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재 교수님께서 채인후(蔡仁厚) 선생의 『중국철학사(상,하)』 가운데 송명(宋明) 부분을 카페에 틈틈이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었는데, 이제야 올립니다. 가급적 일주일에 작은 장절 하나 정도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은 책 본문에 따라 주돈이-장횡거-정명도-정이천 등의 순서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량이 많지만, 일단 꾸준히 올리는데 주안을 두고자 합니다. (참고로 책 분량은 상, 하권 도합 900페이지 정도이고, 이 가운데 송명유학 부분은 260페이지 정도 됩니다.)
*『중국철학사(상)』 부분은 교수님께서 현재 서강대에서 강독 스터디를 진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강독하고 계신 선진유학 혹은 선진철학 부분에 대한 선이해를 갖춘다면 송명리학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채인후(蔡仁厚, 1930~) 선생은 대만의 동해대학(東海大學)에서 오랫동안 후학들을 가르치셨고, 현재는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계십니다. 현대신유학의 대가인 모종삼(牟宗三, 1909~1995) 선생의 고제(高弟)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저작으로 『공맹순철학(孔孟荀哲學)』, 『왕양명철학(王陽明哲學)』, 『송명리학』(남송편/북송편), 『중국철학사』(상, 하)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앞의 두 책은 한국에도 번역서가 출간되어 있습니다.) 특히,『중국철학사』(2009년 여름 출간)는 모종삼 선생의 철학적 관점에 입각해서 중국철학사 전반을 서술한 책으로, 만년의 심혈을 쏟은 노작(勞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아직 초역 상태라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많은 양해와 질정 부탁드립니다.
(본문 가운데 내용적으로 중요한 단어나 구절은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빨간색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대만 중앙대학 철학연구소에서 정종모 올림
- 채인후, 『중국철학사(하)』 번역 -
첫 번째, 송명유학 도론(導論) 부분 (559쪽~563쪽)
제 4 권 송명시기: 유가 심성지학(心性之學)의 새로운 전개
서 언
(一)
위진(魏晉)에서 수당(隋唐)에 이르는 7, 8백 년 동안에 중화 민족의 ‘마음에 담긴 지혜의 역량(心智力量)’은 전혀 고갈되지 않았다.
(1) 위진(魏晉) 시기에는 문화적 생명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한 면도 있었고, 허설(虛說)도 있었지만 여전히 도가(道家)의 현지(玄智)가 새롭게 부각되었고, 현리(玄理)가 뚜렷하게 발휘되었다.
(2) 남북조(南北朝) 시기에는 문화적 생명이 수면 상태에 들어갔지만, 사회의 풍속과 교화(風敎) 및 가정의 윤리규범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불교의 번역과 학습 역시 ‘마음의 지혜(心智)’의 활동에 속했다.
(3) 수당(隋唐) 시기에는 천하가 하나로 통일되어 문화적 생명이 첫 걸음에 해당하는 각성(豁醒)을 시작했다. 그것은 정치제도 속에 표현됨으로써 나라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마음에 담긴 지혜의 역량(心智力量)’은 불교에 대한 소화와 분석에 표현되었고, 이로부터 종파(宗派)를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중화민족의 ‘근원적 생명(原生本命)’의 측면에서 말하면, 여전히 제대로 부합하지 못하고 정도를 벗어난 상태에 있었으며, 덧붙여 사상(思想) 및 의리(義理)의 각성을 통해 문화적 이상을 밝게 드러내고, 문화적 생명의 방향과 경로를 올바르게 확립하는데 있어서도 일부 모자람이 있었다. (예를 들어, 수당(隋唐) 시기에는 불교에 출입했던 사람들이 많았고, 어느 한 사람도 송유(宋儒)처럼 “되돌아와 육경(六經)에서 구하여 비로소 얻었던” 체험을 갖지 못했다.)
당(唐) 중기에는 한유(韓愈)가 도통설(道統說)을 제기함으로써 공맹(孔孟)의 인의(仁義)의 가르침을 힘껏 제창했다. 그의 문인인 이고(李翶) 역시 「복성서(復性書)」를 저술했지만, 여전히 외부적 호소 또는 선구적 촉발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주관적 방면에서는 문화적 심령의 역량을 진작시키기에 부족함이 있었고, 객관적 방면에서는 불교(특히 선종)가 중천(中天)에 떠 있는 태양과 같아서, 문화적 생명이 “근본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회복하는(返本歸位)” 계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 차례 여명(黎明) 이전의 어둠(즉, 五代)을 통과해야만 했다. 당말(唐末), 오대(五代)의 재난을 거치고 난 뒤에, 비로소 ‘박괘(剝卦)’의 극에 이르러 ‘복괘(復卦)’가 도래하고, ‘비괘(否卦)’의 극에 이르러 ‘태괘(泰卦)’가 도래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송명유학(宋明儒學) 부흥이다.
