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아야 대화인 게 아니듯 말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때 주님과도 대화할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려는 건 그만큼 친하지 않아서다
작성자Stephan작성시간23.10.05조회수100 목록 댓글 0말이 항상 많아야 대화인 게 아니듯 말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때 주님과도 대화할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려는 건 그만큼 친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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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교회 공동체를 포함해 모든 이웃과의 관계는 내 자아를 포기해나가는 통로다. 그 자기 부인이 이런 관계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줄 모르면 이런 관계망만큼 힘겨운 멍에도 없다. 대체로 자기 주장이 강한 이들은 이런 영역에서 특히 고생이 많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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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이나 행함 있는 믿음 같은 신앙의 필수 영역에도 자신의 호불호 성향을 적용하려는 이들은 아예 이런 분야를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탄이 그들의 개성을 휘어잡고 비진리로 농락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간 증거다. 육신의 어떤 취향에 자꾸 매이면 뜻밖에 진리 바깥으로 튕겨나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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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복잡한 거에 관심없어. 확실한 진리는 단순한 거야. 거기에 집중하기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 그럴 듯한 논리이고 여전히 통하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 가치 있는 진리에는 사탄의 시험도 많다. 확실하고 단순한 것에만 안주하면 보통은 가도 더 깊은 진리의 세계에는 못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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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를 위한 계획과 비전은 멀리까지 내다보고 구체적으로 세워놓는 게 좋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이다. 내가 실제로 살고 경험하는 건 현재의 연속이지 미래가 아니다. 뭔가가 이뤄질 때까지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으면 오늘 하루 주와 동행해야 할 일상은 늘 뒷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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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 2:10). 입술 이전에 마음이기도 하고, 마음 이전에 입술이기도 하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도 맞고, 입술을 먼저 제어하는 것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도 맞다. 죄와 관련해서는 아예 입술 근처에도 안 가는 게 나의 전부를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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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참여할 시국집회로는 기도회가 참 좋구나.' 개천절에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한국교회연합 시국기도회 참석 소감이다.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찬양하며 거듭 부르짖는 가운데 나라를 위한 간구의 야성이 뜨겁게 타올랐다. 기도로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조국 수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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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비상시국에는 기독교의 결집된 힘과 목소리를 드러내 세상정부가 기독교적 가치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은 철저히 비폭력적이어야 하는데, 광화문 시위에서 폭력이 발생했다. 그릇된 정교분리론에 속아 가만히 있는 것 못지않게 폭력적인 것도 비기독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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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적 흐름이든 동성애 문제든 한국교회가 우려하는 바를 무식하다거나 우습게 여기는 기독 지성인들의 교만이 안타깝다. 그들은 지금 한 목소리로 세상정부의 생각이 교회보다 우월하고 정의롭다는 듯 말한다. 그들의 영적 지각이 잠시 무뎌졌거나 인본주의적 지식의 영향이 너무 강하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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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직자의 임명 문제로 전 국민을 양극으로 편가름한 것만으로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 집토끼만 믿고 중도층과 상식적인 국민들의 마음을 경시한 대가가 두고두고 클 것 같다. 신자들 역시 이런 비상한 시국에도 정치에 무관심한 게 경건한 신앙인 듯 여기는 무지와 게으름에서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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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정서적 호소('예수께로 오십시오')도 여전히 성공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나처럼 그런 은사가 없는 사람들은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 C. S. 루이스의 말이다. 기독교변증은 전도의 걸림돌들을 제거해주는 예비전도다. 무턱대고 전도하는 일에 지성과 감성, 의지의 균형을 맞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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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더 분명해진다. 예수님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명인데, 성부, 성자, 성령이 여호와로 불린다. 사람인 나를 형제 삼으려고 영원히 사람이 되신 참하나님 예수가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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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잘나서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고 매순간 은혜로 지켜주기 때문에 네가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감동이다.