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켜라
잠 4:20-27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잠 4:20-27 / [생명을 살리는 지혜] 얘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가슴에 심어 두어라. 내 말에 귀기울여라. 21) 한눈 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오직 내가 하는 말을 네 마음 한가운데에 담아 두어라. 22) 내가 이르는 말을 깨닫기만 한다면 어찌 그것이 너를 살리지 않겠느냐? 그 모든 말이 네게 보약이 될 터인데 어찌 네 나날의 삶을 건강하게 하지 않겠느냐? 23) 이 세상엔 지켜야 할 것도 많지. 하나 그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키거라. 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24) 입을 열 때 참되지 않은 말은 꺼내지도 말아라. 거짓은 아예 입에 담지도 말아라. 남을 잘못된 길로 끌고 갈 말은 하지도 말아라. 25) 네 두 눈은 진실만을 보아라. 네 눈은 올곧은 것만 응시하여야 한다. 26) 무엇을 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여라. 그런 다음 행동하여라. 무슨 일을 하든지 올바르게만 하여라. 27)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 치우치지 말아라. 앞으로만 똑바로 걸어가거라. 잘못된 길로 나가려는 발걸음을 돌이켜라.
본문에서 솔로몬은 마음과 몸에 대해 여러 번(눈, 발, 마음 2회, 귀, 육체, 눈꺼풀 각 1회) 언급합니다. 이는 지혜의 삶이 전인적인(holistic) 삶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혜에 집중하라(20-22) / 앞에서 솔로몬은 지혜를 따르는 것이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는 온 맘과 온 몸으로 지혜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칫 지혜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지혜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지혜의 훈계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의 중심인 마음, 그리고 이 마음의 지시를 받는 몸의 지체들이 협력하여 지혜의 말에 주의하고, 귀를 기울이고, 지혜를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에 대한 슬픈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성경을 소홀히 여긴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사랑의 불꽃을 태울 수 있겠습니까?"(Bridges)
네 마음을 지키라(23) / 지혜의 자리는 마음이며 그러므로 마음을 지키라고 솔로몬은 교훈합니다. 마음은 모든 행동의 근원이며 저수지입니다. 마음의 저수지가 오염되면 타락한 행동들이 마구 흘러나옵니다. 특히 성도들은 은혜 받은 마음을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두 마음(시 12;2), 완고한 마음(잠 28:14), 오만한 마음(잠 21:4), 불신하는 마음(히 3:12), 식어진 마음(마 24:12), 부정한 마음(시 51:10)을 경계합니다."(Wiersbe) 마음을 지키는 데는 큰 보상이 따릅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생명'이란 단순히 육체적인 삶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은혜와 축복과 기쁨이 있는 영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모든 지체로 지혜를 실천하라(24-27) / 지혜는 전인적이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이란 마음에서 지킨 지혜를 온 몸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지킨 지혜가 우리의 입술, 눈, 발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는 구부러진 말이나 비뚤어진 말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세상 유혹을 향하지 않고 앞서 가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발은 주님께서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말라(신 5:32; 17:11; 28:14; 수 23:6)는 말씀은 지혜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뜻입니다."(Garrett)
적용: 전인적인 지혜가 무슨 뜻일까요?
미국 인디언의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세모이고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랍니다. 때문에 어린이가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픔을 느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이 모서리가 점점 닳아져 결국은 둥그렇게 변하게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는 큰 잘못을 범해도 아픔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지켜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내 재산, 내 가정, 내 체면, 내 건강도 지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지켜야할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 설 교 >
관리해야 할 다섯 가지
잠 4:20-27 / 동은교회 송원영 목사
잠언서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1:7; 9:10)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잠언의 주제입니다. 잠언은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성경에 지혜서라고 불리는 세 권의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욥기, 잠언, 전도서입니다. 이 책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잠언은 성도의 일상적인 생활과 깊이 연관된 "지혜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문명의 이기를 발명해 내는 것만이 지혜가 아닙니다. 진정한 지혜는 인간이 얼마나 인간답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잠언 1:7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근본'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로쉬라는 말인데, '머리,' '으뜸,' '시작,'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결국 자신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가게 합니다. 잠언서는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참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스코브는 아홉 번이나 직장을 잃고 암담한 상황에서 고민하다가 대성한 백만장자를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까? 저는 직장을 아홉 번이나 잃었습니다.” 그러자 백만장자가 말했습니다. “잠언서를 매일 한 장씩 읽으시오. 그러면 2년 안에 사장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요. 그리고 잠언 읽기를 계속하면 5년 뒤에 큰 성공자가 될 것이요.” 그래서 그는 날마다 잠언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10개의 회사를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솔로몬의 부자학 31장’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인간을 학술적인 용어로 표현할 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을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중심으로 본 것입니다. 또한 인간을 호모 에렉투스라고 합니다. 이것은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을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다른 동물과 달리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특성을 중심으로 본 것입니다. 또 인간을 호모 파베르라고도 합니다. 호모 파베르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을 지능발달 중심으로 본 것입니다.
인간을 학술적인 용어로 표현할 때 사람됨의 가치를 가장 높이는 용어는 호모사피엔스입니다.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선물은 생각할 수 있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의 힘을 잃은 사람입니다. 생각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고, 주변의 사람과 환경까지도 바뀌게 합니다.
죤 훌리(John Fully)박사가 노벨상 수상자 400명을 15년간 연구하여 낸 책이 [유대인과 기독교인](Jews and Christian)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종교 분포도가 기독교인이 64%, 유대인이 22%, 천주교가 11%, 불교인이 0.9%, 회교가 0.1%였습니다. 성경을 읽는 이들이 97%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노벨상을 받은 이들의 나라는 모두 23개국이었는데 1등부터 7등까지 보면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미국, 독일 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움직여지는 나라들이었습니다.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공군의 엘리트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40여 년 전에 정부의 지원으로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기독교 문화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선진국이고 나라가 발전하며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에 즉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으려면 다섯 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본문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라
4:20-21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 가지 감각 기관을 동원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귀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하며 둘째는 우리의 눈이 그 말씀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그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간직해야만 합니다.
토라의 말씀으로 되어있는 신명기 6장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늘 가까이 보게 하기 위해서 옷 술에다 기록해 놓으라고 했으며 들어가고 나오는 문설주에도 기록해 놓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화장실을 밝게 해 놓고 그곳에 있는 동안 성경을 볼 수 있도록 화장실 벽에 요절을 적어 놓으십시오. 저는 화장실에 몇 권의 책을 비치해 놓습니다. 제가 화장실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만 해도 한 달에 한 권정도 됩니다. 일 년이면 열두 권을 읽게 되는 셈이지요.
집사람은 변비로 고생해서 하루에 한 번 갈까 말까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하루에 적어도 두 세 번은 갑니다. 그만큼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고 변비 없이 몸이 건강해서 좋고 얼마나 좋습니까? 본문 성경은 눈을 지혜의 말씀에서 떠나지 말게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눈이 언급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눈은 보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말씀의 뜻은 '너희 시야에서 항상 떠나지 않게 하라'는 말로서, 항상 눈에 보이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집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왜 생겼습니까?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도 자주 보지 않으면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이라도 이웃에 살며 자주 보고 만나게 되면 사촌보다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 말씀을 듣는 데 귀가 열려야겠습니다. 말씀을 보는 눈과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듣는 그 귀속에 그리고 말씀을 보는 그 눈동자 속에 지혜를 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 이 말씀의 뜻은 그가 들은 말씀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사건과 현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 말씀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그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떼지 말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어떤 논리적인 순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자세히 듣고, 눈으로 그의 세계관이나 관점을 형성하여, 다음으로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그 믿음의 자리가 어디에 생깁니까? 마음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믿음으로 간직한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마음을 지키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3)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말합니다. “날마다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우리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 남자 분들이 매일 아침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마음 밭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청교도인 요한 훼블(John Favel)은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바르게 관리하는 일은 기독교인의 생활에 있어서 위대한 사명에 속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음 지켜야지 마음 지키지 못하면 그 심령은 생명에서 떠나게 됩니다. 마음이 하나님 떠나고 말씀 떠나면 그 영혼은 죽은 목숨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 떠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할 때 맨 먼저 변화되는 곳이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합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갈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마음을 보시고 복을 주십니다.
미국의 철학자요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27살 때 신경쇠약증에 걸렸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낙담과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그의 병은 오히려 더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병으로 죽을 것을 생각하자 겁이 났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을 도와 줄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는 그 때부터 호흡을 하듯 약을 먹듯 말씀을 복창하며 외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정신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회고하기를 “내가 성경말씀을 외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자신의 정신병에 대한 고통을 책으로 써서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말씀으로 충만하면 우리의 삶에 영적으로 육적으로 풍성한 생명으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신음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이 상한 자는 두려움 근심 걱정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원망과 시기와 증오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대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안 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성경은 이런 마음을 ‘마음이 상했다’ 라고 말씀합니다.
상한 마음(broken heart)은 하나님의 형상이 깨졌다는 의미입니다.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두려운 마음, 근심과 염려, 상실감,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 등등 상한 마음을 고쳐 주셨습니다. 염려(merimnazo)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마음이 나눠진다’ 뜻입니다. 마음이 갈라지고 나누어져서 결국 마음의 모든 기능을 잃어버린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정신 분열증이라고 부릅니다. 깨끗한 마음은 하나의 마음이요, 비어있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물리학에서 말하는<불가입성의 원리(不加入性의 原理)>라고 아십니까? “한 공간에 두 물체가 동시에 들어갈 수 없다.”는 원리입니다. 빈병 속에 들어있는 공기를 내보내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맑은 물을 병 안에 가득 넣으면 자연히 공기는 밀려나가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야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니하고는 우리 마음에 말씀을 담을 수 없습니다.
입술을 지켜야 한다.
24절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했습니다. 궤휼과 사곡을 개정역에서는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말씀으로 충만하면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말 부정적인 말 절망의 말을 하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눅6:45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오면 입술의 변화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담겨진 것이 터진 입술을 통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품은 그것이 말로 나옵니다. 왜 찬송이 없습니까? 왜 기도가 없습니까? 왜 전도하지 못합니까? 기뻐하지 못합니까? 말씀으로 더 가득하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했습니다. 마음에만 머물지 말고 입술까지 나와야합니다. 그러면 더욱 생명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마음으로만 믿는 사람보다 날마다 다윗과 같이 입술로 찬송하며 감사하며 전도하며 사는 사람이 더욱 생명으로 충만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 대뇌학자는 “우리의 뇌세포는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 했습니다. 말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말씀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더 풍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 충만하여 입술까지 변화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을 지켜야 한다.
25절에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라고 했습니다. 관점이라고 하지요. 어떻게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을 관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다 보는 것 같지만 실재로는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입니다. 사건이 일어나도 정치인은 정치적 관점에서 봅니다. 전문가들은 과학적인 입장에서 봅니다. 신앙인은 신앙적 관점에서 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외칩니다. 사람을 봐도 미용사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봅니다. 옷 장사는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오고 의상만 보입니다. 의사도 환자가 시계를 찼는지 반지를 끼었는지 관심 없고 건강상태만 봅니다. 다 관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영적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진리가 안 보이고 천국이 안 보인다면 불가능합니다. 롯은 죄악의 소돔성이 여호와의 동산처럼 보여서 그곳에 가서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세상이 좋게 보이고 세상이 매력적이게 보이면 안 됩니다. 성도의 눈에는 세상이 추하고 가치 없게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은 아무리 잘 되도 불쌍하게 보여야 합니다. 말씀이 가져다 준 시각의 변화입니다.
성도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으로 보이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길이 보이고, 충성의 너머에 축복이 보이고, 믿음의 성도가 진정한 내 형제로 보이고, 죽음의 너머에 천국이 보여야 합니다. 눈으로 말씀을 보고 귀로 늘 말씀을 경청하고 마음으로 믿어야만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 보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않게 됩니다. . 약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셨는데 시험이 복으로 보일 정도 되어야 합니다. 고난이 변장된 축복으로 보이시기 바랍니다.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복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의 신학교수였던 조지 로손(George Lawson)은 "육체와 영혼의 치료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혼과 육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지혜의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얻고, 또한 우리 육체에 건강을 얻는 방법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은혜를 얻고, 육체적으로는 건강을 얻습니다.
