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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사(古文故事)

釋謙 [겸에 대하여] - 미수기언 卷三上篇

작성자허현|작성시간13.01.12|조회수90 목록 댓글 1

 

《주역》 〈겸괘(謙卦)〉에 “겸은 형통하니, 군자는 유종의 미가 있다[謙亨君子有終].”라고 하였다. 천도(天道)는 아래로 교제(交際)하고 지도(地道)는 위로 사귀어 만물을 화육하는 것은 겸의 의(義)이고, 크면서도 낮추고 많은 데를 덜어 적은 데에 보태 주어 그 시혜를 고르게 하는 것은 겸의 덕(德)이다. 그러한 덕을 지녔으면서도 자처하지 않고 겸양하여 다투지 않아서 천덕(天德)을 통달하여 먼저 굽히고 뒤에 펴는 것은 군자의 형통함이고, 높으면서 광대(光大)하고 낮지만 넘을 수가 없으며 지극히 성실하여 변함이 없는 것은 군자의 유종이다. 겸손하여 덕을 쌓는 것은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것[勞謙]’ 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중니(仲尼.공자)는 〈계사전 상(繫辭傳上)〉에서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공로가 있어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매우 후덕하다.” 한 것이다.

〈겸괘 단(彖)〉에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은 덜어 내고 겸손한 것은 더해 주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은 변하게 하고 겸손한 것은 보태 주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은 해치고 겸손한 것은 복을 주고, 인도(人道)는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라고 하였다.

〈겸괘 상(象)〉에 초육(初六)은 겸손하고 사양하는 군자가 자신을 낮추는 도로써 자처하는 것이고, 육이(六二)는 밖으로 드러난 겸손한 덕을 마음속에 터득한 것이고, 구삼(九三)은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군자에 만민이 복종하는 것이고, 육사(六四)는 겸손을 베풀되 법칙을 어기지 않는 것이고, 육오(六五)는 부유하지 않아도 이웃을 얻으니 침벌(侵伐)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복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는 것이고, 상육(上六)은 겸손한 덕이 밖으로 울려 퍼져 군대를 출동하여 읍국(邑國)을 정벌함이 이로운 것이니, 이는 겸이 극에 이른 형상이다. 성인이 《역》을 만들어 임기응변한 뜻이 갖추어져 있으며, 고요하면서 이치에 맞아 상하가 길하고 이로운 이치가 겸에 또 갖추어졌다. 그러므로 군자는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謙之言曰。謙亨。君子有終。天道下際。地道上交。化育萬物。謙之義也。大而能卑。裒多益寡。以均其施。謙之德也。有其德而不居。讓而不爭。以達天德。有先屈而後伸。君子之亨也。尊而光大。卑而不踰至誠不變。君子之終也。謙順積德。莫善於勞謙。故仲尼曰。勞而不伐。有功而不德。厚之至也。其彖曰。天道虧盈而益謙。地道變盈而流謙。鬼神害盈而福謙。人道惡盈而好謙。謙之初六。謙謙君子。卑以自牧也。六二。鳴謙。中心得也。九三。勞謙君子。萬民服也。六四。撝謙。不違則也。六五。不富以其隣。利用侵伐。征不服也。上六。鳴謙。利用行師。征邑國。謙極之象也。聖人作易制變之義備矣。靜而順。上下吉利。謙又備矣。故君子亹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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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창무 | 작성시간 13.01.16 고정이 <미수기언>중에서 겸자(謙字)가 눈에 들어와 여기에 올린 점으로 보아 동생은 분명 어떤 느낀 점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고정 나이에 비로소 그 겸자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은니까. 선친께서 일직이 <易>의 64괘중에서 최고의 괘가 謙卦임을 아느냐 하시면서 <謙受益驕則亡>이라는 여섯 글자를 손수 쓰주셨는데 간수해 두지 못해 아쉽다네. 후일 나는 많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소유한 자에게만 謙德을 말할 자격이 부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겸손과 아부의 차이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지. 나나 동생은 지금쯤 겸덕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동생의 툭딱성을 듣게 되어 고마우이. 自今以後, 可以論人生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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