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빌 허)”는 부정하는 의미가 있지만 虛心(마음을 비움), 虛舟(빈 배), 虛空(넓은 하늘)과 같이 비움의 긍정과 가능성을 나타내는 의미도 있다. 또한 “空(빌 공)”도 부정적 의미 외에도 空間(공간), 空氣(공기), 空白(공백), 空豁(공활.매우 넓음), 蒼空(창공)과 같은 의미가 있다.
《반야심경》에서는 空卽是色 色卽是空(공즉시색 색즉시공)으로 실체의 “없음” 과 “있음”을 동일시 했다. 虛와 空의 영어 표현은 "emptiness"이다. “비움”의 공간을 통해서 인간은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무엇인가를 채우려 한다. 또한 “비움”은 모호함(ambiguity)과 불확실(uncertainty)의 상태이기도 하다.
“無(없을 무)” 역시 없다는 뜻일지라도 부정적이지 않은 의미가 많다. 즉 無疆(무강,끝 없음), 無垢(무구,때묻지 않음), 無窮(무궁), 無極(무극,끝 없음), 無難(무난), 無念(무념), 無量(무량), 無邊(무변,끝 없음), 無事(무사), 無雙(무쌍), 無我(무아), 無爲(무위), 無二(무이), 無敵(무적), 無盡藏(무진장)등이다.
여기 큰 그릇이 있다고 하자. 인간은 그 여분(餘分,room)에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하게 되며 그 성취를 통해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노력,발전,진전,향상등의 행위(行爲)변화는 “비움”과 “없음”의 상태를 “實(실)”,“滿(만)”,“有(유)”라는 채움으로 실현한다.
따라서 비움[虛.空]과 없음[無]은 모두 우리 삶의 명제(命題)이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던가, 인간이 이 땅을 떠날 때에는 그 비움과 없음으로 되돌아 가는것이다. 그래서 일찌기 나옹선사는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 버리고 미움도 벗어 버리고,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살다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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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허창무 작성시간 12.09.22 <虛>, <空>, <無>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 만으로 고정은 이미 동양철학의 세계를 맴돌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 세글자의 막연한 추상적 개념 속에서 그 의미상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논지에 부정할 수는 있는 논지를 지금 나는 갖고 있지 않지만, 儒家는 虛와 實을 대비켜 虛의 실체를 파악하려 하였고, 佛家는 空과 滿을 대비시켜 空의 실체를 파악하려 하였으며, 道家는 無와 有를 대비시켜 無의 실체를 파악하려 한 것이 아닐가? 이러한 문제를 연구의 주제로 삼는 것만으로 고정의 학적 성취가 어느 수준에 진입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네. <千字文>에 "空谷傳聲, 虛堂習聽."이라는 구절이 생각나네. 加油加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