여기에 '건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말페이라는 말인데, 어근이 '치료한다' 또는 '새롭게 한다'는 단어인 '라파'에서 온 명사형입니다. 또한 솔로몬은 비슷한 표현으로 잠언 3:7-8에 보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찌어다. 이것이 네 몸의 양약이 되어 내 골수로 윤택하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양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용어는 리퍼우트라는 말인데, '라파'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러면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은 치료하는 능력이 되어 건강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은 보약과 양약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건강'이라는 말이 '치료하다'는 말에서 온 것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이 약한 부분을 치료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일은 열 첩의 보약보다 낫고, 삶의 전반을 치료하고 새롭게 해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수인 휴즈 올드(Hughes Oliphant Old) 교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원래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였고, 그 신학을 근거로 목회를 하였습니다. 자유주의는 성경을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근거로 이해하려는 신학분파를 말합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부분은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교회에 6살 된 금발의 소녀를 둔 부모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의 딸이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와서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목사님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기도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나는 기적을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부모의 간청에 못이겨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오후 4시30분 예배 시작 전에 6명 정도의 경건하고 신실한 성도들을 교회로 불러 백혈병 걸린 아이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 목사님에게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올드 목사님은 주일 오후 몇 명의 성도가 함께 기도한 바로 그 시간에 백혈병에 걸린 아이가 낫게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신학적 입장에 대하여 결정적인 변화를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치료하심을 믿을 때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8-11).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영적인 건강 뿐 아니라 육체의 건강까지도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바 마음에 새긴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또 우리의 마음을 지켜서 악에 물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도 보는 눈도 지키며 살 때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건강주시고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생명과 건강이 풍성해지는 복
잠 4:20-27
오늘 본문에서는 생명과 건강이 풍성해지는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2절에 보면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에 건강이 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그것은 20,21절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여기서 말하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만들고 우리의 육체에 건강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외우고 묵상하고 고백하면 우리의 생명은 점점 더 풍성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육체 또한 점점 더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비염으로 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특히 새벽기도회 시간에 콧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새벽기도회 인도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어느 여 집사님이 수삼을 넣고 다리면 홍삼이 되는 기계를 하나 선물해 주셨습니다. 제 아내는 그 기계를 가지고 정성껏 삼을 다려서 제가 먹게 했습니다. 제 몸 안에 홍삼이 들어가니 저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홍삼을 먹고 약 1주일 정도 지나면서부터 콧물이 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벽예배를 인도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홍삼보다 더 좋은 보약입니다. 제가 전에 사용하던 성경책에 이런 글귀를 적어 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구약은 보약이고 신약은 양약이니 이것을 먹고 기운을 차리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속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에게 영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죽어있는 고무장갑 속에 사람의 손이 들어가면 그 손의 능력만큼 고무장갑이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 말씀의 능력만큼 말씀을 받은 사람의 생명이 풍성해지고 육체는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드님이 모시고 가셔서 우리교회에 나오시지 못하지만 한 동안 우리교회에 나오셨던 어르신이 계십니다. 이분이 몸이 불편하셔서 말도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에 오신지 몇 주 만에 말씀을 듣다가 치유를 경험하셨습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분 마음에 ‘내가 목사님의 말씀대로 믿기만 하면 치료가 되겠다’라는 믿음이 생기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입이 열려서 말씀도 하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셨고 육체에 건강의 복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생명이 풍성해지고 육체가 건강해질까요? 본문을 중심으로 4가지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을 지키기 때문 생명과 건강이 풍성한 것입니다(24절).
마음을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누가 정복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명도 건강도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마귀가 지배하게 두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아마 오래전 일일 것 같습니다. 사형수 두 사람을 데려다 사형을 시키는데 사형수의 눈을 가리고 큰 주사기로 팔뚝에서 피를 뽑아 대야에 주르륵 부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소리를 내며 피를 뽑아 부었습니다. 한 번, 두 번,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사형수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되더니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후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다른 사형수의 눈을 가리고 팔뚝에 주사기를 꽂고 이번에는 물을 주사기에 넣었다가 팔뚝에서 피를 뽑는 것처럼 하고 담았던 물을 대야에 주르륵 붓는 소리만 냈습니다. 피는 한 방울도 안 뽑았는데도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사형수의 얼굴이 하얗게 되더니 먼젓번 사형수가 죽은 횟수가 되자 그 사형수도 죽더랍니다. 피는 한 방울도 안 뽑았는데도 자기는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결국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생명과 건강이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더욱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채워지면 마음이 지켜지고 마음이 지켜지기 때문에 생명이 풍성하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채워지면 마음의 근원이 바뀌게 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됩니다.
마음을 빨대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마음의 근원을 컵이라고 생각합시다. 빨대를 물이 든 컵에 꽂으면 물이 나오고 빨대를 콜라가 든 컵에 꽂으면 콜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근원에 하나님이 가득하시면 하나님의 것이 나오고 마음에 마귀가 가득하면 마귀의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면 마음의 독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죄로 인하여 더러워졌습니다.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독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물과 같습니다. 말씀은 마음의 독을 씻어냅니다. 더러운 떼를 씻어냅니다.
밥이 깨끗해도 밥을 푸는 주걱에 독이 묻어 있으면 깨끗한 밥이 독이 묻은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로 주걱을 씻어내면 독이 제거되기 때문에 그 주걱으로 밥을 퍼도 밥은 오염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독을 제거하는 물과 같기 때문에 마음에 말씀을 채우면 사람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도에서 아주 유명한 갱단 멤버 중에 라마드(Ramad)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의 동료 갱단 멤버들과 함께 어느 집에 들어가 강도짓을 하다가 탁자 위에 놓여있는 성경책 한 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라마드는 그 성경책이 자기의 담배를 말기에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성경책을 훔친 물건들과 함께 자루 안에 쑤셔 넣었습니다. 그 후 라마드는 집에서 매일 성경 책 한 페이지씩을 뜯어서 담배를 둘둘 말아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터 성경책을 찢어서 담배를 말아 피우기 전에 자기가 찢은 페이지의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주가 지났습니다. 어느 날 라마드가 담배를 말기 위하여 성경책에 붙어 있는 종이 한 장을 찢었다가 읽고서는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서 자기 마음속에 들어와 자기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로 라마드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경찰에 찾아가 자수했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에 갇혀서 수많은 죄수들과 간수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전도자로 바뀌었습니다. 라마드가 날마다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오염된 라마드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사람이 마음의 상처에 매이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 이웃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대신관계, 대아관계, 대인관계가 잘 되려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면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상처가 치유되니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27살이 되었을 때, 신경쇠약증에 걸렸습니다. 그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이며 그 상처로 인한 쓴뿌리로 인하여 신경쇠약에 걸린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낙담과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그의 병은 오히려 더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병으로 죽을 것을 생각하자 겁이 났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을 도와 줄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호흡을 하듯, 약을 먹듯, 말씀을 복창하며 외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정신병에서 서서히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회고하기를 “내가 성경말씀을 외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자신의 정신병에 대한 고통을 책으로 써서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마음에 채우면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기 때문에 마음의 활동이 변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활동이 변하기 때문에 생명과 건강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면 생각이 바뀝니다. 우리가 당하는 저주나 축복은 우리의 마음에 품었던 생각의 결과입니다. 렘 6:19입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예레미야 당시 유대인들에게 재앙이 찾아왔던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잘못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니 꿈도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그가 꿈꾸는 것만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웨스트우드(Westwood) 박사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 100명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장래에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의 대답은 축구선수, 변호사, 선생님, 작가 등 다양했습니다. 웨스트우드 박사는 그 대답을 기록하고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똑같은 질문을 계속적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때마다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꼭 이룰 것이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지난 후, 박사는 조사에 응했던 100명을 다시 면담하면서 그들의 직업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 100명 중 98명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무엇이 되겠다고 목표를 정한 것이 98%가 그대로 되었습니다. 100명중에 98명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삶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마음이 바뀌면 생명이 풍성해지고 육체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입술을 지키기 때문에 생명과 건강이 풍성한 것입니다(25절).
25절에 보니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면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말이 바로고 똑바른 말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생명이 풍성해지고 육체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그 말대로 되게 하십니다. 민 14:28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제가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하고 강하게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인생이 말의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중표 목사님은 말은 세 가지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각인력입니다. 이것은 뇌세포에 각인시키는 힘이 있어서 무슨 말을 듣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먼저 내 머릿속에 있는 뇌세포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뇌세포에 새겨지면 그 말을 믿게 되고 그 믿음 때문에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좋은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대로 좋은 믿음의 역사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좋지 않은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좋지 않은 믿음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좋지 않은 믿음의 역사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견인력입니다. 이것은 뇌세포에 새겨진 말이 뇌척추의 신경을 자극해서 행동화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한 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니 “너는 참 착한 아이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 아이는 말의 견인력에 의해서 착한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너는 누굴 닮아서 그렇게 못된 짓만 하냐?”라는 말을 자주 듣는 아이는 그 말의 견인력에 의해서 못된 짓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로 성취력입니다. 말은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힘이 있습니다. 잠 18:20,21입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에밀 쿠에(Emile Coue) 박사는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나는 강하다, 나는 매일 조금씩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하도록 했습니다.
환자 중 절반 정도가 박사의 말을 따라 매일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얼마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박사의 말을 따른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보다 40% 이상 빠른 회복을 보였던 것입니다. 한 대뇌학자는 “우리의 뇌세포는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뇌의 98%가 말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건강한 사람도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하면 아파지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도 “건강하다 건강하다 건강하다”라고 말하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마음이 변화되면 우리의 말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눅 6:45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그러면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말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생명이 풍성해지고 육체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가득하면 믿음이 변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는데 그 표적 중에 하나가 ‘새방언’입니다.
새방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방언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변화된 언어생활입니다.
사람은 은혜를 받으면 말이 변합니다. 초대교회 때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 가장 먼저 언어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면 말이 변합니다. 말이 변하면 마음을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생명이 풍성해지고 육체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눈을 지키기 때문에 생명과 건강이 풍성한 것입니다(25절).
25절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눈이 바로 보게 하고 곧게 살피게 합니다. 그 결과 우리의 생명은 풍성해지고 우리의 육체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말씀이 풍성하면 진리의 눈을 갖습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려야 하는 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또 모든 저주로부터 해방된 자신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생명이 풍성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진리의 눈을 갖게 되면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얼마나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믿음의 눈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불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을 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장차 되어 질 좋은 일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조각가들은 흔하고 흔한 바윗덩어리 속 숨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본대로 망치질을 해가며 바위 속에 숨겨진 작품을 꺼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어주시고 싶어 하시는 복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것들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그 결과 그는 생명으로 풍성해지고 건강도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이해의 눈을 갖게 됩니다. 이해의 눈을 갖게 되면 생명이 풍성해지고 건강의 축복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문제는 그 만남 속에서 좋은 일도 있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만남 속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처들로 인하여 생명이 약해지고 건강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면 말씀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 결과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해하는 순간에 용서가 되고 용서가 되면 우리의 생명은 더 풍성해지고 육체의 건강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면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로 인하여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지’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오-헨리의 [강도와 신경통]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강도가 총을 가지고 어떤 집에 들어갔습니다. 노인이 누워 있었습니다. 강도는 “손들어!” 했더니 노인이 벌떡 일어나 벌벌 떨며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이 한 손만 올립니다. 강도가 “그 쪽 손 마저 들어” 했더니 할머니는 “신경통이요”라고 말합니다. 그 강도는 신경통이라는 말에 총을 내려놓고 “여보시오 신경통은 언제부터 생겼소. 나도 신경통이 있는데...”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밤새도록 하다가 아침에 잘 있어라 인사하고는 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강도가 신경통에 걸린 경험이 없어서 신경통 환자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강도는 할머니가 자기를 우습게 여긴다고 생각하고 할머니를 향해서 총을 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지면 사랑의 눈을 갖게 됩니다. 사람이 사랑에 눈이 멀면 상대가 별 짓을 해도 이쁘게 보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들이 손자가 수염을 잡고 흔들어도 허허 하고 웃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눈을 새롭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눈, 사랑의 눈, 이해의 눈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생명은 풍성해지고 우리의 육체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이 발을 지키기 때문에 생명과 건강이 풍성한 것입니다(26,27절).
26,2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지면 행할 길을 알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악한 길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의 생명은 풍성해지고 육체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과 생활이 변하는 것입니다.
한국사교수인 이만열 씨는 기미년 3.1 운동 당시 교회가 있었던 지역과 만세 운동이 일어난 지역을 지도에 표시를 하고 겹쳐 보면 거의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고 교인들의 발이 그곳에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인도합니다. 시 119:105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며 우리를 인도합니다.
비행기는 항로를 따라가야 방공망의 미사일을 맞지 않습니다. 배는 해로를 따라가야 암초에 부딪치지 않습니다. 기차는 레일을 따라가야 부서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 마귀의 밥이 되지 않고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면 올바른 판단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생명의 풍성함과 육체의 건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스티브 스코브는 아홉 번이나 직장을 잃고 암담한 상황에서 고민하다가 대성한 백만장자를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까? 저는 직장을 아홉 번이나 잃었습니다.” 그 성공한 백만장자가 말했습니다. “성경 잠언을 매일 한 장씩 읽으시오. 그러면 2년 안에 사장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요. 매일 잠언 한 장씩 읽으면 5년 뒤에 큰 성공자가 될 거요.” 마침내 그는 그대로 해서 10개의 대회사를 거느린 기업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부자학 31장]을 책으로 써서 냈습니다.
죤 훌리(John Fully)박사가 노벨상 수상자 400명을 15년간 연구하여 낸 책이 [유대인과 기독교인](Jews and Christian)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종교 분포도가 기독교인이 64%, 유대인이 22%, 천주교가 11%, 불교인이 0.9%, 회교가 0.1%였습니다. 성경을 읽는 이들이 97%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노벨상을 받은 이들의 나라는 모두 23개국이었습니다. 1등부터 7등까지 보면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네델란드, 영국, 미국, 독일 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움직여지는 나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합니다. 우리의 육체를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설교를 겸손한 마음으로 청종하시고 날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록펠러는 어머니의 유언을 그대로 지켜서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도 그대로만 산다면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록펠러의 어머니의 유언대로 살아볼까 합니다.
