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얘기 시작 전에 제 글이 "이벤트 투어"에 속하기 보다, "일상적인 이야기들" 같아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2025년 이벤트 투어”에 실렸던 제 개인적인 얘기를 쓴 “직접 달려본 미국과 캐나다의 라이딩 코스 추천과 안내 #1” 과 “ 미국에서 졸지에 중국 모터사이클 갱단이 된 한국 라이딩 그룹#2“를 안 읽어보신 분이라면 먼저 그 글을 읽으시면 이 글의 흐름이 더 이해가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지금의 와이프를 처음 만났을 때, 아…지금의 와이프라고 해서 그동안 바뀐 게 아니고 45년 지난 지금도 같다는 말. 데이트 할 때,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와이프가 저에게 군대는 어디서 제대했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좀 당황했다. 군대 이야기는 남자들한테 일종의 자기소개서다. 해병대 나왔다고 하면 벌써 자세가 달라지고, 특전사 나왔다고 하면 괜히 몸을 한번 더 꼿꼿하게 세운다. 그런데 나는 어깨에 힘을 줄 보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제가 “공군특수방위사령부”를 마쳤습니다라고 하면서 딴 이야기로 돌렸어요. 그랬더니, 와이프가 “어!! 그거 굉장히 좀 특수한 부대인가 봐요. 더구나 공군의 특수방위 사령부? 그러면서 낙하산 타고 막….. 어디 침투하고 그런 것 같은거에요?” 내가 무슨 007 같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런 말을 하는데,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런 건 자세히 알 필요 없어요. 그냥 보통 군인과 다른 거에요.라고 말을 끊었다. 그랬더니 다행히 무슨 국가 안보상 알면 안 되는건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젊은 아가씨들이 군대에 대해 뭘 알까? 그리고 거의 20년 동안 그 비밀이 보장이 됐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만든 공군 특수방위사령부였다. 아가씨에게 알려줬던 내 보직에 “특수”와 “사령부” 라는 단어를 더 끼여 붙여서 이야기 했으니, 당연히 잘 몰랐다. 더구나 순진했던 아가씨 때 였으니까. 제가 일년간 근무했던 곳은 성남에 있는 K16 전투 비행단. 내가 최근에 미국에서 듣기로는 거기가 나중에 서울공항인가로 바뀌었다고 한다. 1976년엔 F 86이라는 전투기 앞이 뻥 뚫인 전투기가 뜨고 내리던 비행단이었다. 그 당시 수원 전투비행단 에는 F 5A, 팬텀기들이 있었고, 성남의 신촌리라는 동네에 있던 비행단에는 6.25때 쓰던 쌕쌕이란 구형 F 86이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1976년 성남엔 논, 밭 만 있었고,분당, 판교라는 동네 이름도 없었던 같다.
신촌리도 가본 지가 뭐 50년 가까이 됐으니까 많이 변했겠지만,나는 전투비행단 군종실에서 근무를 했다. 지금은 설렁설렁다니는 신자지만, 그 때는 내가 열심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보직을 받을 때 열심한 가톨릭 신자중에서 뽑혀가지고 전투비행단의 군종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때 이학수 중령이라는 군종 목사님이 상주하고 계셨고, 성민호 대령이 군종감 신부님으로 공군본부에서 근무하시고,비행단에는 가끔 오셔서 신자 장병을 돌봐주시고, 나는 그 군종실에서 성당 사무장처럼 군종감 신부님 심부름 하던 입장이었다. 군대 생활을 했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군대에서 군종실은 사실 널널한 데다. 교회주보도 만들고, 미사 해설도 하고, 종교 행사 준비도 하고, 종교 관련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그랬다. 그래서 군대내에서 같은 신자끼리는 계급보다는 같은 형제라는 교우의 느낌 떄문에 쫄병과 장교 사이가 그렇게 딱딱하지 않았다. 그 때 전투비행단 단장(전투기 조종사)까지 가톨릭 신자이였기에 더 그랬고, 그 탓인지 몰라도, 출퇴근하는 일년짜리 공군 방위의 머리 속에는 계급의 높고 낮음에 대해서 실감을 못 했다. 좀 쉽게 말하면 뵈는게 없었다. 그러니까 기독교 중령이신 군목도 니캉내캉하는 느낌으로 대한 것 같았고, 더구나 이학수 군목님이 너무 착하셨다. 그 때 군목께서 신자 병사를 방문하기 위해 80CC 오토바이를 갖고 계셨다.
