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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영성

김요한 목사, '랄랄라 방언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립니다'

작성자Stephan|작성시간13.11.22|조회수2,374 목록 댓글 3

 

 

랄랄라 방언에 대한 오해

 

 


방언에 대한 오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위 랄랄라 방언에 대한 극심한 평가절하의 태도입니다.
오늘날에는 성령의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랄랄라 방언에 대한 오해가 심각합니다.


신약성경의 종결과 함께 더 이상은 성령의 은사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 편에서 보면 사실 기도한답시고 전혀 언어로서의 기본적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랄랄라 행진곡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는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랄랄라 방언에 대해 평가절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방언은사를... 처음 받을 때, 랄랄라 방언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연 중에 랄랄라 방언은 마치 방언의 초보자들이나 하는 일종의 옹알이(말연습)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통변의 은사가 없는 대다수의) 방언기도자들이 느끼는 해석상의 답답함 때문입니다. 기도를 한답시고 계속 뭐라뭐라 중얼거리기는 하는데, 정작 나오는 발음은 랄랄라밖에 없고, 뜻은 전혀 알 수 없고, 그러다보니 너무 답답한 마음과 심지어 자괴감까지 느껴지는 감정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아주 유창한 방언기도나 랄랄라 방언이나 방언통변을 해보면, 둘 사이에 전혀 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방언으로 유창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통변도 대단히 깊은 수준에서의 기도의 통변들이 나오고, 한 시간 내내 랄랄라만 하는 사람들의 통변도 인간의 이성으로는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매우 깊은 수준에서의 기도의 통변들이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는, 아마 방언기도라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으로 주고받는 일종의 신호체계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판단입니다.


가령 모르스 부호 같은 경우, 보내는 사람 편에서는 그저 계속 똑똑 또도독 똑똑똑 하는 동일성질의 음성 신호만 보내지만, 받는 사람 편에서는 그것이 해석되어 완벽한 의사전달의 문장이 만들어지듯이, 방언기도의 음성신호도 일종의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방언기도를 아주 유창하게 잘합니다. 어느 때는 현존하는 언어들의 음가에 상당히 근접한 여러 방언으로도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기도를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갈 때는, 지금도 랄랄라만 반복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 랄랄라만 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초보 수준의 방언기도는 아닌 것입니다. 모든 형식은 기도를 주관하시는 성령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우리의 영은 거기에 연합하여 순종할 뿐입니다.

오늘날은 더 이상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야 그냥 이 글을 무시하고 지나셔도 무방합니다만, 그러나 자신이 이미 방언은사를 경험하신 분들 가운데서 혹시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이 짧은 글이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랄랄라 방언을 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답답해하지 마시고, 비록 이성으로 그 모든 내용이 다 깨달아지지 않는다 해도, 그러나 기도의 주인이신 성령께서 가장 합당한 기도를 시키시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더욱 담대하고 성실하게 기도에 힘쓰시길 부탁드립니다.

 

 

 

김태영 감사합니다. 답답함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기도에 힘쓰겠습니다.^^ 평안한 하루 되시길.

 

강영구 성령께서 하시는 일과 현상들을 어찌 인간의 짧은 식견과 경험만으로 판단할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구은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데 어느 누가 평가하리요. 좋은 하루 되세요^**^ 일주일을 기다림이 커 보입니다.ㅠㅠ

 

정은순 방언기도를 하시는 분들 대부분의 궁금점이 아닌가 싶네요.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은 인간의 좁은 생각으론 판단할 수 없는 심오한 세계입니다.
목사님, 항상 이렇게 소인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세요.^^

 

김재균 방언기도에 대한 이해에 도움받을 수 있는 새물결플러스의 책이 있나요?(출간 예정이라도...)

 

김수재 목사님 글에는 공감을 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흔히 랄랄라 방언을 가르치는 목사님들은 저는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어디에도 은사는 하나님께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간이 가르쳐서 방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비성경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목사님의 견해는 어떠한지 듣고 싶네요~^^

 

여인원 아멘. 저도 랄랄라로 처음 방언을 했었지요. 많이 울었어요. 주여, 감사하나이다. 주여.