어머니의 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 네 오른쪽 호주머니는 십일조 호주머니가 되게 하라. 4. 주일은 반드시 본 교회에서 지켜라. 5. 어떤 일로도 원수 맺지 말아라. 6. 반드시 아침에 하루 일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어 부탁해라. 7. 하루 일을 마치거든 소상히 하나님께 기도로 보고 드려라. 8. 신문을 읽기 전에 성경부터 읽어라. 9. 선한 일을 할 기회가 있을 때 적게 하지 말고 크게 하라. 10. 예배 시간에는 맨 앞자리에 앉아라. 그 10 가지 중에 8번이 ‘신문을 읽기 전에 성경부터 읽어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채우십시오. 그리고 말씀의 능력으로 생명이 풍성해지고 육체는 더욱 건강해지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지키라
잠 4:20-27 / 양인순 목사
한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 무엇이 담겨 있고,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지키는가가 중요합니다.
피터 모펫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물을 청소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차라리 그대의 마음을 청소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라. 그대의 양떼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살찌게 하라. 그대의 집을 방어하기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지키기를 더욱 힘쓰라. 그대의 돈을 지키기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지키기에 더욱 힘쓰라"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우물은 청소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을 청소하는 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자신의 마음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힘쓰지만 자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서는 별로 애쓰지 않습니다.
물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면서도 마음을 지키는 데는 소홀함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을 상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비극의 출발입니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의 마음과 계획은 항상 악했습니가.
그 결과 세상은 죄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렘 17:9)
인간의 마음처럼 부패하고 거짓된 것은 없습니다.
온갖 악한 것이 마음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한번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더러운 것이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8-31)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창조의 아름다운 마음이 상실되고 인간의 마음이 악해집니다. 더러워집니다. 타락합니다.
한용운 선생은 일제 때 나라를 잃고 민족이 암울할 때 철저하게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로서 호적까지 없애고 살았던 분입니다.
한번은 한용운 선생에게 설법을 해달라는 요청했답니다.
전국의 스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지팡이를 들고 강단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더러운 것은 몸에서 나가는 배설물이니라”
이 말을 한 후 조금 있다가 “그보다 더 더러운 것은 사람의 시체가 썩는 냄새니라” 또 조금 있다가 지팡이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그보다 더 더러운 것은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중놈의 마음이니라”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고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행을 하고,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쳐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더럽습니다.
마음의 생각이 악하고, 거짓되고, 헛된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마음이 상했다’ 라고 말씀합니다.
상한 마음(broken heart), 즉 하나님의 형상이 깨졌다는 의미입니다.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기에서 ‘마음’은 무엇을 말할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전한 성품, 인격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온유와 겸손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일까요?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기에 우리들이 청결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잘 만든 그릇이라도 더러운 그릇에는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더럽고, 부패해 있으면 하나님이 좌정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청결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기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요즘은 죄에 대해서 너무 둔감합니다.
죄를 짓고도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이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철저한 경각심과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말씀하십니다.(히12:4)
즉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며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죄를 짓고도 회개하면 되지 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못을 박고 나면 뽑아도 흔적이 남듯이 우리들이 죄를 짓고 나면 그 결과가 남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까지 죽게 하는 간음과 살인죄를 저지릅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시편 51편이 바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다윗이 회개한 시입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9-10)
그는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고의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간음의 결과 밧세바로 부터 낳은 아들이 죽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아들 압살롬에게 노년에 쫓겨 다니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민감성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의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 39:9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에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24:3-4)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고, 허탄한데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는 하나의 마음, 단순한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둘로 갈라지면 능력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마음이 네 개로 갈라지면 다시 1/4로 약화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10개로 갈라지면, 1/10. 30개면 1/30로…
마음이 갈라지는 것, 그것이 바로 염려와 불안, 걱정의 시작입니다.
염려(merimnazo)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마음이 나눠진다’ 뜻입니다.
마음이 갈라지고 나누어져서 결국 마음의 모든 기능을 잃어버린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정신 분열증이라고 부릅니다.
깨끗한 마음은 하나의 마음이요, 비어있는 마음입니다.
내 욕심과 내 의지가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마음입니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와서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아직도 우리 안에 잡초와 같은 쓸모없는 것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내 마음이 두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이 불 때 어떻습니까?
자기들이 좋아하는 배용준 씨를 보기 위해 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갑니다.
일본에서 싸인회를 한다고 하면 몇 일 전부터 호텔 앞에서 날을 세웁니다.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영화 촬영을 하는 강원도 산골까지 찾아갑니다.
그렇다고 배용준 씨하고 손을 한번 잡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친필 싸인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배용준 씨가 자기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줍니까?
혼자 좋아하는 것이지 자기의 성도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열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대방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먼발치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최고의 복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주님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했습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8-11).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이요 만족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영적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영적으로는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걸어온 인생 길 길목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시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 하셨네 ♬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설교를 들어도 성경 말씀을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의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마음이 죄로 더럽혀지고, 거짓과 불의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두 마음을 품고 세상과 교회를 줄타기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순수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날마다 뵈옵는 은혜와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앞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그와 같게 되고 그의 계신 그대로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요일3:2-3).
사도 바울도 그 때에는 우리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듯이 직접 주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13:12).
주님을 향해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앞으로 주님을 직접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만 해도 우리의 가슴은 기쁨으로 설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외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하여,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몸을 매력 있고 균형 있게 가꾸며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사는 것도 중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의 정원을 아름답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말합니다.
“날마다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우리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
남자 분들이 매일 아침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마음 밭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청교도인 요한 훼블(John Favel)은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바르게 관리하는 일은 기독교인의 생활에 있어서 위대한 사명에 속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의 생명을 바르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출발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쓰고 계신지요?
날마다 청결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우리 다같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기도를 생각하면서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옵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변치 않는 맘 내안에 주소서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죄악 가운데서 주님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속에 정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창조하시옵소서!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하시고, 삶 속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맛보게 하옵소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주님을 뵙게 될 영광스러운 그날을 바라보며 순결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을 지켜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건강의 비결
잠언 4:20-27
여름은 뒤로 가고, 이제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가을에 입구, 9월 첫째주일을 맞이하여, ‘가을1차 총동주일’로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건강하게, 힘차게, 가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름은 어쨌거나 역시...여름입니다. 더위를 넘기는데, 기진맥진 합니다.
반대로, 가을은, 여유의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날씨도 여유가 있습니다. 구름은 높고, 하늘은 깨끗합니다. 공기도 맑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가을에 독서를 합니다. 운동을 합니다.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였던 것을, 가을에 하게 됩니다.
9월달은 ‘삶이 더욱 건강하게 되는 달’로 정하였습니다.
그동안 소진되었던, 육체와, 마음과, 생활이... 여유를 찾고, 건강하게 회복되는 달로 보내자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1. 온 육체에, 건강이 되는 생활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건강에 대하여,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건강 하고 싶지만, 건강하는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8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건강해야 되겠다고, 휘트니스 클럽에 가서,
역기를 들고...정신없이 에어로빅을 하면... 20대 청년의 건강으로 돌아올수 있습니까?
잘 못 무리를 해서, 과하게 운동을 하면, 오히려 몸에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습니다.
10살 어린이 한테는, 10살 어린이에게 맞는 건강이 있습니다.
30대에는 30대에 맞는 건강이 있습니다.
80대에는 80대에 맞는 건강이 있는 것입니다.
10살 아이가... 30대 어른처럼 힘을 못쓴다고, 건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하기로 치면, 10살짜리 아이의 건강을, 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하루종일 운동장에 가서 놀아도, 간식 먹고 잠만 자면, 또 운동장에 가서 놀기 시작 합니다.
아이들의 건강을 누가 당할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는..건강에 대하여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건강은 일률적일수 없습니다.
각자에게 맞는 건강의 상태가 있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건강에는 핵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이 있습니다.
손가락에 상처가 났습니다. 그럼, 빨간약을 바르면 금방 났습니다.
하지만 ‘간’이 나쁩니다. 그러면, 겉으로 표시가 않난다고, 괜찬겠지 그리고 방치하면 않됩니다. 건강검사를 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잘~ 해야 됩니다.
자~ 마음이 병이 들고, 믿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겉으로 표시가 않난다고, 괜찬겠지, 그리고 방치하면, 괜찮은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그 마음의 병으로, 그 믿음의 병으로, 생활이, 인생이 크게 병들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여,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귀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에 건강이 됨이라”
자 의사선생님 건강을 위하여, 조언하는 것이 있습니다.
“피로는 만병의 적입니다. 항상 충분히 잠을 자고, 몸을 혹사 시키지 마세요”
“음식은 항상 정량을 먹으세요, 폭식, 과식은 몸에 해롭습니다.”
“간단한 운동을 하며, 몸에 근육을 풀어 주세요. 나쁜 자세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
자, 의사선생님의 건강에 대한 말을 들을때는,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평소에, 마음속에 떠올리며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건강을 크게 상할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습니다.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생활이 불규칙 적입니다.
음식을 맘대로 막 먹습니다. 폭식, 과식을 하고, 엄청나게 맵고, 짠~음식을 즐깁니다.
그러면서 나쁜 자세로, 목을 길게 빼고..자라목이라고 하지요..스마트 폰을 하루종일 합니다.
자. 이렇게 되면, 건강할 수가 없게 됩니다.
건강할때는, 건강을 지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충분히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건강의 말에 귀를 귀울이고,
건강을 마음에 담고, 건강생활을 하면,
큰병없이 건강생활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 이부분을, 믿음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해 볼수 있습니다.
“불신앙은 만병에 적입니다.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세요”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성경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찬송하세요. 기도와 찬송이 없으면, 나쁜것이 틈을 탑니다.”
믿음이 건강할때는, 믿음을 지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조그만 신경을 쓰면, 충분히 은헤로운 믿음생활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습니다. 나의 인생은, 나 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말씀에 귀 귀울지 않고, 내맘대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탕자와 같이 방종으로 걸어가는 위태로운 발걸음입니다.
성경말씀을 먹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쁜 것을 먹습니다. 세상에 말은 얼마나 듣기가 좋습니까? 자극적이고 재미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3절 4절에는 말씀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세상에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게 되면, 정말 정신이 번쩍번쩍 들고, 가슴이 뜨겁고, 눈물이 흐르고...이것이 진리이고, 이것이 의고, 이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다...그리고 다들 좋아 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길로 가면, 혼란과 혼돈과, 멸망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소개한, ‘독일국채연동 DLF’ 상품 을 샀다가, 원금 100%를 날릴 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1억을 가입했는데, 5백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경제에 문외한 이면, ‘독일국체연동 DLF’, 그런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안다고 하는 사람이, 은행에 찾아가서 설명을 듣고, 좋다고 들었는데, 그 아는 것이, 오히려 ‘헛지혜’가 되었습니다.
은행도 이런데, 하물며...사회에는 얼마나 더 많이 황당한데도, 그럴듯이 포장을 하고, 뻔뻔스럽게, 사람들을 홀리는데, 사람들은 ‘헛지혜’로 속는 경우가 허다 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말과, 유혹을... 내가 판별하고 판단하리라. 고 자신있게 생각하면, 그것 자체가 만용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지혜로워도, 속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내가 요량이 좋아도, 넘어질수 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건강을 지키고, 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과 나의 생활이 건강하도록,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담고,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매일매일 생활 합니다.
이럴 때, 내 마음과 인생과 나의 생명을, 건강하게 지킬수 있는 것입니다.
2. 입과 눈과 발을 지켜야 합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영화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지원아, 재미있는 영화가 있는데 보러 가자. 정말 재미있단다”
영화의 제목도 안 찾아보고, 친구가 가자고 하니까...그 친구 때문에... 친구를 따라서 영화관에 갔습니다.
일단 친구따라 영화관에 갔으니, 아무생각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턱하니,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는데 “13일에 금요일 저녁--“더 서틴 프라이데이 나이트” 이라는 제목이 뜹니다.
“저게 뭘까? 왜 하필이면, 13일일까? 금요일은 또 무엇인가?”
알고보니, 그 영화는 ‘공포영화’ 였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는데... 저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내용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가지. 사람이 엄청나게 죽고, 시체가 걸어다니고..,그러다가... 끝이 납니다.
지금이라면, 도중에 걸어나왔을 텐데...
그때는 영화가 끝날 때 까지,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몇일동안 밤에 잠을 못 잤습니다.
뿐만아니라 평소에도, 공포영화의 무서운 장면이 떠올라서 괴로웠습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악마적이고, 참으로 마귀의 것이구나...
저는 다시는 ‘공포영화’, 또 영화속에... 욕을 하는 영화,
깡패가 나오는 영화, 사람을 괴롭히는 영화, 잔인한 영화, 사람죽이는 영화....이런 나쁜영화들은 아예 안보기로 하였습니다.
좋은 영화, 불후의 명작, 큰 감동을 주는 영화도 많은데,
구테여, 나쁜영화를 일부러 보면서, 나의 마음을 병들에 할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좋은 것을, 보기를 힘써야 합니다.
건강하려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25절에는 말씀합니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그렇습니다. 나의 눈으로, 좋은 것을 보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쁜 것은, 안보기를 힘써야 합니다..
창세기13에 보면,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합니다.
롯아...이제 눈으로 이 세상을 좌로보고, 우로 보고....
너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너가 우 하면, 내가 좌히라.
눈으로 보고, 선택하라.
그럴 때, 롯이, 눈을 들어서, ‘소돔과 고모라’를 봅니다.
온땅에 물이 넉넉하고 흡족하니, 보기에 너무너무 좋습니다.
롯이 말합니다. “저는, 소돔과 로모라가 좋게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어떤 땅입니까? 죄악이 관영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머무는 땅이 아닙니까?
즉, 롯은, 그 땅의 죄악은 않보고, 그 땅의 겉모습만 보았던 것입니다.
