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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헝가리는 훈족의나라 라는 뜻. 훈족의 기원은 고구려.

작성자월리|작성시간09.08.11|조회수3,541 목록 댓글 36

디스커버리라는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방영한 내용이라네여.

 

해외에서. 특히 독일에선 훈족이 한국의 고구려에서 뻗어나온 세력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하더군여.

 

근데 한국에선 훈족을 먼나라 바라보듯이 대하고있고..

 

 

한국 역사학계 자체가 친일파들이 주류로 대접받고

 

식민사관에 쩔어있는데다 자국역사에 대해 역사 축소지향주의라서

 

어떻게 해서든 힘없고 약해빠진 쓰레기나라라는 식으로만 교육을 시키는 현실이니..

 

역사에 자긍심을 배우기보다는 패배주의에 빠지기 바쁜 현실..

 

 

 

아래는 미국에서 방영된 방송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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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ns and the forgotten Korean
훈족과 잊혀진 Korean

Europeans called them "Huns". Originating from the main land of Korea(Koguryo),

 they invade d the Roman empire during the 4th century.

유럽인들은 그들을 "훈족(Huns)"이라고 불렀다.

 

본국 고려(Korea; 고구려의 준말) 땅에서 일어난 그들은 4세기

기간중에 로마 제국을 쳐들어왔다.

Ancient Greeks historian recorded them Scytians ,

and later European called them Mongols.

고대 그리스 역사가는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이라고

기록했으며 그뒤의 유럽인들은 그들을 몽골인이라고 불렀다.

Around early 4th century,

 the temperature fell lower than usual for many years in far East Asia.

It caused grains not to ripen, grazing grass land for animals was scarce.

4세기 초 무렵, 극동아시아에서는 수년동안 기온이 평시보다

떨어지는 이상기온현상이 발생하였는데,

그로 인해 곡식은 영글지 못하고 동물들에게 풀을 뜯어먹일 수

있는 땅은 부족하였다.

For these reasons a large number of semi-nomadic tribes left from what is

known today as the Korean mainland to Eastern Manchuria.

이런 이유로 인해 상당수의 반(半)유목 종족은 오늘날 Korea라고

알려져 있는 한국본토에서 만주 동부로 떠나게 되었다.


Gathering other tribes along the way they proceeded to the Central Asiatic

step. From there, the mass of tribes went westward.

그 길을 따라 이민족들을 규합하면서 그들은 중앙아시아쪽으로

발걸음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종족 대부분은 서쪽으로 향했다.

Around AD 370 these nomadic people arrived upon the Horizon of the

Roman empire. They established a kingdom along the Danube, on the prairies

that are present day Hungary.

서기 370년경 이 방랑민들은 로마제국 국경선에 도착하여 다뉴브

강(독일 남서부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감; 독일명

'도나우강')을 따라 현재는 헝가리 지역인 대초원위에 그들의 왕국

을 세웠다.

About AD 443, Attila, the son of King Ruga assassinated his brother Bleda

and united all the Hun tribes. He lead the warriors onto ruthless and savage

conquests; destroying anything in sight, looting and merciless killing of

innocent people.

서기 443년 경, 루가왕의 아들 아틸라는 그의 형제 블레다를 암살

하고 전(全) 훈족을 통일하였다.

 

그는 전사들을 이끌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정복을 감행하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약탈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다.

(번역자 주; 완전히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니 이 점을 잘 참

작하기 바람)

He conquered Germany, Eastern Europe and most of southeastern Europe.



그는 독일, 유럽 동부 및 유럽 남서부 일대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였다.

The Huns were superior horseman and combined with their archery skills

were the bane of the Romans ......,

훈족은 기마술(말타기)에 능한 이들로 궁술 또한 겸비하였는데

그것은 로마인들을 파멸시킨 큰 원인이었다.

(번역자 주: 로마제국의 멸망사가 다시 쓰여져야 할 것 같군요.

