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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는 이유수의 기이한 천황산일식명설고찰 분석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20.12.05|조회수138 목록 댓글 13

★1567.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는 이유수의 기이한 천황산일식명설고찰 분석

★1567.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는 이유수의 기이한 천황산일식명설고찰 분석

(1)2019.12.21 밀양향토사연구회에서 발행한 밀양이야기(제10호)에 231쪽(41~271쪽) 분량의 기고문으로 이유수의 天皇山日式名說考察(이하 약칭 "글"로도 표현)의 허구성을 분석해서 적었습니다. 이 글은 다음(daum) 카페 밀양광장에도 있습니다

(2)이유수의 글이 너무나 난해한 가운데 사족(蛇足)같은 자기만이 알아볼 수 있는 옛글을 섞어놓아 글을 더욱 난해하게 만들어 글을 쓴 본인이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은 거의 알아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3)그의 글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92쪽의 여지도(輿地圖)와 153쪽과 154쪽의 해동지도(海東地圖)에 표시된 지금의 국도24번상의 가지산터널 위에 표시된 天王山의 위치가 지금 석남고개로 불리는 옛 고개 이름인 穿火嶺(穿火峴)의 위치라고 잘못된 독도(讀圖)를 하고 그 천화령을 여지도(해동지도)에 표시된 天王山과 엮어 조물주 같은 초능력으로 그 고개를 남쪽으로 당겨와서 현행 지도상의 소위 천황산(天皇山)을 조작하므로써 민족의 명산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獅子峰의 위치에서 말살해 버렸습니다.

(4)이런 엄청난 실수 또는 조작도 모자라서 또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재악산(載岳山)을 가히 조물주 같은 초능력으로 동쪽으로 50여 리(五十餘 里)를 이동시켜 현행 지도상의 소위 재약산(載藥山)의 위치에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조작하므로써 현행 지도상의 재약산(載藥山)과 이동시켜온 대동여지도에 표시해 놓은 재악산(載岳山)을 히미하게 엮어 천여년 전인 신라시대부터 우리의 선현(先賢)들이 이름을 지어 사용해온 민족의 명산인 재악산(載嶽山=載嶽山) 산명을 사자봉(獅子峰)의 위치에서 지워 말살하는 민족 정서에 맞지 않고 역사적인 사실과도 맞지 않은 글을 적었습니다.

(5)2020년에도 밀양이야기(제11호)에 게재하는 본 글에도 이유수가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천황산으로 둔갑시키고 동시에 현행 지도상의 재약산(載藥山)인 수미봉에 재악산(載嶽山=載岳山)으로 둔갑시켜 요술을 부린 일에 대해서 언급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6)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적었기에 저(도재국)가 그 글을 수십 번을 들여다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니까 그 글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7)이유수의 글 원문과 도재국의 장문(長文)의 분석 글 전체는 밀양이야기(제10호)와 밀양광장에 있습니다. 이 글과 본 글을 대조하면서 보아야 난해한 그의 글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 글을 읽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글을 보아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8)●●●제목 :
★1567.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는 이유수의 기이한 천황산일식명설고찰 분석

(9)《○46쪽》기고문 그림 설명 :
밀양이야기 제10호의 46쪽에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하 "글"이라 함)의 허구성이라는 그림 한 장이 있는데, 이유수의 글을 일반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그의 "글"을 일반인이 이해가 되게 분석을 하여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10)《●87,88쪽》이유수 주장 :
"載嶽山이 밀양쪽으로 많이 들어와 있다" 하면서 그 증거로 밀양이야기(10호) 87쪽과 같이 "동국여지승람에 관아와의 거리를 載嶽山 在府東41里"를 언급한다, 즉, 동국여지승람을 발췌하여 "穿火峴이 在府東93里라 하면서 오늘날의 지도상 나란히 있는 載岳山은 在府東41里에 지나지 않아 52里가 차이가 난다" 했다(88쪽). 또 "이러한 것을 볼 때 이때의 載嶽山과 금일의 載藥山은 그 위치가 같지 않은 인상을 준다" 했다(88쪽)

