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를 보았다오. 방금 대학원동 앞에서 연구실 들어오다가
참 재미난 풍경을 보았기로 급히 글을 쓴다오.
학교에 많이 살고 있는 새가 있는데, 짐작키로 지빠귀
종류 같아요. 몸 길이가 15센티미터 정도. 회갈색 몸통에
부리가 무척 날카롭고 긴 편입니다. 미끈하게
생긴 것과는 딴판으로 목소리는 날카롭고 거친 편입니다.
여튼 그 녀석이 양버즘나무 (플라타나스) 그늘 아래서
풍뎅이와 씨름 하더이다. 어쩌다가 먹잇감을 잡기는
했는데, 먹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게지요. 풍뎅이의
갑옷처럼 딱딱한 날개와 강력한 저항력을 생각해보아요.
몇 차례 공격을 감행한 끝에 풍뎅이를 실신시키는 데는
성공! 문제는 그 다음입디다. 이걸 한 입에 삼키고 싶은데
덩치는 크지, 부리는 길고 뾰족하지, 껍질은 딱딱하지
완전히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더라고요.
가는 길 멈추고 녀석의 하는 짓을 유심히 살폈더랬습니다.
그게 일종의 (그러니까) 직업병인 셈이죠. 그런 걸 보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은 내 사전엔 없는 일이니까요.
이리 메치고 저리 패대기치고, 그러기를 수십번. 마침내
녀석은 날개 하나를 떨어뜨리고 부드러운 (?) 살의 일부를
뜯어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몸통은 입 안에
넣지 못한 상탭니다. 오며가는 사람들이 걱정되는지
연방 눈치를 살피고, 이리저리 바라보는 눈길에 조바심이 비칩니다.
하지만 녀석에게 내 존재는 이미 잊혀졌나 봅니다.
이미 오랫동안 녀석을 보고 있었으니까요. 아마 움직이지 않는
물체, 그러니까 나무 비슷한 정물로 생각했나 봐요. 풍뎅이와 씨름하다
2-3미터 부근까지 나한테 접근했는데도 그냥 그러고 있더라니까요.
살점이 점점 부드러워지고 인총들 수효가 늘어나고 드디어 녀석은
전리품을 물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녀석을 내려다보던 내 입에서
짧은 탄성과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참, 세상에나...
한 생명을 먹이기 위해 다른 생명 하나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삶들이 있다는 것이, 그냥
찡하다는 어떤 느낌. 뭐,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는 것.
장마랍니다. 여적 비는 오시지 않지만, 바람에 비 냄새 섞여
있는 듯합니다. 오늘도 번다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네요.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갑니다.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내리는 빗발 속에서 다가올 설한풍 한겨울 생각해보시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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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메이유(梅雨) 작성시간 08.06.17 모처럼 쉽게 읽히는 글입니다~ 불샘 作으로는 의외인 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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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메이유(梅雨) 작성시간 08.06.17 "덩치는 크지, 부리는 길고 뾰족하지, 껍질은 딱딱하지, 완전히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더라고요." --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살짝 내려쓴 안경사이로 눈을 반짝이며, 입꼬리는 재미난 웃음을 머금고 지빠귀의 전투사를 전하는 불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여름답고 불샘스러운 글을 읽으며 저 혼자 유쾌한 상상 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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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 불가꼬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6.18 글이 어려워지는 건 글쓴이 생각이 어지럽거나, 남을 현혹하고자 하거나, 번역투이거나. 뭐, 그런 까닭입니다. 밀튼이 그랬던가요. <실락원>을 쓰면서 이웃집 할매한테 날마다 읽어주고 이해하지 못하면 고치고 또 고쳤다네요. 할매가 쉽게 알아먹을 때까지. 그런 경지 여적 이르지 못한 것은 제 불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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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수국나라 작성시간 08.06.18 저도 동화 속 삽화를 보고 있는것 같았어요 .. 그런데 메이유의 눈 앞에 보이는듯 했던 불샘의 입꼬리는 재미난 웃음을 머금고........이건 아니고, 정신 놓고 보다가 아래 턱도 함께 놓아버려 그 틈새로 흘러나온 외분비물을 늘 그랬던것 처럼 손 등으로 딱으며.........전 요런 모습 인데요..아~~순하고 아름답게 살고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