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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576. 대한제국, 관아앞 송덕비 주인공 정병하 탁지부대신의 처형 전 밀양군수 겸직한 오횡묵의 고성총쇄록에 재악산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20.12.23|조회수175 목록 댓글 0

RE:★1576. 대한제국, 관아앞 송덕비 주인공 정병하 탁지부대신의 처형 전 밀양군수 겸직한 오횡묵의 고성총쇄록에 재악산(載嶽山) 기록

대한제국 시대에 일제 천황이 보낸 자객들에 의해 날이 샐 무렵에 황궁의 침소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국모 명성황후는 자객에 의해 군홧발로 짓밟히고 번쩍이는 긴 칼에 의해 난자질 당해 살해되었다

●동시에 고종황제는 일제 자객들에게 침소에서 무자비히게 폭행을 당해 옷이 다 찢어졌다. 얼마나 두들겨 팼으면 옷이 다 찢어질까. 어지간히 두들겨 패서는 입은 옷이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요즘의 초등학생도 다 안다.
국제적으로 보는 눈이 있어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남의 나라 황제의 침소에 군화발과 장검으로 무장하여 침입해 그럴게 마구 두들겨팼다

●세자도 마찬가지였다. 칼로 내리치면 죽거나 커다란 상처가 남아 그들의 만행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면 대한제국을 병탄하는데 여론상 불리하므로 자객이 긴 칼의 (칼)등으로 세자를 내리쳐 기절을 시켜버렸다

●그리고 이 살육에 개화 친일파인 조정의 고위 관료였던 밀양 사람 정병하가 관련되어 처형되었다

●즉, 《정병하 밀양군수》가 일을 잘 하여 중앙의 탁지부대신으로 발탁되어 갔을 때 조정에서는 밀양군수의 빈 자리에 《고성군수 오횡묵》을 밀양군수의 직을 겸직하도록 인사 명령을 내렀다

●오횡묵이 쓴 《고성총쇄록》에는 서울로 간 정병하가 밀양군수로 빨리 원대복귀를 바라는 내용의 짤막한 신세를 한탄하는 글이 있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17?svc=cafeapp


●오횡묵 밀양군수 직무대리가 이 때 표충사에 출장가서 돌아보면서 쓴 장문의 《고성총쇄록》에 지금의 소위 천황산을 재악산(載嶽山)이라 적어 놓았다

즉, 그 당시 밀양군수가 자기가 관할하는 산을 천황산이 아닌 재악산으로 확인하여 적어 놓았다

●정병하가 밀양군수를 할 때 군민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칭송도 많이 받았으나 중앙으로 발탁되어 시류에 휩쓸려 친일개화파로 활동하면서 명성황후 살해사건에 관련되어 처형되는 비극이 있었다

●정병하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한 밀양 최고의 지리지인《밀양지명고》에 기록되어 있다

●명성황후가 살해될 때 대한제국의 상세한 정세가 부산.울산.양산의 향토사학자인 이병길 선생이 오마이뉴스에 현재 연재하는 《 [부산경찰서 투탄 100주년] 의열단원 박재혁과 그 친구들 10-1》에 나와 있다

●역사적 사실이 이러한데도 울산의 향토사학자로 활동하던 이유수는 생전(1998년)에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라는 기이하고도 또 민족역사의 지리문헌에 수없이 적어 놓은 재악산을 부인하면서 엉터리 글을 지어 《대한제국시대에 나라에서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천왕산의 격을 높혀 천황산으르 개명했다》 라고 주장했고 울산의 역대 위정자들은 이 산명을 지금까지도 옹호하고 있다.

●대역죄인 정병하의 전력이 이러함에도 그를 칭송하는 송덕비가 영남루 경내에 세워졌다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1393?svc=cafeapp


●그리고 최근에 영남루를 정비하고 밀양관아 건물을 신축 복원할 때 관아 앞에 역대 밀양부사 비를 영남루에서 옮겨 세웠다

●밀양 관아 앞의 서쪽 끝에 세워진 《정병하 밀양군수》의 비 왼쪽 상단의 모서리는 성난 밀양의 군중에 의해 부서져 있다

●정병하가 밀양군수를 할 때는 《밀양도호부사》라는 지방관의 직위는 조정에서 이미 《밀양군수》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친일파에 의해 송덕비가 세워지고 명칭은 《군수》보다 한 단계 위인 《부사》로 새겨져 있다

●정병하의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역적질의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마다 밀양 관아 앞에서 일제에 항거한 《3.13 밀양 만세운동》을 기념하여 재현하는 행사에는 밀양의 많은 지도자들이 참석하고 있고 또 많은 시민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구경하기도 한다

●《총쇄록》이란 쉽게 표현하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여러 가지 사항을 모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을 말한다