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이 진실이 눈에 안 보이면 서로 간에 사람만 보이고 하나님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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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나보고 장난 좀 그만 치란다. 이제 대화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싶단다. 아빤 왜 자기만 보면 장난부터 걸어오려고 하냐며 핀잔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장난 관둔다고 선수칠 걸.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허를 찔린 기분이 이런 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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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일찍 일하시는 법이 거의 없지만 절대 늦지는 않으신다고 한다. 기도 응답에서도 특히 하나님은 그러하시다. 나는 종종 이미 늦었고 타이밍을 놓치신 거라고 으름장을 놓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늘 하나님이 늑장부려주신 게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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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잘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자신은 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말과 같다. 사실은 진득한 시간 내기가 어렵고 이건 마음을 내기가 어려워서다. 결국 마음을 드리느냐의 문제이지 기도란 게 어려워서가 아니다. 기도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입을 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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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1차 소재는 지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가장 많이 관여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아뢰고 소박하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기도하기 어려운 건 일상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지 않아서다. 매사에 자신만 믿고 사는 자는 기도하기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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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거나 적거나 기도 시간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 항상 많아야 대화인 게 아니듯 말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때 주님과도 대화할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려는 건 그만큼 친하지 않아서다. 필요하면 말하고 잠깐 쉬었다가 또 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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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가장 행복하다. 날마다 비슷한 말을 아뢸 때도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기도 말고 어디서 매번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까. 느낌 없는 행복은 하나님도 관심이 없으시다. 기도는 창조주와 감정을 나누는 대화다. 비행기 1등석보다 더 특별한 전용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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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다보면 중간중간에 찬양이 떠오르게 하신다. 그때 드리는 찬양은 기도의 연속이다. 기도중에 드리는 찬양은 찬양 중의 찬양이요 기도 중의 기도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찬양 가운데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달리 어디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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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를 강조하는 자들은 개인 경건이나 영적 전쟁을 소홀히하는 경향이 있다. 후자가 전자보다 상위개념이라도 되는 듯 여긴다. 개인 경건 지키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걸 모르면 현장에서도 열매가 극히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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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이상한 거 사 오지 말고 돈으로 주든지 나랑 같이 사러 가요." 아내 생일이 다가와 무슨 선물 받고 싶으냐고 물었다가 그 자리에서 얻어맞은 답이다. 그동안 열심히 궁리해서 전한 선물이 한꺼번에 '괜히 이상한 거'가 되었다. 그땐 좋아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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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시골 할머니의 믿음도 얼마든지 진실하다. 하나님은 그분만의 방법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구원에 대한 모든 진리를 알아야 구원받는 게 아니다. 다만 세리의 기도만은 필수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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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도 잘못을 범하면 사과를 해야만 관계가 정상화된다. 사과하지도 않았는데 얼렁뚱땅 넘어가주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사과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과하지도 않고 교리 몇 개 붙잡은 걸로 신자라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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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성토하는 기독교교리 가운데 하나가 지옥의 존재다. 그러나 지옥은 타종교나 신화에도 많이 등장하며 오랫동안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와 상식 가운데 존재해왔다. 