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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아기편지

제10신 - 겨울 가로수를 보면서 (이계양)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4.01.13|조회수69 목록 댓글 1

겨울 가로수를 보면서

 

                                                                                                                                              이 계 양



  집에 돌아오는 길에 거리의 잎 진 가로수를 문득 만났다.

  여름날, 무성하던 잎들로 풍성과 탐스러움이 영원할 것만 같아 보이더니 그것도 잠시, 계절의 윤회 앞에서 맥을 못추고 그만 모든 화려한 장식들을 길거리에 팽개쳐 버린 채, 이젠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게 냉랭한 기운마저 감도는 모습으로 서 있는 거리의 잎 진 가로수가 어쩌면 나신(裸身)의 내 실존(實存)이 아닌가 여겨졌다.

  시간은 2014년 1월의 중순.

  부푼 마음으로 아름답게 이 해를 가꿀 준비를 하면서, 거리의 가로수가 지난 여름의 그 무성한 이파리를 모두 미련 없이 떨궈 내고 거리의 복판에 적나라한 나신(裸身)을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 모두가 적어도 지금쯤엔 어처구니없는- 정말 쓰잘 데라고는 손톱 끝만큼도 없는 허위와 가식의 면사포를 떨궈 내야만 한다고 마음속의 추궁을 받는다. 부끄럽지만, 알몸이어서 춥지만, 보기에 썩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지만, 깡깡 말라 생명이 의심스럽지만 알몸으로 서 있어야 할 시간임을 느끼게 된다. 그것도 할 수만 있다면 거리의 가로수처럼 당당하게 말이다.

  다시 겨울의 잎 진 가로수를 본받을 마음과 몸의 추스름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긴 겨울 동안을 알몸으로 추위를 견디느라 마치 죽은 듯하지만 끝내 그 깊은 곳에 생명의 씨앗을 고이 간직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 생명을 위해 생과 사의 경계선을 몇 번씩이나 넘나들면서도, 그리하여 마지막 턱에 찬 숨소리를 확인해 가면서까지 신비한 싹을 나이테의 연륜 가장 깊숙한 곳에 잔잔한 숨소리로 키워가고 있음을 말이다.

  만약 눈보라가 몰아치고 매서운 강풍이 불어와서, 끝내 이를 견뎌내지 못하면 가로수로서의 생명을 상실하듯이, 우리네 삶도 새 봄의, 새 생명의 움을 위해서 가로수의 긴긴 인내와 내면성을 배워야한다. 고비를 넘는 삶의 비탈도 견뎌야 하고, 가난과 주림과 추위와 심지어 죽음의 계곡으로 인도하는 눈보라가 몰아쳐도 정녕 우리네 가슴팍에 새겨진 나이테의 중심에는 새 봄에 틔울 움을 잉태하고 있어야 한다. 인동초(忍冬草)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우린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그만 떨어진 나뭇잎처럼 거리를 방황하다 어디론지 사라져 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말게 될 것이다.

 

  낮에 보았던 앙상한 모습의 가로수가 보인다.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본다.

  거리에 선 알몸의 나.

  그리고 다짐해 본다.

  알몸으로도 떳떳하게,

  맨살을 드러내고도 씨알맹이는 품 깊은 곳에 따뜻이 자리를 마련하고,

  앙상한 모습으로도 살아 용트림하며,

  끄트머리가 타들어가는 순간에도 절정에 선 심정으로 강철 같은 무지갤 바라며,

  이 땅에

  내 자리에 굿굿하게 서 있을 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정녕 새로운 생명의 용트림을 위한 잎사귀 떨궈냄이 있어야겠다. 묵은 잎사귀를 떨궈낸 다음에라야 새 이파리가 돋아날 것이기 때문에.

묵은 것들을 떨궈내야만 새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신비를 경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린 또 이 신비 앞에서 겸손히 고갤 숙여야 한다. 그래서 우린 영원히 이런 고개 숙임으로 살아야 한다. 자연이 가르쳐 주는 삶의 원리적 지혜이다.

 

  골목마다엔 이름모를 바람이 분다.

  각자가 가진 묵은 이파리를 떨궈내라고 재촉하는……

  각자의 자리에서 온 몸으로 스스로 자신이 되라고 부추기는…….


오늘도 아름답고 기쁜 모습으로 살아갈 '하하'의 모든 식구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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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취원 | 작성시간 14.01.17 된서리에 눈보라에... 혹한의 회초리가 앙상한 알몸을 혹독하게 후려칩니다.저항없는 버팀에도 상쇄되지 않는 부끄러운 회한들. 그러나 떨궈버린 아픔들이 진한 거름되어 또 다시 희망의 움을 틔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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