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3. 밀양 측의 명백한 수많은 역사적인 재악산 증거, 울산 측의 조작하여 지어낸 소량의 증거도 아닌 천황산 자료 등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20.12.20조회수185 목록 댓글 0★1573. 밀양 측의 명백한 수많은 역사적인 재악산 증거, 울산 측의 조작하여 지어낸 소량의 증거도 아닌 천황산 자료 등
★1569.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라 하는 이유(산명 유래)는 《밀양 사람들의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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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라 하는 이유(산명 유래)는 《밀양 사람들의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태허 동계 경일(太虛東溪敬一)의 동계집(東溪集) 중에서 재악산기(載岳山記) 일부 :
●不知其幾千萬區赖以活/부지기천 명의 밀양 사람들이 이(재악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
●則密府之人, 非咸載命於此山者耶/밀양 사람들의 삶(목숨, 命 줄)은 재악산에 실려(載 달려) 있다
●然則此山/재악산이 이러한즉
●非密城一府之人所可寶歟/밀양 사람들의 보배가 아닌가!
●密人亦國之民, 則此山亦非僞國之寶歟/밀양 사람들이 역시 나라의 백성이므로 재악산은 역시 나라의 보배이니라
●然則密人與國人, 皆名此山, 僞載岳宜矣/그러므로 밀양 사람과 나라의 백성은 모두 이 산의 이름을 《재악》이라 하는 것이 마땅하느니라.
●載藥則藥於病者惟宜 《중략》豈徒療病之是求哉, 乃長生不老蜕凡登仙之藥耳, 余曰不死之藥/『 載藥』은 환자에게 약이 되지만, 《중략》어찌 오로지(한낱) 병 치료이겠느냐? 장생불로하여 허물을 벗고 대체로 보아 신선에 오르게 하는 약인 것이지, 죽지 않게하는 약은 아니니라.
※(주)도재국 :
『 載岳』의 뜻은 크게 보아 수많은 밀양 사람의 삶(목숨, 命 줄)이 載岳山과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달려(載 실려) 있는 것이지, 오로지 환자의 병 치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 밀양광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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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쪽 하단에 추가
●국토지리정보원과 국가지명위원회에 간절히 말씀드립니다
●위 두 가지 방법으로 재악산(載嶽山)으로 결정이 않되면 반드시 아래의 기준과 수많은 재악산 증거로써 지명심의를 해주십시오
①지명의 증거로 왕조(조정, 국가)의 지리문헌의 기록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용해야 합니다
②지명의 증거로 당해 지명의 소재지(밀양도호부=밀양시) 또는 사찰의 유물(국가유물 또는 성보유물)로서 비문과 불교경전의 기록, 배산과 관련된 사찰(재악사=영정사=표충사)에 관한 것과 불교를 국교로 하던 시대의 그 사찰의 승려가 사찰과 배산 등에 관련해서 지은 글과 성보(聖寶) 자료에 관한 것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용해야 합니다
③지명의 증거로 당해 지역의 군현(밀양도호부=밀양시)과 그 군현의 지방관(밀양도호부사=밀양시장) 또는 역임한 지방관이 작성한 문헌(지리지 등)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용해야 합니다
※한 시대가 아닌 여러 시대(역대)의 밀양도호부사(밀양시장)가 지은 지리지 등에 재악산 기록이 많습니다
④지명의 증거로 당해 지명의 소재지(밀양도호부, 밀양시 관내) 또는 역사적인 인물(김종직 등), 씨족의 집합체인 문중의 기록(족보=世譜 등)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용해야 합니다
⑤당해 지역의 지명을 관할하는 군현(밀양도호부=밀양시)의 지리문헌(지리지=읍지=밀주지,밀주구지,밀양지,밀양지명고 등)의 기록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용해야 합니다
⑥조정의 관료 또는 당해 지역(밀양도호부=밀양시) 또는 출신의 지리학자 등의 역사적인 문헌과 자료를 절대적인 증거로 인용해야 합니다
⑦당해 지역(밀양도호부=밀양시) 역사의 사건에 관한 조정의 문헌(조선시대 해인사와 통도사의 일부 승려들에 의한 표충사당 이건을 위한 사명대사 진영眞影 탈취사건에 대한 禮曹의 完文 등)과 지역 인물의 문헌 등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용해야 합니다
※예조의 "完文"이란 공문서를 말합니다
⑧소량으로 또 증거로 인정하기 어려운 자료(울산 측이 제출하는 자료)보다 다양하고 많은 량의 명백한 증거(밀양 측의 증거)를 절대적인 증거로 인용해야 합니다
※밀양 측은 위와 같은 8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증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울산 측은 아래와 같은 자료를 증거라고 2015년에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시했습니다
⑨지명을 심의할 때 역사적인 증거가 되지 않거나(천황산일식명설고찰 등) 당해 지역과 관련 없는 자료(배상협의 천황산 기록이 있는 송려집 등)를 증거로 제출하거나 증거로 되지않는 것(사자봉 정상에 제당이 없었는데 있었던 것 같이 울산 측이 작성한 자료)은 지명 결정에 인용하면 안됩니다
※재악산 산군(山群=山塊=산 덩어리)의 시군별 점유 면적은 밀양시가 60%. 울주군(배내골)이 40%, 양산시(배내골)가 10% 정도입니다
※위와 같이 재악산의 증거는 모두 밀양 쪽에서 발생, 형성되었습니다
●왕조시대에는 신라시대부터 재악산(載嶽山)의 주된 부분은 역대(신라,고려,조선,대한제국)의 왕명(王命)에 의거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밀양시)가 관할하는 산이었으므로 위의 ①번부터⑧번까지의 기준에 해당하는 이 기고문에 제시한 재악산 산명의 모든 증거가 밀양도호부(밀양시)쪽에서 발생 또는 형성되었습니다.
