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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헝가리는 훈족의나라 라는 뜻. 훈족의 기원은 고구려.

작성자월리| 작성시간09.08.11| 조회수3484| 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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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2000날개 작성시간09.08.11 한마디로 말하면 한뿌리에서 나왔다고 보심되겠네요.. 거기서 갈라져서 고구려 신라 백제 등등
  • 작성자 동양미인 작성시간09.08.11 제가 얼핏 저 다큐를 본 기억이 있는것 같은데 오래전에 한반도 에서 떨어져 나간 훈족이 유럽을 정복하는 얘기였거든요 몇년전에 본거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고구려라고 말하지 않았던거 같은데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에 약간의 변형이 있네요 다른 분들의 오해를 살수 있을것 같아요
  • 작성자 짤딱이 작성시간09.08.11 훈족은 고구려에서 나온 민족으로 알고있었는데 ..자세한 설명감사합니다..
  • 작성자 하얀조각 작성시간09.08.11 아... 저도 저 다큐 봤는데.... 고구려 후예인줄은 몰랐네요.. 그때는 아시아의 기마민족이라고 나왔던 거 같았는데.. ^^ 머... 한국어로 번역된거라 그런가. .흐흐흐~~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나에게왜콩밥만 작성시간09.08.11 흉노족과 신라와의 연관성이란것은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흉노족의 족장이었던 김일제의 후손이란 것 때문입니다. 흉노족의 기원은 기원전 2000년경이라 하며 알타이 산맥에서 발원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유럽으로가 훈족이된거고 다시 남으로가 지금의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반도에서 투르크족의 기원을 형성하였고 이들이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돌궐족이 된것이죠. 알타이 어란 바로 이 훈족의 영향이 컷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알타어의 기원은 바로 지금의 요하지역 즉 우리민족 뿌리 고조선의 발생지였다는 겁니다. 요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요하강 일대에서 나오는 문명의 흔적들은 중국황하문명보다 3000년을
  • 답댓글 작성자 나에게왜콩밥만 작성시간09.08.11 앞서는 것이며 그 규모나 정교함과 우수성이 더 뛰어나다는 겁니다. 이 요하강 일대의 문명은 북방의 초원지대와 만주,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곳에서 나오는 토기나 농작기구와 말의 장신구가 동일한 형태인것으로 보아 같은 언어와 문명을 소유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따라서 우리말의 기원은 엄밀히 따지면 알타이어가 아닌 요하언어 인것이죠.
  • 작성자 월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8.12 와.. 댓글이 30개나 달렸넹~~~@@;; 이거 제가 쓴 글 아니구여. 퍼온거에여. 참고하세영.
  •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신리와 훈족이 어느 정도,혹은 그이상으로 연관성이 있을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외국학자들중에서 신라를 극동의 남부에 있으면서도 출토되는 유물은 로마문화권 왕국이라고 부를 정도.. 근데 이런 로마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시기가 기원후 4세기에서 6세기입니다. 그 유명한 미추왕릉지구의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황금장식보검(일명 계림로단검)이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용기나 잔에 손잡이를 붙이지 않는 형태가 많은데 유독 가야 신라쪽에는 로마문화권에서 나오는 손잡이 달린 형태가 많습니다. 고구려나 백제도 이런 형태의 그릇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고구려는 일찍이 만주 발해연안일때에서 이미 기원전 수천년전부터 석성이나 거대 제단의 기술이 요동문화에도 꽃을 피우고 성곽 축성술이나 건축, 벽화 등 그림에 조예가 깊었고 백제인들은 거대 목탑등에 정통했으며 신라인들은 세공술이 상당히 뛰어 났습니다. 우리가 아는 신라 금관의 경우도 신라 전성기때 양식이 아니라 이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나오는 형태들이며 전세계에서도 신라에서만 대다수 출토되는 거의 독보적 양식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신라의 초기 기록을 보면 박씨부터 석씨등에서 이후 기원후 4세기에 내물왕시대부터 김씨의 왕권 세습이 확립됩니다. 이 김씨에 대한 학설 중에서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흉노족의 후예라는 것이고 훈족이 4세기에는 유럽으로 이동하여, 375년 흑해 북안의 동고트족을 무찔러 그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고,. 서고트족의 일부는 훈족의 압박을 피하여 동로마에 이주하였면서 이것이 그유명한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발단이며 로마의 붕괴의 전초전이였습니다.4세기 말의 루아왕 때에는 오늘날의 헝가리·트란실바니아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 답댓글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그 유명한 아틸라왕 때에는 전성기를 이루어, 주변의 게르만 제부족을 복속시켜 흑해 북안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일대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한 여인의 복수극에 의해 아틸라왕이 살해되면서 훈족제국이 붕괴되어버립니다. 서양인들의 훈족에 대한 두려움은 엄청났습니다. 오늘날 남겨진 기록을 보면 그들에 대한 공포에 저항조차 할수 없을 만큼 무력함을 보였구요. 로마식 전쟁과 우리의 동아시아식 기마 전투는 전혀 차원이 달라서 그들이 어떤식으로 번번히 저항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정리해보면 신라는 극동 그것도 남부 지역에 있으면서도 문화는 동아시아에서 로마적 흔적이 유례없이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는 신라의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매우 활발히 나타나고 있으며 김알지의 후손들이 이시기에 와서 강한 정치력세력으로 등장.. 이와 함께 서쪽 유럽 지역에서는 4세기부터 훈족이 팽창을 하기 시작하며 유럽을 휩쓸기 시작합니다. 신라의 유물을 보면 분명 교류가 동아시아 어느 곳보다 활발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는 신라가 지리적으로 매우 극동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이런 문화적 영향력의 교류가 깊었다는 것은 어떤식의 직접적인 루트가 있었다는 뜻이됩니다. 특히 황금보검의 경우등은
  • 답댓글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2 단순히 무역적 교류로 얻을수 있는 위세품이 아닙니다. 그기에 신라김씨에서 발견되는 흉노설과 맞물려 그들 사이에 어떤 밀접한 정치적 연관성이 함께 하면서 신라의 상류 계층의 문화에 로마적 양식이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나름 추측해 볼수 있을 것입니다.
  • 작성자 폭렬천사 작성시간09.08.13 기원후 400년대 중반에서 5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계림로 14호분과 흉노와 연관짓는 것은 억지죠. 시간적으로 600년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600년 정도면 현재와 고려시대를 연관짓는 것과 비슷하군요.
  • 작성자 바다샘 작성시간09.08.13 ㄴ ??? 신라 김알지의 출현이 기원후 65년경 김알지가 흉노족의 후예라는 학설은 제법 제기되는 주장중 하나이고 저기 내용은 훈족. 즉 유럽에서 활동한 훈족은 4세기경부터 신라에서 나타나는 로마적 문화의 왕성한 시기도 4세기에서 6세기경 사이. 연관이 없다라고 할수 없죠
  • 작성자 빨콩 작성시간09.08.13 어쩐지 서양인들이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아시아 사람들하고 외모가 다르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고 하더니...이것때문인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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