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삼국사기에 있는 백제의 초기 도읍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강단사학에서는 백제의 위치에 대해 한반도 남부로 무조건 규정하고 이를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사료의 북사, 주서, 남제서, 양서, 통전 등 여러 사료를 보면 백제는 대륙에도 있었으며 22개의 담로국을 거느린 해양 대제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국이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북사』 「백제전」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의 좌안을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 대에 이르기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후위 때는 중원을 차지했다. 『주서』 「백제전」
"이 해(490)에 위(북위)의 오랑캐가 또 다시 기병 수십 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경계에 들어갔다.
[이에 백제의] 모대(동성왕)가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를 보내어 오랑캐군을 기습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남제서』 「백제전」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백제는 진(晉)대부터 요서와 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치통감』
"원래 백가제해라는 데서 백제라 부르게 되었다. 진나라 때 고구려가 요동을 취하자 백제도 요서와 진평두 군을 영유하여 근거지로 삼았으니 지금의 유성과 북평 사이이다." 『통전』 「백제전」
"(백제의 영토는) 서로는 월주(양쯔강 연안)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발해)를 건너 고구려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에 이른다 『구당서』 「백제전」
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擔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擔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也
중국 양서 - “백제의 왕성을 고마라 부르고, 읍을 일컬어 담로라 하는데 중국의 군현과 같다.
백제에는 22 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나 종친으로 분거하였다” 라고 기록한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蠹 -三國史記 崔致遠傳
삼국사기 최치원전 -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에 강병이 백만으로 남으로 오·월을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흔들어 중국의 커다란 우환(巨蠹) 이 되었다
이로서 백제의 전성기 시절에 오와 월, 유주,연,제, 노와 싸웠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백제가 대륙에서도 활동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백제는 1대 온조왕이 처음 도읍할 때 부터 대륙에 있었다고 이미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夏五月,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北有靺鞨, 侵軼疆境, 少有寧曰
〔온조왕 13년(B.C. 6)〕 여름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나라의 동쪽에는 낙랑(樂浪)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靺鞨)이 있어 번갈아 우리 강역을 침공하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
온조왕 13년 (BC. 6년)에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있다고 분명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낙랑이 낙랑군 일까요? 아니면 낙랑국일까요? 이 낙랑에 대해서는 이전 기록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秋七月, 築馬首城, 竪瓶山柵. 樂浪太守使告曰
〔온조왕 8년(B.C. 11)〕 가을 7월에 마수성(馬首城)을 쌓고 병산책(甁山柵)을 세웠다. 낙랑태수(樂浪太守)의 사신이 다음과 같이 아뢰어 말하였다.
기록에서는 그 낙랑에 대해 낙랑태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수는 군의 수장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 낙랑을 요동의 낙랑으로 보든 한반도의 낙랑으로 비정하더라도 백제는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사료를 검토해 보면 낙랑군은 하북성에 있는게 분명하므로 그 보다 더 서쪽에 온조 백제의 초기 도읍지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박창범 교수의 백제의 천문관측 기록으로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최치원 전에 따르면 백제가 변한이라고 했습니다.
新羅崔致遠曰, “馬韓則髙麗, 卞韓則百濟, 辰韓則新羅也.”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은 “마한(馬韓)은 즉 고려(高麗), 변한(卞韓)은 즉 백제(百濟), 진한(辰韓)은 즉 신라(新羅)”라고 말하였다.
왜 최치원은 백제가 변한이라고 한 것일 까요? 이는 강단사학에서 말하는 남삼한의 개념으로는 절대로 해석이 않되는 내용입니다. 이는 백제가 북삼한의 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八月, 遣使馬韓, 告遷都, 遂畫定疆埸.
〔온조왕 13년(B.C. 6)〕 8월에 마한(馬韓)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다는 것[遷都]을 알리고,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정하였다.
이는 마한에 있던 백제가 변한으로 천도하기 전에 미리 알리는 내용입니다.
十四年, 春正月, 遷都.
온조왕 14년(B.C. 5) 봄 정월에 도읍을 옮겼다
그리고 온조 14년 (B.C 5)에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하였습니다.
또한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마한 54국에 백제국(伯濟國)이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즉 이 천도기록은 마한(馬韓) 땅에 있던 백제가 최치원이 말한 변한(番韓)의 땅으로 이동한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소위 강단사학이라는 자들은 실증사학을 떠들면서 중국사서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우리의 기본적인 사서인 삼국사기도 제대로 연구 않하고 국민들에게 엉터리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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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려선비 작성시간 21.01.02 한국 사학과 교수들이란 작자들은 이런 사료적 근거가 나오면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지요~ 그냥 무시하거나 언급조차하지 않죠. 일본이나 중국학자들이라면은 이걸 가지고 수많은 포장과 억지를 붙여 확고부동한 정설로 벌써 만들어 놓았을텐데요^^
구지 강단에서 주장하는 위서(?)라고 무시하는 환단고기는 논외로 치더라도, 중국 정사인 25사와 (그나마 불리한 자료는 다 없애거나 소각해서 남아 있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국내 사료들에 있는 것만 제대로 밝혀도 우리역사 강역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
답댓글 작성자동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1.02 네 맞습니다. 강단사학자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도 않보는 것 같아요....
책에 다 써있는데.... -
답댓글 작성자고려선비 작성시간 21.01.02 동이 아마 전공자들은 다 알고 있고, 봤을겁니다. 그러니 언론 카르텔 협조하에 일반인이 알 수 없는 말장난 수준의 자기 주장만 일방적으로 하고, 대중들이 볼 수 있는 대화의 장에는 나오지 않는 거죠^^
그들은 선학(식민사학자, 황국사관 옹호자)들의 기존 주장을 넘어서거나 반대할 수 없는 풍토에, 현 카르텔(사학과, 학회, 박물관 등)에서 찍히면 현직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두려워 할 겁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강철밥통 카르텔 검찰보다 더 공고한 집단이라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
작성자고려선비 작성시간 21.01.02 이번 역사강사 설민석이 방송에서 하자차한 것도 형식은 석사논문 표절이지만, 내용은 노론부정, 독립운동가 칭송에서 더 나가 이승만, 박정희까지 비판하니~ 현 부왜카르텔이 더이상 방치하면 안되겠다 생각해서^^ 결국 손을 댄거라 생각이 듭니다~
인기강사가 석사논문 표절이니 대중에서 실망을 안겨주기 쉬운 방법이죠. 다 아는 사실이지만, 논문 표절은 본인이 부주의한 측면도 있지만, 지도교수의 승인(?) 방조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지도교수도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알아보니 설민석의 지도교수는 김도형교수(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더 군요. 이들도 언론의 상단에 이름을 올려 책임도 묻고 창피를 주어야 합니다. -
작성자동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1.02 솔찍히 석사논문 표절 사례는 아마 강단사학 놈들도 수두룩 할거 라고 봅니다..그런 말같지도 않은 허접한 논문들로 석박사 따는거 보니.. 그나마 방송에서 바른 소리하는 설민석이 강단사학에 미운털 박혀서 표적이 된거라고 봅니다. 그래도 나름 역사 대중화에 공로가 있는 사람인데 이번일로 대중들이 역사에 무관심해지는 건 아닌지 한편으로는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