(二)
송명유학은 600년 동안의 발전을 겪었는데, 그들은 도통(道統)을 재건하고, 사상의 주도권을 불교의 수중(手中)에서 돌려받아 공자의 지위를 유감없이 현창(顯彰)하였으며, 민족의 문화적 생명을 “근본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회복하도록(返本歸位)” 만들어 두 번째 ‘합일(合)’을 완성했다. (첫 번째 ‘합일’은 서한(西漢)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들의 가장 커다란 공헌은 선진유가(先秦儒家)의 형이상학적 지혜를 부활시킨 점에 있다. 도가(道家)가 현리(玄理)를 말함으로써 현창한 ‘무(無)’의 지혜, 그리고 불교가 공리(空理)를 말함으로써 현창한 ‘공(空)’의 지혜는 비록 모두 심원하고 현묘한 경지에 도달했지만, 현지(玄智)나 공지(空智)를 통해 발휘한 도(道)는 결국 ‘유가의 성현(儒聖)’이 추구한 “천도에 근본을 두고 작용을 삼는(本天道爲用)”(장횡거의 언설) 끊임없이 창생 하는 대도(大道)는 아니었다. 유가의 학문은 한편으로는 천덕(天德)에 도달하고, 한편으로는 인문(人文)을 열어 가정, 국가, 천하의 전면적 가치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道)는 당연히 석가나 노자의 그것에 비해 더욱 충실하고, 더욱 원만하다.
(三)
북송(北宋) 유학자들의 학문은 보통 ‘리학(理學)’으로 불리는데, 여기의 ‘리(理)’ 글자에는 당연히 그것 나름의 ‘실질적인 함축(實指)’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의리(義理), 도리(道理)의 뜻이 아니다. 도가(道家)에서는 ‘현리(玄理)’를 말하고, 불교에서는 ‘공리(空理)’를 말하는데, 송명유학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성리(性理)’이다.
1. 이른바 ‘성리(性理)’란 ‘본성에 속하는 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즉성즉리(卽性卽理), 성즉시리(性卽是理)”를 말한다. 그러나 정이천과 주자의 “본성이 곧 이치이다(性卽理也)”라는 언급은 “본심이 바로 본성이다(本心卽理)”에 담긴 ‘성리(性理)’의 의미를 총괄하지 못한다. 따라서 송명유학을 ‘성리학(性理學)’으로 부르는 것은 ‘심성지학(心性之學)’이라고 이름 하는 것만 못한데, 후자의 표현이 더욱 합당하다고 하겠다.
2. 그러나 ‘심성(心性)’은 공허한 담론(空談)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각적으로 정신적 생활을 영유하고, 도덕적 실천(이것은 도덕적 행동에서 표현된다)을 한다면 심성(心性)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잊지 않고 생각하며, 수시로 강습(講習), 성찰(省察)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공허한 담론(空談)으로 간주한단 말인가? 설령 어떤 사람이 공허한 담론을 자행한다고 해서 어떻게 물고기의 눈을 진주에 섞듯이 거짓으로 기만할 수 있겠는가? 공허한 담론은 그저 공허한 담론에 불과할 따름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 때문에 ‘심성지학(心性之學)’의 본질과 가치를 경시할 수 있겠는가?
3. ‘심성지학(心性之學)’은 바로 ‘내성지학(內聖之學)’이다. 안으로 자기에서 갖추어져 있으므로 자각적으로 성현(聖賢)이 되는 공부(도덕실천)를 행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각자의 ‘도덕적 인격(德性人格)’을 완성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내성(內聖)’이다. 유가의 가르침은 ‘자기를 세움(立己)’으로써 ‘남도 함께 세우고(立人)’, ‘자기를 완성함(成己)’으로써 ‘다른 존재도 완성(成物)’한다. 그것은 반드시 내성(內聖)을 말미암아 외왕(外王)도 관통하는데, 밖으로 천하(天下)에 도달하고, 인정(仁政)과 왕도(王道)를 실천함으로써 사공(事功)을 개척하고 성과를 이룬다. 그렇지만 송명유학의 강습과 학문의 중점은 결국 내성(內聖) 방면에 치우쳐 있으며, 외왕(外王) 방면에서는 적극적 개발이 결여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내성은 강하고 외왕은 약하다(內聖强而外王弱)”는 말(모종삼 선생의 표현)에 담긴 의미이다.
