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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

작성자작은데레사| 작성시간26.06.20| 조회수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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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0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

    [ 내맡김 영성,
    <후속> 18. 왜, 내맡김의 영성이 최고라고 떠드는가?

    신앙생활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신앙(神仰)이란 "하느님을 앙모(공경과 사랑)하는 것"이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그분과의 일치를 이루는 최고, 최선의 방법은
    다름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요한 4,17)

    하느님께 나아가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길이 아무리 많고 다양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모두의 공통적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이겠습니까?

    순교가? 고행이? 수덕생활이? 관상생활이? 자선사업이?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0
    희생적 생활이?
    저는 이러한 생활들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말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 ,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사람마다 어떻게 다르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

    이것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창조목적"입니다. ]

    < 가르멜의 성인들 4부,
    십자가 성요한의 영성ㅣ영성생활과 애덕(정무웅 신부님)
    Ⅲ. 애덕과 정화/ Ⅳ. 결 어

    1. 정화와 기도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내 정신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
    (마르 12,30).

    이러한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사랑은
    우리를 유혹하는 감각적인 피조물에 대한 집착과 애착으로부터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0 이탈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과 피조물(주인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주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재물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재물 자체가 아니라 재물에 대한 애착으로부터의 이탈이다.
    이것이 곧 정화이다.

    따라서 이 말씀을 지키려면 자연히 이탈의 고통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때 나타나는 고통은 애덕 실천 요구 계명 자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계명 실천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의 부족 때문이며,

    인간의 오만과 세상 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오는 갈등이며 고통이다.

    십자가 성 요한은
    사랑에 대한 가치적인 측면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두면서 결단을 요구한다.
    사랑의 대상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구분한다.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 사랑,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형제적 사랑,
    인간 외의 존재를 사랑하는 사물에 대한 사랑이 있는데

    하느님의 완전성(Todo)에 비추어 볼 때
    피조물은 무(無,Nada)일 뿐이므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만이 참된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사랑해야지 피조물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0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이를 사랑이라 부르지 않고
    피조물에 대한 무질서한 집착이라 하며,
    그 피조물이 사랑이든, 물건이든, 일이든,
    이것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이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는 것은 질서가 아니라 무질서이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 뜻에 위배되는 무질서이다.

    그러나 성인이 피조물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피조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는 관계없이
    우리 마음에 남겨 둔 피조물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버리라는 말이다.

    피조물이 아니라 피조물에 대한 맛과 그에 대한 애착을 끊음으로써
    우리는 모든 욕에서 해방되고 마음이 고요해지며,
    이렇게 비워진 마음 안에 비로소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느님 자신이 우리 안에서 당신의 뜻에 따라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애덕에 바탕을 둔 하느님 사랑으로써
    피조물인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의 주체와 대상에 따라 애덕이 될 수도 있고 집착이 될 수도 있다.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0
    성인에 의하면
    우리 영혼의 능력에는 지성과 기억과 의지가 있는데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것은 이 능력들을 정화시키는 것이며,
    이때 인간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인 의지는 애덕에 의해 정화된다.

    영혼이 하느님을 사랑〔愛德〕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피조물에 집착한다면 합일에 도달할 수 없다.

    새가 노끈으로 묶여 있다고 하자.
    그 노끈이 아주 가늘더라도 그 새는 하늘로 날 수 없다(산길Ⅰ,11,4).

    마찬가지로
    마음이 피조물에 대한 유혹과 집착에 묶여 있는 사람은,
    비록 그 노끈이 가늘더라도
    그것을 끊어 버리지 않는 한 하느님께 날아오를 수 없다.

    그러나 끊어 버려야 할 노끈은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피조물에 대한 무질서한 애착과 집착‘이다.
    그러므로 의지의 정화를 통해 피조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에게 부과된 일이나
    자기 생활에 필요한 사물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피조물에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마음으로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피조물에 대한 무질서한 욕구와
    하느님 뜻 안에서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은 구별되어야 한다.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0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ㆍ욕구ㆍ뜻을 정화시킨다는 것은
    피조물을 사랑하기를 중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인 의지를 오롯이 하느님께만 집중시킴으로
    순수하게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도록
    피조물 자체에 대한 모든 애착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말한다. >

    사랑하는 아버지,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랑하올 스승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을 잘 새깁니다.

    하느님아버지를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면
    저절로 따라오게 되는 이웃 사랑, 자신의 사랑!
    이 간단한 원리를 내맡겨 드리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내맡김은 정말 얼마나 신비로운지요.
    저의 의지로 되지 않았던 사랑이, 집착과 애착의 이탈이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니 저절로(?) 되어집니다.

    내맡기기 전에는 신앙생활도
    내뜻에 얽매여 선물로 주신 시간과 사람들,
    피조물들을 판단하고 요리조리 재단하며 마구 제 욕구대로 하고자했습니다.

    내맡김은 내뜻에 빠진 저를 아버지 뜻으로 살도록 이끄십니다.
    제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기에 그렇습니다.

    저같은 찌질이, 어리석은 제가
    만물의 창조목적과 질서를 알고 살게 하십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다른 길이 없지요.
    계명을 지킬 수 밖에요!
  • 답댓글 작성자 작은데레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0
    어떤 시련이 와도
    기쁘고 즐겁게 예수님과 마리아엄마의 따라쟁이로 길을 나섭니다.

    그러니 어찌 내맡겨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내맡겨 드리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요?

    내맡길수록
    인간적인 욕구와 집착에서 이탈된 참자유를
    고통과 인내로써 영원한 오늘을 살아가는 참행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만을 더욱더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부족한 저와 모든 피조물을 내맡기오며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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