롯은 믿음의 눈으로 본것이 아니라, 세상의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7절에는 말씀합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죄악을 않보고, 겉모습만 보았던, 롯은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땅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터전을 잡고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곧 그 땅의 죄악이 롯에게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불이 떨어져, 소돔과 고모라를 불탈 때, 롯의 모든 재산을 다 불타버립니다.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두 딸만 데리고, 겨우 몸만 빠져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쁜것을 보기를 힘쓰면 않되겠습다. 좋은 것을 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눈으로 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24절 보겠습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내가 건강하고, 나의 생활이 건강하려면,
구부러진 말을, 버려야 합니다.
비뚤어진 말을, 멀리해야 합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구부러진 말을 버리자, 비뚤어진 말을 멀리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텐트에서 지켜보다가, 지나가는 분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얼른 안으로 모셔드립니다.
정성껏 대접을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말씀하십니다. “내년 이맘때에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자 이때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가, 99세, 98세 이런 때입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보면,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하여 좋은 말을 해주는데, 복의 말을 해주는데,...믿져야 본전이 아니겠습니까?
“믿습니다. 정말 그런일이 일어나서, 나에게, 후사가 생기기를 소원합니다.”
자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만약 이런 믿음의 말을 하였다면....
“네 믿음이 크도다, 너의 믿음대로, 너의 후사가 있을 지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그때부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믿음없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라가 장막문 뒤에서, 듣고 있다가, 마음속으로 웃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하나님께서 즉각 말씀하십니다. “사라라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나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가 깜짝놀라서 발뺌을 합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자, 결과적으로 그 다음해에, 아기가 태어 났겠습니까? 않났겠습니까?
이삭이 잘 태어나서... 이삭의 이름의 뜻이 ‘웃음’입니다.
자, 이정도하여, 아기가 태어났으니 다행이지, 믿음없는 말을 하여, 그 믿음없는 말대로, 아기가 태어 날려고 했는데, 아기가 않태어 나기로 하리라~ 그랬으면 어떻게 할뻔 하였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말, 긍정적인말, 남을 격려하는 말, 그리고 믿음의 말을 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는데, 안전한 등산로로 등산을 합니다. 그러면 안전하게 산 정상에 갔다가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낭떠러지로 등산을 합니다. 위험은 길로 등산을 합니다.
그러면 사고의 개연성이 너무나 높아집니다.
내가 걸어가는 발걸음의 방향이, 죄악을 향하면, 십중팔구...죄에 나쁜 영향을 받을수 밖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나의 발걸음의 방향을, 항상 살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정리합니다.
건강하려면, 평소에 건강생활을 해야 합니다.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에 건강, 믿음을 챙기려면,
평소 마음의 건강생활, 믿음의 건강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건강생활에 비결은, 눈과 입과, 발걸음을 건강하게 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보기를 힘쓰고, 믿음의 눈으로 보기를 힘써야 합니다.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나의 발걸음이, 은혜를 향하여 걸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자 이렇게 하여, 몸도, 마음도, 생활도, 믿음도 건강하게 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의 모든 것을 잘 아시오니
오늘 나의 몸이, 하나님 창조하실 때 건강한 모습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체가 건강하게, 건강생활 하게 하시며
생활이 건강하게, 눈과 입고, 발걸음을 잘 주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험한 세상에서, 마귀의 유혹으로,
육체의 건강,..... 가정과 생활의 건강이 훼손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건강으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음관리를 잘하려면
잠언 4:20-27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면 모든 사람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데 외모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마치 새로 산 물건이 처음에는 아주 좋아서 빛이 나고 깨끗하고 멋있지만 1~2년 사용하면 흠도 생기고 고장도 나고 나중에는 볼품없는 물건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외모도 그렇습니다. 세월이 가면 늙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늙습니다. 병들기도 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다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전에 시카고에서 집회하는데 중, 고등학교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 그렇게 귀엽고 날씨하고 깨끗하던 그 친구가 보니까 80세 노인 같아 보였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병원에서 일하느라 힘들어서 그랬는지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한테 동창들 사진과 연락처가 있는 수첩이 있습니다. 매년 새롭게 나오는데 수첩을 보면 제가 제일 젊습니다. 친구들의 대부분은 완전히 할아버지입니다. 사람은 늙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하더라도 별수 없습니다.
외모는 그림같이 아름다운데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참 아깝습니다. 어디에서든 특별히 예쁜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왜냐하면, 정신병자가 많습니다. 제가 경험해 본 사람 중에 고등학생 한 명과 30대 부인 한 명은 외모는 그림같이 아름다운데 조금 이야기를 해 보니까 정신병자였습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남자들도 어린아이들이나 청년 중에서 보면 인물이 얼마나 조각 같고 깨끗한지 모르는데 이야기 해보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얼굴이 이렇게 깨끗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걱정할 수 있는 정신이 없습니다.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똑똑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머리가 모자라니까 세상 물정, 세상 근심을 모르고 곱게 자란 화초처럼 얼굴이 깨끗합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아름다움도 다 소용없습니다. 또 외모는 아름다운데 성질이 개떡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멋있게 생겼는데 한번 성질을 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평생 고생합니다. 얼굴 하나 보고 결혼했는데 성질이 개떡 같으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외모가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그보다 훨씬 좋은 것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아집니다. 그런 사람은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집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알아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드러나고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나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할 때 사무엘이 볼 때는 큰아들 엘리압이 너무 멋지게 생겨서 이 정도면 왕이 되어도 되겠다 싶어 기름 부을 생각을 했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를 버렸노라.’ 말씀하시면서 ‘나는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중심을 보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가장 중요한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평가하실 때 무엇을 보고 평가하시느냐 하면 우리의 마음을 보고 평가하십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잠언 24장 2절에 보면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 마음을 항상 감찰하시고 마음을 저울질하시고 마음 상태가 어떤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할 때는 마음을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재산이나 학벌이나 세상에서의 지위는 하나도 보시지 않습니다.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답게 생겼느냐는 안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평가를 하십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외모가 아름답다고 다 축복받는 것이 아닙니다. 외모가 매우 아름다워서 제대로 시집을 못 가고 깡패에게 걸려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모가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제대로 시집을 못 간 것입니다. 제정신인 신랑을 못 만나서 그렇습니다. 외모만 보고 판단해 버리는 경솔한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것도, 행복하게 사는 것도 마음에 달렸습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첫째로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10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예수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3장 14절에는 「14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했고 요한일서 3장 14절에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똑같은 말이 나오는데 요한복음에는 ‘믿음으로’라고 그랬고 요한일서에서는 ‘형제를 사랑하므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우리는 연약해서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미워하면 안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 속에는 영생이 거할 수 없습니다. 미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일시적으로 미워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를 불쌍히 여기고 위해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로 사랑하는 마음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도 아닌데 그런 사람이 모여 봐야 그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시면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을 버린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하고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십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런 교회에 두지 않으시고 다 떠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교회에 남아 있어 봐야 서로 헐뜯고 싸우고 똑같은 인간 되고 만신창이가 됩니다. 우리 수영로 교회도 30여 년 목회기간 가운데 위기가 온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저는 그때 교회를 괴롭히는 그런 사람들 끝까지 사랑할 생각만 했습니다. 그 사람을 안아주고 날마다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영혼 멸하시겠다고 하면 저는 그 영혼을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소송을 하고 못된 짓을 해도 거기에 맞서지 않았습니다. 서로 싸우면 똑같은 인간이 되기 때문에 저는 사랑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사랑이 많고 은혜롭고 갈수록 더 좋아졌습니다. 성도들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얼마나 평화롭고 사랑스러운지! 새 성전을 지어도 헌금 작정 없이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9,000평이나 되는 교육관을 지으면서 헌금 작정 없이 기도해서 믿음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육관을 짓는 교회가 지구 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더는 목사도 아니고 신자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도 아닌 끝난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목회를 합니다. 사랑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하기 싫다고 안 해도 되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직 사랑할 마음만 가집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영이신 성령께서 기뻐하시고 함께 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3절까지 보면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서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말을 ‘하나님이 없으면’으로 바꿔 보십시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시 보니까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이 방언하고 예언을 하고 구제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유익도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이 100개의 방언을 한들 무엇하겠습니까. 하나님 없는 사람이 아무리 신앙이 좋은 것 같고 믿음이 좋은 것 같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은 자기 죄를 아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머리를 숙이고 회개합니다. 세리와 바리새인의 차이가 거기에 있습니다. 세리는 겸손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죄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은 자기 죄를 아는 마음입니다. 또 겸손한 마음은 자기 허물, 부족함을 아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은 연약하고 허물이 많아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내가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고 앞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5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시고 높이시고 축복하십니다. 시편 10편 17절에 보면 「17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여러분,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올려 드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예쁘게 보시겠습니까. 겸손한 자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47편 6절에 보면 「6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우리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붙드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손으로 겸손한 자를 붙들어 주십니다. 이 말씀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 11장 2절에 보면 「2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말이나 행동이 교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미움을 받습니다. 일은 잘하는데 욕먹는 사람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욕먹는 것도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하고 자기의 모든 수고와 공로를 물거품 되게 하는지 모릅니다. 교만에 지면 끝납니다.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겸손한 것 자체가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고 높여주십니다. 겸손하면 수지맞습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그런데 지혜 없는 사람은 교만해서 손해를 자주 봅니다. 잠언 15장 33절 「3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언 22장 4절 「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물질의 축복,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높여주심으로 영광을 얻는 축복,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축복은 겸손하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받는 축복입니다. 시편 22편 26절 「26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사야 29장 19절 「19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겸손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언제나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절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악한 사람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는 그런 악한 사람에게도 선을 베풀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다윗의 마음이 아주 착했습니다.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온갖 못된 짓을 해도 다윗은 절대 죽일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죽일 기회가 와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에는 장례식을 잘 치러주고 재산은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사울의 장애인 손자인 므비보셋은 자기와 함께 밥을 먹게 했습니다. 이렇게 착한 다윗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런 선한 마음, 착한 마음이 다윗에게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악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괴롭힌 것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인간이 나타났다 할지라도 우리는 절대 악한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악한 마음은 사단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선한 마음,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악한 사람에게도 잘 대해주고 선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귀하게 쓰실 것을 믿습니다.
네 번째는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도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1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에게 불의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불의한 짓을 합니까. 못된 짓을 어떻게 합니까. 못된 인간이나 못된 짓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는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정직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도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고 함께하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는 줄을 믿습니다. 다윗은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습니다. 다윗은 정직하게 산 사람의 표본입니다. 그래서 역대 왕들을 소개할 때 그 왕이 다윗의 길로 갔느냐 다른 조상의 길로 갔느냐로 구분하였습니다. 다윗의 길로 간 왕은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한 왕입니다. 표준이 다윗입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보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제가 공군 군목으로 있을 때도 보면 많은 목사님이 보고서를 올릴 때 가짜 보고서 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배를 드리지도 않았어도 드렸다고 하고 출석수도 많이 올려서 보고하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 믿지 않는 부대장은 그 목사를 돌목사라고 불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저는 부대에 있을 때 장병에게 주기 위해서 음식을 사러 갔는데 그 가게 주인이 자기 가게를 계속 이용해 달라며 돈 봉투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없어서 돈 대신에 장병에게 주기 위해서 그만큼의 음식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즉각 보안대를 통해서 부대장에게 보고가 되었는데 새로운 목사는 돈을 받지 않고 그만큼의 물건을 더 사갔다고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대장이 그 일 이후로는 저를 정말 목사님 대하듯 잘 대해주었습니다. 부대장이 협력을 잘하니까 일 년 만에 전 장병이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만 하면 출세하는 것도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문제없습니다. 정직함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래서 잠언 2장 7절에 보면 「7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결국에 누가 이기는지 보십시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이깁니다. 가짜는 나중에 다 드러납니다. 시편 84편 11절에 보면 「11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아끼지 않고 좋은 것을 주십니다. 시편 112편 2절 「2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3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4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정직한 사람에게는 살 길이 열립니다. 흑암 중에서도 빛이 일어납니다. 앞이 보입니다. 길이 보입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척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바보입니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완전할 수 있습니까.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실수도 허물도 부족함도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우리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피조물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솔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합격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지 않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합격을 받으니까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직장 생활을 하고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고 솔직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그것이 자본이 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레위기 11장 45절 「45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항상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거룩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 보면 「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더러운 짓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룩하게 살고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소원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말씀대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거룩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사려고 발버둥을 쳐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만 해도 부어주시고 어떤 때는 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가 안겨주십니다. 남들은 기도해도 안 되는데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하나님이 안겨주시고 형통함으로 축복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그릇 자체가 축복받을 그릇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거룩해야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 보면 「20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고 애쓰고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이유는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을 하나님은 귀하게 쓰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 죄짓기 쉬운 상황에서도 뿌리치고 도망쳤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행동했을까요? 거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셉을 하나님은 해몽하는 은사를 주셔서 총리가 되게 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마음 관리를 잘할 수 있을까요? 마음 관리를 항상 잘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거룩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마음으로 관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보면 「32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을 빼앗는 장수가 얼마나 힘이 센 사람입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화를 누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더러운 생각이 들어와도 그것을 다스려서 물리치고 깨끗한 마음을 품고 자기 마음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을 관리하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대신 마음을 관리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조변석개입니다. 매우 잘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은데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것이 갈대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어떤 말에도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기 쉽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예배드리는 시간에 다르고 예배 마치고 문밖에 나가는 순간 달라집니다. 집에 가면 또 달라집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자기 마음을 믿는 사람은 아주 미련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갈대와 같은 마음을 어떻게 믿습니까. 밤낮 변하는 그 마음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래서 잠언 28장 26절에 보면 「26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자기 마음을 믿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자기 마음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믿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자기 마음을 잘 관리할 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 하나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살면 됩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20절에 보면 「20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말씀에 주의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으로부터 눈을 떠나지 않게 하고 말씀을 마음속에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살면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로마서 10장 17절 말씀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거듭난다고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을 듣는 동안에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듣는 동안에 거듭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으면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거룩하게 사는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시편 119편 105절을 보면 「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다 보면 내 발에 등이 달린 것처럼 되어서 한밤중이라도 괜찮습니다. 등 때문에 길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했는데 내가 가는 길에 빛이 비치면 얼마나 가기 편합니까. 말씀이 빛입니다. 말씀대로 따라가면 우리는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것은 수학공식 같은 공식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정비례합니다. 이것을 꼭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할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말씀을 버리면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울 왕이 망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패망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말씀을 버렸습니다. 말씀을 떠났습니다. 말씀을 잃어버리고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호세아 4장 6절에 보면 「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보지도 읽지도 듣지도 않고 떠나버리니까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졌습니다. 십계명이고 뭐고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말씀을 저버린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4절에 보면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7장 9절에도 보면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시편 1편에 보면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말씀 사랑이 하나님 사랑과 똑같습니다.
