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당~토도당~

작성자달밤|작성시간24.08.28|조회수621 목록 댓글 6

수필

 

 

토도당~토도당~

                                                                                                                                                     이달밤

 

만사가 한가로운 일요일이다. 아침은 차가움으로 깨어오는데 하릴없이 주섬주섬 가죽 재킷을 챙긴다. 마누라가 추운데 어딜 가냐고 묻는다. “지리산 바람이나 맞고 올라네.”하고, 파란 헬멧을 머리에 덮어쓰고 홀로 외로운 하늘색 청마를 일으킨다.

 

우당탕탕~타당~ 단발의 시동으로 몸을 떨며 울어대는 청마. 길로 나서자 좌우로 비틀어 길 가늠을 하고, 악셀을 힘껏 감으니 쏜살같이 튀어 나간다. ‘그래! 이 맛이야. 달려라! 청마야. 동장군 따위가 무슨 대수랴.’ 차가운 칼바람이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간다.

 

오토바이를 처음 탄 것은 삼 십 초반이었다. 친구 녀석이 혼다 125cc 최신형 오토바이를 샀다. 한 번만 타보자고 졸랐다. 친구는 한참 꾸물거리다 불안한 눈빛으로 마누라는 빌려줘도 오토바이는 안 빌려준다.’ 하면서 오토바이 탈 줄 아냐 고 물었다. “그럼 인마, 면허증도 있는데.” 신소리를 쳤다.

 

사실 나는 오토바이를 타본 경험이 없었다. 실은, 여름휴가를 가려는데, 오토바이 뒤에 여자를 태우고 놀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욕심이 생긴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온다고 하고 도망쳤다. 친구가 생각한 동네 한 바퀴는 전국 한 바퀴가 되어 버렸다. 식량과 야영 장비를 싣고 강원도 설악산으로 강능 경포대로 산에서도 자고 해변에서도 자고 아무 데서나 텐트를 쳤다. 물론, 뒤에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타고 있었다.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다. 다시 못 올 그 추억은 생각날 때마다 짜릿했다.

 

이러구러 어느덧 환갑이 가까운 어느 날 부고가 날라왔다. 후배가 지병으로 숨진 것이다. 후배는 십오 년 전에 할리 오토바이를 하나씩 사서 타자고 했었다. 옛 추억에 얼씨구나 했는데, 그때 당시에 허리에 병이 나서 탈 수가 없었다. 조문을 끝내고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 내가 하려다가 못해본 것이 할리 타는 거였구나.’ 돌아오는 즉시 인터넷을 득달같이 뒤졌다.

 

마침, 할리데이비슨 대전지점에서 개점 특별세일로 평생 보장한다는 명품 가죽 재킷도 주고, 가격도 엄청 할인해 주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곧바로 달려갔다. 젊은 직원이 내 꼴을 보더니 어떤 기종을 원하는지 시큰둥하게 물어본다. 말투가 무시하는 태도다. 은근히 부아가 나서 깔아보며 자네 생각엔 어떤 것이 좋겠는가?”라고 내리 되물었다. 설마 사겠냐는 표정으로, 스트리트 글라이더라는 기종을 추천한다. 값은 비쌌지만 참 웅장하고 멋있게 생긴 놈이었다. 바로 질러버렸다.

 

면허증은 있는지 물어보길래 자신 있게 운전면허를 1970년에 땄다고 했더니, 그가 가소로운 듯이 할리는요, 1690cc라서요, 2종 소형면허가 따로 있어야 돼요.” “?” 잠깐 생각하는데 취소해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따면 되잖아!” 큰소리를 쳤다. 면허도 없이 할리오토바이를 사놓고 끙끙거리며 학원에 다녔다. 십여 일 후 한 번에 면허를 취득했다. ‘앗싸! 운전 도사는 역시 달라.’

 

청마가 신호등 빨간불에 멈추었다. 여기는 춘향이가, 떠나가는 이도령을 붙잡고 울던 오리정이다. 바람은 얼음처럼 차갑게 불어오고, 황량한 들에는 희끗희끗 잔설이 누워있다. 입춘이 지났으니 땅속에서는 바쁘게 봄 준비를 할 것이다. 꽃들은 머잖아 푸른 머리를 들고 일어서리라.