성경 속 지옥이 가짜라면 어떻게 성경을 모르는 이들이 지옥을 선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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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하나님이 괜히 으름장 놓으며 화풀이하는 고문 장소가 아니다. 각 사람이 행한 만큼 정확히 공정하게 형량을 부여받고 형기를 사는 곳이다. 죄가 적으면 지옥에서 겪는 형벌도 적다. 지옥은 철저한 주권이 적용되는 하나님나라의 합법적인 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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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장난이 아니다. 그만큼 지옥도 괜한 협박이 아니다.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공의이기에 십자가는 처참하고 끔찍했다.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지옥을 희석시키면서 복음의 능력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십자가 구원의 감격도 교리나 이론의 하나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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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늘날은 참된 회개를 강조하여 영적 대각성 부흥운동에 불을 붙인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지옥의 불길을 경고하는 자가 드물까. 문화가 발달해 그 복음의 핵심도 진화해서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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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예수님은 두려워하라시는데 사람들은 지옥 경고는 전도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고 꺼려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지혜가 필요하지만 지옥 경고 없이 죄의 심각성을 다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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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신자들마저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누가 지옥을 두려워할까. 또 누가 사람들로 하여금 지옥을 두려워하게 할까. 지옥에 대한 경시는 신자들마저 세상사람들과 비슷하게 세속화된 결과다. 드라마나 영화에 우화적으로 언급되는 지옥만큼은 사탄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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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왜 지옥이 없겠는가. 이 아름다움을 하나님의 것으로 품을 수 없는 자가 지옥 말고 어디로 가겠는가. 그에게 다른 어떤 장소가 합당하겠는가. 지옥으로 가는 자가 가장 먼저 섬광처럼 직감할 일, 그것은 창조주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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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자주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한다. 내 힘과 지혜로는 단 한 사람도 회개시킬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이 전하라시는 성경의 말씀만을 전하고자 한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그 일에 쓰임받는 것보다 더 크고 귀한 일은 지금 내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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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년 동안 지은 죄로 영원히 형벌 받는다구?" 지옥 형기는 죄 지은 시간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죄도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히며 그 영광을 훼손한 것이다. 하나님이 무한히 거룩하신 분이기에 그분께 대적한 그 죄의 질도 무한히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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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년 동안 충성한 삶만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고정되는 상급을 얻는단 말인가?" 죄를 범하는 대상의 경우처럼 신자의 충성의 대상도 하나님이시다. 그 충성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무한하시기에 그 헌신의 질도 드려진 시간의 양과 상관없이 무한하다.
"너희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레 18:27).
내가 죄를 지으면 내가 서 있는 땅도 내가 더러워지는 만큼 같이 더러워진다는 생각은 생소하다. 적어도 땅은 내가 죄 짓기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사람이 죄를 짓는 족족 땅에 화학적 성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탐지해본 믿을 만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라도 있나? 하나님은 내 죄만 책하시면 되지 도대체 왜 땅을 같이 걸고 넘어지시나?
땅은 내가 죄를 지을 때 모종의 영향을 정말 받는 것일까? 내 몸 자체가 땅으로부터 흙을 재료로 해서 지어진 거라 그렇다는 걸까? 같은 흙이니까 몸흙에 덩달아 땅흙도 비슷하게 감지를 하고는 함께 더러워진다는 건가? 그러면 내가 의를 행하면 땅도 의를 감지해서 같이 깨끗해지기라도 하나? 실은 땅에는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내가 발 딛고 선 입지를 상징적으로라도 위태롭게 하려고 위협하시는 건가? 아니면 피조물인 나에게는 안 보이는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는 뭔가가 보이는 게 따로 있어 땅도 그 거주민의 죄로 인해 더러워진다고 진단하시는 걸까?
이미 하나님은 땅에 사는 백성이 회개하면 그 땅을 고치겠다고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만드신 분이니까 고치는 것도 그분만이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사람의 죄를 사하는 것과 그들이 사는 땅을 고치는 것은 분명히 모종의 관계가 있어 보인다. 내가 땅과 나를 동일시할 때 무슨 영적 유익이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이런 말씀을 성경에 남겨 놓으셨을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땅과 사람은 생각보다 아주 밀접하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은 땅에서 나온 것으로 뭔가를 가공하고 전달하고 사용하는 일이다. 그렇게 사용하고 나면 다시 땅에다 버린다. 사람도 땅에서 나와 이 세상에서 다 쓰임받고 나면 다른 물건들처럼 땅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고 보면 만물이 다 땅이다. 벼 같은 식물들을 포함해 모든 먹는 것들이 다 땅에서 나오고 땅으로 지어진 것들에게 공급되다가 거름으로든 뭐로든 땅으로 다시 돌아간다. 세상 만물 중에 땅에서 안 나온 게 없다.