●울산쪽에서는 ①번부터⑧번까지의 기준에 해당하는 재악산(載嶽山)이나 천황산(天皇山)의 증거가 전혀 발생 또는 형성되지 않았기에 지명심의 때 증거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울산 측은 재악산과 천황산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못하고 증거로 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것을 증거라고 제시했습니다
①우리 민족 왕조의 지리문헌에 전혀 기록이 없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라는 이상한 글을 1998년에 이유수라는 개인이 임의로 지어 천황산의 증거라고 2015년에 내놓았으나, 그 내용은 우리 민족의 지리역사와 지리문헌에 수없이 기록된 재악산을 부정하는 전혀 인정할 수도 없고 검증된 글도 아닐 뿐만 아니라 재악산을 없애고 그 위치에 지어낸(조작한) 것을 천황산이라 주장하나 전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 글은 1998년 울산향토사연구회가 발행한 향토사보(蔚山鄕土史報)에 실려 있습니다.
②또 2015년에 개인의 문집인 배상협의 송려집(松廬集,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 古819.56.B145s)에 있는 천황산 자료를 증거라고 제시했으나 그 천황산은 밀양과 울산 사이에 있는 천황산이 아닙니다
③또 천황산 정상에 있는 돌탑을 증거로 제시했으나 그 돌탑은 1990년경에 등산객들이 돌을 한 개씩 던져 모인 조그마한 돌무지에 어떤 단체가 그 이후에 쌓은 것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전국적으로 시.군.구의 읍.면.동 단위로 2003년에 전수조사한 "한국의 마을제당"에도 조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 당시에 사자봉 정상에 서낭당이나 산왕당, 신사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있었던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증거라고 2015년에 제시했습니다
※관련 증거를 모은 글이 사진과 함께 밀양광장 ★305, ★460, ★467번 등에 밀양군 단장면 조사내용이 있습니다
●울주군 상북면 마을제당 조사내용은 여기에 있습니다
★469번 :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1079?svc=cafeapp
●이런 데도 국가지명지위원회가 재악산을 부정하고 천황산을 인정하여 지금까지 존치시키는 것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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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악산 증거 글 원고
지난 밤(2020.12.20 일요일) 11시 경에 잠이 들었는데
새벽 1시 28분에 잠이 깨어습니다
잠이 안오니까 몇 일째 마지막 교정작업을 할 원고지를 들여다보니 벌써 새벽 5시 반이 넘었습니다
저에게 왜 이런 고통이 35년째 계속되는지 참으로 기이한 운명입니다
아래는 300 페이지가 넘는 《재악산 산명 증거를 모아놓은 책의 원고》입니다
지면이 부족해서 내용을 대폭 축소하고
또 지면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글프로그램의 글자모양의 《장평》까지 축소해서 작성한 원고가 300페이지가 넘습니다
수정을 해야 할 《토씨와 띄워쓰기와 간단한 오기 수정, 간단한 몇 줄의 추가한 내용》까지 수십 군데쯤 될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저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오래 전에 복사 청구한 《송려집》입니다
여기에 《天皇山記》가 적혀 있으나 밀양과 울산의 경계에 있는 천황산이 아닙니다
즉, 내용을 읽어보면 문제의 천황산의 증거가 아닌 다른 어떤 지역에 있는 천황산에 대한 글입니다
울산 측이 2015년에 이러한 것들을 천황산의 증거로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출했습니다
개인의 문집인
배상협의 송려집(松廬集,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 古819.56.B145s)
●●● 이유수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은 조작해서 지어낸 글입니다
●●●●울주군 상북면 마을제당 조사내용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1079?svc=cafeapp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
손흥수, 도재국 등이 찾아낸 수많은 재악산 증거는 도재국과 손흥수가 지어내고 조작한 재악산 증거가 아니고
우리 민족의 역대 왕조(국가)와 선현님들(백성)이 사실대로 적어놓은 재악산 증거들을 35년째 모진 고통을 겪어면서 많은 사비를 들여 찾아 낸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찌해서 비난받을 나쁜 짓입니까?
또 무슨 죄가 됩니까?
아니면
격려받고 보상받고 표창장을 수여받고 만인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 모범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저희들이 제시한 모든 재악산 증거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관련 기관, 각 사찰, 각 대학교, 개인 등의 영구보존문서와 영구보존문헌 또는 국가유물, 각 사찰의 성보유물과 영구보존하는 책 등으로 소장되어 있습니다
저희들을 비난한다면
누구든지 앞으로 반드시 책임을 져야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