 

토도당~토도당~ 둔중한 청마의 말발굽 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1903년 미국의 할리와 데이비슨 두 사람은 밀워키의 작은 목공소에서 자전거에 엔진을 달아 팔았다. 당시는 서부 개척시대가 끝나갈 즈음으로, 그들이 만든 모터사이클은 말을 타는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그들은 고심한 끝에 차체가 말처럼 덜덜 뛰면서 말발굽 소리가 나도록, 엔진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아스팔트에서 타는 말로 둔갑시킨 것이다.

 

토도당~토도당~ 말발굽 소리의 편안함은,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들은 심장 소리의 사이클과 같다고 한다. 이 소리는 중독성이 있어 한 번 타본 사람은 말 박자를 잊지 못한다. 또한, 할리는 자기 멋대로 꾸미는 재미가 있다. 마초 적 기질이 있는 사람은 오토바이 가격의 몇 배를 들여 치장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청마는 명품에 명마가 되었다.

 

맞바람을 가르며 백두대간 여원재에 오르니 눈발이 간간이 나풀댄다. 아직 길섶에는 눈이 남아있다. 운봉을 훌쩍 지나고 인월에 다다르니 눈앞이 지리산이다. 고개 넘어 함양의 지안재를 오른다.

 

뱀같이 구불구불한 고갯마루에 경완이는, 손님도 없이 푸드 커피 트럭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그가 냅다 소리쳤다. “미쳤어요! 이 강추위에 웬 오토바이?” “! 너는 왜 나왔는데? 손님도 없구먼.” 내가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사실, 청마에 오를 적부터 그가 보고 싶었다. 지리산이 가까워질수록, 이 깡 추위에 그가 나왔을까 조바심이 났다. 지안재 아래에서 목을 빼고 잿마루에 그의 트럭이 보이는지 올려다보았다.

 

아무런 상관도 이해도 없을 그를. 무엇이 그렇게 보고 싶고 반가운 사이로 만들었을까? 그랑 나랑은 어떤 인연으로 맺혀있을까? 가끔 지리산이 그리워질 때면 찾아와서 그와 수다를 떨며 노닥거린다. 그는 목뼈가 부러진 장애인이다. 손가락도 잘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트럭을 운전하여 커피 바리스타를 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뿐이랴, 그런 그를 사랑하는 예쁜 부인도 있고, 초등생인 딸도 있다. 삼십 년도 더 젊었을 그를 벗으로 삼고, 어쩌다 힘이 들 때는 할리를 타고 가서 그에게서 삶을 배운다.

 

그래, 바로 네가 지리산이다. 바람처럼 거기 그렇게 앉아서 오가는 길손을 기쁘게 하렴. 네가 바로 한겨울 지리산에 핀 꽃이 아니더냐. 나도 한 줄기 바람 되어 여기 섰으니, 내가 살아가는 인생도 누구에게는 한 송이 꽃이었기를 간절히 바래어 본다.

 

토도당~토도당~. 안의를 지나 농월정계곡을 천천히 돈다. 느긋한 여유에 이름 모를 텃새가 가로질러 달아나고, 허허로이 홀로 가는 길에 저녁노을이 그윽하다.

 

바람맞으러 갔다가 바람이 되어 돌아가는 길. 누구라 이 바람을 잠재울까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파로 | 작성시간 24.08.28 형님 무더위에 건안 하신지요.
    형님글을 읽으면 오래전 옛기억들을 한번씩 되짚어봅니다.
  • 작성자국화축제 | 작성시간 24.08.28 허이구~~~
    늦겨울 청마의 숨소리. 표현에 한여름 시원한 느낌 입니다.

    토도당 토도당 소리가 웬지 귀여움 입니다.
    보통 할리는 부다당~푸다당~ 으로 표현 하는데 형님은 역쒸 입니다.

    건강 하세요~~^^
  • 작성자브루스곽 | 작성시간 24.08.28 항상 건강하십시요.
  • 작성자동쪽에 사는 사람 | 작성시간 24.08.29 휴가 전국 일주후~
    125cc 인수 하시고 친구에게는 cb250 보상(답례)하셨을듯...ㅎㅎ^^
  • 작성자Diogenes | 작성시간 24.09.05 익숙한 분위기 수필 내용이 정겹습니다.
    형님과 함께 한 세월이 그립네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