 

최준식 방언기도~~ 참 좋습니다~~ 이 좋은 걸 왜 안 하는지~~^^

 

김요한 김수재 강도사님, 맞습니다. 은사는 주인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배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필요할 경우 성령께서 사람의 안수를 통로로 해서 주실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안수하는 사람의 손은 그저 수돗물이 통과하는 배관에 불과하지 수원지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늘 겸손히 직시해야겠죠.^^

 

최준식 김수재 강도사님 말씀은 랄랄라를 따라하게 해서 방언을 소위 가르치는 분들을 지적하시는 거 같은데요?^^

저도 그런 광경을 20년 전에 본 적이 있는데요...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굳이 따라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아니라고 보는데요~~^^

 

김요한 아주 흥미로운 것은, 방언 통변을 굉장히 잘 하시는 분들이 통변을 할 때, 어디서 방언을 배워가지고 온 분들의 방언 앞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전혀 못 알아 듣겠다고 하더군요.ㅎㅎ

 

최준식 김요한 아! ㅋㅋ 그래요??^^

 

김요한 김재균 선생님, 저희가 따로 준비하는 책은 없습니다. 저희가 낸 책 중에서 막스 터너의 <성령과 은사>, 고든 피의 <성령론>은 오늘날에도 성령의 은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논증하는 책이긴 하지만 상당히 신학적인 책이지 실제 현장의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아닙니다.

 

황선영 방언 기도!
기도의 주체가 성령님이심을 절감하는 기도...
나 같은 자에게도 거저 주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주님의 전적인 은혜
동시에, 게을리 할 수 없는 중보기도의 사명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맹인영 김요한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속이 후련합니다. PS : 방언 받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채 은숙 감사합니다.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깨달음을 나누어 주셔서...^^

 

Duck Kim 소통~~~ 열린 마음이 필요한 듯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중2때) 처음 방언을 할 때는 영어로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와 같은 방언을 합니다. 어떤 모습, 어떤 소리로 기도할지라도 "그럴 수가"라는 태도보다는 "그럴 수도"라는 열린 태도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이 좋을 듯 싶네요.

 

최재준 부흥사들이 애기방언이니 마귀방언이니 하는 말로 잘못 가르친 것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조영찬 저는 기도원에서 만난 사람이 방언을 많이 할수록 영이 맑아진다고 하여 집에 가서도 밤낮없이 큰소리로 방언을 해댔다가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문제들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무턱대고 방언만 하다보니 마음에는 아무런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을 많이 하면 정말로 영이 맑아질까 하면서 하다보니 마치 하나님을 시험하는 듯한 죄책감이 엄습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방언을 중단하고 성경읽기와 침묵을 통해 혼란스런 자아를 평정시켜야 했습니다. 지금도 악몽을 꾸거나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방언이 나오지만 평소 기도때는 되도록 방언기도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방언에 사람의 욕심이 결부되면 아주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맘놓고 방언을 하려면 통변의 은사와 하나님이 참으로 저의 방언기도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확신이 회복되어야만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비슷한 체험을 하시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회복을 경험하신 분 계시면 정중히 도움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강신욱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내용 감사합니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셨습니다. 공유하겠습니다.

 

 Jean Young Lee 전 신학적 의미에 있어서 중지론자이고 현상적 기능성에 있어서 지속론을 믿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신학적 의미에 있어서는 중지론이 맞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임하실 때 방언이라 이름붙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그 당시에나 오늘날에나 지속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전 바울의 가르침에 권위를 둡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를 위해서, 예언은 믿는 자를 위해서. 방언이 통역이 되면 예언이 되어 교회와 본인에게 유익을 끼치게 되겠구요. 방언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언약적 현실 즉 선교시대의 돌입을 말한다고 믿습니다. 랄랄라면 어떻고 가나다라면 어떻습니까? 게다가 입술로 나오는 소리는 그 사람이 어디선가 들어봤거나 발음기관이 익숙하게 조율된 길을 따라 소리를 낼 뿐이겠지요. 거기에 중요성을 두는 것 자체가 웃기는 거지요. 그 소리의 음절구조를 가지고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닐 바에는요.