서양인들에게 있어불멸의 영화인 '벤허'에 나오는 멋진 로마군인들

이 우리 조상인 고구려 무사들에게 무참히 멸망당했다는 이 기록

이 우리가 아닌 양인들의 손에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흥분케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They used a short, inverted bow made from few different materials glued

together. An iron arrow head was able to pierce any European armor.

그들은 서로 강하게 접착된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제작된 짧은

역궁(逆弓; 맥궁!)을 사용하였으며, 쇠로 된 화살촉은 유럽군인들의

 어떤 철갑옷도 관통시킬 수 있었다.

Their horses were short in height, but had speed and endurance,

they were also agile and smart.

그들의 말은 키가 작았지만 빠른 속도와 강한 지구력이 있었으며,

그들 또한 동작이 민첩하고 영민하기 짝이 없었다.

Hun warriors, while twisting their upper body, were able to shoot arrows

behind them while their horses were running forward (referring picture).

훈족 전사들은 말이 전방으로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말위에서

상체를 뒤로 틀면서 그들 뒤편에 있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쏠 수

있었다 (그림 참조요).


(번역자 주: 위 '그림 참조요'의 그림은 현 중국 집안현 무용총 주실

 서벽의 수렵도에 나오는 고구려 기마궁병의 모습과 완전일치

함. /// Orullee Han님의 주; 고구려 기마병 그림은 집안현 그림으로,

다큐에 나오는 인물들의 복장과 거의 같습니다.)

When Atilla was young, his father Ruga exchanged his son with a young son

of a prominent Roman family , his name was Aetius.

아틸라가 어렸을 때 그의 부친 루가는 자신의 아들을 한 유명한

로마 가문의 어린 아들, 즉 그 이름이 Aetius(Orullee Han님의 주; 아

틸라의 친구이기도 하며 서로 상대방의 전술을 잘알며 내기억이

정확치않으나 로마 왕실의 왕자인지도 모르겠읍니다)라고 하는

아이와 바꾸었다.

For ten years Atilla was educated in the Roman court vise versa Aetius from

the Hun kingdom. Atilla was probably the first western educated Mongol in its

history.

십년간 아틸라는 로마 왕실에서 교육을 받았고 반대로 Aetius는 훈

족의 왕궁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틸라는 아마도 몽골족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서구 교육을 받은

인물일 것이다.(번역자 주; 이 문장도 서양인의 입장과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니 각별한 주의를 요함)

Later these 2 men would confront each other in Gaul (today's France), in

451. Atilla would go on to lose this battle and invaded Italy in 452 with

Germanic tribes.

이들 두 사람은 후에 451년에 Gaul(오늘날의 프랑스)에서 서로

맞부딪히게 되는데, 아틸라는 계속해서 이 전투에 패배하게 되며,

452년에는 게르만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침략하였다.

(번역자 주; 주인공의 이름 '아틸라'와 '이탈리아'가 매우 흡사한 것

이 주목됩니다.)

His army advanced to Venice (today's) and negotiated with a Roman

representative Pope Leo for 10 hours.

그의 군대는 오늘날의 베니스로 진격하여 로마 대표 교황 Leo와

장장 10시간동안 협상을 벌였다.

All the while on horse back, Atilla received tribute from Rome, and would

thereafter retreat from Italy. Pope Leo received the title "The great" from the

church for his successful negotiations with Atilla.

말 위에서의 장시간 협상 공로로, 아틸라는 로마로부터 공물을

받았으며 그후 이탈리아로부터 회군하게 된다.

 

교황 레오는 아틸라와의 이 성공적인 협상으로 인해 교회로부터

"대제(The great)"라는 칭호를 받았다.

Atilla married to a German princess, Ideco in AD 453. After his wedding

celebration he died that wedding night, possibly from alcohol poisoning.

아틸라는 453년에 독일공주 Ideco와 결혼을 하였다.

그는 불행히도 결혼식날밤에 죽게 되는데 아마도 그의 사인은

주독(酒毒)인 듯 하다.

