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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라 하는 이유(산명 유래)는 《밀양 사람들의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작성자도재국| 작성시간20.12.11| 조회수76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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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2 위에서 아래로 두 번째 사진과 맨 아래의 동그라미 안에 번호가 있는 산과 봉우리 명칭의 위치와 그 명칭이 생겨난 이유를 적어놓았는데 이것을 아셔야 저가 쓴 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4 생태환경마을 바드리와 왜적에 항전한 백마산성과 밀양댐을 연결하는 산악관광벨트는 좋은 등산로입니다

    그런데 밀양시는 백마산성의 역사유적을 방치해 놓고,
    한국도로공사는 백마산을 말살시키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나다

    ※기존 생태마을을 운영하고 있지만
    백마산성에 대해서 추가해야 합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3 ★1569.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라 하는 이유(산명 유래)는 《밀양 사람들의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4 ★1569.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라 하는 이유(산명 유래)는 《밀양 사람들의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http://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538?svc=cafeapp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3 ●不知其幾千萬區赖以活
    부지기천 명의 밀양 사람들이 이(재악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

    ●則密府之人, 非咸載命於此山者耶
    밀양 사람들의 삶(목숨, 命 줄)은 재악산에 실려(載 달려) 있다

    ●然則此山
    재악산이 이러한즉

    ●非密城一府之人所可寶歟
    밀양 사람들의 보배가 아닌가!

    ●密人亦國之民, 則此山亦非僞國之寶歟
    밀양 사람들이 역시 나라의 백성이므로
    재악산은 역시 나라의 보배이니라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4 27번 글을 오기하여
    아래와 같이 수정합니다
    ///////
    그런데 도재국과 손흥수 선생이 《천황산》을 《재악산》으로 선전하는 일을 하였기에
    문화관광과에서 손흥수와 도재국과는 서로 전혀 소통을 안하고 매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4 27번 추가

    ※박길문 선배님과 부산에 계시는 충헌공파 대표님이 가지고 계시는 족보에 기록된 박한립 등의 후대 족보가 없었고, 족보를 수보할 때 수단작업이 복잡하여 그 후손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밀양박씨가 너무 많고 족보도 지파별로 했기 때문에 해당 년대에 수보한 몇백만 명을 망라한 대동보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즉, 해당 년도에 수보한 수백만 명을 한꺼번에 수록한 대동보를 찾기 어려운 상황은 씨족이 수백만 명인 김해김씨, 전주이씨, 밀양박씨가 같은 상황입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4 27번 수정
    《의병장 박한립》을 《나주목사 박한립》으로 수정

    관리사에서 전기불을 켜서 관리사에서 전기불을 켜서 소장된 족보를 무려 두 시간여를 열람하여
    13세 의병장 송재공 박명복과
    13세 나주목사 박한립(朴漢立)을 확인했습니다소장된 족보를 무려 두 시간여를 열람하여
    13세 의병장 송재공 박명복과
    13세 나주목사 박한립(朴漢立)을 확인했습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4 27번

    족보 즉, 대동보는 문중원들에게 배부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므로

    거대 문중은 사실상 수백만 명을 한꺼번에 수록하는 대동보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대 문중은 지파별로
    또 세분한 지파별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4 32번 수정
    ※위 박한립과 박창문의 《戰亡》을 다시 확인한 결과 《임진왜란》이 아니고, 《병자호란》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12.14 위 본문 내용을 2020.12.14(월) 11:35 현재 까지 여러 차례 수정, 추가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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