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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age 동아시아

작성자무명 저고리|작성시간17.02.01|조회수434 목록 댓글 17



사마천은 三皇五帝의 역사를 쓰지만 삼황오제가 漢族의 역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삼황오제의 시기는 "傳說의 時代(legend age)"입니다.


正史로서는 인정되지 않는 시기인 것이며 그야말로 창세기의 전설을

진짜 존재 했엇던 것처럼 교묘하게 엮은 전설의 역사인 것이지요.


우리가 단군 시대의 단군 시조 사상과 같은 시대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패러다임은 三帝중의 한 사람인

黃帝軒轅(황제헌원)으로 부터 중국 역사가 시작 된다는 것입니다.


三帝炎帝神農(염제신농)과 黃帝軒轅 그리고 蚩尤天王(치우처왕)을 말합니다.


하지만 正史로서의 중국 역사는 周武王으로 으로 부터 시작 됩니다.


삼황오제의 한 사람인 치우천왕은 <桓檀古記>에서는

환웅시대의 14대 桓雄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환단고기>란 말 그대로 桓國 시대에서 부터 환웅 시대

그리고 단군 시대의 역사를 다뤘다는 것을 의미하는 타이틀의 역사서 입니다.


<환단고기>의 桓雄 시대란 단군 조선이 세워 지기 전의 1565년의

18대 환웅이 배달의 나라를 다스렸다는 역사를 말합니다.


우리 국사는 환웅을 단군 왕검의 아버지로 설정을 하지만

<환단고기>의 환웅은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왕조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3001년의 역사를 가진 桓國이 존재 했으며 환국 왕조의 이름은

하느님이 직접 다스렸다는 의미의 桓因이며

그 초대 환인이 "安巴堅(안파견)"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安巴堅이란 성서에서 말하는 하느님 또는 아버지와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또한 안파견은 먼 훗날 카라키탄(거란)의 초대 황제인 耶律阿保機(아율아보기)가

스스로 안파견이라 했던 그 이름 입니다.


아보기란 아바오지가 거란인들의 발음이며

아버지라는 우리 말과 거의 유사한 표현 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사가 말하는 단군 건국 신화는 桓因을 桓雄의 아버지로

환웅은 檀君王儉의 아버지로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檀君神話의 맹점은 환인 환웅 그리고 단군을 사람 이름으로 설정을 하면서

전설의 창시기의 역사마져 축소해 놓앗다는 것입니다.


어느나라 역사든 창세기는 존재 합니다.


창세기를 과학적으로 풀겟다는 어리 석음이

역사를 믿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 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차피 창세기란 傳說이며 그 마져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필자는 <환단고기>가 우리 역사의 창세기에 더 가깝다는 생각 입니다.


<환단고기>를 僞書라고 평훼 하는 이유가 이전의 그 어떤 역사서에도

<환단고기>의 내용이 인용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대주의 역사 패러다임이 절정을 이루던 조선에서

『三聖紀』·『檀君世紀』·『北夫餘紀』·『太白逸史』와 같은 역사서는

불온 서적이었으며 그 책을 소지한 것 만으로도 처벌을 받았다고 하지요.


그 책을 저작한 사람의 가문은 멸문을 당했음을 의미하는 그런 풍토속에서

그 역사서가 인용되고 읽혀 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 아닌가요?


다만 <환단고기>는 三聖紀』·『檀君世紀』·『北夫餘紀』·『太白逸史』라는

별개의 기록을 누군가에 의해 함께 묶여 편찬된 역사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단군세기>는 고려 문하시중을 지낸 이암 선생이 저자이고

<태백일사>는 이암 선생의 5대손인 成均館司藝(성균관사예)와

사헌부장령을 지내신 이맥이 저자 라는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와 엘리트가 밥먹고 할일이 없어서 역사 소설을 썼을까요?


