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양존하는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은 금술이 좋기로 소문난 잉꼬부부시다.광주에 볼일이 있을때도 늘 어깨를 나란히하고 대문에 들어서신다. 내 어렸을 적 우리 할아버지는 한번도 할머니와 함께 우리집에 오신적이 없이 늘 따로셨다. 대문이 열렸는데도 " 아무도 없느냐" 하고 크게 소리치시면 방안에 있던 우리 엄마는 신발도 신지 못한채 마루에서 뛰어내려 땅 바닥에서 절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마당에서 놀고있던 어린 나는 생각했다. '대문이 열려있으니 그냥 들어오시면 될텐데 왜 꼭 아무도 없느냐 하고 소리치실까' 고 말이다.
언제나 사이가 좋은것만은 아니어서, 텔레비젼에서 제주도가 나오면 아버님은 갔었다,어머님은 안 갔었다, 그때가 곷 피던 봄이었네, 단풍지던 가을이었네로 서로 우기다가 그만 소원해져 등 돌리고 앉아계신다. 그러다가도 밥상이 들어오면 서로 이것 잡숴보라며 생선을 발라 밥 위에 올려준다던가 상추를 싸서 입에 넣어드린다던가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어렸을적부터 친정 부모님의 얼굴 붉히는 모습 한번 보지 못하고 자란 나로서는 티격거리다가 금방 아무렇지도 않는듯 도란거리는 모습이 생경할수밖에 없다. 아버님과 달리 어머님의 성격은 매우 밝고 결코 주눅들지 않으며 당당하다.
3년전,어머님 칠순때였다. 아버님 칠순때는 시골에서 동네 잔치 비슷하게 하느라 너무 힘 들어서 어머님은 광주로 오시게해서 아담한 회관 하나 빌려서 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쉽지않는것이 모두 흩어져 사는지라 모였다 하면 1박2일이다. 8남매이다보니 생신 축하 파티도 팬션이나 콘도를 빌려서 해야한다. 음식점에서 한끼 먹고 해산이 아니라 다시 우리집으로 모여 먹고 자고 해야하니 결국 비용은 2중으로 들고 번거로움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심 고심중이었는데 뜻밖에도 " 나는 잔치 안 할란다. 대신 해외 여행 보내주라." 하시는게 아닌가. 속으로 ' 브라보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하며 흔쾌히, 그 때는 미혼이던 막내 도련님과 시누이를 동행시켜 안전한 여행을 보내드렸었다.
두 분은 달포 간격으로 광주인 우리집에 오신다. 각 각의 병원엘 가기위함인데 안내는 물론 큰 며느리인 내 몫이다. 보통 두 세군데를 가게 되는데 어르신들은 새벽잠이 없는듯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은데 채비를 다 마치고 어서 가자는듯 나만 쳐다보며 앉아계신다. 8시 접수 후 9시 진료인데도 7시도 안 되어 집을 나서야한다. 번호표를 받고보면 늘 1번이다. 채근을 하시는건 아닌데 서두르게 만드는데는 어쩔수가 없다.
작년, 초 가을께 였을것이다. 서울 사는 언니네가 이사를 간다 하여 새 집도 둘러보고 아이들도 볼겸 두 밤 정도 자고 올 요량으로 서울에 갔다. 저녁때 동생네 부부와 아이들과 즐거운 식사 시간중에 아버님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병원에 가야하니 광주에 오신다는것이다. " 저, 오늘 서울에 왔는데요" 해도 " 그럼 어쩐다니" 만 하실뿐 다음으로 미루자는 말씀은 절대 안 하신다. 늘 다니는 병원이라 두 분이서 가셔도 되련만 큰 며느리가 없이는 큰 일이라도 날것처럼 걱정이신지라 언니 집에서 밥도 함께 못 먹고 선 걸음으로 둘러 보고 다음날 서둘러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심통이 나서 손도 잡아주지 않은채 잰 걸음으로 앞서 가다 문득 돌이보니 두 분이서 바짝 긴장한 얼굴로 두 눈 크게 뜨고 날 놓치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오시는게 아닌가. 순간, 웃음도 나오고 죄송스러워져 잠시 숨 고르기를 하기로했다. 음료수를 뽑아다 건네니 " 너 없으면 병원이나 오겠니" 하시며 힘겨워 하신다. 가끔씩은 화나게도 하시지만 그래도 좋은 분들이시다. 고향으로 내려 가실땐 " 너만 원없이 고생시키고 간다 어쩌겠니? 잘 있거라." 하실땐 코 끝이 시큰거릴때도있다. 소통이 잘 안되어 속이 터질때도 있지만 저렇듯 의지하시는데 내가 다소 힘 들더라도 잘 해드려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지난해 10월에 어머님은 인공 관절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하셔야했다.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말에 CD를 구워다 아는 병원 몇군대를 다니며 신중히 수술 여부를 결정했다. 병원 선택,입원 시기, 간병 문제 등 모든것을 조율하여 착오없이 진행시켰다. 형제들이 많은지라 병 문안도 분산해서 오도록 유도하며 매일 병원엘 들려 두 분의 건강 기색을 살폈다. 그렇게 한 달 열흘을 계시다가 퇴원이 가까워 오던 무렵, 부모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중, 5촌 당숙모도 치매가 와서 요양원으로 가셨다는 말씀을 하신다. " 귀찮으니 보내버린거지." 하시길레 재활과 치료도 적절히 하니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라며 병원의 장점을 말하니 " 그게 늙고 병들어 필요 없으니까 땡겨버린거지 뭐냐?" 하시는데 끝 말을 흐리신다. 문득, 내 친정 어머니가 떠오르셨나보다. 순간, 해머로 머리를 맞은듯 눈 앞이 아뜩하고 숨고르기가 힘들어졌다. 땡겨버리다 = 던져버리다 = 내다 버리다 라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나는 내 친정 어머니를 내다 버린 셈이된다. 너무도 놀라서 펄럭거리는 가슴을 다독거려가며 " 그럼 어머니도 그런 시설로 보내지게 된다면요?" 하고 물으니 " 그럼 죽어불제 산다냐?" 하신다. 그렇구나. 그런거였구나. 내 어머니는 살기 위해서 병원으로 가신거였는데 시 어머니는 보내지면 죽어버리겠다고 하신다.
