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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
샹송 - [(프랑스어)chanson] 프랑스 대중 사이에서 널리 불리는 가요. 가사의 내용이 중요시되며, 쿠플레(couplet)라고 하는 이야기체 부분과 르프랭(reprain)이라고 하는 반복 부분으로 되어 있다.
11∼13세기에 전자는 남프랑스에서 프로방스어로, 후자는 북프랑스에서 옛 프랑스어로 십자군과 영웅들의 이야기, 세속적인 사랑 등을 그려 단선율의 가곡으로 만들어서 불렀다.
이 음유시인들의 가곡은 14세기에 이르자 다성음악의 기법을 도입, 아루스노바기(期)의 기욤 드 마쇼 등의 다성샹송을 낳고, 비를레 ·롱도 ·발라드 등 여러 음악형식의 정형이 확립되었다. 궁정적인 전아한 사랑을 노래하였다. 곧 정형이 배격되고 자유스러운 형식에 비교적 단선율적이고 리드미컬하며, 약간 비속한 가사로 서민적인 생활감정을 여유 있게 노래하게 되었다. 클레망 잔느캥, 클로 드 세르미슈 등의 합창샹송, 특히 잔느캥의 《새의 노래》 《전쟁》 등의 의음(擬音)효과를 사용한 표제샹송은 유명하다. 이때의 샹송은 약 25년간 파리에서만 1,500곡이 출판되었다고 하니 그 보급의 폭을 짐작할 수 있다.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았다. 그들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가수였고, 따라서 퐁뇌프 다리는 샹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작자 겸 가수를 샹소니에(여성의 경우는 샹소니엘)라고 불렀다. 샹소니에는 부르는 노래의 작곡은 다른 사람이 해도 상관없으나 가사만은 반드시 자작이어야 하고 풍자를 담아야 하며 재치가 넘쳐야 했다. 그래서 샹송가수 중에서도 샹소니에는 특별히 우대되었다. 찻집은 프랑스혁명 후 파리 시민의 집합장소로 번창했는데, 1850년경 샹젤리제에 있던 ‘뚱뚱보 플루리’라는 찻집이 샹송으로 성공함으로써 카페 콩세르의 시초가 되었다. 찻집은 가수의 안정된 직장이 되고 스타의 탄생을 촉진하기도 했는데 이 때부터 노래의 테마나 가수의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이 무렵 여성가수 이베트 길베르는 샹송의 모범을 확립하였고, 샹소니에인 아리스티드 브뤼앙은 예술가의 집합장소인 샤느와르(검은 고양이)라는 카바레를 중심으로 하층계급 사람들을 애정을 가지고 묘사하여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26년에는 《사 세 파리》 《발렌시아》 등을 창작하여 부른 미스탕게트와 모리스 슈발리에가 크게 활약하였다. 또 1930년에는 조세핀 베커가 《두 연인》을 히트시키고 뤼시엔 부아이에의 《사랑의 말을》이 제1회 디스크대상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매체로서의 레코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파리의 지붕 밑》(1930) 《파리제(祭)》(1933) 《마리넬라》(1936) 등 영화의 주제가인 샹송이 유행하였다.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는 현대 샹송의 개화기였다고 하나, 화려한 노래와 함께 세태를 반영한 어두운 노래도 많이 나왔고 리나 케티의 《기다리겠어요》가 평화에의 기대를 담았다 하여 크게 히트했다. 이본 조르주, 프레르, 다미아 등이 당시의 3대 샹송가수로 꼽힌다. 종전(終戰)과 함께 《장미빛 인생》(1944) 《사랑의 찬가》(1949)를 자작하여 노래한 에디트 피아프, 《낙엽》의 이브 몽탕, 쥘리에트 그레코, 레코드에서 활약한 이베트 지로, 《파리의 아가씨》를 부른 자크린 프랑수아 등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되었으며, 1950년 전후의 샹송계는 공전의 성황을 보였다. 젊은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샤를 아즈나블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 무렵부터 전통적인 샹송은 그 기운이 꺾이기 시작하고 조니 아리디, 실비 바르탕 등이 로크조의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다. 아다모, 앙리코 마시아스 등이 활약하였다. 그리고 가사도 일상회화에서 쓰는 말이 사용되고 때로는 은어도 섞였다. 곡은 쿠플레(스토리 부분)와 루프랭(반복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양자가 서로 엇바뀌어 나타난다. 가수는 작사가 ·작곡가와 더불어 존중되고, 노래의 좋고 나쁨이나 음악적인 정확성보다 그 노래를 어떻게 해석하며 얼마나 개성적인 표현으로 청중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가에 대해 평가하였다. 또한 어떤 곡을 처음 불러 히트시키는 것을 크레아숑이라고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이러한 전통이 지켜져, 어떤 가수에 의해 크레아숑된 곡을 다른 가수가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들어온 뒤 그 주제가에 의해서였다. 이 노래들은 당시 전문학교 이상 학생들의 인기를 모았을 뿐 대중화되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중 ·일전쟁을 더욱 확대시키면서 이들 노래를 적성국의 것이라 하여 금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50년대 중반에 《낙엽》이 크게 유행한 일이 있고 60년대 중반에는 J.그레코의 내한공연을 계기로 한때 샹송붐이 이는 듯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칸소네 (음악) [canzone, 칸초나]
칸초네는 시와 노래의 특정 형식을 가리키는 말로 보통 이탈리아의 노래를 말합니다
칸초네의 기원은 16세기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성악곡 마드리갈에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지만 13세기 초부터 유행한 나폴리 지방의 어부들이 노래하던 전통민요(나폴레타나)가 직접적인 뿌리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다 당시에 나폴리에서는 축제가 자주 열렸는데 거기서 토속적인 노래들이 불리워지면서 서서히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잡아 갔다 20세기에 들어 나폴리에서 밀라노로 중심이 옮겨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의 팝 뮤직의 영향을 받아 다시 한번 발전을 한다 이탈리아의 유명 관광도시인 산 레모에서 매년 가요제가 열리면서 칸초네는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50년대 후반, 토니 달라라의 '코메 프리마'와 도메니코 모듀뇨의 '볼라레'가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치면서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영어권의 팝에 밀려 서서히 침체기를 맞이한다 그런 이유에서 1990년대 이탈리아의 대중음악은 전통적인 칸초네와는 뚜렷이 구별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칸초네 가수로는 밀바, 주께로 등이 있다
