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아름다운 등
글 : 장보리 벨라뎃다
시골에 갔다 온 동생이 고추며 양파며 감자는 한 박스나 가져왔다.
엄마가 농사지은 양식들이다. 감자 박스를 열자 흙냄새가 확 풍겼다.
엄마의 마음이 감자에 묻은 흙이 되어 따라 왔다.
그 자리에 앉아 흙냄새를 들이켰다. 뚝,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눈물은 왜 이리 힘이 센 걸까. 울지 않으려고 해도 기어코 눈꺼풀을 뚫고 나와 버렸다.
눈물을 훔치며 전화기를 들었다.
“엄마, 감자 잘 받았어요. 잘 먹을게요.”
“막 캔 감자라 쪄서 먹어라. 참, 며칠 후가 외할매 제산데, 미사나 넣어라.”
“되도록 내려갈게요.”
전화를 끊고 감자를 박스에서 꺼내는데 외할매가 그립다.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내 눈이 이제야 밝아져 외할매가 예수님의 참 제자였음을 깨닫는다.
외할매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닮았다. 긴 인중과 잔잔한 미소가 마치 쌍둥이 같다.
벌써 하늘나라로 가신지 15년이나 지났지만 시골에 가면
외할매가 반갑게 맞아주실 것 같다. 외갓집과 우리 집은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였다. 그러다보니 외갓집이 우리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옛날 분 치고는 키가 크신 외할매는 연세가 드실수록 점점 등이 굽어갔다.
그런데도 논으로 밭으로 쉬지 않고 일을 다니셨다.
이른 아침과 저녁이 아닌데도 외할매가 방에 앉아
구부정한 등을 보이실 때는 기도할 때였다. 일하지 않을 때는
항상 묵주알을 돌리셨다. 외갓집 안방을 생각하면
지금도 구부정한 외할머니의 등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즉 박해받던 시대부터 천주교 신자집안이다.
그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저녁밥을 먹고 설거지가 끝나면
십자가 앞에 주욱 둘러앉아야 했다.
저녁 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쳐야 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간혹 외할매가(외할매는 당신 집에서 따로 하셨다.) 맨 앞에 앉으면,
우리들은 두 분의 등 뒤에 올망졸망 모여 앉았다.
엄마와 외할매가 기도를 선창 하시면 우리들은 후창을 하였다.
저녁기도 할 때까지 우리들 목소리는 항상 생생했다.
그러다 묵주기도가 시작되면 목소리 힘이 스르륵 빠지고,
한 명 두 명 코방아를 찧었다. 쏟아지는 잠을 막을 길이 없었다.
가끔 엄마도 선창을 하다 졸았다. 그러나 엄마의 엄마인
외할매는 절대 조는 법이 없었다. 졸며 웅얼거리며 어쨌든
묵주기도 5단이 다 끝나야 우리는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때의 그 기쁨은 엄마 몰래 하드(아이스크림)를 꺼내 먹는 기분이랄까.
(우리 집은 구멍가게를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묵주기도가 끝나면 쏟아지던 잠이 거짓말처럼 도망을 쳐 버렸다.
이제 나는 불혹을 넘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졸리던 그 습관이 지금까지도 몸에 밴 모양이다.
묵주알을 돌리다 보면 하품이 연신 나오고, 꾸벅꾸벅 존다.
가끔 한밤중에 깨어 잠이 오지 않을 때 묵주알을 돌리면
즉시 하품이 나온다. 묵주기도는 나에게 수면제다.
엄마 집에 가면 난 의식적으로 새벽에 눈을 뜬다.
이른 새벽 눈을 떠보면 엄마가 구부정한 등을 한 채 묵주알을 돌린다.
밖에서 놀다 마당으로 뛰어 들어오면 방에 앉아
묵주알을 돌리던 구부정한 외할매의 등과 닮았다. 아니 똑같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외할매와 엄마의 등이다. 두 분의 등을 닮기 위해
엄마의 손때가 잔뜩 묻은 나무 묵주까지 탐을 내 기어코 내 손에 넣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내 등은 아직 너무 꼿꼿하다.
그렇지만 요즘 난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기도하는 등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먼 훗날 내 등을 생각하며 묵주기도를 바쳤으면 좋겠다.
난 참으로 오랜 시간 방황을 하고 있다.
그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짙은 어둠에서 서성거렸나
내 마음을 닫아 둔 채로 해매이다 흘러간 시간
잊고 싶던 모든 일들을 때론 잊은 듯이 생각했지만
고개 저어도 떠오르는 건 나를 보던 젖은 그 얼굴
아무런 말없이 떠나버려도
때로는 모진 말로 멍들이며 울려도
내 깊은 방황을 변함없이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던 너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이제 나는 알았어.
내가 죽는 날까지 널 떠날 수 없다는 걸
이 노래는 나를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소라라는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를 때 펑펑 울고 말았다. 나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녔고,
나를 찾기 위해 서적을 뒤적였고, 나를 찾기 위해 사람을 만났고,
나를 찾기 위해 일에 매달렸다. 그 시간 속에 주님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의 손때 묵은 묵주가 내게 왔고,
누군가의 이끌림에 의해 성당을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난 조금씩 할렐루야 아줌마(아는 사람의 표현)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방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나의 하느님은
내 깊은 방황을 변함없이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리라.
나의 하느님은 너무나도 나를 사랑하셔서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나를 살아있게 해주신 분이니까.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죽는 날까지 당신을 떠날 수 없다는 걸.
그렇지만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가끔씩 모진 말로 당신을 멍들게 하고 울게 만들 거라는 사실을.
이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하느님은 나의 방황을 허락해주셨고,
여전히 지켜보고 계신지도 모른다.
또한 외할매와 엄마를 통해 내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해 주었으리라.
감자를 씻어 푹푹 삶았다. 성호경을 긋고 찐 감자를 한 입 베어 먹는다. 앗, 뜨거.......
역시 이임선, 우리 엄마 표 감자다. 맛있다.
‘엄마, 외할매 모두 감사해요. 감자 잘 먹을게요.’
-출처 : 의정부교구 '삶의 향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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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애플 작성시간 12.01.26 마음속에 감동이 잔잔히 흐르네요~
배경음악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도 참 좋아요~~~ -
작성자글라라윤 작성시간 12.01.26 아멘! 정말 짙은 향기가 나네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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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해림(리디아) 작성시간 12.01.27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어제도 오늘도 또 듣습니다....마니 좋아하는 곡이거든요....아름다운 할머니의 등을 읽으면서 갑자기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이 나서 한참을 울먹거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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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Evergreen 작성시간 12.01.27 언젠가 저도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라는 노래 가사를 들으며 하느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는 우리 마음을 느낀 적이 있었답니다..
저도 안방에서 묵주기도 바치시던 어머니 모습을 늘 기억하며 살지요.. 제가 집 한 가운데,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기도 테이블을 만들어 둔 것도, 우리 아이들에게.. 늘.. 남편과 제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어요.. 훗날 다른 어떤 모습보다 그 모습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
작성자네잎클로버 작성시간 12.01.28 저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