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마암면 장산 마을앞 도로옆에 있는 '장산숲'은 숲,연못,정자로 구성된 고성 김해허씨의 유적(遺蹟)이다. 김해허씨는 우리 양천허씨와 동성이본(同姓異本)의 가락일가(一家)이며 보주태후의 후예(後裔)이다. 고성의 김해허씨 입향(入鄕)선조는 고려 공민왕을 섬기다가 고성땅으로 유배된 정절공(貞節公) 호은(湖隱) 허기(許麒)라는 분으로 고성 김해허씨 문중서원인 도연서원에서 제향(祭祀)되고 있다. 장산숲 신도비의 주인공인 가락군 충목공(휘有全)은 고려 후기의 문신(文臣)이며 정절공의 조부(祖父)이다. 근대 1988년 인천시 강화에서 충목공의 묘지가 발견됨에 따라 당시까지 도연서원(道淵書院)에 위패를 봉안하다가 장산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장산숲은 입향조인 정절공의 5세손이며 고성 김해허씨 현조(顯祖)인 천산재(天山齋.許千壽)가 더욱 가꾸고 정자를 지어 즐기던 곳이였는데 그후 후손들이 연못과 조대(釣臺)를 복원하여 노산정(鷺山亭)이라 하고 매년 후손인 허선(許宣)과 아들 홍도(洪道,삼천석꾼으로 알려짐)가 지방 유지들을 초청하여 시회(詩會)를 가졌다고 전한다. 장산 마을은 옛적 한때 우리 양천허씨들이 살았고 이후 김해허씨들이 살아 왔으며 많은 훌륭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 장산숲 건너 석마리 감동마을과 공정산 우리(고성 양천허씨) 선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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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7.16 아래 두번째 사진(장산에서 본 공정산 선영).시계확보및 조경상 현재대로가 좋은지 주변 나무들을 제거해야 될것인지 종회의 검토를 요한다. 사진의 오른쪽 끝은 처사공 산소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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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허창무 작성시간 13.07.18 산소 위치에서 보면 자체의 좌청룡과 우백호가 없는 것이 흠이다. 장산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는 화송이 울창하여 그나마 우백호역할을 해 주고 있지만 오른쪽에는 좌청룡이 없어 너무나 허전하다. 뿐만 아니라 시동골바람이 심한곳임을 지난 산역시 체감해 보았다. 오히려 오른쪽에 방풍림을 심어 그 골바람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의공종회에서는 그 문제보다 우선할 문제로 우리의 家僕墓를 잘 정비하여 입향사 초기 100여년의 공백 부분과 有墓無諱 3대의 단절을 補遺하는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구전되어 온 傳來之言을 고민하는 참의공종회로 발전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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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허창무 작성시간 13.07.16 고성의 양천허씨는 1488(성종19)년에 현 행정단위인 고성 마암 장산에서 약 200년 이상 거주하다가 21世 동포공규(東浦公逵)<孝宗庚寅生-卒年未詳>(1650-?) 말년(60세이후)인 1700년대 초에 거류면 가려리 부근으로 이주한 사실이 근자 삼화재 소장자료에 의하여 밝혀졌음을 첨언해 둔다. 참고로 장산숲과 수실숲을 조성한 배경이 미관에 있다기 보다 동네 입구가 허(虛)하여 그것을 비보하기 위한 풍수학적 지혜가 거기에 녹아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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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2.24 우리는 왜 先代(선대) 산소와 유적을 보존,수호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先山(선산)을 단장함은 후손의 本分(본분)이다. 이는 마치 부모님을 평안히 모신후에 세상일에 나아가는것과 같다. 修齊治平(수제치평)은 선조에 대한 崇慕心(숭모심)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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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7.23 1961.4.4일자 경향신문은 마암면 장산리 허홍도씨(당시 58세)가 마암국민학교 건립용 부지2000평과 건축비 일부,실습답 500평을 기부했다고 보도. 또한 1934.11.11 동아일보 허홍도씨가 군내교육기관 3곳에 헌금기부했고 1935.2.15 동아일보 허홍도씨가 배둔시장부지 1000여평을 무상 대부했다고 보도. 이것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