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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왜 이런 사람을 반려자로 주었나이까?"

작성자예파 성백문|작성시간11.06.24|조회수77 목록 댓글 5

'하느님은 왜 나와 이렇게나 다른 사람을 남편으로 주셨을까?'

굄돌 2011.06.23 07:00

 

"온도가 안 맞아서 못 살겠어."

여름을 나는 동안 열 번은 하는 말이다.

남편과 나는 정말 온도가 안 맞다. 난 한 여름이라도 방바닥이 따끈한 게 좋고 남편은 조금만 더워도

질색팔색이다. 그렇다고 날마다 난방을 하는 건 아니고(이러면 우리 남편, 차라리 죽겠다고 할 것이다.)

비 오는 날, 꿉꿉할 때. 이런 날 살짝 불을 때주면 집안도 꼬실꼬실하고 등도 뜨끈뜨끈하니 정말로 기분이

좋다. 하지만 우리 남편, 내가 기분 좋은 그런 날이면 베개 들고 이 방 저 방 다니느라 잠을 못 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문을 하는구만."

그때마다 남편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지지만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고 비가 오는 날이면 불을 때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거울 앞에 5분 이상 서 있으면 인생을 낭비하는 거야."

이런 지론으로 살아왔던 내가 반바지 입고는 슈퍼도 못 가는 남자를 만났다.

올 나간 스타킹? 누가 내 다리만 쳐다 봐? 괜찮아.

구멍 난 스타킹을 신고 나갔다 뒷꿈치가 동전 두 개만 하게 구멍이 나서 보는 사람들이 민망해하는 일도

간간히 있다. 구두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닦을까 말까. 난 나를 피곤하게 만들면서 체면을 세우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남편은 늘 단정해야 하고 바지 주름으로 고기를 썰어도 될 만큼 날이 서야 했다.

대충 입고 외출? 이런 건 그 사람 사전에 없다. 그는 늘 반듯한 사람이었고 반듯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남편을 용납하기가 정말로 힘들었다.(난 남편이 왜 그렇게 고달프게 사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다른 게 이것 뿐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치약은 왜 아래에서부터 짜 쓰지 않고 아무데나 눌러 쓰는지,

양말이랑 메리야스는 왜 훌러덩 뒤집어 벗어 놓는지,

신문 볼 때 뭘 물으면 왜 얼른 대답을 하지 않고 성질 급한 마누라 울화통이 터질 때까지 뜸을 들이는지...

성격, 취향, 성향, 어느 것 하나 나와 같은 게 없었다.

삭히고 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오 하느님, 왜 나와 이렇게나 다른 사람을 남편으로 주셨습니까?

그런데 살다보니 남편은 무뎌지고, 나는 남편에게 맞춰가며 그럭저럭 살아졌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것

별 문제가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던 남편은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니 매운 것도

꾹꾹 눌러 참고 땀 뻘뻘 흘려가며 먹어 주었고, 아내가 좋다고 하니 더운 것도 견디려고 애썼다.

아내가 힘들까봐 바지 주름이 풀려 있어도 괜찮다 괜찮다 하고.

더러는 입고 싶은 와이셔츠가 다려 지지 않았어도 짜증내지 않고 스스로 다려 입기도 했다.

살다보니,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이었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들이 남편보다, 아내보다 더 소중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을 때 비로소 나의 가정이 강물처럼 평화롭고 평안해진다것도,

내가 더 많이 희생하지 않으면 가족이 두루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왜 하느님은 나와 이렇게나 다른 사람을 남편으로(아내로) 주셨냐고?

무엇이 사랑인지 가르쳐 주시려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게 하시려고.

<아내와 나 사이>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이생진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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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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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진한 | 작성시간 11.06.24 내 직접 만나 대화 나눈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카페에 올린 글과 사진을 통해서 짐작컨데 성백문은 가장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네

    백문 군 부부는 항상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아내(남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이네
  • 작성자박이환 | 작성시간 11.06.24 비록 성백문 동기가 직접쓴 글이 아닌, 어느 여인내 남편을 빗데어 쓴 글이 지만 , 우리와 같이 만혼에 접어든 시기의 부부 들에게 공통된 느낌을 갖인 것 같구려 ! 문제는, 항상 모든일에 감사 할 줄 모르는 이에게 만은 통하지 않은 단 건 확실합니다 !
  • 작성자김동소 | 작성시간 11.06.24 '살다 보니,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이었는지 알게 되었고' 정말 실감 나는 말씀입니다.

  • 작성자예파 성백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6.24 이글의 원본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도차이일 뿐, 두 다른 인간들이 서로 부딫끼며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해 가는 경우를 보네. 진한, 이환, 동소, 또 내가 경험한 결혼생활이 다 그러했다고 생각되네. 자기주장이 강할 수록 이문제가 심각했음도 알게 되지. (해신이만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을 것이다. 땡삐는?)
  • 작성자Kapitan Lee | 작성시간 11.06.26 "온도가 안 맞아서..." 꼭 우리 부부같네. 나는 겨울에도 등짝이 서늘해야 잘 자고 마누라는 온돌방에 등을 지져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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