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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방

6/25 말씀릴레이

작성자천리향|작성시간11.06.30|조회수116 목록 댓글 15

성경말씀 누가복음 18장 18~30절 제목: “사랑의 보로매오 매듭(세가지 사랑)”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 “누가 천국에 갈수 있습니까?”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천국에 보내시려고 사람들이 부를 쌓지 못하게 하거나 재산을 팔도록 유도하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교우들의 말씀묵상

 

- 생명이 생각난다.(이유를 듣긴 했는데 내용이 정리가 어려웠음.)

- 본문을 보니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오빠의 삶이 생각났다. 처음엔 안타까워 보였는데 같이 생활해 보니 이해할 수 있었고, 쉽진 않겠지만 기도하며 노력하면 그런 삶으로 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 가진 것이 생기니 다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말씀 그대로 재산을 다 팔아서 나누어 주라는 의미인지 궁금하다.

-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본문 그대로 가진 걸 다 팔아 나누어 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 인연이 떠올랐다. 가족들과 인연을 끊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인 거 같다.

- 사회복지사나 활동가들 중에 말과 행동이 아주 부드럽고 친절한 소위 착한 사람들이 참 많아 졌다. 그런데 그들은 판을 깨야 할 상황에서는 뒤로 빠지는데, 그들의 착함이 자기만족적인 활동 이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목사님 말씀

- 보로매오의 매듭은 3개의 원이 겹쳐있는 모양인데 한 원의 실이 풀리면 다른 원도 풀려버리기 때문에 한 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두 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주제이전에 본문에 대한 궁금증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 아무리 좋은 거라도 계속 그 상태가 지속되면 지겹고 괴롭다. 천국에 갔는데 모두 잘 먹고 잘 살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 삶은 고통과 함께 하는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기쁨도 없는 것이다. 삶의 갈등이나 모순과의 투쟁은 더 높은 차원의 어떤 것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가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누릴 수 있는 능력은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생긴다.

- 우리의 삶을, 우리의 존재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돈은 마련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우리들은 삶이나 행복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어 진정한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 율법은 지킬수록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다 지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율법을 만드신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한다. 안식일을 만든 것이 안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 만든 것처럼 율법도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만든 것이지 천국에 들어가는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원래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누구도 ‘다 지켰다’라고 말 할 수 없기 때문에 ‘다 지켰다’고 하는 부자에게 “다 팔아라”라고 과제를 주셨다.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눈물, 수고, 한숨을 자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에게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 26~27절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의미는 하나님은 우리를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해 주신다. 즉 우리들의 삶에 대해, 자신에 대해, 인간에 대해 깨닫는 진정한 숭고한 삶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정한 구원이다.

- 다시 보로매오의 매듭, 세가지 사랑을 의미한다.

- 상상적인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그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힘으로 계급을 뛰어 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난다.

- 상징적인 사랑은 대의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이 시대의 대의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 실재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혹은 이웃사랑을 의미한다.  사람의 기준을 바꾸는 사랑으로 이 세상의 주인이 로마황제가 아닌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라고 보고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존재를 바꿔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과 달리 자신을 낮추고 비움으로 얻을 수 있다.

- 이 외에도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모든 사랑이 다 중요하다. 상상적인 사랑을 해본 사람이 상징적인 사랑이나 실재적인 사랑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지금 필요로 하는 사랑을 주어 그 사람이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성경은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을 일으키기 위해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랑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고 실천하도록 보여준다.

 

말씀후기

- 아마도 본문에 등장한 부자는 마치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합당한 자로 착각하고 있어,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라’라고 일침을 놓는 사랑이 필요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천국과 지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고통과 한숨으로 나에게 열린 새로운 세계가 천국이고, 이 사회가 나에게 보여주는 편안과 부요와 안주하는 세계가 지옥이라면, 나는 늘 천국과 지옥을 들락거리며 사는 듯하다.

- 하은이를 통해 알게 된 세계로 들어가려면 나는 좌절과 차별을 목도해야하고 분노가 치민다. 싸울 줄 모르고 싸우고 싶지 않지만 싸우라고 계속 요구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내가 지금 뭔가를 만들겠다고 아우성거리며 살고 있는 세계가 별거 아니라고 말한다.

- 시어머님께서 늘 내게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복을 주신다’로 힘을 주셨다. 언제부턴가 그 말씀이 축복이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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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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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혁현 | 작성시간 11.07.01 그래야만 왜 하느님사랑과 함께 이웃사랑이 필요하고, 그것이 동어반복이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수신학은 이 두 사랑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이해하였고 민중신학은 이 두 계명이 마치 동어반복인 것처럼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현실과 무관한 것이 되거나 반대로 현실의 대의를 따르는 행위 그 자체로 빈곤해져 버린 것이지요. 사랑이 어떻게 동시에 세 차원을 가지고 있는가를 이해할 때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은 필연적인 연관 속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다른 것일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내적 위안의 수준에 머무는 것도 '정의'와 같은 대의를 따르는 실천 그 자체만도 아닙니다.
  • 작성자정혁현 | 작성시간 11.07.01 신앙은 그 둘을 모두 추동하면서도 그 둘을 이해하는 전제 자체를 다시 세워 이 세계에 전혀 다른 가능성을 여는 힘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천리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01 수정하였습니다. 세가지 사랑은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있어야 사랑이 실현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 작성자수정 | 작성시간 11.07.02 잘읽었습니다. 목사님의댓글로 말씀후기가 더욱 풍부해졌네요.^^
  • 작성자까만콩 | 작성시간 11.07.02 말씀 후기는 좋은 제도? 인거 같습니다 같은 말씀으로 다른 이해를 할수 있고 다른 생각을 할수 있고 또 천리향님처럼 자신의 일상을 통해서 말씀 후기를 올려주시니 추상적이고 학문적으로 이해했던 개념들이 확~ 마음으로 와 닿으면서 왜 공부해야하는지 알게도 해주면서 내일의 예배를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게 해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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