또한 이맥은 성균관 예사 즉 지금으로 말하면 국립 도서관 공무원이라는 말이며

아마도 이맥은 이때 성균관의 전해져 오는 古史書를 motive로

<태백일사>를 엮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부터 <환단고기>와 삼황오제의 시기가 어떤 맥락으로

역사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하며 살펴 보지요.


관련 이미지三皇五帝의 正體


司馬遷은 <史記>에서 치우를 黃帝軒轅의 부하였으며

胸幅(흉폭)하여 戰爭을 좋아 하는 惡魔로 表現하면서도

蚩尤를 天王이라고 表現하는 二重的 態度로 치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三帝가 甘肅省 天水 지역의 동향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은 치우를 오랑캐의 우두머리인 賊으로 간주하고

炎帝와 黃帝는 마치 漢族 처럼 암시 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역시 치우는 우리 민족의 인물처럼 묘사하고

염제와 황제는 중국 사람인것 처럼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치우는 북방겨례 사람이고 炎帝와 黃帝는 漢族 사람들일까요?


또한 이들 三皇五帝가 지금의 중국 전역을 떠돌며 전쟁을 했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이와 같은 <사마천의 삼황오제의 기록은 마치 중국은 有史가 시작된 그 싯점부터

중국의 모든 영역이 중국의 영토엿던 것 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史記>의 기록에는 치우의 머리는 구리(銅)로 되어 있고

鐵 이마를 하고 있다는 기록을 보면 이 당시의 이미 靑銅器를 지나

鐵器 시대로 접든 시기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사마천이 짜집기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대목 입니다.


즉 鐵器時代는 BCE 1200년경 부터 시작 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인데

三皇五帝의 시기는 적어도 BCE 25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며

鐵器時代라 함은 靑銅器 시대를 지나 고대 국가로 들어 섰음을 의미 하는 것 입니다.


司馬遷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絶妙한 역사 함정"입니다,


 관련 이미지中華人民共和國의 歷史 先占

그런데 中華人民共和國은  黃帝軒轅만을 中華人民共和國의 建國 始祖로 說定 하더니

1990년대 들어 炎帝神農을 추가하고  最近들어서는 蚩尤天王 마져 三帝라 하며

자기들 역사의 始祖로 모시기 시작 했습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歷史先占"을 위한 歷史工程이며 中華人民共和國은

신시 배달의 시대를 모두 漢族의 歷史로 바꾸겠다는 것이나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심코 지금의 中華人民共和國의 略稱인 中國

지난 역사속의 中原을 뜻하는 中國을 혼동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역사가 말하는 中國(the middle kingdom)지금의 中華人民共和國의 약칭인

中國의 意味는 다릅니다.


옛날의 中國이라 함은 중원에서 일어 났던 帝國의 中心

즉, 皇帝가 직접 다스리던 中原을 말하는 것이며 나라 이름이 아닙니다.



中原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中原


예를 들어 唐나라는 長安이나 落陽을 중심으로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영토를 中國이라 하는 것"이며

그 이외의 지역은 왕들을 임명하여 대리 統治하는 邊方임을 간과 하고

지금의 중국 대륙 전부를 중국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련 이미지神市倍達 時代와 紅山文明의 時代는 同一體.


더 具體的으로 말하면 홍산문명을 이룬 사람들은 거란인들이며

거란은 朝鮮에서 유래 했습니다.


따라서 거란=(箕子)朝鮮이며 홍산문명은 조선=거란=홍산문명인 것입니다.


홍산문명을 한족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홍산이라는 지역이 대륙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고

옛 朝鮮이라는 나라가 지금의 만주 또는 한반도에 있었다는

歷史 固定觀念에 의한 옛 朝鮮을 중국 역사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즉, 지금의 中華人民共和國은 배달 시대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지만

三帝를 통해서 배달 시대 역사를 정립하고 자연스럽게 紅山文明은

자신들의 역사임을 주장하는 것 입니다.


