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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담론

여포 사망 이후의 송헌, 위속, 후성

작성자갈까마귀|작성시간13.03.29|조회수424 목록 댓글 10


송헌, 위속, 후성은 198년에 여포가 하비로 몰리자 여포를 배신하고 적군(조조)에게 투항한 삼인방이다.


위속의 경우 [후한서]에 나오는 '위월'과 같은 인물이라는데 만약에 그렇다면 위속은 엄청난 무예를 지닌 맹장이고 또 여포와 인척 관계라, 여포가 고순의 병사를 뺏어다가 위속에게 줬다는 기록까지 감안하면 팔건장 중에서도 여포의 신뢰를 많이 받은 축에 속한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송헌과 후성은 기록이 부족하여 평가하기 힘들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셋이 자신의 상관(여포)을 배반하고 적군에게 투항하였으니 충(忠)을 그르친 군인들이라는 혹평을 받아 마땅한 위인이라는 점이 아닐까.


물론 삼인방은 삼인방 나름대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여포는 배신의 아이콘이다, 처자의 말만 믿고 수하 장수들은 믿지 않았다, 수하 장수들의 아내를 탐하였다 등등. 그러나 아까도 말했지만 삼인방 중에 위속은 여포가 굉장히 신뢰한 인물이었고 이들은 여포를 떠날 수 있는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끝까지 여포 밑에서 벼슬하다 위기가 와서야 결단을 내렸다. 


조조 정권은 그 시작이 미약했고 다른 정권을 병합하면서 성장한만큼 항복한 장수 출신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조조가 이들을 모두 무겁게 쓰지는 않았다.


일례로 순욱의 경우 비록 원소 정권의 인물이었으나 원소가 한창 강성하고 조조가 미약할 때 조조에게 귀순했고 또 순욱은 홀몸 빈손이라, 충(忠)에 어긋나는 항복이라 할 수 없다. 반면에 허유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위험에 처하자 조조에게 귀순했으며 조조의 인정을 받고자 원소를 한순간에 몰락시킬 오소의 군량고를 누설한다.


훗날 허유는 조조의 미움을 받아 참수되고 순욱은 (적어도 위국공 사태까지) 인정받으니 이는 조조가 무개념하게 투항한 인사들을 굉장히 미워했다는 뜻이다.


사실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 팔건장의 일원이면서 정작 여포 휘하에 있을 때 가장 인정 받지 못했던 장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장료는 여포가 패망한 다음에야 조조에게 항복했고 조조는 장료를 두텁게 대하였다. 비록 여포가 위기에 처했어도 장료는 끝까지 주군을 바꾸지 않았고 자신의 주군이 죽어 갈 곳이 없어진 상황이 확정된 후에야 백기를 들었으니 사실 이정도면 비교적 개념있는 투항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송헌, 후성, 위속은 한창 싸우고 있던 여포를 포박해 투항하였다. 우수한 군사 지휘관이었던 조조는 과연 삼인방을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을까?


사실 송헌, 위속, 후성의 기록은 198년 여포의 죽음 이후로 완전히 끊긴다. 맹장, 효장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들을 조조가 무겁게 쓰지 않은 까닭은 이들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삼인방이 여포의 죽음을 기점으로 더 이상 활약을 하지 못하게 된 것도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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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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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漢壽亭侯關羽 | 작성시간 13.03.30 문제는 그 당시 조씨가 그리 탐내던 관우 혹은 장비 그리고 그들의 대장 유비가 나서서 죽이지 말아달라고 했었고
    조씨 밑에 들어간 후 보여줬던 활약상은 어쩔수가 없었죠. 아무래도 여포의 기마대에 제일 가까웠던건 장료의 기마대였고 활약은 확실히 보여줬으니까요.
  • 답댓글 작성자漢壽亭侯關羽 | 작성시간 13.03.30 서황이의 말대로 그 3명의 능력이 딱 거기까지였다고 밖엔..
  • 답댓글 작성자서황 | 작성시간 13.03.30 여포에게 중히 쓰이지 않았다고 해서 하위권이라 하기엔 좀 억측이 있습니다. 함진영 고순도 여포에게 중히 쓰이지 않았던거 아시죠? 그게 여포의 한계입니다. 능력있는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군주.
  • 작성자서황 | 작성시간 13.03.30 그냥 제 생각에 위속 후성 송헌은 딱 그정도였던거 같습니다. 이미 조조군에서 활약을 보이며 여포군을 물리친 장수들이 많은데 굳이 여포군 장수를 중용할 필요도 없구요. 그냥 변방에 한 자리 알아봐서 통치하다 무난히 죽음을 맞이해서 기록이 없을꺼라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갈까마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3.31 고순의 경우 비록 여포가 중히 쓰지 않았지만 "함진영"이라고 불렸다 던가, "깨뜨리지 못하는 적이 없었다" 등등의 기록을 통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료의 경우 팔건장 시절에 특별한 기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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