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11)

작성자저ㄴ◐ㅠ처ㄹ|작성시간08.03.18|조회수317 목록 댓글 8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제1부.  족구이야기

제3장.  족구세상 나누기③


-기다림이란 하얀 심장을 빨갛게 달구는 일이다.

클럽이 만들어지고 일주일 동안의 시간이 성구에게는 여삼추(如三秋)였다.

족구용품도 구입하고, 공을 나무에 매달아놓고 타격연습도 하고, 천변에서 하체를 단련하기 위해 걷기와 달리기도 하고, 퇴근 후에는 도착한 족구 연습공을 집안에 매달아놓고 식구들에게 설명도 하며 수비연습도 하고, 통복천 주변 철봉대에 족구공을 매달아놓고 공격연습도 하며 지낸 일주일이었다.

혼자 연습하며, 혼자 족구공을 가지고 놀며(ㅋㅋ~), 기다려지는 것은 클럽 회원들과의 만남이었다. 회원들이 모이는 일요일을 기다리며 보낸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라는 시의 주술을 받았는지 주말은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 주, 토요일 오후에 잔다리 클럽 회원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서로 연락이 되어 그들의 구장에 모여 있는 거였다. 정기모임은 일요일이지만 족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4명이 나와 터를 잡고 있다. 모두 하루를 더 기다릴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4명으로 족구를 즐기기에는 뭔가 부족하였다.

그들은 구장 옆 나무 그늘에 앉아 족구공 하나 옆에 두고 둘러앉아 있다. 초가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왔다. 주위 우거진 나뭇잎들이 하늘거린다.

“육해공 예비역들이 모여서 족구 얘기를 했어.”

뜬금없이 성구가 입을 열었다. 무료하던 차에 나머지 세 명이 귀를 쫑긋한다.

“해군 출신이 말하길, ‘갑판 위에서 족구 하다가 공이 물에 빠지면 다이빙해서 공 건져오느라 죽을 고생을 했었지.’ 이러니까...”

“... ...?”

“공군 출신이 한마디 하는 거야. 나는 활주로 위에서 족구 하다가 뒤로 빠진 공 줍기 위해 3km 정도를 매번 뛰어갔다오곤 했지. 그땐 쫄다구가 공을 주워 와야 했으니까. ㅎㅎㅎ~”

“하하, 재밌는데. 또...”

만규가 운을 넣으며 바싹 당겨 앉는다.

“그러자 육군 땅개 출신이 또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지. ‘너희들, 지뢰밭 옆에서 족구 해봤어? 공 주워오느라 지뢰밭에 들어가 봤냐구!’ 이러는 거야. ”

“하하하. 땅개 육군 출신이 1등이다!”

나머지 셋이 함께 웃는다.

“원래 족구는 군대에서 활성화되었잖아? 근데 울 부대에서는 족구는 안 하고 맨 축구, 배구만 하더라구.”

말하고 나서 동재는 억울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신다. 그때 군대에서 족구를 많이 해봤으면 지금 훨씬 더 잘 할수 있을 거라는 표정이다.

“그럼, 지금 하는 발바닥 공격 군대에서 배운 거 아니었나? 원래 발바닥 공격은 군화 신고 하는 타격법이던데?”

“발다닥이 아니라, 발 뒷축입네다! 내 공격을 보고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던데, 전혀 아니올시다, 이라니까!”

“맞아. 군화 신고 수비하면 참 잘 되었지. 군화의 추억이 또 생각나누만.”

만규가 한 마디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끼어든다.

남자들이 셋 이상 모이면 가장 많이 하는 말.

첫 번째, 군대 얘기. 두 번째, 축구 얘기. 세 번째,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여자들이 지겨워하는 얘기. 해도 해도 거미줄처럼 술술 풀리며 끝을 모르는 얘기.

머지않아 그 축구라는 말은 모두 ‘족구’라는 말로 치환될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족구는 지금도 분명 전국 방방곡곡에 겁 없이 활성화되고, 전염병처럼 전염되고, 날마다 발전되고, 끝없이 진화되고 있음에 분명하므로.

“원래, 족구는 공군이 원조랍니다. 옛날엔 머리를 사용하지 않고 발로만 했다고 하지요. 지금도 직업공군들은 머리를 잘 안 쓰고, 발로 하는 수비 하나는 끝내주더라구여.”

봉우의 말에 모두 수긍하는 눈치들이다.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낙서를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도 있다.

“요즘에는 여자들도 족구를 많이 하더라구. 인터넷에서 본 얘기인데...”

동재의 말에 모두 그의 입을 쳐다본다,

“어느날, 시어머니한테 전화가 와서 남편이 받았는데, 아내를 찾는 거야. 아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 지금 족구하러 나갔는데요.’ 하니까 어머니가 하는 말이, ‘뭐, 좆 구하러? 그 애는 신랑 거 어디 두고 밖으로 찾으러 댕기는 거냐!’ 하더랍니다. ㅎㅎ”

동재의 말에 실실 웃는 사람도 어이없이 하는 사람도 황당해 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실없는 얘기들 그만하고 동부공원에 가죠? 우리도 한 팀이 되니 동부 팀과 해볼만 하지 않겠어요?”