(四)
‘내성지학(內聖之學)’은 ‘성덕지교(成德之敎)’라고 일컫기도 한다. 성덕(成德)의 최고목표는 ‘성(聖)’이고, ‘인자(仁者)’이며, ‘대인(大人)’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진실한 의의는 개인의 유한한 생명 안에서 무한하고 원만한 의의를 얻는데 요점을 놓여 있다. 이것이 바로 “도덕일 뿐 아니라 동시에 종교인(卽道德, 卽宗敎)” 유가의 가르침이다. 유가의 교의에 입각해서 말하면, 도덕은 무한(無限)에 통한다. 도덕적 행동은 비록 유한해도, 도덕적 행동이 의거하는 실체는, 도덕적 행동을 성취함으로 해서 한계를 갖지 않게 된다. 인간은 때로 이러한 실체를 체현함으로써 도덕적 행동의 ‘순수하여 그침이 없음(純亦不已)’을 성취하고, 그리하여 유한한 가운데에서 무한한 의의를 얻을 수 있다. 유한하면서도 무한하고, 성명(性命)과 천도(天道)가 관통되어 일체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유가의 종교적 경계이다.
이러한 내성(內聖), 성덕(聖德)의 가르침은 ‘도덕적 종교’라고 이름할 수도 있다. 그것은 (속세를) 벗어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는 ‘멸도(滅度)의 종교(=불교)’와도 다르고, 신(神)을 중심으로 삼는 ‘구속(救贖)의 종교(=기독교)’와도 다르다. 이것은 공맹(孔孟) 이하 선진(先秦) 유가가 본래 갖추고 있는 광대한 법도(弘規)로서(공자의 “인을 실천하고 하늘을 안다(踐仁知天)”나 맹자의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고, 그리하여 하늘을 안다(盡心知性知天)”는 말은 바로 이러한 광대한 법도의 기본모형에 해당한다), 송명(宋明) 유학자들이 뜬금없이 창조해 낸 것이 아니다. 송명 유학자들이 강습했던 바는, 바로 이러한 본래 갖추고 있는 광대한 법도를 따라 전개, 발휘하고 순응, 상승했던 것들이다. 그리하여 세속에서 말하는 ‘겉모습은 유학이지만 내면은 불교이다(陽儒陰釋)’라는 식의 언설은 근본적으로 학문의 실질을 모르는 어리석고 멍청한 말에 불과하다. (나는 송명유학에서 중심적 의미를 지닌 관념 또는 본질적 관련을 지닌 공부 문제 중에서 불교, 도가에서 유래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본다.)
(五)
북송의 여러 유학자들은 유가의 경전이 본래 지닌 뜻을 계승하고, 그들의 의리(義理), 사상(思想)을 전개했다. 그 점진적 전개의 노선은 『중용』, 『역전』이 강술한 천도(天道) 및 성체(誠體)에서 시작하여 『논어』, 『맹자』가 강술한 인(仁), 심성(心性)으로 회귀하였다가 마지막에는 『대학』이 강술한 격물궁리(格物窮理)로 귀착되었다.
송(宋) 왕조가 남쪽으로 내려간 뒤에 호오봉(胡五峰)은 먼저 북송유학을 소화하여 호상학(湖相學) 전통을 열었다. 주자(朱子)는 정이천(程伊川)의 이론적 노선을 고수하여 별도의 한 계통을 열었는데, 육상산(陸象山)은 직접 맹자를 계승함으로서 주자와 대립했다. 이학(理學)의 노선 계통은 이를 통해 성립했다.
명대(明代)에 이르러 왕양명(王陽明)은 육상산에 호응하여 ‘치양지교(致良知敎)’를 열었다. 유즙산(劉蕺山)은 호오봉에 호응하여 ‘마음으로 본성을 드러내는(以心著性)’ 교의를 크게 설파했다. 그는 명(明)나라가 망하자 음식을 끊고 순절했는데, 이로서 600년 동안의 리학(理學)의 역사도 막을 내렸다.
본 권(卷)에서 서술하는 것은 송명(宋明) 600년 동안의 유가철학이다. (각 장에서 서술하는 기본적 의리의 근거는 모종삼 선생의 『심체와 성체(心體與性體)』, 『육상산에서 유즙산까지(從陸象山到劉蕺山』을 참조할 것. 그 외, 졸저 『송명리학-북송편』, 『송명리학-남송편』, 『왕양명철학』 등도 참고할 수 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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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생의춤 작성시간 10.11.25 귀한 가르침 잘 보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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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자의 꿈 작성시간 10.12.20 안녕하세요. 번역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처음으로 중국철학을 공부하는 초보자 입니다. 아직 상권도 읽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번역을 따라 원문을 대조하며 공부하고자 합니다. 몇 가지 질문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1절의 마지막 문장에서 박궤/복궤, 비궤/태궤의 대비는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주역의 궤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그리고 절 3번째 단락에서 '물고기의 눈을 진주에 섞듯이'라는 문장은 '어찌 물고기의 눈을 진주와 혼동할 수 있겠는가?"의 의미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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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자의 꿈 작성시간 10.12.20 "복성서(復性書)를 저술했지만, 여전히 외부적 호소 또는 선구적 촉발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문장에서 원문에는 "혹자... 혹자.."가 나오는데, 어떤 뜻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