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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허창무 작성시간13.07.18 산소 위치에서 보면 자체의 좌청룡과 우백호가 없는 것이 흠이다. 장산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는 화송이 울창하여 그나마 우백호역할을 해 주고 있지만 오른쪽에는 좌청룡이 없어 너무나 허전하다. 뿐만 아니라 시동골바람이 심한곳임을 지난 산역시 체감해 보았다. 오히려 오른쪽에 방풍림을 심어 그 골바람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의공종회에서는 그 문제보다 우선할 문제로 우리의 家僕墓를 잘 정비하여 입향사 초기 100여년의 공백 부분과 有墓無諱 3대의 단절을 補遺하는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구전되어 온 傳來之言을 고민하는 참의공종회로 발전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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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창무 작성시간13.07.16 고성의 양천허씨는 1488(성종19)년에 현 행정단위인 고성 마암 장산에서 약 200년 이상 거주하다가 21世 동포공규(東浦公逵)<孝宗庚寅生-卒年未詳>(1650-?) 말년(60세이후)인 1700년대 초에 거류면 가려리 부근으로 이주한 사실이 근자 삼화재 소장자료에 의하여 밝혀졌음을 첨언해 둔다. 참고로 장산숲과 수실숲을 조성한 배경이 미관에 있다기 보다 동네 입구가 허(虛)하여 그것을 비보하기 위한 풍수학적 지혜가 거기에 녹아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