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군웅으로서는 평가할 건덕지도 없는 개막장들이라 거기에 대해선 논할 가치조차 없음-_-
하지만 장수로서의 능력에 한정하면 충분히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라 보여짐.
동탁군에서 여포 다음으로 거론되는 장수들이 서영, 이각, 곽사, 번조, 장제였다고 볼때, 사실상 장수로서의 능력은 어느정도 검증이 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함.
참고로 화웅은 동탁군내에서 그닥 급이 높은 장수는 아니었음. 오히려 연의에서 그의 부장으로 나왔던 호진이 화웅보다 급은 높았음.
『...당초 동탁의 사위인 중랑장 우보(牛輔)가 군사를 거느리고 따로 섬(陝-사례 홍농군 섬현)에 주둔하고 있었고, 교위 이각(李傕), 곽사(郭汜), 장제(張濟)를 나누어 보내 진류(陳留), 영천(潁川)의 여러 현들을 공략하게 했다. (중략) ...열흘 뒤 성이 함락되고 여포와 성 안에서 싸웠는데 여포가 패해 달아났다.』 <위서 동탁전>
기록을 봐도 동탁 생전에는 진류, 영천 등을 공략하며 반동탁 연합세력을 쳐부수는 선봉장들이었고, 동탁 사후에는 무려 장안을 끼고 있던 여포까지 쫓아내는 등 나름 무시못할 이력을 가지고 있음.
『...동승이 유비와 모의하여 미처 실행하기 전에 유비가 출병하게 되었다. 동승이 왕자복에게 말했다, “곽다(郭多-곽사)는 수백의 군사로 이각(李傕)의 수만 명을 무너뜨렸으니 다만 족하(足下-귀하)와 내가 뜻을 함께하면 되지 않겠소! 옛날 여불위의 가문은 자초(子楚-진시황의 부친인 진秦의 장양왕)를 기다려 그 뒤에 높아졌으니 지금 나와 그대도 이에 따라야 하오.”』 <촉서 선주전 주>
곽사같은 경우 비록 지긴 했지만 여포랑 일기토를 벌였던 전력도 있고, 이후 이각과의 내분에서도 수백의 군사로 이각군 수만을 쳐부술 정도로 용맹했었다는 기록이 존재. 아마도 이곽번장 중 무용으로는 최강이 아니었을까 사료됨.
덤으로 번조도 한수, 마등 연합군을 쳐발랐던 만큼 무시못할 장수라 보이고, 같은 급으로 묶이는 장제 또한 이곽 몰락 이후 가후정도 되는 인물이 그 세력에 가담한 걸 보면 최소한 변변찮은 인물은 아니었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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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자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4.01 ㅇㅇ 이각,곽사는 살기위해 싸우다보니 우연찮게 헌제를 옹립하게 되었고, 당연히도 장기적인 플랜이 없었기 때문에 그걸 어찌 이용해야할지도 몰랐던듯. 다만 이각,곽사 이두체제가 아닌 일두체제였다면 세력이 좀더 오래갔지 않을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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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曹操할인-_- 작성시간 15.04.01 자건 현실적으로는 이각 곽사가 왕윤을 축출한 이후에 가후가 세력정리를 어느정도 하는 수순이였다면 더 나았을지도.... 가후는 그닥 그정도까지의 권력욕이 없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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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적원 작성시간 15.04.03 애초에 게임은 연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니..... 게임에서는 유명인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정쩡한 인간들을 쩌리 취급해버린 것이 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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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적원 작성시간 15.04.03 따지고 봐도 당시 중국의 인구가 수백만은 됐을 텐데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는 정사까지 해도 400명이 안됨. 수백만 중 400명이면 다 쩌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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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자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4.03 이곽번장 4인방은 동탁밑에서 장수로 활약했다면 나름 명성을 떨쳤을 애들인데, 뜻하지않게 군웅이 되다보니 장수로서의 평가도 절하되어버린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