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59
[아버지의 담배]
이렇게 긴 장마가 코로나 19와 함께 우리의 일상을 피곤하게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내 고향 임진강이 홍수의 위험 속에서 내가 자란 진상리(군남댐 바로 밑, 강을 끼고 있는 마을)
의 주민들이 대피하는 일이 일어나고, 물론 다음 날 해제되었지만,
나는 내 어릴 적 초등학교 5학년 때에 겪었던 홍수를 떠올렸다.
물이 차올라 집 안 천장에서 한 뼘 정도를 남겨 두고 가득했던 그 때,
윗동네 대직방으로 가서 밤새 어른들 틈에서 한숨으로 밤을 새웠던 그 시절이었다.
엊그제 기습적인 폭우가 있던 날,
차 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그 날도 비가 멈춘 것을 보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잠깐 동안 구름 사이로 햇볕이 모습을 드러내기에 그 시간을 이용해서 담배를 피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려고 주머니에서 꺼내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비는 곧 머리를 적시고 어깨를 적신다.
차 문을 열고 우산을 챙기는 그 시간에 옷이 거의 젖어 버린다.
그렇다고 꺼낸 담배를 다시 넣기는 그렇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려하는데 습기가 찬 라이터에 불이 붙지 않는다.
라이터를 옷에 비벼 닦고 손의 물기를 없애고 억지로 불을 붙였는데, 이미 담배도 반 이상이나 젖어 있었다.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내뿜는데 아버지가 떠오른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아버지는 논에 가셨다.
물길도 확인하고 풀도 뽑으시려고 나를 데리고 논으로 가셨다.
비료 포대를 이용한 비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쓰신 아버지는 논으로 들어가셔서
한 동안 열심히 풀을 뽑아 논두렁으로 던지신다.
한동안 엎드려 일하시던 아버지는 잠시 쉬시려고 두둑으로 나오셨고,
주전자의 막걸리를 한 잔 따라 단숨에 들이키신 후 고추 한 점으로 안주를 하신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신다.
아버지의 담배는 비닐로 꼼꼼하게 성냥과 함께 포장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비닐을 벗기시고 담배를 꺼내신 후,
성냥갑에서 한 가피 성냥을 꺼내어 불을 붙이는데, 불이 붙지 않는다.
습기 찬 성냥에 불이 붙을 리가 없는 것,
그러는 동안 아버지의 입에 물려 있던 담배는 밀짚모자 틈으로 떨어지는 빗물에 다 젖어 버리고,
아버지는 아까운 표정으로 담배를 던져버리신다.
그 시절, 아버지의 담배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집에서 태우시는 봉초 담배였고, 하나는 들에 일하실 때 태우시던 진달래(필터 없는 담배)였는데,
그 가격이 십 원이라고 기억한다.
봉초 담배는 미릉지라고 부르던 습자지를 사용해서 말아 피우시는 것이었고,
때로는 신문지에 말아 태우시기도 하셨다.
또한 가피 담배도 한 번에 다 태우시지 않은 담배는 중간에 불을 끈 꽁초나 다 태우셨지만
손끝에 남은 부분을 모아두셨다가 그것도 그렇게 말아 피우셨는데,
어쩌다 마을 청년들이 훈련 나온 미군들에게서 받은 담배를 갖다 주면 기뻐하시며 아끼고 아끼셨는데,
낙타가 그려져 있는 담배였으며 한 갑에 네 가피가 들어 있었다.
당시 미군들의 시레이션(도시락)에는 그 담배와 빵, 비스켓, 치즈, 등이 들어있었으니
그 네 가피는 한 나절 배급 양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생각에 머물러 비를 맞으며 담배를 피웠다.
아버지의 담배 연기가 하늘로 솔솔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담배를 다 피우고 차에 오르는데 비가 그친다.
검은 구름은 저만큼 흘러가있고 머리 위의 하늘은 흐렸지만 비구름은 아닌데,
그 뒤에 다시 검은 구름이 조금씩 밀려오고 있다.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켠다. 축축했던 옷 때문에 에어컨 바람이 눅눅하게 느껴진다.
뉴스는 이번 비가 며칠은 더 내릴 것이라고 한다. 마음이 축축해진다.
2020.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