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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담론

[견해]이각, 곽사는 너무 저평가된게 아닐런지..

작성자자건|작성시간15.03.28|조회수681 목록 댓글 6

뭐 군웅으로서는 평가할 건덕지도 없는 개막장들이라 거기에 대해선 논할 가치조차 없음-_-


하지만 장수로서의 능력에 한정하면 충분히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라 보여짐.

 

동탁군에서 여포 다음으로 거론되는 장수들이 서영, 이각, 곽사, 번조, 장제였다고 볼때, 사실상 장수로서의 능력은 어느정도 검증이 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함. 


참고로 화웅은 동탁군내에서 그닥 급이 높은 장수는 아니었음. 오히려 연의에서 그의 부장으로 나왔던 호진이 화웅보다 급은 높았음.


『...당초 동탁의 사위인 중랑장 우보(牛輔)가 군사를 거느리고 따로 섬(陝-사례 홍농군 섬현)에 주둔하고 있었고, 교위 이각(李傕), 곽사(郭汜), 장제(張濟)를 나누어 보내 진류(陳留), 영천(潁川)의 여러 현들을 공략하게 했다. (중략) ...열흘 뒤 성이 함락되고 여포와 성 안에서 싸웠는데 여포가 패해 달아났다.』  <위서 동탁전>

 

기록을 봐도 동탁 생전에는 진류, 영천 등을 공략하며 반동탁 연합세력을 쳐부수는 선봉장들이었고, 동탁 사후에는 무려 장안을 끼고 있던 여포까지 쫓아내는 등 나름 무시못할 이력을 가지고 있음.

 

『...동승이 유비와 모의하여 미처 실행하기 전에 유비가 출병하게 되었다. 동승이 왕자복에게 말했다, “곽다(郭多-곽사)는 수백의 군사로 이각(李傕)의 수만 명을 무너뜨렸으니 다만 족하(足下-귀하)와 내가 뜻을 함께하면 되지 않겠소! 옛날 여불위의 가문은 자초(子楚-진시황의 부친인 진秦의 장양왕)를 기다려 그 뒤에 높아졌으니 지금 나와 그대도 이에 따라야 하오.”』  <촉서 선주전 주>

 

곽사같은 경우 비록 지긴 했지만 여포랑 일기토를 벌였던 전력도 있고, 이후 이각과의 내분에서도 수백의 군사로 이각군 수만을 쳐부술 정도로 용맹했었다는 기록이 존재. 아마도 이곽번장 중 무용으로는 최강이 아니었을까 사료됨.


덤으로 번조도 한수, 마등 연합군을 쳐발랐던 만큼 무시못할 장수라 보이고, 같은 급으로 묶이는 장제 또한 이곽 몰락 이후 가후정도 되는 인물이 그 세력에 가담한 걸 보면 최소한 변변찮은 인물은 아니었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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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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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자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01 ㅇㅇ 이각,곽사는 살기위해 싸우다보니 우연찮게 헌제를 옹립하게 되었고, 당연히도 장기적인 플랜이 없었기 때문에 그걸 어찌 이용해야할지도 몰랐던듯. 다만 이각,곽사 이두체제가 아닌 일두체제였다면 세력이 좀더 오래갔지 않을까 싶음.
  • 답댓글 작성자曹操할인-_- | 작성시간 15.04.01 자건 현실적으로는 이각 곽사가 왕윤을 축출한 이후에 가후가 세력정리를 어느정도 하는 수순이였다면 더 나았을지도.... 가후는 그닥 그정도까지의 권력욕이 없던듯.
  • 작성자정적원 | 작성시간 15.04.03 애초에 게임은 연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니..... 게임에서는 유명인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정쩡한 인간들을 쩌리 취급해버린 것이 그 이유
  • 답댓글 작성자정적원 | 작성시간 15.04.03 따지고 봐도 당시 중국의 인구가 수백만은 됐을 텐데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는 정사까지 해도 400명이 안됨. 수백만 중 400명이면 다 쩌는 인물들
  • 작성자자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03 이곽번장 4인방은 동탁밑에서 장수로 활약했다면 나름 명성을 떨쳤을 애들인데, 뜻하지않게 군웅이 되다보니 장수로서의 평가도 절하되어버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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