두 번째는 입 관리를 잘해야 마음 관리를 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24절 「24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말은 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 없는 말 하지 마세요. 언제나 더러운 말 하지 말고 거룩한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되는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말 말고 긍정적인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말만 하시고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만한 말은 하지 마시고 언제나 겸손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입 관리를 잘해야 거룩한 사람이 되고 마음 관리를 잘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눈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잠언 4장 25절 「25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여러분 눈 관리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보면 좋은 생각이 납니다. 은혜로운 것을 보면 은혜가 넘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간증이 있는 책을 읽어보십시오.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은혜가 넘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김하중 장로님의 「하나님의 대사 2권」이 나왔습니다. 장로님이 친필사인으로 제게 보내주셔서 제가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그 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는지! 김하중 장로님 처가에 연세 높으신 어르신이 있는데 불교에 푹 빠지신 분이었습니다. 절대 예수 믿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분이셨는데 김하중 장로님이 이 책을 보내드렸더니 이분이 책을 읽다가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시고 이제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봐도 좋은 책을 봐야합니다. 음란한 책을 보면 볼수록 음란의 영이 역사하면서 우리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잘 지키려면 눈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발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잠언 4장 26절에 보면 「26네 발이 행할 길을 1)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에 따라서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거룩할 수도 있고 더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곳에나 가면 안 됩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시편 1편 1절에 보면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이 있는 자리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발을 그런 곳으로 옮기면 안 됩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를 택해서 그곳에서 살다가 보니까 그 집안이 뭐가 됐습니까.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하여졌습니까. 아브라함과 있을 때는 그래도 아브라함과 비슷하게 경건하게 살았는데 아브라함과 헤어져서 죄악 많은 소돔 고모라 땅에 가니까 별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친구 따라 술집가고 노름하는 곳에 가다 보면 그 친구와 똑같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친구 데리고 교회로 오세요. 그것이 여러분도 살고 그 친구도 사는 길입니다. 은혜 되는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십시오. 말씀 듣는 자리로 옮기십시오. 우리가 발걸음을 어디로 옮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잘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주신 말씀대로 마음 관리를 잘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 밭 가꾸기
잠 4:20-27 / 이태원제일교회
들어가는 이야기: 무엇이 그 중심에 있는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한 집사님이 있었다. 그는 늘 생각하기를 부동산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역장을 대신하여 구역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찬송을 불러야 하는데 이렇게 인도하였다. “다함께 찬송가 502동 부르심으로 구역예배를 시작합니다.” 구역원들이 킥킥대며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옆에 있는 집사님이 알려 주었습니다. “집사님, 502동이 뭐야? 502장이지.” 그러자 실수를 깨닫고 사과하며 진행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새 부동산에 정신이 팔려서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읽자 하면서 이렇게 말해 버렸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편 23층 1호에서 6호까지 보겠습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무엇이 그 중심에 있는지를 물어보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그 중심에 있느냐에 따라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을까요? 오늘 성경 속 지혜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다른 것들보다 마음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은? 솔로몬의 잠언:
영국의 정치가인 필립 체스터필드는 자신이 경험한 지혜를 모아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의 지혜를 모은 책이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버지의 말”, “아들아, 너는 이렇게 살아라.” 등의 제목을 가지고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인 잠언은 잘 아시겠습니다만 지혜자 솔로몬이 말한 지혜를 모아둔 책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일러 주듯이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지혜자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하게 전해주는 지혜가 있습니다. 바로 마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 밭을 잘 가꾸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음 밭을 잘 가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1) 구부러진 말을 버리고, 비뚤어진 말을 입술에서 멀리하기
언어생활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구부러진 말과 비뚤어진 말이 무엇일까요?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괴롭히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귀가 두 개인 것은 양쪽으로 두 배로 들으라는 것이지만, 입이 하나인 이유는 말을 적게 하라는 이유이다.” 우리가 우리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상처주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말이 나오는 혀를 길들이라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약 3:8-11)”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하면서, 누군가를 험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한 통계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은혜 받은 것을 잃어버리는 곳은 생각해 보면 멀리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은 것을 까먹게 하도록 하는 사람은 회사의 상사나 우리의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주일예배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면서랍니다. “아니, 저 권사는 차를 왜 저렇게 운전하는 거야?”하면서 말이지요.
그러기에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 141:3)” 하나님께서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서 하고자 원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운 입술로 서로를 세우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라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입술로 남을 험담하고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는 입술답게 하나님의 기쁨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세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2) 바로 보는 눈을 갖고, 앞을 곧게 살펴보는 눈꺼풀
관점을 바로 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 있습니다. 신문을 보아도 관점을 가지고 보고, 친구를 만나거나 이웃을 만날 때도 관점을 가지고 봅니다. 흔히 말하는 어떤 색안경을 끼고 있는지가 마음 밭을 가꾸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관점을 정확하게, 곧은 세계관을 가지고 살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 6:22)” 우리가 어떤 것을 보는지는 몸의 등불이 되는 눈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로 본다면 온 몸이 밝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보지 못한다면 온 몸이 어두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바로 본다하면서, 어떤 일을 대한다 하면서 나만의 고집과 편견을 가지고 오해하면서 보고 있지는 않나요? 나만의 생각과 편견을 가지고 속단해 버리지는 않나요? ‘왜 나에게만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길까?’하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나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모두 겪으면서도 그것을 극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준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고통으로만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서 하나님의 뜻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답게 마음 밭을 잘 가꾸는 비결입니다.
그러기에 감옥 속에 있을지라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임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관점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주어진 상황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믿을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참된 기쁨과 평안이 충만할 것입니다. 최근 세상에서는 B.C(Before Christ: 주전)와 A.D(Anno Domini: 주후)로 나뉘던 역사가 이제는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로 그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을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나요? 믿음의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며 마음 밭을 잘 가꾸는 우리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기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라는 이야기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중심을 굳게 붙잡고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어디에든지 치우쳐 살아가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선택을 정하는 기준이 되고, 또 그것을 핑계로 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우선순위를 잘 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바알과 하나님 앞에서 머뭇머뭇 거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왕상 18:21)”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먼저 두고 살아야 할지, 아니면 세상에 있는 내 유익을 우선으로 할지 늘 고민하면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세상에 있는 것들이 더 가치 있어 보이고, 더욱 귀중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세워 두어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잘 정하지 못한다면 목적지를 세우지 않고 달리는 열차와도 같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번은 기차를 타고 가는데 제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자리번호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저는 부산을 향해 가는 열차였고, 그 사람은 목포로 가는 열차를 가야 했는데 실수로 부산에 가는 열차에 탄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다음 정류장에서 값을 더 주고 다음 열차를 타야만 했습니다. 우리 삶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바른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우선순위로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얻는 이익이나 눈에 보이는 물질과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순위로 삼을 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우선순위로 정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때는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채워 주십니다. 마치 목적지를 바로 정하고 간다면 여유 있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앞서 말했던 이야기에서 저는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열차를 탄 덕분에 약속시간에 맞게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차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 있게 풍경을 누리며 부산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포로 가야하는 기차를 놓친 사람의 모습은 허둥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없었고 급하게 달려가느라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약속시간을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급하게 가느라 여유로운 커피 한 잔 마시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의 일도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 밭을 가꾸기 위해 정말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할 것입니다.
언어생활을 깨끗하게 하고 관점 그리고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마음 밭을 예쁘게 가꾸는 일입니다. 마음 밭을 가꾸는 일을 또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사전에서 “믿음의 대상을 굳게 믿고 가르침을 지키며 이를 따르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마음을 잘 가꾼다는 것은 예수님을 굳게 믿고 그 가르침을 지키며 이를 따르는 일입니다. 이러한 신앙에는 필수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세로 삼가고 조심하는 경건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경건이 있을 때 우리는 생명의 근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경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지혜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잠언 3:20-21)” 이 말씀은 새로운 출발을 앞에 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여호수아 1:8에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여호수아 1:8)”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경건이요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생활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마음 밭을 가꾸어 나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을 담은 디모데전서 4:8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육체의 훈련도 약간의 유익이 있다면, 경건은 지금의 삶과 앞으로의 삶에까지 약속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마음 밭을 잘 가꾸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열매로 맺힌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이, 관점이,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면 생명의 근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경건, 약속 있는 씨앗을 뿌리기.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작년 가을, 저는 저희 교회 양육, 사역대학에서 영성훈련반을 인도했습니다. 저희 영성훈련반에서는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그렇게 마음 밭을 잘 가꾼, 경건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한 어른의 흔적을 찾아 갔었습니다. 그 어른의 유언을 함께 들었는데, 오늘 우리에게 마음 밭을 잘 가꾸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우리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은 하나도 없다. 문자 그대로 나는 내게 속한 집 한 칸,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이미 너희들도 다 알 줄로 생각한다. 무슨 재산을 소유한다고 하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부끄러운 생각이 든 까닭이다. 이 세상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그저 나그네가 길 가는 것과 같은데 내가 길을 가면서 꽃씨를 뿌리면 내가 지나간 길에 꽃이 많이 필거다. 또 이 다음에 꽃이 피면 열매도 맺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가는 길에 혹 좋지 못한 씨를 뿌리면 잡초가 날 뿐이야. 내가 특별히 부탁하는 것은 그저 인생길 가면서 전도할 수 있으면 전도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으면 사랑을 베풀고,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좋은 사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좋은 사업하고 그저 누구에게나 어디서든지 선한 씨를 심도록 많이 뿌리도록 오늘을 사는 우리가 많이 뿌리면 다음 세대가 거둘 것 아닌가? 또 한 세기 후에라도 거둘 것 아닌가? 그뿐인가 하늘나라에서도 거두어.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좋은 씨를 많이 뿌리라.” (한경직 목사의 유언 중에서)
우리는 어떠한 씨를 뿌리면서 살고 있습니까? 마음 밭을 어떻게 가꾸어 가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어떠한 경건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바라기는 우리의 언어생활이, 관점이, 우선순위가 하나님을 닮아서 아름다운 경건의 열매로 맺혀서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안정섭 목사 잠언 강해
잠언 4:20-27
앞부분에서는 지혜를 따라 걸으면 걸어갈 때 넝쿨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 했고 달려도 걸릴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했다. 지혜의 길의 반대는 형이 확정된 악독한 자들의 길과 형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악한 자들의 길이다. 그런 길은 발을 들여놓지도 말고 들여놓았다면 즉시 돌아서 나오라는 것이다. 발을 얽어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끊어 버리라는 것이다. 의인의 길은 점점 더 밝아지는 아침햇살같지만 악인의 길은 캄캄해서 걸려넘어져도 모르기 때문이라 했다.
I. 마음 안을 잘 지켜라(20-23)
20절은 다시 내 아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잠언의 기록자는 몸의 감각기관을 가지고 지혜의 말씀을 잘 간직하라고 부탁한다. 먼저 20절은 귀를 사용해서 잘 들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근거로 이제 자신의 말을 잘 들으라 부탁한다. 말이란 아버지가 하나님의 지혜를 말로 강의하듯 가르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으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의 이르는 것” 에 귀를 기울이라 부탁한다. “이르는 것” 이란 명령이란 뜻이다. 아버지의 명령인 것 같지만 아버지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따라 전해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러한 명령은 듣기 싫지만 귀를 잡아 늘여가며 들어달라는 것이다.
20절에서는 귀를 사용했는데 21절은 이제 눈을 사용해서 잘 감시하라 한다. “네 눈에서 떠나지 말며” 는 포로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듯 지혜를 감시하라는 것이다. 사실 아버지로부터 들은 가르침과 명령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혜의 말씀을 여인으로 비유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잘 감시하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두어 두고 잘 지켜야 할 곳은 21절 뒷부분에 보면 마음이다. 마음 속에 지키라는 말은 마음 안에 잘 가두어두고 절대로 잊지 말라는 뜻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책이 없었기에 아버지로 부터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잘 듣고 그 말씀이 계속 마음 안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소리를 내어 읊었다. 가르침과 명령들이 마음 속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계속 반복해서 소리를 내어 읊조리면서 감옥을 지키는 간수처럼 계속 확인하라는 것이다.