전통적인 칸초네의 특징은 멜로디가 밝고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으며 내용도 단순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사랑의 노래가 많은 데 있다. 곡의 구성도 거의 2마디 ·4마디 ·8마디식의 배(倍)로 멜로디가 진행된다. 그리고 곡의 처음에는 스트로파라는 이야기부분이 있고, 리토르넬로라는 되풀이하는 부분이 있어 곡을 북돋아간다. 킨초네에는 예로부터 각지에 전해 내려온 향토색 짙은 민요나 일류 작곡가에 의한 격조 높은 가곡, 또 재즈의 영향을 받은 로크조(調)의 곡 등 많은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나폴리민요로 알려져 있는 나폴리의 칸초네(칸초네 나폴레타나)는 독자적인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변천이 심한 나폴리의 역사와 항구에서 이루어지는 동서문화의 교류를 반영하여 나폴레타나에는 동양적인 곡조와 애수를 띤 것들이 많고, 가사도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나폴리어로 되어 있다. 또한 18세기에 생겨난 밸칸토창법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이 지방의 어부들이 제례(祭禮) 때에 노래를 바친 것이 그 시초인데, 18세기 초에 나폴리왕에 의해서 나폴리 전시의 음악제가 되어 《오 솔레 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의 많은 명곡이 나왔다. 이 행사는 한때 중단되었다가 1953년부터 나폴리 칸초네페스티발(나폴리가요제)로서 부활되었다. 베네치아와 로마 등지도 칸초네가 발달하고 트렌토 등 알프스산록의 북부 도시에서는 알피니스트들의 코러스가 울려퍼진다. 로마의 칸초네(칸초네 로마나)는 명쾌한 곡조로 널리 애창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북서부의 산레모가 그 중심지로 바뀌었다. 1951년에 시작된 산레모가요제는 1958년에 최우수곡으로 뽑힌 《볼라레》가 세계적으로 히트함으로써 국제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하였다.
라노비아 /토니달라라(칸소네) Bian che spien dente 사랑은 눈물이었고 Va la Novia 슬픔이었다네 Mentre na scosto 내 사랑이 Tra la folla 떠나는 그날까지 Dietro Una 내 마음이 La Crima inde cisa 돌아서는 그 때까지 Vedo morir 정녕 잊을 수 Le mie illusioni 없는 그대 La sulealta 내 마음은 영원히 Le stapi angendo 변하지 않으리 Tutti diran no 내 사랑 떠나는 그날까지 Che di gioia 나는 잊지 못하리... Mentreil 당신이 Suo cuore 행복하게 되기만을 Sta gridando 성모 마리아께 Ave Maria 기도합니다 Mentitai per che 언젠가는 Tudirai dissi 그대가 Pregherai 내 품으로 다시 Per me 돌아오기만을 Madirai dissi 바라고 있지만 I osso 그대에게 Tunon puoi 축복을 내리소서 Dimenti care 그러나 내 사랑 그대가 Non soffrir 내게로 다시 Per me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Anima mia 가실 줄 모른다네 La sulealta 내 마음은 영원히 Le stapi angendo 변하지 않으리 Tutti diran no 내 사랑 떠나는 그날까지 Che di gioia 나는 잊지 못하리... Mentreil 당신이 Suo cuore 행복하게 되기만을 Sta gridando 성모 마리아께 Ave Maria 기도합니다 Ave Maria 성모 마리아여... Ave Maria 성모 마리아여... Ave Maria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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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sunny 작성시간 09.09.01 학교다닐때 노랫말을 우리글로 토 달아 가면서 배운 노래여서 가끔씩 좋아했는데 군성카페서 들으니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아련한 추억들과 그리운 회상에 두번째 들었습니다 지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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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영연 작성시간 09.09.01 분위기 있는노래...라노비아...얼마나 열심히 배웠던지 지금도 따라 부를수있네요...명곡같은 칸소네이지요..지기님 즐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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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이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9.01 그때가 언제이지요 ? 아마 '노노레타' 였을 꺼 같은 데요 . 영화배우 장진영씨의 죽음을 계기로 위암의 원인에 대하여 글을 올렸읍니다. '노노레타'와 함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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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안영연 작성시간 09.09.01 물론..!!.저 차아~암 어렸을떄요..^*^..전 아직은 괞찮은데.. 지기님 술 드시나요?? 위암 조심하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