의 히로인으로서의 서구미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집은 100년이 넘은 목재로 만들어졌는데 이 목재들은 옛 농가에서 수집된 것이다. 실내는 일본의 전통 공예 박물관처럼 큰 도자기, 스텐실 천과 인근의 후지산 그림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떤 포스터도 사진도 없었다. 일본에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한 이력이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본드걸로서 전세계적으로 각광받았던 시절을 알려주는 흔적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모든 것 지하실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 과거에 살고 싶지 않아요."

하마는 은막에서는 편치 않았다고 하였다. 도쿄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가족이 운영하던 조그만 골판지 공장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불타버렸다. 토호 스튜디오가 그녀를 찾아냈을 때 그녀는 16살로 버스에서 승차권에 구멍을 뚫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일본의 주요 스타가 되었지만 시간이 나면 인도와 유럽을 배낭 여행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마는 이 여행에서 자신이 계속 배우로 살아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하였다.


1966년에 본드 영화로부터 오디션 요청 받았을 때 하마는 괴물 영화부터 십대 로맨스 영화이르기까지 거의 70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을 때였다. 그녀는 감독 루이스 길버트가 자신이 킹콩의 대역으로 출연했던 1962년의 일본 영화 "킹콩과 고질라"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을 발탁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 007영화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007세계적으로 그렇게 크게 히트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습니다."라고 그녀는 회상했다.


하마는 런던에 도착해서 스튜디오 누군가 가방을 들여다보라고 일러줄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가져왔는지도 몰랐다. 그의 얘기에 가방을 열자 몇 벌의 티셔츠와 청바지가 나왔다.

넌 이제 본드걸이야.”라고 하더라고 하마는 기억하였다. 네가 입는 옷, 걸치는 보석 그 모두를 우리가 관리하게 될 거야.”

 


1967년 제임스 본드 영화 "007 두 번 산다에서 미에 하마와 숀 코너리 사진: Danjaq / MGM

 

다음날,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 방문 앞에 값비싼 드레스가 놓여 있었다.

제 체중부터 시작하여 발뒤꿈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매력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제게는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이 외로운 시간 동안, 그녀는 함께 공연한 숀 코너리로부터 정서적인 중요한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에 의하면 코너리는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서 친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코너리는 그녀의 롤 모델이 되었다. 코너리는 카메라에서 떨어져 있다가도 액션!”이란 지시가 떨어지면 곧바로 마술처럼 날렵한 슈퍼스파이로 변하는 전문가였다.


"전 그냥 소녀였을 뿐이었죠."라고 그녀는 회상했다. "매일 아침, 그분은 제가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그분 또한 스타가 되기 전에 힘든 삶을 살았으므로 저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하마는 여전히 그를 "숀 코너리 상"이라고 정중하게 불렀다. 이제 그녀는 그와 더 많이 얘기를 나누고 그를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고 하였다. 영화가 상영된 이후 그녀는 다시 코너리를 만난 적이 없다.

(코너리에게 이 기사에 대해 코멘트를 부탁했는데 대변인은 이제 은퇴했다고 하면서 거부하였다)




하마 미에 씨는 서양의 여배우들에 필적하는 현대적 미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은 실제의 하마 미에가 아니라 단지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죠.” 전후 영화에 대해 몇 권의 책을 낸 작가 소타 세토가와는 이렇게 평했다.

이미지는 하마가 한 동안 유지하려고 했던 이미지였다. 이 시대의 사진들은 변함없이 흰 비키니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1967년 일본에서 뒤이어 만들어진 영화 킹콩 탈출하다에서 악한 외국 스파이 마담 피라냐로 본드 같은 역을 맡았다.  


그러나 그녀는 할리우드로부터 비슷한 역을 해달라는 많은 제안을 거절하고 영화계를 떠나,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한 텔레비전 회사 중역과 결혼하여 슬하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그녀는 당시 자신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였다.



하마 미에 씨의 집, 전시 및 워크숍 등의 이벤트에도 사용된다. 사진 : http://trend-japon.com/2004.html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그녀는 일본의 시골을 지나가면서 마침내 자신을 찾게 되었다고 하였다. 건설 예정된 댐 때문에 허물어지고 있는 오래된 농가를 지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멈추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나게 된 노파를 만나고는 가슴이 미어졌다.


"일본은 경제 발전을 서두르면서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고 하마는 말했다. "저는 일본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그 다음 30년을 자신의 팬들에게 일본에서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얘기하면서 보냈다. 그녀는 최근 자신이 저술한 "고독은 경이로움일 수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다른 사람들이 반대를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진실한 방식으로 살라고 여성들에게 권하고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 대로 사는 것은 외로울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길입니다. 제 경험이 제게 그렇게 가르쳐주었습니다.”


: 마틴 패클러

 

출처.

https://www.nytimes.com/2017/03/03/movies/going-from-bond-girl-to-a-normal-life.html?smid=pl-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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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가온 고재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24 기억력이 좋으십니다^^
  • 작성자가온 고재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24 ♥ 본드걸, 팔당에 오다 ♥
    2006년 경인가요.
    사단법인 팔당생명살림에서
    상임이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한 일본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농촌 여성들로 구성된
    그린투어리즘 연수단이 있는데
    그동안 유럽쪽을 다니다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기로 하여
    사전답사를 왔다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여성분의 한국말이 유창한 것도 놀라웠지만
    한국 답사를 위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
    우리나라의 농업 현실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고
    농업 계 주요 인물들도 훤히 꿰고 있어 더욱 놀라웠습니다.
    팔당을 찾게 된 것은
    이곳 농민들이 서울시와 싸워가면서
    친환경 농업을 지키고 상수원을 보호하면서
  • 작성자가온 고재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24 판로를 개척해 나간 현장이어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그린투어리즘 연수단을 이끄는
    하마 미에 씨는
    007 본드걸로 일본에서는 아주 유명한데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하여 농업을 살리고
    사라져 가는 농촌 문화와 기술을 보존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농업의 발전을 위하여 농촌 여성들을 모집하여
    선진국 연수를 하고 있으며
    쓰러져 가는 오랜 농가가 있으면
    그 농가를 해체하여 이전 복원하고
    또 농경 문화 유산도 없어지지 않도록 수집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처럼 참 아름답게 사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농업에 그렇게 애착을 갖고 있다는 점이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 작성자가온 고재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24 이렇게 일본 여성의 철저한 사전답사가 있은 후
    한 달쯤인가 지난 후에
    하마 미에 씨가 40여 명을 이끌고
    팔당에 나타났습니다.
    본드걸로서 섹시한 볼륨감은 찾을 수 없었지만
    우아한 기품이 흐르는 분이었습니다.
    두물머리에서 정상묵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생산 농가 방문을 하는 등의 안내를 하고는
    당시의 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
    그러다가 며칠전 우연히 jtbc에서 "효리네민박"
    광고방송을 보고는
    "농촌을 사랑한 본드걸"은 무얼하지 하는 생각이 떠올라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올 3월 뉴욕타임즈에
    하마 미에 씨에 관한 보도가 있네요.
  • 작성자가온 고재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24 농업을 사랑하고 전래의 농업 기술과 문화를
    지켜나가는 하마 미에씨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살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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