(11)《○87,88쪽》도재국 분석 :
그의 "93-41=52里"의 계산식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천화현과 재악산으로 가는 길이 다르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93里는 관아에서 지금의 국도 24번을 따라 갑니다

(12)41里는 관아에서 표충사로 가는 노선입니다.
대동여지도상의 載岳山과 현행 지도상의 載藥山을 같은 위치로 보려는 듯한 주장은 매우 잘못되었고, 그는 결국은 현행 지도상의 載藥山을 載岳山으로 보았습니다.

(13)위의 "오늘날의 지도상 나란히 있는 재악산(88쪽)" 에서 "오늘날의"를 "대동여지도상" 으로 변경해야 그의 앞뒤의 주장과 연결이 맞습니다.

(14)《●90쪽》이유수 주장 :
여지도서상 "穿火嶺在府東93里, 來自淸道雲門山 載嶽山在府東40里 來自穿火嶺" 을 인용하면서 "이때의 載嶽山은 밀양쪽으로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산이었으며 載嶽山은 穿火嶺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했습니다.

(15)《○90쪽》도재국 분석 :
穿火嶺은 해발 1240 미터의 가지산과 해발 1189 미터의 현행 지도상의 天皇山 사이에서 제일 낮은 해발 750미터 정도의 고개입니다

(16)그는 대동여지도상의 載岳山의 위치를 현행 지도상의 天皇山으로 보지 않고 穿火嶺에서 뻗은 (구체적으로 위치를 확정하지 않고)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90쪽) 라고, 주장했습니다.

(17)(높은 두 산 사이의 가장 낮은 해발 750 미터의) 穿火嶺에서 (더 높은 쪽으로 뻗어 지나) "밀양쪽으로 어떤 지점의 한 가지가 載嶽山이다" 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18)※고문의 원문 지지에 운문산부터 설명하면서 迦智山으로 안 적고 천화현 또는 천화령으로 적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저가 생각해보니까 그 당시에 산 정상보다는 행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산중대로(山中大路)를 강조하려니까 穿火山을 생략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19)※가지산을 밀양지명고 산내면 편에는 천화산, 석남산, 실혜산, 석면산 등으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이 글의 쪽수는 밀양이야기(제10호)의 쪽수(페이지)이며
1998년에 울산향토사연구회에서 발행한 鄕土史報 제9輯의 글을 복사한 것이며 제9집의 쪽수는 사진에 있습니다.

(21)《●90쪽》이유수 주장 :
오늘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은 穿火峴의 뻗은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했다.

(22)《○90쪽》도재국 분석 :
전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또 가지란 큰 둥치 즉, 높고 큰 산에서 낮은 산으로 뻗어 나온 것이 가지인데, 해발 750 미터 穿火峴에서 해발 1189 미터 소위 天皇山을 넘어 해발 1119 미터 소위 載藥山으로 가지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즉, 載藥山을 천화현에 종속된 봉우리로 보는 인상을 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23)《●91쪽》이유수 주장 :
여지도의 밀양부도(密陽府圖)에는 언양쪽에 ~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天皇山名이 여기서 싹트기 시작한 것인데, 天皇山이란 이름은 다소 앞서부터 穿火嶺을 그렇게 불러온 것으로 짐작된다.

(24)《○91쪽》도재국 분석 :
穿火嶺과 穿火峴은 같은 위치에 있는 같은 고개의 이름입니다. 이것을 天王山으로 본 것은 이유수의 큰 실수이거나 고의적인 조작으로 봅니다. 이 주장이 천황산으로 조작한 두 개의 커다란 그의 논리중의 하나입니다.

