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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일본 고대사의 진실』(6)

작성자팔도유람(신종근)|작성시간21.10.08|조회수383 목록 댓글 4

『일본 고대사의 진실』(6)

1. 초기의 일본 열도



1. 일본 열도의 원주민과 초기 왜국들

5) 중국에 조공한 초기의 왜

중국 사서에 따르면 왜가 중국에 최초로 조공한 해는 서기 25년이다. 그러나 이 왜가 어떤 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후 서기 57년에 왜노국倭奴國이 조공하였으며, 239년에는 야마대국邪馬臺國의 여왕 히미코卑彌呼가 조공하였다. 서기 421년부터 520년 사이에는 이른바 '왜의 5왕'인 찬讚, 진珍, 제濟, 흥興, 무武가 중국에 조공하였다.

일본 학계에서는 이 5왕이 야마토왜의 왕 즉 오진應神부터 유라쿠雄略까지의 7인의 왜왕 가운데 어느 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근거가 없다. 왜왕 찬은 421년에, 찬과 진은 425년에 조공을 하였으며, 왜왕 제는 443년, 그리고 흥과 무는 각각 438년과 478년에 중국에 처음 조공을 하였다. 이렇게 왜 왕 찬, 진, 제, 흥, 무가 모두 5세기에 중국에 처음 조공을 하였는데, 5세기는 백제의 대규모 집단이주민이 야마토왜의 아스카飛鳥 지방에 이주ㆍ정착한 시기이므로 야마토왜가 하나의 정치집단으로 형성되기 이전 단계의 시기이다.

서기 600년과 607년에 중국에 조공한 왜왕(아매 다리사비고多利思比孤)도 그 이름으로 보아 야마토왜의 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조공한 왜와 왜왕을 <표 1-2>에 제시하였다.



6) 중국 기록에 나타난 초기의 왜

중국의 사서 『삼국지三國志』에는, 일본 열도에는 대마국對馬國, 일대국一大國, 말로국末盧國, 이도국伊都國, 노국奴國, 불미국不彌國, 투마국投馬國, 야마대국邪馬臺國, 사마국斯馬國, 기백지국己百之國, 이사국伊邪國, 왜노국倭奴國 등 30여 국이 존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後漢書』에는 왜노국 등 6개 국이 존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야마대국과 왜노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친 나라이며 그 밖의 나라들은 조공을 바치지 않은 나라들이다. 또 『수서隋書』에는 7세기 초인 608년에도 일본 열도 서부 지역에 일지국一支國, 죽사국竹斯國, 진왕국秦王國이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7) 『일본서기』에 나타난 야마토왜 이외의 왜

『일본서기』가 야마토왜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서라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야마토왜 이외의 왜가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야마토왜가 존재한 야마토 지방 자체에도 다른 왜가 존재하였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일본서기』의 다음 기사들이 그러한 예다.

야마토 지역의 한 호족이 야마토왜 왕실의 보물을 전하지 않고 착복한 채 야마토왜 왕실의 모임에 나타나는 것이라든지, 또 바로 그 호족의 집이 야마토왜 왕의 집보다 견고하였다는 사실은 야마토 지역에 야마토왜 왕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실력자가 존재하였음을 나타대는 것이라고 하겠다. 479년 가와치河內의 한 왜국과 기비吉備(오늘날의 오카야마, 岡山)의 한 왜국이 협력하여 야마토왜를 공격했다는 기사가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왜도 야마토왜가 아닌 다른 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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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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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동이 | 작성시간 21.10.08 무(武)가 무령왕 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무령왕(武寧王, 462년 ~ 523년)과 연대도 같고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40세까지 지냈던 것으로 알려 지고 있습니다.

    478년 왜왕 무(武)가 송 순제에게 바친 상표문의 내용을 보면
    "왜국은 백제의 제후국이고 고구려에 침략을 당해 아버지와 형의 죽음으로 긴세월을 상중에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고구려에 의해 개로왕과 형들이 죽었다는 사료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팔도유람(신종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08 네, 고맙습니다~^^
  • 작성자팔도유람(신종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08 왜 5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365년경: 가야의 왕 아리사등(阿利斯等)이 바다를 건너가 왜지(倭地)를 개척하였는데, 바로 일본서기에 일본의 시조로 그려진 스사노노미코토(素戔嗚尊)이다.

    다음은 왜지(倭地)가 본격적인 백제·가야의 영토가 된 과정이다.

    366~391(26년간의 백제영토): 곧이어 백제 근초고왕이 왜지에 진출하여 가야계를 동쪽으로 몰아내고 백제 영토로 만들었다.

    392~478(87년간의 가야독립): 중국기록에는 유독 이 기간에만 '찬왕·진왕·제왕·세자 흥·무왕' 의 왜5왕이 등장하여 중국으로부터 관직을 책봉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왜5왕은 일본 고대사 최대의 수수께끼였다. 그것은 바로 백제로부터 독립하여 가야계 왕조가 수립되어 왜5왕이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 작성자팔도유람(신종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08 479~660(182년간 다시 백제의 영토): 왜지는 다시 백제 영토로 되어 백제 멸망시(660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의 역사에서 왜국에 대한 기록이 다시 자취를 감춘다.

    위에서 87년간의 가야독립 기간은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의 전반 130년간, 또 이후의 200여년 동안 중국의 기록에서 왜(倭)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독 이 87년 동안에만 왜5왕의 기록이 나타나며, 366~660년간의 중국기록에는 일본의 천황은 나타나지 않는다.

    출처 <오사카의 여인> 곽 경,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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