His people dammed the Danube river and buried him in the middle of the

river. They opened the dam for no one, so that none could ever find his grave.

그의 백성들은 다른 이들이 묘지를 찾지못하도록 다뉴브강을

둑으로 막았으며, 시신을 강 중앙부에 매장하였다.

그들은 그 댐을 어떤 이에게도 오픈하지 않았는데, 그 결과

그 누구도 그의 무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After his death, the Hun kingdom crumbled and his people scattered from the

Europe. He would be known as "the scourge of god" by the Roman Empire

 because of his cruel acts.

그가 죽은 후 훈(Hun) 왕국은 멸망하였으며 그의 백성들 또한

유럽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살아생전 잔인한 행위로 인해 그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의 천

벌"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The Huns left a number of legacies in Europe especially the Ch?eau area of

France, all children born there have a blue round mark in their hip as the

Mongolians do today. The country of Hungary got its name from the Huns,

to commemorate the Hun Kingdom.

훈족은 유럽에, 특히 프랑스 Chateau 지역에 많은 유산을 남겼으며,

그곳에서 태어난 모든 어린아이들은 엉덩이 부위에 오늘날 몽골인

들과 동일한 파란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다.

헝가리라는 국명은 훈 왕국을 기념하기 위해 Huns에서 비롯된 것이다.

During the world war ll allied forces refer to Germans as Hun because of their

relationship with Huns in the 4th and 5th centuries. Funeral cultures of Europe

are also deeply influenced from the Hun.

세계 제 2차대전 기간중 연합군은 역사적으로 독일인들의 4세기,

5세기에 훈족과의 관련성 때문에 독일인들을 훈족으로 부른다.

 

유럽의 장례문화 역시 훈족으로부터 깊이 영향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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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다샘 | 작성시간 09.08.12 정리해보면 신라는 극동 그것도 남부 지역에 있으면서도 문화는 동아시아에서 로마적 흔적이 유례없이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는 신라의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매우 활발히 나타나고 있으며 김알지의 후손들이 이시기에 와서 강한 정치력세력으로 등장.. 이와 함께 서쪽 유럽 지역에서는 4세기부터 훈족이 팽창을 하기 시작하며 유럽을 휩쓸기 시작합니다. 신라의 유물을 보면 분명 교류가 동아시아 어느 곳보다 활발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는 신라가 지리적으로 매우 극동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이런 문화적 영향력의 교류가 깊었다는 것은 어떤식의 직접적인 루트가 있었다는 뜻이됩니다. 특히 황금보검의 경우등은
  • 답댓글 작성자바다샘 | 작성시간 09.08.12 단순히 무역적 교류로 얻을수 있는 위세품이 아닙니다. 그기에 신라김씨에서 발견되는 흉노설과 맞물려 그들 사이에 어떤 밀접한 정치적 연관성이 함께 하면서 신라의 상류 계층의 문화에 로마적 양식이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나름 추측해 볼수 있을 것입니다.
  • 작성자폭렬천사 | 작성시간 09.08.13 기원후 400년대 중반에서 5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계림로 14호분과 흉노와 연관짓는 것은 억지죠. 시간적으로 600년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600년 정도면 현재와 고려시대를 연관짓는 것과 비슷하군요.
  • 작성자바다샘 | 작성시간 09.08.13 ㄴ ??? 신라 김알지의 출현이 기원후 65년경 김알지가 흉노족의 후예라는 학설은 제법 제기되는 주장중 하나이고 저기 내용은 훈족. 즉 유럽에서 활동한 훈족은 4세기경부터 신라에서 나타나는 로마적 문화의 왕성한 시기도 4세기에서 6세기경 사이. 연관이 없다라고 할수 없죠
  • 작성자빨콩 | 작성시간 09.08.13 어쩐지 서양인들이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아시아 사람들하고 외모가 다르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고 하더니...이것때문인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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