 

박수미 목사님! 이런 표현이 맞을까요? 고품격 멋진 신앙인 ^^

 

양기만 성경적 근거도 같이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궁금해서요.

 

김선주 저는 요즘도 기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랄랄라 방언으로 회귀합니다. 유창한 음가를 가진 다른 방언보다 단순하고 파워 넘치는 이 방언으로 치고 올라가는 게 훨씬 편하고 좋습니다.

 

곽영준 저는 방언 근처도 못 가서 궁금해서 여쭤보는데 방언을 하실 때 내가 지금 방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가 있는지요? 만약에 인식 가능하다면 방언은 골방에서 하나님과 개인의 깊은 기도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요.^^

 

Max Moon 랄랄라 방언은 못해봤지만 부시맨 같은 또따뚜따 빠따다와 오늘은 셰세 세이 세이 날마다 다른 소리에 놀라지만 전에 목사님이 말씀해주신 때에 따라 다른 목소리와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다른 성도들에게 방해 안 되게 기도하는데 신경쓰이는 건 있네요.ㅠㅠ

 

오경숙 감사합니다~저도 랄랄라방언이어서 조금은 위축되어 기도하게 되는데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요한 곽영준님, 방언은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상당부분 통제 가능합니다.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할 수도 있고 작은 소리나 큰 소리의 조절도 가능합니다. 심지어 입으로 방언기도를 하면서 정신으로는 다른 (잡)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주 강하게 지도하실 때는 자유의지가 무력화될 수도 있습니다.

 

황슬기 방언기도를 언제나 하면서 늘 귀한 은혜를 받고 있었지만 잘정리해주셔서 더욱더 기쁘게 기도하게 될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하을동 지금은 선교사로 나가계시는 분인데. 방언이 랄랄랄해서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고 민망해서 바꿔달라고 기도했더니 어느 날 주님이 바꿔주셨답니다. "럴럴럴" 진짜 실화입니다. 마산에서 신앙생활했던 실제 지인의.

 

Tae Hyun Kim 은사중단론에 대한 진지한 비평론 같은 책은 출판 계획 없나요?

 

김요한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

 

Sangwon Lee 감사합니다. 늘 고민하던 주제가 좀 시원하게 내려 놓아지게 되네요. 더욱 기도에 매진해야겠습니다.
강건하십시오!!

 

 

-김요한 목사(새물결교회 담임, 새물결플러스 출판사 대표),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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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Steph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22 고신대 박영돈 교수님이나 새물결플러스 김요한 목사님처럼 방언기도를 체험하면서도 건실한 성경적 해석으로 말씀과 성령 은사의 균형을 잘 잡으시는 분들이 귀한 때입니다.
  • 작성자에스더 | 작성시간 13.11.22 제 주변에도 신실한 성도들 중에 방언의 은사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방언은 본래 성경적인 의미의 방언과는 좀 거리가 먼 '개인적인' 영역에 한정된 면이 있어 저 개인적으론 회의적인 쪽이지만^^ 어쨌거나 존재하는 현상이고, 각 개인의 믿음에 유익이 있다면 함부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만, 방언을 받아야만 성령을 받은 것처럼 말하는 건 위험하다는 건, 이미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보고요 방언을 받은 이는 받은 이대로, 못 받은 이는 못 받은 이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분량대로 겸손하게 믿음생활을 해나가면 되겠지요^^
  • 작성자기독네티즌 | 작성시간 13.11.22 알아듣지 못하는 모든 방언들은 중단해야 합니다. 은사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다시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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