76년도. 그 때만 해도니까 80cc면 그래도 큼직하고, 있어 보이고, 괜찮았다. 그 오토바이를 보는 순간 내 눈은 이미 반쯤 돌아갔다. 문제는 운전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젊음은 무식함과 항상 손을 잡고 다닌다. 그 때는 한국에 할리는 없었다. 그 당시 성남은 사실, 논밭떼기만 있는 들판에 전투비행장이 있었다. 전투기가 뜨고 내리지만, 사실 일년간의 군종실 복무 기간은 굉장히 편했다. 그때 전투 비행단의 주력기가 F86이고, 최신형 F5나 팬텀은 수원에서 뜨고 내렸고 F 86은 남한에서 제일 북쪽에 있는 전투비행장이라서, 그 당시 우리 공군방위끼리 주고받은 이야기는 F86은 북한 전투기가 내려오면 F 86이 먼저 올라가 싸우다가, 미그기에 맞아서 추락하는 동안에 수원에서 최신형 F5나 팬텀기 같은 게 날라와서 공중전을 한다는 그런 개념으로 짜여져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고 싶은 골자는 목사님이 전교를 위해서 타고 다니시던 오토바이.
장병 선교 활동을 하시다가 퇴근 하실 때는 부대 내에 오토바이를 두고 다니셨다. 그런데 목사님이 타는 오토바이를 보니까 저도 타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계급도 없는 쫄병이고 목사님은 중령인데, 그걸 제가 함부로 만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목사님이 시동 거는걸 보고, 어떻게 해야 앞으로 가는지를 눈여겨 봤다. 몇번 보니까 별거 아니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어디 출장을 가신 날 그걸 훔쳐가지고, 아~~~ 훔쳤다기 보다 “그냥” 타고 부대 밖으로 나갔다. 군종 방위는 부대 밖으로 낮 시간에 나갈 수 있었다. 군종병이니까 근무중에 대방동 공군 본부에 군종감 만나러 나갈 수가 있는 그런 핑계도 먹혔었다. 부대 밖으로 나가서 성남시를 한바퀴 돌고 올 생각이었는데, 나가자마자, 아무래도 처음 타보는 거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라, 얼마 안 되어 커브를 폼나게 돌다가 미끄러졌다.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모래가 깔린 곳은 쥐약이라는 걸….... 비록 실수로 자빠졌지만, ‘이 정도면 나도 라이더 아닌가?’ 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인생은 언제나 자신감과 실력의 차이를 몸으로 가르쳐 준다.
오토바이에 약간 기스가 났다. 쫄병이 군목의 오토바이를 몰래 타고 나갔다가 스크래치가 났으니 너무 황당했다. 부대로 끌고 들어와, 혼신을 다 해서 티가 거의 안 나게 닦아 놨다. 만약 들켜도 “나는 모른다” 라고 오리발을 내밀 생각을 했다. 다행히 목사님은 스크래치가 난 걸 알지 못했다. 매일 활주로에 F 86이 내리고 뜨지 않는가? 그걸 보면서 이제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나도, 저 활주로를 오토바이로 한번 달려보고 싶었다. 그때는 젊었으니까. 아니, 무식했으니까….. 그래서 작전을 세웠다. 전투기의 동향?을 체크했다. 매일 전투기의 이착륙 시간을 체크해 보니 해질 무렵에는 전투기의 이착륙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관제탑에서도 그 시간에는 활주로를 내려다 보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어느 날 해질 무렵. 군종실에서 오토바이를 살살 끌고 활주로 끝, 풀 밭근처로 갔다. 어두워질 때 쯤 타면 관제탑에서도 잘 안 보인다.
만약 활주로에 들어섰는데, 예상 못하게 전투기가 뜨거나 내리면 나는 전투기에 치여 죽는 최초의 전사자?가 되는 거다. 자동차 면허,오토바이 면허, 전투기 면허도 없이 활주로를 달린다? 이건 좀 또라이다. 더구나 누구한테 제대로 배운 게 아니고, 군목께서 타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 배운 거니까. 그 때가 여름. 그래서 어두워지자마자 활주로로 들어섰다. 헬멧도,면허도,보호장비도 없고, 달랑 훔쳐 타고온 목사님의 80 cc 오토바이. 달렸다. 땡겼다. 스로틀(Throttle)이 빠질 정도로…… 80cc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그러나 그 때 기분은 F 86 전투기 타고 이륙하는 기분이었다. 거의 오르가즘 수준. 그 순간에는 속도가 얼마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요새 동네 돌아다니는 전동킥보드 수준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달린다. 아마 시속 60~70키로 였을텐데 내 기분은 F-86 전투기 조종사였다. 속도감의 기분도 마하3의 속도. 그 순간 나는 스스로를 신성일(지금이라면 톰 크루즈)이라고 생각했고,진짜로 나는 멋있는 남자였다.나 뿐만 아니고, 솔직히 모터사이클 타는 사람들의 성향이 거의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번 되돌아보시길…… 또 "내가 지금 전투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를 달리고 있다."