성구가 운을 떼자, 별 수 없다는 듯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며 엉덩이를 턴다. 엉덩이에 깔아놓았던 족구 얘기들이 툭, 툭, 떨어진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만규 말에 모두 동의한다는 눈빛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족구이야기를 그들의 구장에 비듬처럼 털어놓고 차 한 대를 몰고 동부공원으로 향한다. 족구공 하나도 더불어 따라간다. 군인들이 가는 곳마다 소총을 소지하듯이. 총은 생명인 것이여~. 그럼 족구공은? 생명이 아니라, ‘행복’인 것이지~. 행복도 늘 소지하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 당근이지, 앤처럼 좋은 것이지~. ㅋㅋ

보름 전쯤에는 그냥 족구 클럽 가입 의사를 가지고 찾아갔지만, 지금은 클럽 이름을 앞세우고 당당히 ‘족구인’이라는 자부심을 숨겨가지고 찾아가는 거였다. 마치 결혼식을 끝내고 차를 몰고 공항을 향해 달려가는 신혼부부처럼 들뜬 감정을 달래면서 말이다.

그들이 공원에 도착하자, 족구장에는 이미 클럽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성구 일행은 가까이 다가가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가볍게 수인사를 한다. 마침, 진행 중이던 게임이 금방 끝난다.

성구는 동부 팀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수인사를 다시 나눈다.

“이번에 우리가 족구단 하나 창단했습니다.”

“와, 그래요? 팀명이 뭡니까?”

“잔,다,리!”

“잔다리? 이름 참 특이하네요. 무슨 뜻입니까?

성구는 팀명의 의미를 세세히 설명한다. 주위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축하합니다!’ 하고 한 마디씩 한다.

“그럼, 이렇게 4명이 오셨으니까 한번 친선 게임해야죠?”

“네, 고맙습니다.”

성구가 예를 갖추고 일원들에게 준비하라는 눈짓을 보낸다. 몇은 족구화로 갈아신고, 몇은 신고 간 족구화 끈을 조이고 가볍게 몸을 푼다.

이미 게임이 끝난 사람들은 물을 마시며,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하며, 옆 의자에 앉아있기도 하며, 서 있기도 했다.  옆에 있는 다른 족구장 코트에는 두 명씩 네 명이 게임을 하고 있다. 적정한 인원이 안 되면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실감이 나지 않는 법. 힘이 빠졌는지 풀이 죽었는지 도무지 의욕이 없어 보인다. 지지부진. 의욕상실.

역시 족구도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첫째는 족구장 확보, 둘째는 적정 인원, 셋째는 족구 실력. 결코 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잠시 후, 동부 팀과 잔다리 팀이 코트에 들어선다. 두세 번의 연습이 이루어지고 플레이가 선언된다. 팀을 대표하여 처음으로 다른 팀과 교류전을 하는 거였다. 비록 정예 멤버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예전과는 느낌이 다른 것을 성구는 분명 실감하고 있다.

“동부!”

서브를 넣기 전 외치는 상대의 구호를 따라 성구네 팀도 잔다리를 줄여 ‘잔달!’하고 외친다. 아무래도 구호는 세 글자보다는 두 글자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클럽이 있으면 이렇게 구호도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로 인해 분위기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 구호와 팀원의 합창으로 인하여 파이팅이 성욕처럼 불끈 솟기도 하고, 일체감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팀웍이 살아나는 것을 그들은 분명 느끼고 있는 거였다. 비록 유니폼은 없어도 말이다.

게임은 박빙으로 흐르다가 끝이 났다. 승패를 떠나서 최선을 다한 경기에 만족할 따름이라고 성구는 생각한다. 팀원들도 같은 교감이 이루어지는 듯 하였다.

몇 게임을 더 하고, 성구 일행은 만족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어느새 저녁 해가 서쪽 아파트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저녁놀이 슬픈 사랑처럼 아름답다.

“이 땀 좀 봐!”

동재가 상의 티셔츠 앞부분을 쥐어짜자 빗물처럼 주르륵, 떨어진다.

“하하, 나도 그래.”

그들의 상의가 땀에 흠뻑 젖어 축 늘어졌지만, 기분만큼은 거위 깃처럼 가볍게 느끼며 차 안에 오르고, 달리기 시작했다. 열린 창문을 통해 거침없이 들어오는 초가을 바람이 그들의 얼굴 위로 무방비로 쏟아졌다. 상쾌한 바람은 그들의 뺨에 입맞춤을 하듯 때론 부드럽게 안마를 하듯 다가왔다.

동네로 돌아와 그들은 각자 집으로 헤어질 채비를 한다.

“오늘, 참 수고들 많았어요. 내일 두 시에, 구장에서 봅시다.”

성구의 말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들은 돌아선다. 행복한 운동 시간이 이제 끝났는데, 내일도 그 행복한 시간이 또 찾아온다는 기대감을 가슴에 안고 그들은 돌아서고 있다. 지금껏 맛있게 음식을 먹었는데, 내일 또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기대감을 품은 사람들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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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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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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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저ㄴ◐ㅠ처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3.24 10년 전이라... 대단하십니다~좋은 시간되세요~
  • 작성자주홍글씨 | 작성시간 08.03.19 잘 보고 있습니다..차츰 더 잼 나네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저ㄴ◐ㅠ처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3.24 고맙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이 참 많지요~
  • 작성자굿모닝한상훈 | 작성시간 08.03.25 단기사병때[남들은 방위라고도 하죠 ]그때 처음 중대장님하고 족구를 처음 해봤네요 기억으로 우수비 중대장님이 칭찬하던데요 그걸 20년이 지난 요즘 재미에 푹빠져버릴줄이야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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