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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김해허씨 유적 장산숲

작성자허현| 작성시간13.07.15| 조회수197|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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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7.15 김해허씨의 고성입향 유래는 자유게시판 356번 참조.
    敬慕臺(경모대)는 장산에 살았던 허홍도(許洪道)라는 분이 1941년(신사년) 근수병서(謹竪幷書)한것임.
  • 작성자 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7.19 김해허씨는 양천허씨보다 약 100년 일찍 고성에 입향한 셈이고 고성(固城)의 성반(姓班) 허리최노(許李崔盧)에 함께 올려진 명문이다.수실(화산) 달성배씨와 허천수(김해),허천익(양천)께서 각각 첫째,두째 사위로 통혼했다.
    嶠南誌(교남지): 許千壽 元弼孫號天山齋學究性理不事彫飾薦除恭陵郞遊退溪李滉門以言行允孚有儒者氣像見稱許贈刑議古溪李彙寧撰狀
  • 작성자 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7.16 아래 두번째 사진(장산에서 본 공정산 선영).시계확보및 조경상 현재대로가 좋은지 주변 나무들을 제거해야 될것인지 종회의 검토를 요한다. 사진의 오른쪽 끝은 처사공 산소모습.
  • 답댓글 작성자 허창무 작성시간13.07.18 산소 위치에서 보면 자체의 좌청룡과 우백호가 없는 것이 흠이다. 장산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는 화송이 울창하여 그나마 우백호역할을 해 주고 있지만 오른쪽에는 좌청룡이 없어 너무나 허전하다. 뿐만 아니라 시동골바람이 심한곳임을 지난 산역시 체감해 보았다. 오히려 오른쪽에 방풍림을 심어 그 골바람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의공종회에서는 그 문제보다 우선할 문제로 우리의 家僕墓를 잘 정비하여 입향사 초기 100여년의 공백 부분과 有墓無諱 3대의 단절을 補遺하는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구전되어 온 傳來之言을 고민하는 참의공종회로 발전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작성자 허창무 작성시간13.07.16 고성의 양천허씨는 1488(성종19)년에 현 행정단위인 고성 마암 장산에서 약 200년 이상 거주하다가 21世 동포공규(東浦公逵)<孝宗庚寅生-卒年未詳>(1650-?) 말년(60세이후)인 1700년대 초에 거류면 가려리 부근으로 이주한 사실이 근자 삼화재 소장자료에 의하여 밝혀졌음을 첨언해 둔다. 참고로 장산숲과 수실숲을 조성한 배경이 미관에 있다기 보다 동네 입구가 허(虛)하여 그것을 비보하기 위한 풍수학적 지혜가 거기에 녹아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작성자 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2.24 우리는 왜 先代(선대) 산소와 유적을 보존,수호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先山(선산)을 단장함은 후손의 本分(본분)이다. 이는 마치 부모님을 평안히 모신후에 세상일에 나아가는것과 같다. 修齊治平(수제치평)은 선조에 대한 崇慕心(숭모심)으로부터 시작된다.
  • 작성자 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7.23 1961.4.4일자 경향신문은 마암면 장산리 허홍도씨(당시 58세)가 마암국민학교 건립용 부지2000평과 건축비 일부,실습답 500평을 기부했다고 보도. 또한 1934.11.11 동아일보 허홍도씨가 군내교육기관 3곳에 헌금기부했고 1935.2.15 동아일보 허홍도씨가 배둔시장부지 1000여평을 무상 대부했다고 보도. 이것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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