어제 가져왔던 빈 반찬통을 어떻게 챙기고 부모님께 어떻게 인사를 하고 나왔는지 모른다. 병원을 나와 비칠거리듯 걷고 또 걸었다. 아무리 시설 좋은 병원이라지만 쓸쓸히 계실 내 친정 어머니 얼굴이 떠 올랐다. 누구보다도 자식 교육에 열심이셨고 잘 키워냈어도 병원행이 결정되었을때, 한 두달만 계시기로 했지만 한 마디 서운하단 말씀도 없이 " 그렇게하마" 하셨던 내 어머니. 병원에 두고 나올때 나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어머니는 눈물 한번 보이지않고 " 시간 나면 오너라" 하셨던, 몹시도 외로웠을 내 어머니.오늘도 어쩌면 창 밖을 내다보며 자식들을 그리워하고있을 어머니......어머니...... 눈물이 흘러도 훔치려고도 하지 않으며 ' 어머님, 며느리도 자식인데 어찌 그리 아픈 말씀을 하십니까. 어찌 그리 독한 말씀을 하십니까. 늙고 병들어 쓸모없으니 버리다니요. 날 낳아주신 내 어머니룰 버리다니요.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란 말을 들을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는데 소위 시어머니란 분이 이리도 뼈아픈 말씀을 하시다니요. 아무리 성격이 직설적이라한들 며느리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버스로 네 정거장 쯤 되는 길을 마치, 실체는 빠져 나가고 빈 허물이 걷듯이 땅에 발을 딛었는지 허공에서 둥둥 떴는지 모르게 휘적 휘적 걸어서 집 앞에 거의 다달을 무렵 " 어디, 갔다 온가?"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렸을적 부터 이웃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할머니시다. " 네, 시 어머님이 다리 수술하셔서 병원 다녀옵니다." 했더니 " 으응. 고생하네. 안 그래도 자네 외숙모를 만났는데 밥 한번 안해보고 시집 갔는데 시부모 봉양하느라 고생하는것이 짠하다고 하대. 고생하네. 고생해. 그래도 그 고생 어디로 안 갈것이네.' 하시며 가실 길 가신다.
대문을 따며 고생...... 고생...... 이란 말을 혼자서 읆조려본다. 내 생애중에 고생스런 부분이 있었던가? 시부모님 입원 횟수가 많은것도 사실이고 혼자서 도맡아 해 온것도 사실이지만 고생이라고 생각 해본적은 없다. 헌데도 고생하는것처럼 보이나보다.
집으로 들어와 빈 그릇들을 무겁게 내려놓고 옷도 벗지 않은채 방으로 들어와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져버렸다. 마치 한 쪽 날개를 잃은 잠자리가 수직으로 추락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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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계양 작성시간 12.01.31 현대 사회에서 부모 노릇, 자식 노릇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갑니다. 전통적인 가치와 현대적 가치의 경계선상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leehan202 님은 자식 노릇을 참 열심히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요, 아무리 해도 효도에 흡족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다만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 좀 덜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애쓸 뿐이지요. leehan202 님의 맑고 순수한 마음의 향내가 느껴지네요. 애틋한 마음 씀씀이에 공감도 되고요. 앞으로도 곱고 맑은 모습을 만날 것이 기대되네요. leehan202 님, 기운 내세요. 지금 하고 계신 그대로도 훌륭하시니까요. 곱고 예쁜 마음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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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하하 작성시간 12.02.18 고개 숙여 저를 바라 봅니다. 제 마음 그 안을요. 절을 하면서 마음을 내리라 합니다. 나를 내리라 합니다. 내것도 아닌 나를 쉼없이 함없이 내려야 한다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