22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들은 지혜를 잘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아버지가 전해준 지혜의 말씀인 가르친 것과 명령한 것은 “그것들을 얻는 자들에게 생명이 되며” 라고 했다. 이는 3:18절에서 단단히 끌어 안으라 한 그 지혜의 말씀을 놓침으로 인해 죽게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그렇게 다시 찾으면 죽을 자들이 살게 된다는 뜻이다. 또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라고 했다. 원어는 치료해 준다는 뜻이다. 죽을 자가 살게 되는 것은 아버지를 통해 가르치신 것과 명령하신 것을 통해 치료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간직하면 그 말씀으로 인해 마음에 평화를 얻고 치료를 받아 죽을 자가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비유로 말하고 있기에 육신의 건강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영적으로 죽을만큼 아팠던 사람이 회복되어 영적으로 건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23절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했다.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들이 계속 감금된 채 남아있게 하라는 것이 어떤 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샘이 그 말씀으로부터 흐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들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 그 말씀으로부터 치유의 샘물이 흘러나와 우리의 몸을 치료해 준다는 것이다. 원어는 감금하고 지키는 것과 탈출하는 것이 서로 대조된다. 지혜를 잘 지켜 마음 안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하면 지혜로부터 생명의 샘물이 마음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갇혀있는 마음의 창살 사이로 생명의 샘물들이 흘러나와 자신을 치료할 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까지 치료하는 것이다.
마음 안을 지키는 길의 중심에는 눈이 있다. 귀로 들은 것과 마음 안에 간직한 것의 사이에 눈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눈은 실제로 보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 안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눈이다. 귀로 들은 지혜의 말씀을 마음 안에 잘 머물러 있도록 마음의 눈으로 지키면 거기서 온 몸을 살리는 생명의 물이 흘러 나온다는 것이다.
II. 마음 밖을 잘 지켜라(24-27)
24-27절은 어떻게 마음을 지키는지를 말한 것이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계속 마음만 감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을 지키는 비결은 먼저 24절은 속이는 입으로부터 돌아서라 했다. 고대인들은 마음과 직접 연결된 통로는 입이라 생각했다. 고대 이집트 문학에서도 입은 마음으로부터 직접 연결된 관이라 했다. 입은 마음에 연결된 열린 파이프이기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마음 안에 있는 악한 것들이 입밖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를 간직하고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제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라고 했다. 궤휼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본래 머리카락을 땋은 것을 뜻하는 말이다. 신체 기관에 쓰일 때에는 비비 꼬여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을 뜻한다. 복된 말을 해야 하는데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상처를 주는 등의 말만 하는 것이 바로 고장난 입이고 비비 꼬인 입이다. 비비 꼬인 기형적인 입으로 상대를 속이려는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15절에서는 악한 사람의 길을 피하고 돌이켜 떠나라 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입으로부터 돌이키라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악한 사람들을 따라가며 그들처럼 꼬인 입으로 비비 꼬아 속이는 말은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마음 안에 하나님의 지혜를 간직하는 길은 비비 꼬아 속이는 입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돌아섰다면 그 다음은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라고 했다. 사곡이란 미끄러져 빠져 나가는 입술이란 뜻이다. 꽈배기처럼 비틀어 꼬는 말을 하는 사람들보다 한 수 더 높은 악인들은 미끄러져 빠져 나가는 입술이다. 미끄러져 빠져 나가는 입술이란 말로는 말씀을 지키는 척하고 순종하는 척하고 사람들 보는데서는 거룩하게 지키는 척하지만 사실은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는 입술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면서 사실상 경멸하는 자들이다. 비비 꼬인 입을 피해서 돌아서면 그 다음에는 이목구비가 똑바른 사람들이 유혹한다. 이들의 입술은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입술이기에 까딱 잘못하면 이들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입술에서 멀리 떠나야 하는 것이다.
또 어떻게 마음을 지키는가? 25절은 “네 눈은 바로 보며” 라고 했다. 네 눈들은 계속 앞만 보게 시키라는 것이다. 이는 눈의 방향이 앞에 있는 길을 보게 시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라고 했다. 어떻게 앞에 있는 길을 보는가 하면 계속해서 그 앞을 눈꺼풀로 훑어가면서 보라는 것이다. 만약 악한 곁길이 그리로 오라고 유혹하거든 그 눈꺼풀을 닫아버려 눈이 보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25절은 눈과 눈꺼풀의 협응작용으로 하나님의 지혜의 길만 바라보고 딴길로 벗어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또 어떻게 마음을 지키는가? 25절에서 눈으로 앞만 보고 눈꺼풀이 다른 곳을 보지 못하게 했다면 26절은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라고 했다. 이는 길이 평평한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혹시나 발을 휘감는 오라 줄이나 덫 같은 것은 없는지 또 걸림돌은 없는지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위험을 피하면 모든 네 길이 안전하게 잘 세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26절의 강조점은 똑바로 하나님의 지혜의 길만 따라갈 때도 행여나 발을 얽어매는 것이나 걸림돌이 없는지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또 어떻게 마음을 지키는가? 27절은 이제 발이다.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라는 말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발을 내딛지 말라는 것이다. 잘못 생각하면 왼쪽은 악한 길이니 가면 안되지만 오른쪽은 선한 쪽이니 가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로만 갈 것이며 어느쪽으로도 샛길로 빠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한쪽으로 발을 내딛었다면 즉시 발길을 돌리라는 것이다. “네 발은 악에서 떠나게 하라”는 말은 악한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발을 내딛는 것은 지혜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바르게 행하는 것이 지혜의 말씀을 마음 속에 잘 간직하는 비결이고 완성이다.
이 부분은 우리 몸의 감각기관을 중심으로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24-27절은 입-눈-발이다. 역시 중심에는 눈이 있다. 21-23절이 마음 안을 감시하는 눈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지혜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길을 감시하는 눈이다. 역시 실제 눈이 아니고 마음의 눈이다.
결론 및 적용
오늘 말씀은 먼저 귀-눈-마음의 순서로 나왔다. 눈이 그 중심에서 잘 감시하라는 것이다. 또 행하는 길은 입-눈-발의 순서로 나왔다. 역시 눈이 그 중심에서 말과 행동을 잘 감시하라는 것이다. 귀-눈-마음과 입-눈-발 사이에는 죽을 몸이 생명의 물로 인해 건강해지는 그림이 나왔다. 들은 말씀을 잊지 않도록 마음을 잘 감시하면 그 말씀으로 인해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 말씀을 근거로 말과 행실을 잘 감시하는 길이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것이다.
24절은 원어에서 돌아서라 또는 비켜서라는 말로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21-23절의 마음 안을 살핀 뒤에 혹시라도 잘못된 말이 나가지 않도록 즉시 돌아서거나 비켜서라는 것이다. 또 24-27절에도 역시 돌아서라 또는 비켜서라는 말이 나온다. 마음 밖의 길을 살핀 뒤에도 잘못된 행동이 있다면 즉시 돌아서거나 비켜서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의 말씀을 간직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늘 안과 밖을 잘 감시하고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즉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서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것이지만 돌아서지 않고 육신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멸망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두마디로 요약한다면 감시하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마음을 지키라
잠언 4장 20-27절
아버지의 교훈,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는 교훈을 찾아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잠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잠언의 주제는 단연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의 마음뿐, 그 누구도 자녀의 삶을 직접 책임져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역할이란 자녀들이 자신의 인생을 직접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전수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언이 이야기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잠언의 너무도 유명한 구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곧, 성경이 이야기하는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가 자녀의 인생을 보장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인 지혜를 전수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은 '지혜로운 자녀가 되게 하소서,' '지혜로운 다음 세대가 일어나게 하소서'입니다. 마음 _ 지혜가 머무는 장소 본문 20절과 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아버지가 주는 교훈, 곧 지혜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고 그 교훈을 깊이 간직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런데 본문 21절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지혜를 지키는 장소가 등장합니다. 어디입니까?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러므로 잠언이, 그리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지혜가 머무는 장소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23절)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지혜를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요,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지혜는 똑똑한 머리가 아니라 지혜로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나 똑똑한 머리, 좋은 실력을 갖춘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똑똑한 머리를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혜로운 마음을 간직한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다음 세대의 모습은 똑똑한 머리가 아니라 지혜로운 마음을 소유한 세대가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아버지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을 지키라,' 특별히 '지혜의 마음을 지키라'입니다. 마음 _ 감정과 이성과 의지 그렇다면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첫째로, 마음은 '감정'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기쁨, 슬픔, 즐거움과 같은 감정이 일어나지요. 마음을 지킨다는 첫번째 의미는 우리 마음의 감정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보낸 편지에서 "항상 기뻐하라"라고 권면합니다(살전 5:16).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강조합니다. 본문 21절도 지혜를 마음속에 지키라 말씀하면서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라고 덧붙입니다(23절). 곧,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 마음의 감정을 지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은 '이성'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마음은 감정과 함께 이성이 함께 자리잡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마음을 지킨다는 의미는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고 바르게 판단하는 지혜로운 이성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 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마음을 지켜 지혜로운 마음을 얻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앞의 일을 바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마음은 '의지'가 머무는 장소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마음을 지킨다는 의미는 의도적으로,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의지와 행동을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지요. 잠언에서는 술, 죄인의 형통, 음녀 등이 인간의 의지를 흐트러트리는 유혹의 요소로 등장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을 지키라 권면하는 본문의 마지막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27절) 이렇듯 인간의 마음은 감정과 이성과 의지가 머무는 장소입니다. 곧, 마음을 지킨다는 말은 감정과 이성과 의지 - 지정의 - 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 인격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지혜로운 마음을 소유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자녀들이 마음을 지키는 이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들의 삶 속에도 수많은 역경과 시련이 찾아오겠지만, 그때마다 부모가 일일이 이끌어줄 수는 없겠지만 우리 자녀들이 스스로 마음을 지켜 전 인격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힘차게 걸어갈 수가 있다면 그들은 가장 복된 인생을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모 된 우리가 자녀들에게 반드시 전해주어야 할 아버지의 교훈, 그것은 '마음을 지키라'입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마음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수없이 많은 결심을 하였지만 나의 감정과 이성과 의지를 조절하지 못하여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지키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녀들에게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고 탓하기에 앞서,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달라고 우리 부모 세대가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의 혁신
잠언 4:20-27 / 이홍열 목사
본문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매우 귀한 말씀이요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작은 일에도 놀랍니다. 큰 일이 있으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큰 일을 당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데려가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국적인 일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에서 40년 동안 시종 노릇을 하며 열심히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는 역사의 전면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옆에서 본 사람은 압니다. 모세가 산전수전을 다 겪는 것을 여호수아는 모세의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험난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여호수아는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여호수아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1:5~6)”,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마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마음을 단단히 무장시키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서 많은 일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단단히 무장되어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리더는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리더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눅 17:20)”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기쁨을 유지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치면, 어떤 일도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든 사람은 무엇을 하든 힘듭니다. 웃고 싶어 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웃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납니다. 웃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웃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잘 웃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입니다(잠 17:22).
하루에 10분 웃으면, 4백 칼로리의 열량을 소모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웃을 때에 평소보다 산소공급이 증가합니다. 자주 웃으면 혈액순환이 빨라져 심장병, 동맥경화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웃으면 침 속에 있는 글로불린A가 증가합니다. 글로불린A는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는 면역체입니다.
그런데 감정이 메말라버리면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화내지도 않습니다.
화낸다는 것은 감정이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화내야 하는데, 화내지 않는다는 것은 중증입니다.
심력(心力)은 영력과 연관되어있습니다. 영력이 있으면 심력이 있습니다. 심력이 있으면 영력이 있습니다.
마음이 부요하면, 천하를 얻은 것 같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좋은데,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그릇과 같습니다. 우주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넓을 수도 있고, 한 사람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좁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겉모습을 아무리 꾸며도,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면, 사람들이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 외모를 보려고 하다 보면, 내면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혜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것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다 잃어버립니다.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돈에 마음을 빼앗기면, 돈이 마음을 주장합니다. 이성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을 조절하려고 하지만,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자기 마음이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죄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했습니다. 건강에 좋은 것이 많습니다. 사람의 수명도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심각하게 깨어지고 무너져있습니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깨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 수련을 하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상하면, 마음이 흐트러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병들면, 몸도 병듭니다. 육체의 병을 고쳐도, 마음의 병을 고치지 않으면, 육체의 병이 재발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경험하는 병들은 대부분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암입니다. 구약시대에 사울 왕은 우울증을 경험했습니다.
마음의 병은 빨리 진단하고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치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입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은 암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암에 걸렸다 해도 정신이 건강하면 복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병들면, 모든 것이 정지된 것과 같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혜자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것을 지켜도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음을 지키면,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생명의 샘이 마음에서 흘러나옵니다. 생명의 샘이 흐르면 죽지 않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지킨다는 것은 매우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땅을 방치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이 됩니다. 끊임없이 관리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 공해가 대단합니다. 먼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일 청소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에 쉽게 때가 낍니다. 영혼이 쉽게 깨어집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제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깨어져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녹초가 됩니다. 염려와 근심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 저녁에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힘들면 지쳐버립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듭니다. 저녁에는 녹초가 됩니다.
잠언 25장 28절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을 제어하지 않으면, 집에 벽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호막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변화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껍데기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변화되어야 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틀, 마음의 그릇이 바뀌어야 합니다. 삶의 변화는 마음의 태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의 태도가 삶을 바꾸어놓습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청진기, 초음파, 내시경 등으로 인체를 정밀하게 들여다봅니다. 숨어있는 작은 것까지 다 발견합니다.