●오횡묵은 일을 잘하여 오랜 세월 동안 전국의 여러 군현(요즘의 시.군.구)의 지방관(부사, 군수=요즘의 시장.군수.구청장)을 역임했다

●《국모 명성황후》가 살해된 기록은 그 당시 《러시아공사》가 기록한 문서가 최근에 비밀이 해제되어 밝혀졌다
즉, 그 문서가 제정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트르부르크》의 문서 수장고에서 비밀 해제되어 공개가 되므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전해지고 있었으나
일제의 만행이 국제적인 공인문서로는 최초로 세상에 밝혀젔다. 그러나 일본은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천인공로할 범죄를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독재자(獨裁者)의 그늘에서 벗어나 러시아 민족의 도시 명칭으로 복원한 《상트페트르부르크》:
1703년 표트르 대제가 네바 강의 하구에 세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서 비롯된 도시로 처음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했다가 1914년 페트로그라드로 개칭되었고, 1924년 레닌이 죽자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로 명명되었다. 그후 1991년 11월 7일 사회주의 개혁의 와중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본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다.
(이반 3세는 당시 러시아의 영토를 3배로 늘리며 제국의 기초를 놓았다. 표트르 1세는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러시아 제국을 유럽의 주요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서구적인 디자인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하여 국가의 발전을 꾀했다:위키백과 등)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도 일제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역사학자와 일제에 영향을 받은 역사학자와 역대 정부 등의 여러 원인에 의해 민족 황실과 민족역사가 일제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힌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자제하기 위해서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독재자나 제국주의자가 개악한 도시 명칭도 독재자나 제국주의자가 망하면 원래의 명칭으로 복구를 한다

●그러나 일제가 조작, 개악한 천황산은 일제가 물러간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밀양 땅에는 버젖이 남아 있다

●해마다 밀양 관아 앞에서 재현하는 《3.13 밀양 독립만세운동》의 한 장면

●일경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탄압, 진압하고 있다

●밀양 관아 앞에는 성난 밀양 군중에 의해 깨어진 정병하 밀양군수의 송덕비가 서 있다

●국모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곧 이어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통감정치가 시작되고 결국에는 일제에 병탄되어 식민정치가 시작되었다

●밀양은 약산(若山) 김원봉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의열의 고장이며 이를 기리는 의열관 등이 관아 인근의 해천변에 조성되어 있다.

●《김원봉》은 평생을 중국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을 주도했다. 두고 온 고향산천, 떠나 온 고국산천을 못 잊어 고향과 고국 생각에 부모형제 생각에 부모님 품과 같은 듬직한 고향 산과 같은 뜻에서 그의 호를 《산과 같아라》 하는 뜻에서 《약산 若山》으로 지었다

●《약산》 즉, 《載藥山》이 아닌 《若山》이다

내가 이렇게 적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제1봉인 載藥山은 월파천유가 조작했고
제2봉인 載藥山은 일제가 조작했기 때문이다

밀양시의 중심가에는 한글로 된 《새 주소 도로명》에 《약산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藥山》으로 선입감을 들게 한다

●《약산 김원봉로》로 해야 사람들이 뜻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원봉의 독립운동을 기리는데 가장 알맞다.

●나는 《若山》을 《載藥山》으로 선전하려는 사람들의 못나고 교묘한 짓을 미리 경계하려는 뜻에서 이러한 내용을 적는다

■■■2020년 12월 초에
《함양~울산 고속도로》의 《밀양~울산 구간》이 개통되었다

밀양댐 아래에 《백마산》이 있다
백마산 동쪽에는 《載嶽山 향로봉》이 있다

등산객들이 이 《향로봉》을 《향로산》으로 부르니까 《향로산》으로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잘못되었다

《향로산》표지석을《향로봉》으로 변경해야 한다

한국도로공사는
《백마산》 아래로 통과하는 터널 명칭을 엉터리로 》
《載藥山 터널》로 붙였다
이 《載藥山》은 《제2봉》을 뜻한다
즉, 《일제식 산명》을 터널 명칭에 붙였다
당장 명칭을 《백마산 터널》 또는 《백마산, 載嶽山 향로봉 터널》로 변경해야 한다

《백마산 정상》에는
《밀양의 고대 읍락국가》인 《미리미동국》 시대에 쌓은 고대산성 터가 있다
《백마산성》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우리의 조상들이 쌓았다
《임진왜란》 때 이 산성에서 고례리 출신 《송재 박명복 의병장》과 그의 《셋째 아들 박봉일》이 왜적과 싸웠으나 중과부족으로 무수한 밀양 사람들과 함께 왜적에게 죽어갔다
《백마산》과 《백마산성》은 우리 밀양을 지켰던 곳이다
이런 신성한 곳에 《한국도로공사》는 《일제식 산명인 載藥山》을 《터널 명칭》에 붙이는 잘못을 저질렀다
《한국도로공사》는 당장 《載藥山 터널》 간판을 철거하고 《백마산 터널》 또는 《백마산, 載嶽山 향로봉 터널》로 새로 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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