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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말씀릴레이

작성자천리향| 작성시간11.06.30| 조회수114|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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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마오 작성시간11.06.30 잘 읽었습니다. 지난주 예배를 못가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설교를 대하게 되다니 ㅎㅎ 감사합니다. 더불어 저의 삶에서의 불성실과 부족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네요. 샬롬^^
  • 작성자 정혁현 작성시간11.06.30 애쓰셨습니다. 교인들이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고 후기를 올려주시니 송구스럽고 감사합니다. 더 열씸히 설교를 위해 애쓰겠습니다. 그게 나의 기쁨입니다. 조금 수정하고 싶은 내용은 "1차원', '2차원', '3차원"은 "상상적인 사랑, 혹은 개인적인 사랑", "상징적인 사랑, 혹은 대의를 향한 사랑" 그리고 "실재적 사랑, 혹은 이웃사랑 또는 하느님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그러고 보니 2차원과 3차원의 내용이 바뀐 거 같습니다. 혹시 제가 그렇게 말했나요? 벌써, 아니 애초부터 좀 치매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 답댓글 작성자 천리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6.30 아~수정해놨습니다. 목사님이 제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일하면서 잠깐잠깐 메모한 걸 옮기다보니... 암튼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 작성자 나비날다 작성시간11.06.30 덕분에 다시 한번 말씀묵상 했습니다. 저는 뒤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려서 요즘 설교시간에 메모할려고 무지 노력중입니다.
  • 작성자 젖은장작 작성시간11.07.01 고맙습니다! 교우들의 말씀묵상을 적어놓으시니 멋진데요^^
    다음 말씀릴레이 주자를 지목해주세요! 지금까지 한 사람들은...
    1이수정 2안태형 3김명수 4박연옥 5박성호 6이란희 7나은숙 89마혜진 10안태형
  • 답댓글 작성자 천리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7.01 교우들 모두 하시고 제가 마지막 주자인줄 알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까만콩님을 지목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까만콩 작성시간11.07.02 마지막 주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목사님 설교는 계속 되는데.... ㅠ.ㅠ 정신 바짝차리고 이번주 설교 집중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정혁현 작성시간11.07.02 근디 김명수가 뉘기여? 그럼 우리 교회에 박명수만 나오면 세 명수 보로매오 매듭이 완성되는 건감?
  • 작성자 정혁현 작성시간11.07.01 자꾸 수정을 요구하기가 좀 뭐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문제일 거 같아서...보로매오 매듭은 세 개가 함께 하나를 구성한다는 데 방점이 있습니다. 마치 '삼위일체' 같이요. 우리가 삼위일체에 관해 말할 때, 성부의 차원, 성자의 차원, 성령의 차원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이를 1차원, 2차원, 3차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1,2,3이 들어갈 때는 구조가 점점 복잡해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한데, 사랑에서는 상상적인 차원(오해하여 사랑하는 차원)이 없으면 대의에 대한 사랑이나 우리가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실재적인 대상(예를 들어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불가능하거나 있을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 작성자 정혁현 작성시간11.07.01 상상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그리고 실재적인 것은 점점 더 고상하고 복잡한 사랑을 점층적으로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여 사랑하는 것은 철없어 보이지만 사랑하는 당사자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지요. 이 세 가지 형태의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한 사랑의 차원은 다른 사랑의 차원들과 함께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한 개인에 대한 사랑에도 이 세가지 성질의 사랑이 공존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작성자 정혁현 작성시간11.07.01 그래야만 왜 하느님사랑과 함께 이웃사랑이 필요하고, 그것이 동어반복이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수신학은 이 두 사랑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이해하였고 민중신학은 이 두 계명이 마치 동어반복인 것처럼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현실과 무관한 것이 되거나 반대로 현실의 대의를 따르는 행위 그 자체로 빈곤해져 버린 것이지요. 사랑이 어떻게 동시에 세 차원을 가지고 있는가를 이해할 때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은 필연적인 연관 속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다른 것일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내적 위안의 수준에 머무는 것도 '정의'와 같은 대의를 따르는 실천 그 자체만도 아닙니다.
  • 작성자 정혁현 작성시간11.07.01 신앙은 그 둘을 모두 추동하면서도 그 둘을 이해하는 전제 자체를 다시 세워 이 세계에 전혀 다른 가능성을 여는 힘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천리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7.01 수정하였습니다. 세가지 사랑은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있어야 사랑이 실현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 작성자 수정 작성시간11.07.02 잘읽었습니다. 목사님의댓글로 말씀후기가 더욱 풍부해졌네요.^^
  • 작성자 까만콩 작성시간11.07.02 말씀 후기는 좋은 제도? 인거 같습니다 같은 말씀으로 다른 이해를 할수 있고 다른 생각을 할수 있고 또 천리향님처럼 자신의 일상을 통해서 말씀 후기를 올려주시니 추상적이고 학문적으로 이해했던 개념들이 확~ 마음으로 와 닿으면서 왜 공부해야하는지 알게도 해주면서 내일의 예배를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게 해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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