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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교회 고등부와 같이 관람했습니다. 관람후기를 올려봅니다.

작성자생크|작성시간14.03.26|조회수149 목록 댓글 5

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노아를 관람했습니다.
관람 후 평가는
인터넷에 올라온 목사님의 글의 내용처럼
성경을 외곡했다기 보다는 성경에서 생략된 내용을
감독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어
영화라는 장르로 재탄생 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상영불가, 단체관람 폐지 같은 이야기는 좀 오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등부 부모님들의 걱정하심과 보게될 교인들을 위해
저의 개인 생각을 적어봅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신 목사님의 걱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의인인 노아를 악인으로 묘사했고 하나님이 악을 이용하신다.
2.천사가 착한 행동으로 구원받는다. 즉 믿음이 아닌 행위로.
3.노아가 손녀를 죽이려 한다.
4.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인간을 살린다.
5.뱀껍질을 중요시한다.

 

영화를 보기 전 분반공부 시간에도 나누었던 이야기지이만
노아는 완전한 의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10절)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세기 6장8절)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세기 6장9절)|
믿음을 통하여 그는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히브리서 11장 7절)

 

창세기와 로마서와 히브리서가 모순이 안되려면
노아는 자신의 행위로 의로운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칭의로 의로운 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의롭지 않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처럼 말이죠.
노아가 홍수이후 벌거벗은 정도로 술취한 모습을 보여준 것을 보아선
그도 역시 흙인 인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과 다르게 가족 전체를 죽이려합니다.
이유는 뭘까요?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죄를 발견하고
(즉 스스로 불완전한 인간임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회개인 것이죠.)
지금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자신의 가족 외에 모든 이가 죽는 것을 방치하지만
자신의 후예들 역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자녀로
다시금 심판을 받게될 것을 노아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 수 많은 사람들을 다시 죽이는 비극을 스스로의 죽음으로 없애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방주 밖의 수 많은 생명을 방치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을 자신의 후손에게는 겪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예수님의 구속을 몰랐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증조부 에녹은 예수님의 구원을 알았기에 며느리의 태를 열여주었고
노아 역시 마지막 순간에는 우리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족을 생명을 유지시킵니다.

순종하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이루어져 갑니다.

 

끝으로 뱀껍질이 나오는데
이것을 팔에 감고 자녀에게 축복을 합니다.
목사님은 이것을 사탄의 능력을 자녀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하신 듯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앞을 살펴보면 전혀 생뚱맞은 해석입니다.
영화내내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려는 노아가 끝장면에서 갑자기 사탄의 능력을 전해준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는 창세기 말씀은
여인의 후손인 예수님이 사탄을 종국엔 멸망시킨다는 예언으로 알고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가죽옷에서 알 수 있듯이 가죽이 있으려면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뱀의 가죽이 있으려면 뱀이 죽어야 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사단을 죽이신 것입니다.(시간 초월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심과 같은 의미)
그래서 뱀가죽이 없는 가인의 후예에게는 사단은 살아있는 존재이고
뱀가죽을 대대로 전해받은 셋의 후예들에게는 사단은 죽은 존재라는 것이지요.

결국 뱀가죽은 사단을 이기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감독의 원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전체를 보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제일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이라는 방주에 붙어 있으면
즉 나무이신 예수님에 가지로 붙어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할 수 있다는 메세지가 영화 노아의 결론입니다.


첫 방주는 노아의 가족만이 탈 수 있는 방주였지만
예수님이라는 방주는 모든 인류가 탈 수 있는 방주임을 노아는 무지개를 보며 확신했을 것입니다.

 

설교시간, 분반공부 시간에 전혀 집중하지 않는 우리 청소년들이
무려 2시간 40분 동안 창세기 창조과정과 그 이후 노아까지의 내용을 집중하며 보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할렐루야~~ 입니다.

우리 고등부에게도 회개의 역사와
나 같은 죄인 살리인 예수님의 한 없는 사랑을 하루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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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사브낫바네아 | 작성시간 14.03.26 저도 중등부 아이들과 단체관람했습니다. 제 시각과 눈에도 노아 영화가 이렇게 까지 비판받아야 하나 생각할정도는 아니다 생각했습니다. 내용에대해서는 윗 글에서 많이 다뤄주셔서 각설하고 중등부 50여명의 학생들의 피드백은 대단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글쓰신 교역자님과 비슷합니다. 영화관람후 돌아온 주일 예배시간에 성경과 다른부분들은 다시한번 되짚어 주었습니다. 득과 실이 공존할때 득이 더 많고 유용하다면 때론 득을 선택할 필요도 분명 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는 통합측교회 부목사입니다.
  • 작성자에스더 | 작성시간 14.03.26 전 영화를 보지 않아 쉽게 얘기할 순 없겠지만 앞글에서 지적한 부분들이 영화에 녹아 있다면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이 영화를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해석할 때 문제가 많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인 것도 사실이고요. 기독교적 배경의 영화건 아니건을 떠나서, 어떤 영화를 봤을 때 느낌이 좋았다, 감동적이었다라는 관객의 평가와는 별개로, 조목조목 따져보면 숨은 의도나 상징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대중음악이건 영화건 각자가 받은 인상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이든 영화든 만든 이는, 독자나 관객이 의식하든 못하든, 항상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에스더 | 작성시간 14.03.26 그러기에 평론가가 있는 것일 테고요. 평론가는 이렇게 얘기해줘도, 관객은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는 거지요. 그러기에, 때론 평론가의 글을 본 후에 영화나 글을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하는 거고요. 현재, 문화계 곳곳에 녹아 있는 악한 상징들을 고려해 볼 때, 단순히 좋았다, 감동적이다는 시각보다는, 약간은 비틀어서 보는 시각도 필요한 시대라고 봅니다. 그래도 발견할까 말까 하는 악한 세대라 봅니다.
  • 작성자Stephan | 작성시간 14.03.26 생크 님 의견에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관객이 기독교인일 경우 선이해가 이미 성경에서 나오기에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지 제작자들은 충분히 다른 의도를 가질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영화는 의외로 처음부터 끝까지 상징코드로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이기도 하니까요. 드러내놓고 반기독교적이면 역효과란 걸 모르지 않을 제작자들이 대담하게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 영화의 소재 자체가 성경에서 나왔다는 건 비신자들에게 전도의 차원에서 순기능도 있고 역기능도 있다고 봅니다. 전통적으로 할리웃이 기독교에 비호감이었던 걸 감안하면 제작자들의 의도를 깊이 모를수록 순기능이 많을 거라고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요.^^
  • 답댓글 작성자생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6 자살 소식으로 인해 이슈가 된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님 논지에 의하면
    예수=세상적인복 으로 대놓고 가르치는 많은 교회의 부작용에 비하면
    이 영화는 애교로 봐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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