관련 이미지三帝의 고향


黃帝軒轅을 기록한 <초사>에 보면

"황제는 백민에서 태어 났고..... 그는 東夷(동이)사람이다"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또한 舜 임금은 황제 헌원의 7대 후손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학계는 요순 임금들을 우리 역사의 인물들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炎帝 역시 <史記>에 의하면 神農의 이름은 石年이고,

天水에서 출생하여 姜水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을  이라고 정하였다고  합니다.

 

天水땅은 현재 甘肅省  渭川縣인데 漢나라 때에는 天水라고 했고,

姜水는 현재 陝西省  岐産縣을 말합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甘肅省과 陝西省은 유목민족인 흉노의 땅입니다.

 

姜氏는 원래 貫鄕을 天水姜氏로 썼던 것을 수천년을 내려오는 동안

中祖를  失系한 然故로 각기 그 本이 나누어 져서 雲南姜氏,

廣東姜氏,  山西姜氏, 尼連姜氏, 維夷姜氏등의 貫을 쓰고 있으나 

그 근본의 貫鄕을 물으면 모두 天水姜氏라고 대답 합니다.

 

여성은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망치는 위험한 존재'

천수는 전형적인 흉노의 땅이 오도로스 지역

 

염제는 전형적 북방계 흉노 사람입니다..

중국이 주장하는 삼제의 이동 경로/필자는 三帝의 이동이 중국 측 주장이 맞는 것으로 본다.

 

炎帝
는 수렵으로 살아가는 북방민족이 수렵으로는 궁핍한 생활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북방민족이 농경으로의 진입을 위해 힘쓴 결과로 그를 神農으로 추앙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제 헌원 역시 신농과 아버지와 어마니가 같은 형제라고 하며

치우천황 역시 천수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4대 환웅으로 기록하고 있는 치우천왕의 시기는

삼제의 기록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동아시아 上古時代는 그 뿌리를 차창 헤매다 보면

모두 甘肅省 天水에서 만난다는 분명한 fact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한반도에서만 찿으려 한다면

우리 역사의 진실은 공허한 메아리만 남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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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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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무명 저고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2.03 좋은사랑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저는 秦과 漢은 제국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제국으로서 조선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제후국을 둘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조은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외출 준비 중이라서....,
  • 작성자좋은사랑 | 작성시간 17.02.03 4. 더 具體的으로 말하면 홍산문명을 이룬 사람들은 거란인들이며 거란은 조선에서 유래 했다. 따라서 거란=조선이며 홍산문명은 조선=거란=홍산문명인 것이다.

    => 홍산문명은 신석기시대의 문명입니다. 그런데 거란이니 몽골이니 하는 종족은 훨씬 후대에 등장하지요. 그리고 북방유목민족들은 혈통보다는 일정한 정체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서, 흉노가 강성할 땐 다들 흉노가 되고, 거란이 강성할 땐 거란이 되고, 몽골이 강성할 땐 몽골이 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러니 홍산문명이 거란족의 '선조' 들이 향유한 문명이라고 하면 그건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홍산문명을 거란족의 문명이었다고 말하면
  • 답댓글 작성자좋은사랑 | 작성시간 17.02.03 그건 틀린 말에 가깝게 됩니다. (같은 논리로 거란족을 들먹일 것 없이, 홍산문명을 고조선인의 '선조'가 향유한 문명이라고 바로 말해도 됩니다. 이건 틀린 말이 아니거든요. 홍산문명의 주체는 홍산문명이 끝나면서 다양하게 흩어졌을 것이고, 그 일부는 먼 훗날 거란족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그 상당수는 고조선의 구성이 될 테니까요))
  • 답댓글 작성자무명 저고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2.03 좋은사랑 님의 말씀과 같은 의미로 글을 올리기는 했습니다만
    좋은 지적이십니다.

    앞으로도 많은 고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무명 저고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2.03 좋은사랑 거란은 조선에서 유래 했다고 했지요.
    아마도 거란이 유래 했다는 조선은 위만 조선으로 보여 집니다.

    제가 폰으로 답글을 쓰는 관계로 긴 답변 드리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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