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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를 다녀와서

작성자마음지기|작성시간11.06.16|조회수115 목록 댓글 5

 

 

찬미 예수님!

'부부의 마음' 코너에 첫 글을 올리려니 군중 앞에 선듯 떨리고도 설레이는 느낌이 듭니다.

'마음의 영성'에 많은 ME부부께서 있는줄로 압니다만 저희도 부산 ME부부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부부들의 진솔한 삶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저희 부부의 어설프고도 간단한 여행기를 올립니다.

 

저희는 작년에 부부가 함께 부산 가톨릭 신학원을 졸업했습니다만 여러 사정으로 작년에는 졸업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올 6월2일부터 4일까지 올 졸업생들과 함께 홍콩과 마카오를 다녀왔습니다.

마카오는 우리 한국 교회와 많은 인연이 있는 곳, 사진으로 여정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마카오는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소년이 정든 고향을 떠나 1837년부터 1842년까지 5년간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 곳이다. 당시 박해중이던 조선 땅에 신학교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당시 조선 전교를 맡고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가 운영하는 마카오신학교까지 유학을 떠나야만 했다. 중국을 거쳐 마카오까지 가는 데만 반년 이상이 걸린 고난의 여정이었다.

 

 


1836년 12월3일 서울을 출발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명의 신학생이 187일만인 1837년 6월7일 마카오에 도착했다. 서울→평양→의주→비엔먼(邊門)→선양(瀋陽)→마치아쯔(馬架子)→시완쯔(西灣子)→창쯔(長治)→마카오의 1,690km(4,200리)대장정의 길이었다.사진은 마카오행 배 안에서 바라본 홍콩의 건물. 건물 중앙의 텅빈 공간은 태풍이 빠져 나가도록 설계되었다. 홍콩에서 마카오까지는 배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세 명의 한국인 신학생이 공부했던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마카오 신학교 자리. 옛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5층 높이의 주상복합 건물이 서 있다. 이 곳이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의 정신적 고향인 셈이다. 최방제 신학생은 불행히도 마카오에 도착한 지 6개월 만에 위열병(胃熱病)으로 이 곳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 신학생이 공부하던 신학교에서 도로 하나 건너 편에 있는 카모에스 공원. 무더운 날씨,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라틴어로 진행된 신학교 수업,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머나먼 고향 조선에 대한 그리움을 이들은 이 곳에서 달랬을 것이다.
이 공원에 세워진 성 김대건 신부의 동상. 1985년 10월 한국 주교회의가 세웠다.
성인의 약력이 한글과 중국어, 포르투갈어, 그리고 영어로 쓰여져 있다. 설명을 듣는 동안 우리 부부 사진 한장. 찰칵.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자리에서 5분 거리 안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 1608년 건축되었다. 신학교 안에 경당이 있었지만 신학생들은 이곳에 와서도 자주 미사를 보았다.

 

 

 

우리 순례객은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내부는 화려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 성당 제대 아래에는 김대건 성인의 유해가 묻혀있단다.

 

 

성전 측면에 있는 성모님 상. 미사 봉헌중에도 촛불을 키고 기도를 드리는 이 곳 신자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성당 입구에 설치된 한인교포 신자가 봉헌한 김대건 신부 목상. 먼 이국땅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목상을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성 안토니오 성당을 나와 '포트리스 힐'(요새 언덕)을 몇백 미터 걸어 올라가면 성 바오로 성당이 나온다. 마카오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1602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637년에 완성한 이 성당은 1835년 1월26일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어 정면 부분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 성당은 설립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극동 아시아 지역에 세운 최초의 대학 건물이기도 하다.

 김대건 신학생도 마카오에 머무는 동안 이 성당에 자주 들러 간절히 기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신부는 당시 사제들만 통과할 수 있는 성당 정문의 돌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반드시 사제가 되어 이 문을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주교좌 성당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 못하고 사진만 찍었다. 현재 마카오에는 23개의 성당이 있지만 미사를 봉헌하는 곳은 6곳뿐이다. 모든 성당은 오후5시면 문을 닫아 들어갈 수가 없단다. 1999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후 신자가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 2만여명에 불과하다는 말을 들으니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마카오에 들어오면서 차창 너머로 천주교묘지를 보았는데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최방제 신학생이 묻여있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 묘지를 방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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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데레사 | 작성시간 11.06.16 김대건신부님, 최양업신부님, 최방제신학생의 흔적을 느끼고 오신 은총의 시간이셨네요!
    우리의 순교성인들과 순교자들, 무명순교자들에 대한 감사와, 그분들의 신앙의 삶을 익히고
    부끄럽지 않은 순교자의 후손으로 살아가고자 다짐 해 봅니다.
  • 작성자안창호 신부 | 작성시간 11.06.16 두 분이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 마카오 성지 순례를 다녀오지 못했거든요. 필리핀 마닐라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롤롬보이는 마카오에서의 민란으로 인해 소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학생이 2번(?) 피신해 있었던 곳이지요. 고국과 가족이 그리워 얼싸안고 울었던 나무가 그대로 보존되어있습니다. 이 곳은 몇 번 방문한 적은 있지요. 성지순례 때 받은 좋은 기를 가지고 오래오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과 사진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6.16 신부님..마카오에 있는 23곳의 성당의 도보성지 순례..멋질 것 같습니다..!!
  • 작성자안창호 신부 | 작성시간 11.06.16 유리안나 자매님이 더 세련되고 예쁘게 나왔다고 전해주세요(^^ ^^)
  • 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6.16 예..그렇게 전하겠습니다..유리안나가 많이 좋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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