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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미완성이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 .꼭 읽어주세요 .

작성자별의정원|작성시간18.10.16|조회수87 목록 댓글 6

언젠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독일로 왔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또 앞으로 방사능관련일은 어떻게 할 건지.. 의아했던 분들도 계시고 저 또한 명확하게  말씀드린 시간이 없기에  그간의 응원하고 함께해주신 분들에게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여 정리하는 차원으로 글을 써봅니다.
저번 금요일,한국에 있던 아이들 아빠가 완전히 독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믿고 이야기를 정리해갑니다.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 것은 현실도피나 다른 나라에 살기위해 비자를 받기위해서는 아닙니다.
한국에서 7년 방사능관련활동. 전혀 이것과 관련없이 살던 사람이 200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인생이 바뀐 것은 그동안 오랜 페친이나 지인들은 잘 알고 계실 것이지요.

적어도 제딴에는 제능력밖의 일을 해왔고
절 오랫동안 봐 준 동지들, 친구, 지인들은 제가 몇번 이 방사능일에서 도망갈 생각을 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이고 그.당시마다 제게 힘과 격려의 말씀들을 잊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그 분들로 인해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 온 이유

독일로 오게 된 것은 페이스북개인 글에도 4~5년 전인가 즈음 썼지만 한국에서 그 수많은 절망을 이제는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이 시초입니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사람들의 행태에도 돌이킬수 없는 실망의 연속이었구요.
이명박 박근혜를 거치며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수많은 이슈에 동참했습니다.
한국이 싫어서, 사람이 싫어서.. 이곳에 오기까지  그 마음이 누그러졌고 변했습니다.
결코 그런 이유로 여기 온건 아니다.....
그리고 그 일을 제가 믿는 신이 함께 하셨다고 굳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더이상 제가 할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았습니다. 방사능안전급식 대표로 활동하며 그 뒷정리가 미흡한 채로 왔지만 그 후의 일들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제 스스로 조금씩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단체는 멈추어져있는 듯해서
큰 책임을 통감을 합니다.

2011년 차일드세이브를 만들었을 때부터 전 하고자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선량피폭과
미량방사능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큰 집중관심분야입니다. 좀 더 넓은 세계와 이 일을 언젠가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안개같이 무언가 내가 할 일..그것이 잡히진 않는데 무언가 제가 할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의 방향
최초의 생각은.아카데미수준의 공부를.통해 방사능공부의 기본이라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에서.탈핵학교, 수많은 강의 등으로는 제.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고 제대로 잘 싸우려면 전문 분야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활동을 해보니 전문 공부를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의 차이도 있고  핵마피아랑 제대로 싸우려면 전문공부를 한 타이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원자력공학과, 식품공학과.. 공학관련은 제가 감히 들어갈 분야가 아니고  환경쪽으로 접근해보려고 했습니다. 결국 독일오기 전에  배워보고 싶은 학과는 환경보건학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로 오기 직전에요.


베를린과 프라이부르크 두 도시 중에 사실 베를린으로 70프로 결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티켓을 끊기 6개월 전 갑자기 프라이부르크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그 확실한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프라이부르크에서 시작을 하겠다는 생각의 확신이 들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에는 환경보건학과가 없었습니다. 방사능이나 식품관련해서 관련이 있는 학과가 있겠지 하며 찾아보던 도중 매일 감당해내기 벅찬 일 등으로 일단 독일어 공부에만 매진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봄부터 여름 틈틈히 프라이부르크 안에서 관련 학과를 제대로 찾아보았지만 제가 배우고 싶은 분야가 없었습니다.
아우스빌둥(직업학교)를 통해 방사선학과 쪽도 타진해보았지만 그다지 탐탁지는 않는 상태네요.
전 무얼해야 할까요? 독일어 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어학최상급을 따더라도 갈 곳이 없는데..
여러사람의 조언으로는 대학은 아니라고 합니다. 너무 기초적인 포괄적인 분야만 배운다고요. 그러면 마스터과정을 준비해야하는데 전 한국서 환경관련학과를 다니지 않았기에 참으로 어려운 상태지요.영어가 만약 능숙하다면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거든요.
일단 저에게 이 관련 정보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저에게 큰 난관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저는 스스로 제 길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숙명같습니다.


#가족의 미래
가족이 독일로 모두 오기까지
큰 도전이고 인생의 변환점이 되는시기입니다. 남편은 잘나가던 회사 중역을 그만두고  알뜰하지 못한 아내의 성화에
딸들과 제가 떠나오기 반년전에 허락과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가족으로 다시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마무리
무엇때문에 남의 나라에 와서 이런 겪지도 않아도 될 일들을 겪으며 힘들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전선경은 이제 독일로 갔으니 만날 날도 없으니 이제 일도 끝, 인연도 끝 이런 분들도 있으시겠지요.

일단, 한국에서 독일행 결정을 하고 하루도 마음편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뼈가 마르는 고통같이 앞날이 불안하고 두려워서 너무나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독일에 오고 조금은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마음이 힘들때도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엄청난 부담감은 없습니다.  매일매일 싸우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매일 시위나가거나 많은 고통의 현장에서 울고만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들은 제게 정의롭다고 하지만 진심을 다해 아픈 사람들 곁에 서있고 싶었지만 계속 되는 슬픔속에서 내 본연의 정체성를 확실히 지켜내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평화로운 이곳에서 정의가 지켜질까. 나 이렇게 안 싸워도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생각으로 자문해봅니다만 지금 독일어 공부는 싸움만큼의 고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라는 것이 편한 길이 아니었다는 걸 절감합니다.

한국에서 가족과의 삶, 나쁘지 않았습니다.
때론 가족때문에 너무나 기뻤고
방사능에 미쳐서 살림보다는 일로 뛰어다니는 절 지지해주는 남편이 있고 내 아이라서 너무나 기쁜 두딸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더 행복하기 위해 독일에 왔다는 이유가 아직도 유효하니까요.

저는 제 자신을 이겨내고 싶습니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대로..

먹고 사는 일에 이제 가족은 매진할 것이고
전 제 죽을때까지 사명으로 방사능 관련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길을 찾아볼 것입니다.
그 길이 초라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더라도 딱 한분이라도 함께가면 덜 힘들 거 같습니다.

아직 전 미약하고 걸음마수준의 새로운 일을 위한 도전을 하지만..
또 정말 오랫동안 인내해야 할 시간들이라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전 이 말을 독일어로 배우고 무척 기분이 상했었지만 이제 이 말을 뜻을 새기며 겸손하게 살아가야겠다는 교훈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것이 진정 인생의 친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희노애락을 이야기드렸고 함께 할 친구들의 희노애락도 함께 해나가길 고대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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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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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해피 바이러스 | 작성시간 19.03.13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간의 모든일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해오셨던 일들은 뒤 따르던 이들에겐 커다란 디딤돌이 되어 더욱 나은 길을 만들수 있는 초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행복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별의정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3.27 고맙습니다. 방사능은 일이년후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니 활동이 뜸하더라도 함께 관심가지고 싸워가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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