(25)밀양이야기(제10호) 92쪽의 輿地圖에 표시한 天王山과 비슷한 고지도가 밀양이야기(10호) 153쪽과 154쪽에 있는 海東地圖입니다. 이 지도에 표기된 載岳寺가 지금의 표충사이고 재악사 뒷편의 "산 그림"이 현행 지도상의 소위 天皇山입니다, 이 천황산을 본 海東地圖에는 天王山으로 표기해 놓았는데 이유수는 이 천왕산의 위치를 천화현(천화령)의 위치로 잘못보았거나 고의적으로 그렇게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사찰의 四天王門 즉, 四天王과 관련한 산명이 천왕산입니다. 天王山과 天皇山은 전혀 다른 뜻입니다. 천황산은 일제 천황을 뜻합니다.
92쪽의 여지도와 비슷한 고지도로서 153쪽과 154쪽에 있는 해동지도에 표기된 天王山의 왼쪽에 "彦陽界八十里" 라고 적힌 곳이 당시 密陽府에서 彦陽縣으로 넘어가는 석남고개 즉, 穿火峴 또는 穿火嶺입니다. 이유수가 92쪽의 여지도의 독도(讀圖) 즉, "천황산의 위치를 천화현(천화령)으로 본 것"은 매우 잘못한 것입니다.

(26)여지도상 天王山의 왼쪽이 迦智山이고 오른쪽이 현행 지도상의 소위 天皇山입니다. 다시 설명하지만 밀양이야기(제10호)의 92쪽의 고지도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고지도가 밀양이야기(제10호)의 153쪽과 154쪽의 海東地圖 密陽府입니다.

(27)《●93쪽》이유수 주장 :
대동지지를 발췌하여 재악천을 설명하면서 "載岳川은 천화현에서 서쪽으로 훌러 載嶽山의 북쪽(陰)을 지나 응천으로 들어간다". 라고, 대동지지를 인용했습니다

(28)《○93쪽》도재국 분석 :
밀양이야기 제10호 183쪽~185쪽에 대동여지도를 확대한 것을 보면 지금의 동천을 載岳川으로 그려 표기했고, 더 큰 하천인 단장천은 그리지 않았고, 또 載岳山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이어 그려 지금의 단장천의 물길을 막아 단장천이 도래재(원구천과 남명을 넘나드는 고개)를 넘어 산내면 남명리쪽으로 흘러가도록 그린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대동여도를 잘못 그린 실수인데 밀양도호부 관내에만도 여러 곳에 잘못 그렸습니다. 당시의 여러 악 조건에서 제작한 흔적입니다
※그래서 저(도재국)가 밀양이야기(제10호)의 199쪽의 대동여지도상의 단장천을 기존의 강(13~31~5)에 18~19의 재악천(단장천)을 추가로 그려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29)이유수는 대동여지도만 보고 글을 쓰면 안됩니다. 고지도를 올바르게 독도하려면 고지도와 현실 지형을 직접 답사해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30)현행 지도상의 소위 天皇山의 동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배내천과 밀양댐을 지나 단장면 범도에서 구천과 합류하여 또 競珠山 북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데 조선시대에는 동천과 단장천을 모두 載岳川이라 했습니다.

(31)
이유수는 위와 같이 독도(讀圖)를 완전히 잘못했습니다

(32)《●93쪽》이유수 주장 :
문헌비고를 인용하여 載嶽山在東40里라 적었습니다

(33)《○93쪽》도재국 분석 :
이유수는 언급한 고문헌의 지지에 적힌 거리와 고지도에 표시된(그려진) 것을 가지고 고지도상의 지명이 현재의 지명과 맞니 안맞니 합니다.

(34)그러나 고지도를 제작할 때 좁은 木板에 지명과 지형 등을 새기거나 실재 거리를 측도할 때 요즘처럼 신식 장비가 없었기에 줄자로 먼 거리를 잴 수도 없어 한 번 잘못 측도하면 시대가 흘러도 그 거리를 그대로 사용하므로써 필사한 지지에는 틀린 거리가 계속 틀린 상태로 필사(筆寫)되었습니다

(35)고문헌에는 관아에서 표충사 또는 載嶽山까지를 40里 ~ 50里 로 적어 놓았습니다.