피의 상태, 뇌의 상태, 뼈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몸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분노합니다. 이것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미움의 감정이 그대로 있으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불안정하게 합니다. 미움의 감정이 처음에는 작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져 다른 감정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사람을 보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마음이 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가면, 우리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난 분노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 내가 아이의 행동에 왜 그렇게 화를 내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나로 하여금 화낼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화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남편 때문에 화가 나는데, 남편에게는 화내지 못하고, 아이에게 화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분노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왜 미운가, 남편 때문에 화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물론 남편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기 안에 있는 욕망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인한 남편에 대한 분노는 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이는 희생자, 피해자가 됩니다.
미움, 분노, 시기 등의 감정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보면,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배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행동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예배를 드려도 마음에 우상이 있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은 살인입니다(요일 3:15).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주목하시는데, 우리는 마음을 방관하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동에 대해서도 심판하시지만, 마음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일어나는 작은 생각 하나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말과 행동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작은 생각 하나라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방치하면 점점 커집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마음에 있는 은밀한 것을 보여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나의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시편 139편 23~24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슨 마음으로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마음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시고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마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씨를 뿌릴 때, 밭이 중요합니다. 밭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씨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습니다. 옥토에 씨를 뿌려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 마음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가 있는 상태에서 말씀을 받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마음에 제대로 스며들지 않습니다.
상처와 말씀이 함께 있기 때문에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은 은혜 받기 어렵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말씀을 왜곡시켜 받아들입니다. 말씀이 말씀으로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합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 밭에 말씀이 떨어져야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음 밭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기 전에 마음 밭을 옥토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 밭을 기경해야 합니다. 회개가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회개가 없는 시대입니다. 말씀을 받아도 말씀이 마음에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돌밭이나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앗처럼, 싹이 나오는 듯하다가 없어져 버립니다.
마음 밭이 옥토같이 되려면, 마음 밭을 기경해야 합니다.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회개를 통해 영혼이 촉촉해져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 깨끗해진 심령은 스펀지와 같습니다. 말씀이 빨려 들어갑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이 떨어지면, 백 배의 결실을 거둡니다.
씨앗이 하나 떨어졌는데, 백 배의 결실을 거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므로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이 주는 영향력은 놀랍습니다.
오늘날에는 회개하는 신자, 회개하는 교회를 보기 힘듭니다. 이 시대의 답은 하나입니다. 가정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 회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자신의 죄를 봐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면, 십자가를 통해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기경됩니다. 기경된 마음에 말씀이 떨어지면, 말씀이 결실합니다. 그래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굳어진 마음은 치유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마음이 치유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마음이 치유됩니다.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만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더 큰 사랑을 받으면 상처가 치유됩니다. 형제 사이에서 받은 상처는 부모가 어루만져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누가 만져줄 수 있습니까. 자녀는 부모의 마음에 생긴 상처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더 큰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농축되어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마음의 병이 모두 사라집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만드신 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마음의 상처가 모두 치유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회복됩니다. 옥토같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합니다. 말씀이 영혼을 흔들어놓습니다.
깨어진 마음, 굳어진 마음이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옥토같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은 최전선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마음에 달렸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까?
첫째, 듣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0절에 보면,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과 귀는 연결되어있습니다. 듣는 것이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무엇을 듣느냐가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고, 쓸데없는 것을 많이 들으면, 마음은 전쟁터처럼 됩니다. 현대인들은 잡다한 소리에 민감합니다. 잡다한 소리는 차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보의 홍수 시대입니다. 몰라도 되는 것, 엉터리, 거짓말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가 오염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익숙해야 합니다.
둘째, 보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5절에 보면,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보는 것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은 유혹의 통로가 됩니다.
과거에는 형상화된 우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형상화하기 전에 먼저 마음에 우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 우상입니다.
내가 보는 것 같지만, 내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봅니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봅니다. 관심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계속 봅니다. 욕망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자신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은 영상 시대입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강하게 영향을 끼칩니다.
보는 것을 방치하면, 뇌에 박혀버립니다. 어린아이의 머리에 영상이 박혀버리면, 아이의 일평생 지워지지 않습니다.
미디어 시대에는 보여주는 것이 범람합니다. 가까이에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슬쩍 훔쳐본 것이 일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보는 것에 마음을 점령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굉장히 자극적입니다. 정신을 빼앗아갑니다.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만 봐도 박살 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조금만 허용해도, 마음을 점령당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지배당할 수 있습니다.
정욕과 눈은 연결되어있습니다.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강력하게 오염시킵니다. 그러므로 선별해서 봐야 합니다. 매 순간 선택해야 합니다.
셋째,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4절에 보면,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은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마음에서 말이 나갔지만, 말하는 순간 말은 마음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마음이 구부러졌기 때문에 구부러진 말을 합니다. 구부러진 말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구부러진 길을 가게 합니다. 폭력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폭력적으로 행동합니다.
이처럼 말은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침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쏟아붓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말을 쏟아붓습니다.
대화할 때에는 상대방과 내가 말하는 간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는 말하는 간격이 없습니다.
말하는 간격이 없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자기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폭력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침묵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할 때에는 믿음의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말에 힘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믿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믿음의 언어로 축복해야 합니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말한 것은 돌에 새긴 것과 같습니다.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말이 일평생 그 아이를 이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넷째, 발을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6~27절에 보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발이 어디로 가는가를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봉사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낮은 자리로 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어두운 곳으로 가지 말고, 욕망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바꿔주십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눈과 귀, 입과 발 등 모든 영역과 연결되어있습니다. 어느 한쪽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영향을 받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충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점검하고 훈련하고 다듬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시기심이 생겼을 때, 그 시기심이 축복으로 바뀌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마음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십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마음에 청진기를 갖다 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숨겨져 있는 것이 말씀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화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 앞에 굴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를 내어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평생의 작업입니다. 말씀을 꾸준히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닌 것은 끄집어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 중심에 오셔야 삶의 주인이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삶의 주인이 되실 때, 우리는 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마음의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삶을 이끌어가시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마음의 주인입니까? 자아가 삶의 중심에 있으면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마음이 준비되어있으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언제든지 반응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변화를 받아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기경되고 치유되고 변화되어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처럼 흘러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마음껏 사용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람직한 가정(잠언 4:20-27)이홍열 목사 지난 수요일 신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지원용 박사님 숙소에 초대되어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지난번 우리 남부교회 성서연구 클래스에서 설문조사한 바 있는 ‘바람직한 목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 크로스웨이 성서연구 시간에 ‘바람직한 목사의 조건’ 열 가지씩을 써오는 숙제를 내어 그 결과를 ‘루목연보’라는 간행물에 발표를 했는데 그 발표된 것을 가지고 우리 교단 신학교 대학원생들이 수련회에서 이야기 주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 설문결과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이왕 못생기게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많이 웃을 것.교우들에게 친정 아버지 같은 이미지를 심어 주실 것.자녀는 하나정도로 낳으실 것.목사님이라고 해서 너무 거룩한 척 내숭떨지 말 것.교우들을 위해 날마다 울어주는 목사가 될 것.여유 있는 풍채와 부드러운 모습으로 감정표출을 자제할 것 등이 그것입니다. 이 설문결과를 보고 우리 학생들이 목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며 큰 걱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목사상에 대한 설문 결과를 보면서 저는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특히 5월 가정의 달에 말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주제를 놓고 설문조사를 하면 재미있는 결과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 5월 첫 주일을 가정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가정입니다. 다른 모든 제도와 조직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가정제도만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습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일부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전 존재가 모두 파멸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라도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지켜져야 합니다. 십계명을 보아도 그중 적어도 50%이상은 가정과 연관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주간은 특히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을 잃고 나면 금은 보화, 명예, 권세도 사실은 의미를 잃고 맙니다. 행복한 가정이 전제되지 않는 그 어떤 사회적 성취도 실상은 신기루요, 사상누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지키고 가꾸려는 애씀의 수고가 모두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성서 본문 잠언 4장에서 바람직한 가정의 조건 4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 말씀은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인생교훈을 전달하는 잠언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아들이라는 한 개인이 국한시키지 않고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에 적용시켜봅니다. 인생의 모든 경험을 가진 연로하신 아버지가 새롭게 가정을 이루는 아들 며느리에게 주는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아 봅니다. 그렇게 말씀을 보면 오늘 본문 속에서 적어도 4가지 정도의 바람직한 가정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엔 이 잠언서 4장의 말씀에 근거해서 ‘바람직한 가정의 조건’을 생각함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이상적인 가정은 철학이 있는 가정입니다. (21, 23절) 오늘 본문을 보면 21절에 ‘네 마음을 지키라’했고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도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온 가족 구성원이 마음속에 지킬 그것! 온 가족이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그것! 모든 식구들의 정신과 마음을 묶어주는 가정의 전통이 될만한 그것! 저는 바로 그것을 ‘가정의 철학’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가훈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좋습니다. 적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는 철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의 철학 없이 산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그냥 존재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존재함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며 철학 있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 가정은 밤에 식구들이 모여 잠이나 자고 식사나 하는 여관집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가정의 철학, 삶의 지표, 전통, 그런 것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 목사 당신은 그런 것 있소? 하고 질문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 저는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고 목회하고 가정을 꾸려 가는 근본적인 철학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존재함으로 다른 사람이 희망을 갖도록 하자. 내가 설교해서 우리 성도들이 소망을 가지게 하자. 다른 것은 없어 주지 못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삶의 위로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주자’ 그것이 제 목회철학이요, 삶의 지표입니다. 제가 존재함으로 여러분에게 힘이 된다면, 제가 설교해서 여러분이 삶을 긍정하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영원한 꿈을 가지게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지킬 그것! 여러분 가정이 모두 그런 것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케네디 가문에는 ‘2등은 없다’라는 가정철학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3형제가 모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거나 대통령에의 의지를 가졌던 인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의 가정에도 ‘민족’이라는 가정의 정신이 흐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민족을 위한 삶’이라는 가정의 정신이 모세로 하여금 애굽왕실 공주의 아들로서의 삶을 팽개치게 하고 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신앙적이고 건설적인 가정의 철학을 가지십시오. 우리 어머니와 자녀들의 대화가 ‘학교 갔다 왔니? 밥 먹었니? 공부해라’는 말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인간됨과 사람됨의 가정철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철학이라고 해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으로 살아라’ ‘사랑의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라’ 이런 것들이 모두 훌륭한 가정의 철학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콘크리트 기둥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십대를 이어갈 가정의 철학 전통이어야 합니다. 훌륭한 철학이 있는 사람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올바른 철학있는 가정이 자녀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되는대로의 막연한 존재적 차원의 삶이 아니라 분명한 철학, 가훈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이상적인 가정은 바람직한 대화 곧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가정입니다. (24절) 오는 본문 24절의 말씀은 언어생활 곧 대화의 문제를 말씀한 것입니다. ‘궤휼’과 ‘사곡’이란 남을 속이는 말과 남을 해치는 악한 말을 의미합니다. 사회생활도 그렇습니다만 가정생활에서도 말, 대화, 곧 의사소통은 아주 중요합니다. 