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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에게왜콩밥만 작성시간09.08.11 흉노족과 신라와의 연관성이란것은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흉노족의 족장이었던 김일제의 후손이란 것 때문입니다. 흉노족의 기원은 기원전 2000년경이라 하며 알타이 산맥에서 발원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유럽으로가 훈족이된거고 다시 남으로가 지금의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반도에서 투르크족의 기원을 형성하였고 이들이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돌궐족이 된것이죠. 알타이 어란 바로 이 훈족의 영향이 컷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알타어의 기원은 바로 지금의 요하지역 즉 우리민족 뿌리 고조선의 발생지였다는 겁니다. 요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요하강 일대에서 나오는 문명의 흔적들은 중국황하문명보다 3000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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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신리와 훈족이 어느 정도,혹은 그이상으로 연관성이 있을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외국학자들중에서 신라를 극동의 남부에 있으면서도 출토되는 유물은 로마문화권 왕국이라고 부를 정도.. 근데 이런 로마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시기가 기원후 4세기에서 6세기입니다. 그 유명한 미추왕릉지구의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황금장식보검(일명 계림로단검)이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용기나 잔에 손잡이를 붙이지 않는 형태가 많은데 유독 가야 신라쪽에는 로마문화권에서 나오는 손잡이 달린 형태가 많습니다. 고구려나 백제도 이런 형태의 그릇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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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신라의 초기 기록을 보면 박씨부터 석씨등에서 이후 기원후 4세기에 내물왕시대부터 김씨의 왕권 세습이 확립됩니다. 이 김씨에 대한 학설 중에서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흉노족의 후예라는 것이고 훈족이 4세기에는 유럽으로 이동하여, 375년 흑해 북안의 동고트족을 무찔러 그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고,. 서고트족의 일부는 훈족의 압박을 피하여 동로마에 이주하였면서 이것이 그유명한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발단이며 로마의 붕괴의 전초전이였습니다.4세기 말의 루아왕 때에는 오늘날의 헝가리·트란실바니아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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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그 유명한 아틸라왕 때에는 전성기를 이루어, 주변의 게르만 제부족을 복속시켜 흑해 북안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일대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한 여인의 복수극에 의해 아틸라왕이 살해되면서 훈족제국이 붕괴되어버립니다. 서양인들의 훈족에 대한 두려움은 엄청났습니다. 오늘날 남겨진 기록을 보면 그들에 대한 공포에 저항조차 할수 없을 만큼 무력함을 보였구요. 로마식 전쟁과 우리의 동아시아식 기마 전투는 전혀 차원이 달라서 그들이 어떤식으로 번번히 저항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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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정리해보면 신라는 극동 그것도 남부 지역에 있으면서도 문화는 동아시아에서 로마적 흔적이 유례없이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는 신라의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매우 활발히 나타나고 있으며 김알지의 후손들이 이시기에 와서 강한 정치력세력으로 등장.. 이와 함께 서쪽 유럽 지역에서는 4세기부터 훈족이 팽창을 하기 시작하며 유럽을 휩쓸기 시작합니다. 신라의 유물을 보면 분명 교류가 동아시아 어느 곳보다 활발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는 신라가 지리적으로 매우 극동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이런 문화적 영향력의 교류가 깊었다는 것은 어떤식의 직접적인 루트가 있었다는 뜻이됩니다. 특히 황금보검의 경우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