자유와 일상을 파괴하는 그 자체가 짜릿했다. 군종 방위가 군종실에서 조용히 교회 일만 하라는 법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던 때가 자유와 스릴이 인생의 중심이었던 때였다.아무런 장애물도, 신호등도 없는 3km 전투기 활주로는 그야말로 나를 위해 만든 활주로. 죽기 살기로 있는 대로 잡아 뽑았다.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하던 시절, 타는거라곤,맨날 버스에 실려 다니던 시절에, 달리니까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야말로 이빠이 땡겼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맨 얼굴로 여름에 달리니까 온갖 날파리, 모기 뭐 그런 것들이 얼굴 막 타다닥 붙어서 깨진다. 신나서 와~~~하며 신음 소리를 지르며 달리니 날파리들이 입안으로 들어와 순국?순교를 한다. 날파리 몇마리가 입안에 들어오는 건 신경 쓸일이 아니다. 그 때 달리던 스릴, 해 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관제탑에서 걸리지 않고 끝까지 달려서 정말로 한국 공군 역사에 남을 기록과 추억이 남을 성공적인 작전을 끝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전투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를 오토바이로 달려본 사람은 됐다. 그것도 대한민국 공군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만약에 들켜서 끌려가서 영창에 갔더라면, 요새 시대 같았으면 “군사 기지 무단 사용” “정신 감정 필요 사병” 같은 죄목이 걸렸을 것이다. 활주로 무단 진입 자체가 군사시설 보안 위반이고, 실제로 항공기 운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나중에 내 딸들한테 나같이 전투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에서 오토바이를 탄 인간은 한국 공군 역사에, 아니 세계 공군 역사에 내가 최초라고 자랑한다. 만약, 그 때 비상이 걸려서 F-86 전투기가 뜨고 내리면 나는 제트 엔진 열에 익거나, 전투기에 치여 죽는 전사자로? 유일한 한국 남자가 될 만한 그런 무모한 짓,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라이딩을 했던 걸 자랑을 한다. 내가 살면서 별별 미친 짓을 다 해봤지만, 지금 생각해도 제일 이해가 안 되는 놈은 바로 젊은 시절의 나다. 사람들은 젊으면 용감하다고 한다. 아니다. 젊으면 그냥 무식한 거다. 나는 그 증거다. 그래서 지금도 딸과 아들, 미국 사위까지도 나를 “Crazy Father”이라고 칭송?을 한다. 단지 이런 인간은 나로써 끝나고, 내가 세운 역사가 어떤 미친 놈에 의해서 기록이 깨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활주로를 달렸던 그 소름끼치는 쾌감은 미국와서 20년 동안 자리잡고, 사느라고 가슴 속에 잠재(묵살) 되어 있다가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난 후, 우리 부부만 남게 되고, 중년이 되어 뉴욕주 모터사이클 면허를 탄 후에,“경호 차량의 보호”를 받으며, 고속도로를 달리게 된 스토리를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할리 작성시간 26.06.09 시간이 지나도.
남자는 철들지 않습니다. 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tomstou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9 철이 아주 안 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들긴 드는데,무척 더디게.....60살 쯤 되면 정신머리는 마흔살 정도 수준? 철드는 나이는 실제 나이와 20살 쯤 뒤쳐져서 따라오는 듯 싶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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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돌쇠 작성시간 26.06.09 걸렸어야 증인?이 있어서 전설로 남았을텐데...ㅋㅋㅋ
아무나 가질수 없는 멋진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ㅎ
80년 고2때 동네골목 80cc 훔쳐 탄걸 시작으로 시작된 저의 바이크라이프는 쨉도 안되겠네요 ㅋㅋ -
작성자둥지 작성시간 26.06.10 "특수방위사령부"~~ 마치 지금도 그런 부대가 있는거 갔기도 합니다.
그때 공군방위병 이면 소위, 중위, 대위, 보다 높은 방위병 이군요~~ㅎㅎ
그때 당시 군부대 사단급에는 의전용 할리가 헌병부대에 있었죠~~
스타징에 온몸을 싫어 시동걸던 그 시절 싸이카~~
나도 그때 헌병부대 싸이카 훔쳐 타다가 여기까지 할리와 같이 늙어가네요~~
재미난 추억의 이야기 나를 보는것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