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회식을 했다.
술마신다. 노래한다. .
흥이 나지 않는-
계급적, 작위적 모임이 모두들 지겨웠는지,
일찍 잔을 턴다.
겨울바람이 차다.
거리에 내몰린 남자들.
모두의 그림자엔 방향이 없다.
“어이, 세레노 탁구나 한 판 할까,”
마주 앉아 쓴 이야기를 나누기도,
일찍 집으로 들어가기도 싫은,
겨울밤 중년남성의 핫 아이디어다.
‘오, 과장님, 오, 계장님, 오, 주여‘
모두의 머릿속에
탁구는 퇴색한 추억이었다.
경험치 못한 사람은 없지만,
진지하게 알아본 사람 또한 없다.
그저 옛날옛날에
무리지어 누군가가 외치면
휩쓸리듯 한두번 놀아봤을 터,
평소 진지하게 좋은 취미생활로 탁구를 권했을 때,
과묵하고 소심한 입으로 침튀기며 탁구열변을 토했을 때,
매일 무거운 탁구가방 어깨에 메고 다녀도,
어깨 한번 주물러주기는커녕,
거슬린다는 눈빛으로 대했던 이들이다.
그들이 왜, 이 거리에서,
갑자기 난데없이 탁구를 외치며 흥분하는가.
회식 있다고 탁구가방도 안 들고,
딸에게 초코송이 사갖고 일찍 들어간다는 달콤한 약속까지 한 터인데...
우물쭈물 거절의 제스처를,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찰나,
“내가 얘기했잖아, 나 탁구 좀 쳤다고;;”
거들먹거리는 리더의 술기운이 모두를 휘어잡는다.
왁자지껄, 신이 나셨다.
탁구가 이렇게 사람들을 신나게 하는 것이었을까..
우화화화, 등야핑,
아싸리뿅, 히네루,
푸흐흐흐 양면 빳다.
급히 떠오르는
연상단어행렬이 한바탕 모두에게 동질감을 형성해준다.
“세레노, 탁구장으로 안내해봐.”
나에겐-
하루하루 진지했고 가슴 뛰었고,
목말랐고, 땀흘리며 경건했던 회사탁구장에,
술기운이 퍼진다. 구두발자국이 찍힌다.
‘뭐야, 네가 원하던 거 아니었어;
많은 사람들이 탁구장에 와서 웃고 즐기는 거,
지금 저들의 표정을 봐봐, 얼마나 신이 났는지...‘
넥타이 휘날리며
한올 한올 벗겨지는 셔츠 구멍,
무릎까지 올라가는 기지바지,
뿍뿍 뀌어대는 방귀, 트름.
정말로 신나게 헛스윙을, 주먹서브를 하고 있다.
전설의 17:1을 아는지
이제는 나를 세워놓고 모두들 한 판씩 뜰 기세다.
나는 탁구장 펜홀더를 집어들었다.
한 명 한 명 공을 맞춰준다.
“우하하하, 나보다 못하네,”
“내가 쉽게 이길 수 있겠는데...”
“서브는 이렇게 넣는 거야”
“자, 회전이 이렇게 들어가지?”
전설의 명언이 돌려차기로 쉴새 없이 이어진다.
밝은 낯으로 쉴새없이 공을 받아주며
나는 탁구로봇이 되어,
두 시간, 그들의 즐거운 밤을 방해하지 않기로 한다.
슬프다. 반성한다.
내 눈으로 하찮아 보이는 것에
진지하게 몰두한 사람을 나는 들은 풍월로 가볍게 대한 적이 없었는지...
누군가의 진정성 있는 사랑을 허투로 무시하진 않았는지...
아침, 맑은 정신에 담배 한 대 피자고 나갔다.
“세레노 덕분에 손에 멍이 들었잖아.
왜 그 놈의 탁구를 하고 다녀서...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네....
내가 어제 술만 안 먹었어도... 아주 날라다녔을텐데..
탁구, 참 쉽더라...“
동영상게시판에 야행성불나방님이 올려놓은 글과 동영상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나 탁구를 진심으로 마음다해 좋아하나봐.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세레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12.24 넵, 같이 화이팅입니다.!
-
작성자머나먼3부 작성시간 10.12.24 잘 읽었습니다..저도 70년대 부터 친구들이랑 학교 근처 탁구장에 가서 재미있게 탁구치던 세월이 생각나네요..그 당시에는 데이트 할때도 탁구장에 자주 갔었는데..그때에는 탁구실력은 없었지만 낭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레슨탁구가 대세가 되어서 탁구실력은 늘었는데 낭만은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세레노님의 글을 읽고있으니 옛날이 떠오르네요..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세레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12.24 데이트시 탁구장 갔다는게 상상이 잘 안되지만,
꿈과 낭만은 탁구장에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벼이 무시되지 않는 꿈과 낭만이 맑게 개었으면... -
답댓글 작성자Conan 작성시간 10.12.25 으하하 세레노형~ 우리 아버지께서 외할아버지가 하시던 탁구장에 가신게 제가 태어나게 된 시작입니다. ㅋㅋ 카운터를 보던 이모가 언니 (우리 어머니)를 데려오고 어찌어찌 탁구장 데이트? 모 간단하게 얘기하면 저는 탁구장에서 점지된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ㅋㅋ 탁구장 참 많았다고 하던데요. 그땐.
-
답댓글 작성자세레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12.28 아, 진짜야? 역시 탁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엔 이유가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