(36)그러나 실재 거리는 관아에서 표충사 까지만 해도 70里 정도 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까 이유수처럼 고문헌만을 읽고 고지도를 讀圖할 때 거리와 고지도의 지형 위치를 가지고 맞니 안 맞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즉, 같거나 비슷한 축척의 고지도와 현행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지형도를 포개어서 서로 맞지 않는다고 이것이 그것이 아니다 라는 식의 이유수의 아주 경직된 고문헌의 지지 이해와 고지도의 독도 방법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37)《●94쪽》이유수 주장 :
그는 대동지지를 인용하면서 대동여지도의 밀양부 한 장을 첨부했는데 "대동여지도상 載岳山은 밀양부 안에서 동서로 길게 뻗었다" 라고, 그림을 讀圖를 했습니다

(38)《○94쪽》도재국 분석 :
고지도 즉, 대동여지도만 보고 글을 쓴 결과 그의 글은 역사적 사실과 현실 상황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특히 밀양이야기(제10호)의 183쪽~185쪽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산봉우리와 산명을 가로 기준으로 표시했는데 이 산봉의 그림은 산덩어리가 큰 것은 가로로 길고 크게 그렸고, 작은 산덩어리는 그 반대로 그렸습니다. 이런 것을 모르고 밀양쪽으로 길게 뻗어있다 라고, 독도하면 안됩니다.

(39)《●95쪽》이유수 주장 :
天皇山과 載藥山 편에서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山이라고도 부르다가 이것이 天皇山으로 변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40)《○95쪽》도재국 분석 :
이유수는 여지도상의 天王山의 위치를 穿火峴(穿火嶺)으로 보는 큰 실수를 저질렀거나 고의적으로 그렇게 보았습니다
결과는 載嶽山을 없애고 天皇山으로 조작해 버렸습니다.

(41)《●97쪽》이유수 주장 :
載藥山은 다섯가지 지지(地志)에 나타난 載嶽山이 50여 里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붙여진 산명이다.

(42)달리 표현하자면 穿火峴 또는 穿火嶺.天王山이란 산괴(山塊)의 이름 없었던 산봉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현행 지도를 만들 때 훨씬 서쪽에 있던 天王山의 한 지맥을 따와서 붙인 것이다

(43)《○97쪽》도재국 분석 :
논리적 현실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위에서 한 支脈이란 대동여지도상에 표시된 載岳山을 가리키는데, 표현을 기이하고도 어지럽게 현실적으로 맞지않고 고지도의 독도를 잘못 했습니다

(44)※자세한 분석 내용을 보려면 밀양이야기(제10호)나 밀양광장을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의 글의 (1) ~ (46)과 같이 괄호번호 부여는 문단모양을 붙여 지면(紙面)을 최대한 확보하고, 찾아보기 쉽게하기 위한 것입니다.

※(12)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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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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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2.09 (4)
    천여년 전인 신라시대부터 우리의 선현(先賢)들이 이름을 지어 사용해온 민족의 명산인 재악산(載嶽山=載嶽山) 산명을 사자봉(獅子峰)의 위치에서 지워 말살하는 민족 정서에 맞지 않고 역사적인 사실과도 맞지 않은 글을 적었습니다.

    《글을 적었습니다》 를
    《글을 만들었습니다》 로 수정

    18쪽 (4)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2.07 인명은 모두 平稱으로 변경, 마지막 파일 旣 전송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2.07 (13)위의 "오늘날의 지도상 나란히 있는 재악산(88쪽)" 에서 "오늘날의"를 "대동여지도상" 으로 변경해야 그의 앞뒤의 주장과 연결이 맞습니다.

    /////

    오늘날의 지도에는 재악산(載岳山)이라는 산명이 표기된 지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2.09 (2)을 (12)로 수정

    (41)부터 번호 2개씩 줄일 것
  •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2.09 155쪽 ~ 160쪽 경자갑보월비 1600년을 1661년으로 수정

    임진왜란 후 60년이 흐른후 영정사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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