어쩌면 땅은 만물의 조성자이시면서 공급자이자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내가 땅을 정식으로 다루지 못하고 잘못 다스려 훼손하는 그것이 창조주의 법대로 하지 않는 불법, 곧 죄가 된다. 그렇게 일상 속의 죄를 지으면 바로 그 땅의 법도와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히는 것이고, 그분의 이름과 영광을 더럽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실은 땅을 다스리는 일이다. 죄는 그 일을 올바른 청지기로서 감당하지 못하고 내 맘대로 하는 것이다. 결국 그만큼 땅을 훼손하고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일탈을 가리켜 땅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사람에게 땅을 맡기시고 청지기로 잘 다스리라 하셨고, 그곳을 잘 경작해서(cultivate) 각양 문화(culture)와 문명을 일구게 하셨는데, 사람이 타락하면서 땅도 좋은 열매가 아닌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곳으로 변했다. 그래서 나와 함께 땅도 저주를 받고 사실은 그때부터 이미 더러워졌다.
지금도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것은 그러는 만큼 땅을 잘못 다스리는 일이 되니까 땅도 덩달아 더러워진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그 땅을 더럽히면 내가 그 땅에 거하지 못하고 그 땅이 나를 토해내버려(레 18:28) 내가 그땅에서 쫓겨나는 일은 결국 최후 심판의 날에 일어난다. 아니, 그 심판의 예행연습으로 내가 죄의 삯인 죽음을 당하면 이땅에 더 있고 싶어도 있지 못하고 땅을 떠나야 한다. 결국 그 죄의 삯도 땅에다 치르고 생을 하직하는 셈이다. 대신 그 죽음의 문제, 죄의 문제를 해결한 이들은 영원히 땅을 차지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시 37:29).
그러니까 이제 보니 내가 죄를 지으면 정말 땅이 더러워진다는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다. 때로는 땅이 신음한다는 표현도 맞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한다는 말씀(창 4:10)도 정말 이치에 맞다. 땅은 나의 모든 죄악을 다 알고 있고, 그것을 심판날에 하나님 앞에 정말 다 토해낼 수 있다.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은 땅에 붙어 있지 않은 적이 없으니까.
지금 이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의와 불공평과 압제와 고통도 사람이 당하는 만큼 땅도 다 함께 받아내며 아파하고 있다. 그 땅은 그 땅의 청지기로 사명을 받은 사람이 창조질서대로 하지 않는 불법의 죄를 지을 경우 함께 더러워지고, 사람이 그 불법을 회개하고 깨끗해지면 땅도 덩달아 고침받고 원래 창조된 질서를 따라 깨끗해질 수 있다. 그로 인해 그 땅을 활용하는 사람의 모든 일상의 삶도 거룩해질 수 있다.
주여, 오늘 묵상을 통해 땅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내가 죄를 지으면 땅도 덩달아 더러워진다는 건가 하는 데 대한 솔직한 의문들을 따라가며 답을 찾다 보니 마침내 주의 음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묵상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이르지도 못했을 텐데 주의 말씀의 권위 앞에 날마다 가장 먼저 엎드리게 해주심으로 이 귀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후로는 영원히 땅을 다스리는 왕으로 부름받은 주의 자녀의 신분에 걸맞게 이 세상에서부터 땅을 중심으로 맡겨지는 모든 이웃사랑의 일과 문화활동 가운데서 주의 뜻에 합당한 창조질서를 따라 섬기게 하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불법의 죄를 심판하시고 땅을 깨끗하게 하실 그 주님의 일을 지금 나의 일상의 삶에서부터 이뤄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오늘도 그 일을 통해 주의 다스리심을 내 일상의 영토에서 실제적으로 확장해가는 주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일꾼으로 살게 하소서!
- 안환균 목사의 SNS에 수 년 전 어제 나눈 단상과 묵상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