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부부를 분석해 보면 많은 원인이 있지만 특히 어느 가정이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점은 바로 대화가 없거나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자녀가 문제아가 됩니다. 의사소통이 안되는, 아니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부부가 이혼할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서 대화란 일상적인 말은 아닙니다. 진정 가슴을 열고 마음과 마음으로 나누는 인격적 만남의 진실한 대화입니다. 지난 주 설교할 때 저희 집사람을 예로 들어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배가 끝난 다음 어떤 집사님께서 걱정스런 눈초리로 “목사님, 그렇게 공개적으로 사모님을 깎아 내리시면 사모님께 야단맞지 않으세요?”(웃음)하시면서 죠크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스개로 하신 말씀이지요. 아마 제가 집사람에게 야단맞을까봐 상당히 걱정이 되셨던 모양입니다. 야단맞거나 쫓겨나진 않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거 아부하는 소리로 들릴까 죄송합니다만 용서하시고 들으세요. 사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목회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50%는 사모의 공로입니다. 목회자 사모가 잔소리나 하고 남편 기죽이는 소리나 하고 목회 힘드니 그만두자고 조르기라도 하면 목회 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목사와 사모가 서로 의견이 상치되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그럴 때 저희는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물론 최종 결심은 제가 합니다만 그 누구의 의견이라도 합리적인 것은 이해하여 수용하고 제가 불합리했다면 고칩니다 커뮤니케이션 그것이 있기 때문에 제가 설교시간에 아내에 대해 무슨 소리를 해도 야단맞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래뵈도 아내 눈치보느라 할 소리 못하는 사람은 아닙니다.(큰 웃음) N. 라이트라는 사람이 쓴 ‘가족 대화의 문제에 대한 해답’ (An Answer to Family Communication)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 보면 가족구성원 특히 부부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몇가지를 소개해 보면 이렇습니다. 쓸데없이 수다떨기부부싸움 후 죽어도 말 안하기지나치게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비판적인 말하기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기웃을 데 안웃을 데 가리지 않고 마구 웃어대기상대방이 말할 때 귓전으로 흘려듣기실수에 대해 절대 사과하지 않고 고집 부리기부인 얼굴보다 텔레비젼을 더 많이 바라보기낮잠 자다가 남편 전화받기 하여튼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의사소통이 안되어 그 부분은 위험한 관계로 발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화란 큰 사고를 예방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우리 가정에 대화가 많아질 때 문제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남편과 아내사이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사이에 진정 가슴을 열고 나누는 깊이 있는 대화, 그런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가정은 참으로 바람직한 가정입니다. 3. 바람직한 가정은 바른 길을 걸으라고 진리로 교육하는 가정입니다(25절) 오늘 잠언서 25절을 다시 주목해 주세요. 이 잠언의 말씀을 기록한 사람은 그 아들에게 네 눈을 바로 보며 네 앞을 곧게 살피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상도가 아닌 길을 가지 말라고 진리의 가르침이요, 성실의 교훈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정을 되돌아 봅시다. 자녀들로 하여금 그 삶의 눈을 바르게 가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까? 자녀들로 하여금 바른 길로 걷도록 훈계하고 있습니까? 행여 정도가 아닌 것, 올바르지 않는 것을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살인강도가 있었습니다. 사형언도를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쳐갑니다. 내가 어찌하다 살인강도가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가 곰곰 생각해 보니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남의 고무신을 바꾸어 신고 왔습니다. 아직도 신을 만한 자기 고무신을 벗어놓고 다 찢어져 못쓰게 된 고무신을 바꾸어 신고 온 것입니다. 신이 바뀐 것을 알고는 엄마가 야단을 칩니다. 홧김에 한다는 말이 “야 이놈아! 이왕 바꿔신고 오려면 새 신을 신고 올 일이지 다 찢어진 신을 신고 와!”하면서 야단을 칩니다. 이 꼬마가 그때부터 자기 것보다 더 새것인 신발을 바꿔 신고 오기 시작합니다 .‘이왕 바꿔 신고 오려면 새 신을 신고 올 것이지!’ 그 어머니의 이 한마디가 결국 그 꼬마를 살인강도로 키운 것입니다 바르게 가르쳤더라면, 눈은 바로 보며 눈꺼풀은 앞을 곧게 보도록 진리로 가르쳤더라면 그 집안에서 살인강도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학자들이 히틀러를 연구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게 왜 유대인을 증오했는가 하는 심리적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주 어렸을 때로 돌아갑니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 히틀러의 어머니가 이웃집 유대인 남자와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때 현장을 목격한 꼬마 히틀러가 그 유대인이 자기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어린 히틀러의 마음속에는 유대인을 증오하는 무서운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히틀러의 광기를 심리적 요인만으로 전부 해석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어머니가 보다 정숙한 부인이었다면 그와 같은 잔인한 통치자는 이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머니는 어린 자녀에게 바른 삶의 모습을 가르쳐 주지 못한 책임을 결코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후손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돈의 위력을 가르치시겠습니까? 권세의 달콤함을 가르치시겠습니까? 힘 안들이고 사는 축재의 기술을 가르치시겠습니까? 바람직한 가정은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진리의 길, 올바른 길, 정당하게 사는 길을 교육합니다. 바른 것을 가르치며 바른 길을 걸으려고 노력하는 가정! 바로 그런 가정이야말로 바람직한 이 시대의 가정의 모습일 것입니다. 4. 바람직한 가정은 무엇보다도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는 가정입니다.(27절)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악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악이란 말은 종교적 용어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네 발을 악에서 떠나라는 말씀은 곧 신앙의 행위를 이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가정, 그래서 믿음으로 하나되고 악에서 떠나는 가정, 그런 가정이야말로 하나님께 축복 받은 가정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있어 신앙의 힘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는 부끄럽지만 저는 저희 시골집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용서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희 어머님은 지금 연세가 73이 되셨습니다. 감리교회의 권사님이십니다. 형수님이 한 분 계신데 역시 감리교회의 집사님이십니다. 형수님이 저희 집안으로 시집오신지가 25년이 되는데 저는 아직까지 저희 어머니가 형수님께 언성을 높이시는 것을 한번도 정말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또 형수님이 당신의 어머니에게 ‘어머니 그게 아니어요. 그러면 안되겠어요’라며 어머님 말씀을 거부하는 것도 역시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면 형수님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네, 어머니’를 연발합니다 넉넉하지 못한 구차한 살림이지만 어머니처럼 딸처럼 그렇게 모든 삶의 어려움과 고달픔을 그 사랑 속에 묻고 삽니다 저희집이라고 해서 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런 고부간의 갈등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속의 일지 밖으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비결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 봅니다. 역시 결론은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고부간의 관계를 사랑과 존경의 관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권사 시어머니가 집사 며느리를 면박할 수 있겠어요? 또 집사 며느리가 권사 시어머니께 불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원하시나요? 참 신앙으로 온 집안이 하나되십시오. 진정 화목한 가정을 바라십니까? 그 가정 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모셔보세요. 바람직한 가정은 돈이 많은 가정도 아닙니다. 가문이 번쩍 번쩍 빛나는 가정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는 신앙이 있는 가정입니다. ‘크리스찬 양육’ 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고 어른 중심의 교육체계를 어린이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시킨 미국의 교육학자인 호레스 부쉬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가정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정이란 성령이 임재하는 곳으로서 생리학적 결합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자리다.’ ‘가정이라는 말과 종교라는 말은 친척간이다.’ 여러분, 부쉬넬은 가정을 거룩한 종교의 현장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우리의 존재의 터전이며 신의 임재를 체험하는 종교의 현장입니다.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행복한 가정은 창조되어야 하고 또 지켜져야 합니다. 삶의 목표와 철학이 있는 우리가정!건전한 대화의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가정!진리 따라 바른 사람을 가르치는 가정!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가정! 여러분 모두가 그런 가정을 만들어 나가시기를 가정주일 이 아침을 맞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건강하게 하는 말씀
잠언 4:20-27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건강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하듯 요즘 각종 신문이나 TV 등 매스컴은 앞을 다투어 건강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건강 문제를 생각할 때 우선 육체적인 건강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있습니다. 건강에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구하여 먹고 있고 또 그렇게 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건강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혼의 건강입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여러 가지 관리와 노력이 필요하듯이 영혼의 건강에도 이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1.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4:20~23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환자가 되어 병원에 가면 의사는 여러 가지를 자세히 일러줍니다. 약을 어떻게 먹어야 하며,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심지어 잠을 어떻게 자야하며 언제 일어나고 언제 자야하는가를 일러줍니다. 운동을 어떻게 하며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에 대하여도 말해 줍니다. 병에서 낫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의사가 말한 바를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내 말에 주의하라”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깨닫고 아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면 자신의 귀를 기울여 그 말씀에 주의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역시 그 말씀을 깨닫고 열심히 지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말씀에서 눈이 떠나지 않으며, 그 말씀을 마음속에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듣고 지키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얻는 이들에게 생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영혼을 소성시킵니다(시19:7).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마음에 지키는 것은 그 온 육체에도 건강이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성도의 마음에 깨달음으로 그리고 앎으로 늘 지켜지고 남도록 하기 위하여 성도는 그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지켜야 한다는 말은 감시하고 보호한다는 말입니다.
마음은 귀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을 더 많이 듣게 하려고 합니다. 동시에 마음은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을 더 많이 보게 하려고 합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우리는 늘 감시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풍성하게 담겨진 마음은 곧 생명의 근원과도 같습니다. 근원이란 샘이라는 말입니다. 퍼내도 또 퍼내도 다함이 없이 솟아나는 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진 마음은 곧 생명의 샘이 됩니다. 그 생명의 샘은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육신을 건강하게 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영적인 건강 뿐 아니라 육체의 건강까지도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바 마음에 새긴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또 우리의 마음을 지켜서 악에 물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도 보는 눈도 지키며 살 때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건강주시고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2. 나쁜 것을 버려야 합니다
잠언 4:24~25에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고 했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나쁜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담배, 술, 마약, 지나치게 짜고 매운 것 그리고 잘못된 습관 등을 버려야 합니다.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나쁜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영혼의 건강을 해하는 두 가지 통로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입과 눈입니다. 입은 영혼의 건강을 쉽게 해하는 통로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모든 말이 영혼의 건강을 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부러진 말과 비뚤어진 말이 영혼의 건강을 해합니다.
구부러진 말’을 옛 성경에는 궤휼(詭譎)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도나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을 곡해하여 하는 말입니다. 옳은 의도라도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도 이를 그릇 해석하여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도 지나치게 그릇 비판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라도 다르게 가정하고 그릇 비판합니다.
‘비뚤어진 말’을 옛 성경에는 사곡(邪曲)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부패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돈을 사랑하여 양심에 어긋나게 하는 말, 자신을 최고로 높이는 말, 교만한 말, 감사가 없이 선을 악으로 갚는 말, 음란한 말, 혈기를 부리는 말, 사기하는 말, 시기하는 말, 싸우고 다투는 말 등이 다 부패한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은 마음에 담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다 훼손시켜 버립니다. 훼손된 음식은 사람에게 건강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이와 같이 훼손된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영혼에게 아무런 건강도 주지 못합니다. 그 말씀 자체가 자신의 마음에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고 무력화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과감히 그 입에서 구부러진 말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비뚤어진 말을 멀리해야 합니다. 성도는 바로 보고 바로 살펴야 합니다. 참된 성도는 좋고 그릇됨을 분명히 봅니다. 그는 영혼의 건강을 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것을 봅니다. 참된 성도는 좋고 그릇됨을 분명히 압니다. 그는 언제나 좋은 점을 따릅니다. 그리고 그는 좋은 점을 입으로 말합니다.
눅6:45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오면 입술의 변화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담겨진 것이 터진 입술을 통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품은 그것이 말로 나옵니다. 왜 찬송이 없습니까? 왜 기도가 없습니까? 왜 전도하지 못합니까? 기뻐하지 못합니까? 말씀으로 더 가득하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했습니다. 마음에만 머물지 말고 입술까지 나와야합니다. 그러면 더욱 생명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마음으로만 믿는 사람보다 날마다 다윗과 같이 입술로 찬송하며 감사하며 전도하며 사는 사람이 더욱 생명으로 충만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 대뇌학자는 “우리의 뇌세포는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 했습니다. 말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말씀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더 풍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 충만하여 입술까지 변화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어떻게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을 관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다 보는 것 같지만 실재로는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입니다. 사건이 일어나도 정치인은 정치적 관점에서 봅니다. 전문가들은 과학적인 입장에서 봅니다.
신앙인은 신앙적 관점에서 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외칩니다. 사람을 봐도 미용사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봅니다. 옷 장사는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오고 의상만 보입니다. 의사도 환자가 시계를 찼는지 반지를 끼었는지 관심 없고 건강상태만 봅니다.
다 관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영적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진리가 안 보이고 천국이 안 보인다면 불가능합니다. 롯은 죄악의 소돔성이 여호와의 동산처럼 보여서 그곳에 가서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세상이 좋게 보이고 세상이 매력적이게 보이면 안 됩니다. 성도의 눈에는 세상이 추하고 가치 없게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은 아무리 잘 되도 불쌍하게 보여야 합니다. 말씀이 가져다 준 시각의 변화입니다.
성도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으로 보이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길이 보이고, 충성의 너머에 축복이 보이고, 믿음의 성도가 진정한 내 형제로 보이고, 죽음의 너머에 천국이 보여야 합니다. 눈으로 말씀을 보고 귀로 늘 말씀을 경청하고 마음으로 믿어야만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 보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않게 됩니다. 약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셨는데 시험이 복으로 보일 정도 되어야 합니다. 고난이 변장된 축복으로 보이시기 바랍니다.
3. 바로 걸어야 합니다
잠언 4:26~27에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길에서 사고를 당하면 생명을 잃거나 불구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길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걸어갈 길을 평탄케 해야 합니다. 거친 나무들을 다 치웠습니다. 높이 솟은 돌을 파냈습니다. 낮은 웅덩이를 자갈로 매웠습니다. 너무 높은 곳은 깎아 내리고 너무 낮은 곳은 돋아서 높게 하였습니다. 길을 만들 때, 평탄케 하는 작업들입니다.
마차나 혹은 병거가 지나가려면 길을 든든히 해야 합니다. 진흙탕이 된 곳은 이를 파내고 자갈들과 모래를 깔아 든든히 해야 합니다. 모래만 있으면 마차나 병거의 바퀴들이 파묻혀 갈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래를 파내고 자갈들과 흙을 섞어 든든히 해야 합니다.
길을 갈 때는 정로로 가야 합니다. 성도는 가야될 길과 가서는 안 될 길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성도의 걸음은 사악한 자의 첩경이나 올무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피하고 떠나가야 합니다.
잠4:14에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혹시 잘못해서 그 그런 길로 들어갔다면 돌이켜 떠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악한 자들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거나 의인들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에 취하여 있는 자들입니다(잠4:14 - 17).
그러므로 성도는 바르게 걸어가야 합니다. 직진해서 가야할 길을 우회전으로 가면 결국 잘못 가게 될 것입니다. 직진해서 가야할 길을 좌회전해서 가면 역시 잘못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서는 안 될 길을 가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편으로 가도 안 되고 좌편으로 가도 안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릇된 길로 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역할을 한 사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였습니다(사40:3-5).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한 인격을 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소개하였습니다. 그의 외치는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을 평탄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그에게로 와서 그를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무엇입니까? 한 인격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5: 39). 그를 영접하고 구주로 모시게 되기까지 많은 난관과 다른 길들이 있습니다. 말씀은 이런 난관을 다 극복하고 그를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다른 길들을 분명히 구별하고 그를 참 구주로 바라보고 영접하게 합니다. 바로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영혼이 죽거나 병들거나 다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건강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